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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랭커-106화 (106/862)

6화. 서막 (4)

샤논은 수하의 뒷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은 단 하나.

왜?

‘다른 클랜의 일들에는 절대 끼어드는 법이 없다는 놈들이 대체 왜!’

독식자에 대한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뒤였다. 앞으로 어떻게 전선을 구축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잊어 버렸다.

그만큼 외뿔부족의 등장이 주는 충격은 너무 컸으니까.

그들이 등장해 버린다면 기껏 고생해서 구축해 놨던 전선은 엉망이 될 게 분명하다.

특히 랭커가 아직 한 명도 도착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쿠람이 저들의 손에 떨어진다면, 레드 드래곤은 초기 전투부터 패배를 한 것으로 기록되고 만다.

그리고 그 총책임자는 샤논이니, 모든 오욕을 자신이 뒤집어 써야 했다.

아니, 오욕은 어떻게든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레드 드래곤의 특성 상, 중징계를 피할 수가 없다.

그때는 정말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샤논은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도 부디 저들 중에 랭커가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일말의 승산이라도 볼 수 있을 테니까.

있다면 한두 명쯤. 최소한 무왕은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밖에 도착했을 때.

샤논은 세상이 무너지는 절규를 맛봐야만 했다.

“으랏차차!”

“불이다! 불이다아아!”

“폭발하자! 쾅! 쾅!”

달이 그윽하게 뜬 밤하늘을 따라, 수백 개에 달하는 궤적이 유성우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미친놈처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웃음소리의 크기만큼이나 착지할 때마다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착지한 장소가 지반이면 지반이 무너졌다. 성곽이면 성곽이 쓰러졌고, 건물 지붕이면 건물이 통째로 주저앉았다.

그러다 사방으로 뻗쳐 나가면서 성내 곳곳을 활보했다. 가로막는 것들은 모조리 부숴 나갔다.

건물이든, 플레이어든, 전혀 가리지 않고 줄줄이 쓰러졌다.

거대한 쓰나미라도 몰려온 것처럼 재앙을 맞은 쿠람은 그들을 어떻게 막아 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초기에 전선을 구축하면서 쿠람 곳곳에 결계를 설치하고, 방어용 마법을 깔아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발동하기도 전에 먼저 튀어나온 자들로 인해 죄다 부서져 나가버렸으니까.

특히 외뿔부족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자들이 있었다.

‘노래하는 망치? 거기다 전격술사까지! 대체 이딴 도시에 저런 놈들을 왜 끌고 오는 거냐고!’

노래하는 망치, 사일론. 전격술사 트라비아.

갑자기 사라졌다던 두 랭커가 마구잡이로 활개 치면서 결계와 방어용 트랩을 모두 부숴 버리고 있었다.

거기다 더 환장할 노릇은 따로 있었다.

저 먼 성곽 지붕 위.

누군가가 떠억 하니 올라섰다.

너무 멀어 얼굴도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샤논은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사위를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감.

그러면서도 건치가 훤히 드러나도록 익살맞게 웃는 미소.

무왕.

한때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던 자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미쳤……!”

샤논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무왕이 주먹을 안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여기에 따라 대기가 점차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와류는 점차 커지다 끝내 도시 쿠람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지더니, 무왕의 주먹으로 빨려 들어가다가 한 점에 단단히 응축되었다.

그리고.

콰아앙-

무왕이 주먹을 앞으로 내뻗자, 응축되었던 공기가 단번에 팽창하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은 성곽에서부터 저 깊숙한 도시 중앙부까지, 단번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범위를 쓸어버렸다.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지반이 요란스럽게 흔들리고, 부서진 건물 파편들이 강풍에 떠밀려 곳곳으로 떨어졌다.

외뿔부족의 등장으로 평범한 거류자들은 대부분 도망치고, 이미 문을 닫은 상점 구역을 중심으로 폭발을 일으켰다지만. 그래도 피해는 엄청났다.

외뿔부족을 막기 위해 움직이던 레드 드래곤 측 플레이어들은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죄다 쓸려 나갔다.

오밀조밀하게 조성되어 있던 건물들도 모두 모래 안개에 갈려 나가고 말았다.

