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06화 (406/862)

6화. 50층으로 (3)

-너와 2번대가 해야 할 임무는 아주 간단하다. 헤드 커터(Head Cutter) 녀석들이 독식자를 제거하러 움직이는 동안, 너는 독식자의 전력을 소상히 파악할 것.

철사자단의 부단장, 조나단은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대장, 철사자 아이반이 했던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

지난 고행오산에서의 패퇴 이후, 철사자단은 급격한 내홍을 겪어야만 했다.

한낱 독식자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때문에 용병단으로서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내분이 생기며 지휘 체계에 말썽이 생기기도 하고, 그동안 철사자단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던 타 용병단들이 거리를 두거나 철사자단을 중심으로 한 질서 체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반은 그런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참에 걸러 낼 건 크게 걸러 내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칼을 뽑기까지 했다.

때문에 큰 출혈이 뒤따랐고, 용병계는 오히려 내홍 이전보다도 훨씬 더 단단하게 질서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아이반은 이것을 토대로, 용병 연맹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내세운 명분은 간단했다.

탑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니 용병들 간의 단합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아이반의 표적이 어디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독식자와 그를 돕는 무리들에 대항하는 것. 과연 대장님의 생각이 얼마나 통할는지.’

사실 조나단은 독식자와의 대립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용병은 용병으로 살아야 그 가치가 발하는 법.

자유를 빼앗고, 강제를 한다면 당연히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반은 지금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자식을 되찾아와야겠다는 생각 때문인 건지, 아니면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함 때문인지.

게다가 독식자의 전력이나, 그를 따르는 자들, 그리고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도무지 쉽게 끝날 리가 없다.

아마 아이반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거의 1년 만에 스테이지로 되돌아온 독식자의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자 자신을 보낸 것이겠지만.

‘머리 아프군.’

조나단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누르던 그때였다.

“하핫. 날씨가 참 좋군요. 거참 목 자르기 딱 좋은 날씨 아닙니까? 하하. 모든 병력들이 다 집결했습니다.”

조나단이 있는 곳으로 십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걸어왔다. 하나 같이 살벌한 기색을 띠는 자들이었다. 특히 그들을 이끄는 자의 눈동자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중이었다.

헤드 커터.

이 녀석들은 사실 랭커들 사이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놈들이었다.

의형제를 맺은 열댓 명의 무리가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점찍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다 장신구를 만드는 게 취미인 놈들.

워낙에 손속이 잔인하고, 도처에 적을 많이 만들어 놓은 까닭에 평상시에는 음지에 숨어 사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뛰어난 실력 때문에 많은 의뢰자들이 찾는 편이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아이반의 의뢰를 받고 움직인 것이다.

녀석들은 처음 42층의 시련에 참여하기 전에 의논을 나눴던 대로 화이트 팀을 선택해 모인 상태였다.

조나단은 걸어오는 내내 건들거리는 녀석들의 태도가 영 못마땅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애당초 말을 한다고 해서 알아 들을 놈들이었다면, 독식자를 사냥하겠다는 미친 의뢰를 받지도 않았겠지.

“독식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찾았나?”

“으히히. 따로 찾을 필요도 없겠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블랙 팀으로 가는 곳에 그림자 괴물이 서서 길목을 막고 있더랍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조나단의 눈이 살짝 빛났다.

“팀을 혼자서 독차지한다?”

“빙고! 이 욕심 많은 우리 목표님께서 또 욕심을 부리시는 거죠. 과욕을 부리다가는 급체하기 쉬운 법인데 말이죠. 으히히.”

녀석들은 서로를 보며 낄낄거리기 바빴다. 한 개의 팀에 배정되는 해골 문장은 총 5개. 그것을 혼자서 독박 쓴다면 당연히 팀에 부여되는 디버프도 혼자 몰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이쪽은 헤드 커터 외에도 고용된 킬러들과 철사자 2번 대까지 합쳐서 인원이 60여 명에 다다른다.

해골 문장의 디버프를 받는다고 해도, 많은 인력이 나눠서 받다 보면 효과도 그만큼 반감되기 마련. 독박을 쓴 독식자와는 큰 차 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인원수도 이쪽이 월등히 많은데, 알아서 실력까지 다운시켜 준다면. 그들로서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뒈지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나단은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받고 말았다.