콰르르르-

우르르!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샤논은 얼이 빠진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휘휘휘-

샤논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세상 끝까지 퍼져 나갈 것 같던 먼지 구름이 힘을 잃고 천천히 바닥에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저 빌어먹을 족장이!”

“아, 좀 보고 날리라고요!”

몽땅 쓸려나가 폐가나 무너진 건물도 좀처럼 남아 있지 않은 폐허 위쪽으로.

외뿔부족원들이 무왕이 있는 곳을 보면서 고래고래 성을 내는 것이 보였다.

간만에 날뛸 수 있다는 사실에 부푼 마음을 안고 쳐들어왔더니. 이제 좀 설쳐 보려는 찰나에 족장이라는 인간이 훼방을 놓았으니 화딱지가 날 수밖에.

하지만 무왕은 정작 그런 부족원들을 보면서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꼬우면 니들도 하든가.”

딱 때리고 싶은 미소였다.

“이런 니미!”

“하여간 저 불어 터진 인성. 진짜……!”

“요즘 이상하게 조용하다 했지!”

부족원들은 잔뜩 성을 내다가,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남은 먹잇감도 뺏기겠다는 생각에 도시의 남은 구획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미 레드 드래곤 측은 모든 의욕을 상실해 버린 지 오래였다.

어떻게 그들을 막아 보겠다면서 불태우던 의지도 꺾였다. 도시를 사수해 보이겠다던 용기도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격차도 적당히 나야 막아 볼 마음이라도 생기지,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으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법이었다.

세상 어느 누가 ‘자연 재해’를 앞에 두고서 극복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그만큼 무왕의 등장은 그들에게 있어 너무 큰 충격이었다. 태풍이나 지진만큼 그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결국 쿠람의 남은 구역은 곧 달려오는 부족원들에 의해 쉽게 점령되었다.

곳곳에서 김 빠져 죽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털썩-

샤논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에는 더 이상 힘이 실리지 않았다. 눈가도 파르르 떨렸다.

버락과 함께 11층을 상징하던 쿠람의 궤멸.

머릿속은 공포로 새하얘질 뿐이었다.

바로 그때.

타악!

“으음. 이딴 몰골이면 난감한데.”

무왕이 샤논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 멀리서 허공을 박차 단숨에 날아왔다.

하늘을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고 날렵한 움직임.

그는 쿠람 내에서 가장 강한 기세를 갖고 있던 샤논을 위아래로 훑었다.

옷차림으로 봐서는 레드 드래곤 내에서도 제법 직급이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런 꼬락서니라니 성에 차지 않았다. 녀석에게 시킬 일이 있었으니까.

무왕은 자세를 쭈그리고 앉아 샤논과 눈높이를 맞췄다.

“야.”

그냥 동네 친구를 부르는 것 같은 가벼운 부름.

하지만 샤논은 갑자기 정신을 퍼뜩 차리고 말았다. 새하얗던 머릿속이 갑자기 개운해지면서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다.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다 손을 집어넣고 강제로 열어 버린 것 같은 기분.

“예? 으, 으아악!”

샤논은 눈앞에 뭔가가 있어서 얼결에 대답을 했다가, 곧 그게 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저지르고 만 작자가 씩 웃으면서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샤논은 어떻게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장난꾸러기 같이 웃고 있는 무왕의 눈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전신이 보이지 않는 사슬로 칭칭 감긴 것만 같았다.

간담이 서늘했다. 목 아래가 떨렸다.

마치 저 멀리에 있는 그들의 리더인 여름여왕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패기만 따진다면 그 이상이었다.

“살고 싶지?”

처음에는 온통 겁에 질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곧 뒤늦게 말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 살고 싶습니다……!”

샤논은 도무지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패배를 했다는 절망감 따윈 없었다. 수하들을 어떻게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추후에 상부에서 책임을 물을 거란 걱정도 지금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 눈앞에 있는 괴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도 ‘살아서’ 나가고 싶었다.

무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능글맞은 웃음이었지만, 샤논의 눈에는 뱀이 쥐를 앞에 두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하는 것으로만 비쳐졌다.