‘녀석이 이렇게 나온다고? 자체해서?’

조나단은 여전히 아리기만 한 오른쪽 팔뚝을 매만지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오래전, 독식자의 기습을 받아 잘려 나가고 말았던 부위.

여태껏 그가 파악한 독식자는 절대 이렇게 뻔히 보이는 악수를 둘 자가 아니었다.

능구렁이를 몇 마리나 품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용의주도한 녀석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런 조나단의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간 빨리 스테이지 미션이 시작되었으면 좋겠군.”

“독식자라. 소문만 무성하게 돌던데, 진짜 어떠려나? 목이 잘리기 직전에 내는 소리는 다른 놈들과 똑같을 텐데 말이지.”

“이번에는 무슨 소리가 나게 하지? 키키키킥!”

헤드 커터를 비롯한 킬러들은 벌써 독식자를 다 잡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낄낄거리기 바빴다.

[팀 배정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선택을 마무리하세요.]

[00:01:00]

[00:00:59_99]

…….

그래도 의뢰를 허투루 할 생각은 없는 건지, 팀 배정 시간이 끝나간다는 카운트가 뜨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드 커터는 원래 그들이 사냥에 나설 때 사용하는 포지션을 갖추고, 다른 킬러들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독극물을 다루는 자들은 병을 확인하며 뒤로 빠지고, 직접 몸으로 움직이는 어쌔신들은 은신 스킬을 사용하면서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00:00:24_56]

30초가 지나기 시작하자, 공터를 둘러싼 어둠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훤히 드러나는 스테이지 광경들.

드넓은 숲의 정경이었다.

하지만 화이트 팀에 있는 그들은 저 너머에 갖가지 지형이 갖춰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42층의 스테이지는 다양한 지형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구조였다.

4개의 진영 간에는 3개의 큰길과 12개의 작은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주변은 크게 협곡·평원·늪지대·고산 지대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지형지물은 각 회차마다 계속 무작위로 바뀌었다.

때문에. 스테이지 미션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은 지형지물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타 팀으로 빠르게 침투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할 수도, 매복 장소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러는 전투에 도움이 되는 히든 피스들도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 흔히 ‘길잡이(Path Finder)’나 ‘정글러(Jungler)’라고 명명된 이들의 활약이 가장 중요했다.

길잡이 역할로 참여한 2번대 용병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들 중에는 엘프를 조상에 두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역시나 아이반이 특별히 조나단에게 붙여 준 자들이었다.

[00:00:19_61]

“출발하기 전에 짤막하게 말하겠다.”

헤드 커터는 어둠 너머로 보이는 지형 구조를 눈대중으로 빠르게 훑던 중, 갑자기 입을 떼 들려오는 조나단의 목소리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그들은 영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조나단이 별의별 쓸데없는 소리로 그들의 신경을 긁어 놓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독식자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 그러니 단단히 주의를…….”

“이보십시오, 부단장.”

[00:00:10_33]

그때, 헤드 커터의 수장, ‘이온의 학살자’ 파라탄이 한쪽 입술 끝을 차갑게 말아 올렸다.

“의뢰를 받고 난 뒤부터 일을 하는 건 전적으로 우리의 소관이오. 거기에 대해 당신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란 말이지. 뭘 우려하는지는 알고 있으니, 그쪽은 거기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죠.”

“…….”

조나단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발끈한 수하들이 나서려 했지만, 조나단이 손을 뻗어 제지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00:00:6_10]

파라탄은 그 모습을 보며 조나단이 꼬리를 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의형제들을 돌아보면서 낄낄거렸다.

“철사자단, 철사자단, 그렇게 노래를 불러 대더니, 이제는 이빨도 다 빠져 버리고. 겁만 많아져서는. 쯧!”

[00:00:3_98]

“원래 앞 물이 뒤의 물 밀어내고, 세대도 교체되고,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크하핫! 나도 이참에 용병왕에 한번 도전해 봐?”

[00:00:2_10]

“형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습죠. 이참에 독식자 모가지 잘라다 악세사리로 들고 다니면서 용병단이나 규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형님?”

“그럴까?”

염병할 것들.

조나단은 잔뜩 굳은 얼굴로 놈들을 노려봤다.