“그럼 기회를 주지.”

무왕의 미소 사이로 송곳니가 훤히 드러났다.

* * *

“……미쳤군.”

폐허가 된 쿠람을 보고 난 뒤에 연우가 내뱉은 감상평이었다.

그만큼 이번에 외뿔부족이 보인 실력은 너무 압도적이었다.

단 20분이었다.

11층의 최대 도시라는 쿠람이 정복되는 데에는.

아니, 무너지는 데에는.

그마저도 쿠람을 부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다.

남은 15분은 잔당들을 잡아다 한쪽에다 차곡차곡 모아두는 데 소요된 시간이었다.

외뿔부족의 전쟁은 아주 단순했다.

힘으로 찍어 누르고, 부쉈다.

가로 막는 사람이 있으면 해치우면 그만이었다. 다른 뭔가가 있으면 부수고 지나가면 끝이었다.

그런 걸 두고 대체 뭐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태양을 가를 때부터 봤지만, 그 일격은…… 도무지 어떻게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무왕이 날렸던 일격(一擊)은 여전히 연우의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단 일격으로 도시의 절반을 휩쓸어 버린 힘.

그건 분명히 연우더러 보라고 보여 준 힘이었다.

태양을 갈랐던 단천과 함께 팔극권의 8대 비기 중 하나. 또한, 팔괘의 힘 중 ‘손’의 힘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에 나타난다는 힘.

‘파공(破空).’

무왕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따라오려면 부단히도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이것을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면 아예 뜻을 접으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물론, 연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팔극권을 극성까지 단련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부단히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저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천익기공도 그만큼 걸맞게 발전을 시켜야 할 터였다.

그렇게 의욕을 다지는 연우와 다르게.

“하아! 저 아버지가 또…… 기만을…….”

“하루 이틀 겪어? 어차피 아버지가 여기에 나타나신 이상, 뛸 기회가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야지.”

판트는 머리를 짚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도라는 뚱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러다 에도라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오라버니의 실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지? 저렇게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면 어떻게 싸워 볼 기회도 없을 텐데.”

에도라는 무왕이 연우에게 관심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식에게도 무공을 잘 가르쳐 주지 않는 양반이 연우를 제자로 들였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리고 무공의 빠른 습득 방법은 실전을 경험케 하는 것.

분명히 무왕은 말했었다. 직접 싸움에 참전하고 싶다는 연우에게 아주 물릴 때까지 실컷 실전을 겪게 해 주겠노라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 약속을 지키려는 걸까?

그때.

쐐애액-

연우와 판트, 에도라가 있는 성곽 위로 뭔가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무왕이었다. 그런데 양손에 뭔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있었다.

“아버지지?”

“어. 맞아.”

“여기는 또 왜 오시는 거야? 아니, 그런데 대체 손에 뭐를 들고 있는 거지?”

“사람……인 것 같은데.”

“저 양반, 또 뭘 꾸미려고……?”

판트와 에도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연우도 영문을 몰라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그때, 무왕이 그들 앞에 착지했다. 마치 가볍게 동네 산보라도 다녀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무왕은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뒀다.

샤논을 비롯한 플레이어 다섯 명.

무왕이 쿠람을 샅샅이 뒤지면서 수집해(?) 온 레드 드래곤 측의 최고 실력자들이었다.

물론, 그래 봤자 그들 전부 무왕 앞에서는 꼬리를 잔뜩 만 생쥐 꼴이 되고 말았지만.

그들은 모두 얼이 빠진 채로 무왕을 올려다봤다. 살려 주겠다는 말을 듣고 끌려왔는데. 도통 뭘 시킬 건지 용건은 말해 주지 않았다.

무왕은 씩 웃으면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연우를 턱짓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싸워.”

“……예?”

“무, 무, 무슨?”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우 쪽으로 쏠렸다.

가면 아래, 연우의 얼굴이 어이 없어하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왕은 재미나다는 듯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저놈과 싸우라고. 저 녀석을 이기는 놈은 살려 보내 주지. 어때?”

“……!”

“……!”

모두가 충격을 먹은 가운데.

판트는 또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려는 아버지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저 불어 터진 인성,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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