[00:00:1_59]

“뭐, 그런 건 일부터 끝내고 천천히 생각하자고.”

때마침 카운트가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둠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00:00:00_02]

[00:00:00_01]

[00:00:00]

[카운트가 종료되었습니다.]

[팀을 선택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무작위로 팀이 배정됩니다.]

[그럼 시련이 시작됩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자, 그럼 이제 모가지 따러 가……!”

파라탄이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서려던 순간.

스걱-

갑자기 그의 머리통이 말하던 그대로 잘렸다. 어깨에서 분리된 머리가 바닥으로 뒹굴었다.

“대, 장……?”

방금 전까지 파라탄과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던 놈들은 상황을 즉각 인지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다가, 뒤늦게 핏물이 얼굴에 튀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다.

하지만.

쐐애액, 스걱, 스걱-

이미 녀석들 사이로 빠르게 다가온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줄줄이 머리통이 떨어져 나가고, 외곽에 있던 킬러들이 기겁을 해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녀석들도 불시에 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 이거 뭐야……!”

“놔! 놓으란 말이야!”

“읍! 으으읍!”

어느새 그들의 그림자가 위로 길쭉하게 늘어나 신병을 단단히 구속하고 있었다.

그림자 사이로 언뜻 드러난 영괴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곡선을 그렸다.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놔! 제발!”

영괴에게 묶인 플레이어들은 어떻게든 그림자를 떨쳐 내기 위해 아등바등했지만.

그럴수록 영괴는 더 거세게 그들을 속박하면서 플레이어들을 그림자 속으로 잡아당겼다. 그림자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내내 그들은 코와 입이 막힌 채 살려 달라며 발버둥을 쳐 댔다.

「그러게 발 뻗을 곳도 어디인지를 잘 알고 뻗었어야지. 감히 네깟 놈들이.」

공간이 갈라지면서 살벌한 안광을 피워 올린 한령이 나타났다. 그는 큰 칼을 쥐면서 으르렁거렸다.

「전부 잡아먹어라.」

그의 외침에 따라, 그림자가 해일처럼 일어나 화이트 팀을 가득 뒤덮었다.

* * *

난리가 난 곳은 화이트 팀의 진영만이 아니었다.

아아악!

“파우스트! 어째서 리치 따위가 파우스트의 마법을……!”

“도망쳐! 도망쳐라!”

“마법이! 마법이 발동되질 않아! 으아악!”

용병 연맹 말고도, 다섯 개의 마탑을 중심으로 구성된 마법 연합에서 파견된 마법사들도 있었다.

통칭 ‘워 메이지’로 분류되는 자들.

마법학은 수많은 학파로 나뉘어 있는 만큼 공격 마법에 특화된 이들도 있기 마련이었고, 그중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이들이 바로 전쟁을 무대로 살아가는 워 메이지였다.

마법 연합에서는 그들에게 상당한 아티팩트를 쥐여 주며 독식자를 잡아 올 것을 명령했지만.

스테이지 미션이 시작되면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어떻게 결계를 구축하거나 반격을 가하려 해도, 체내의 마력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원인을 찾던 그들은 뒤늦게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저 드높은 상공을 따라 돔의 형태로 구축된 마방진 때문이었다.

화계 화진(禍界禍陣).

돔 안에 갇힌 자의 마력을 단단히 구속해서 생명력을 앗아 가는 결계!

마법을 익힌 자라면 누구나 숭상할 법한 전설적인 존재, 파우스트가 만들었지만 그의 실종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결계가 나타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돔의 위쪽에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인페르노 사이트가 이쪽을 굽어보고 있었으니.

그 눈을 본 순간, 워 메이지들은 어떻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뼛 굳어 버리고 말았다.

고양이 앞에 놓인 쥐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워 메이지들은 이미 스테이지 미션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만 했다.

저 눈의 주인이 진즉에 위치를 파악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두고 있었던 것이다.

돔을 따라 맺힌 수많은 마방진을 통해 이어지는 마법 포격에 그들이 맞설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고.

탈출을 하려 해도, 입구를 봉쇄하면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그림 자와 망령의 해일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죽음의 손길이 그들의 목을 단단히 옥죄고 있었다.

「주제. 도. 모르는. 것들.」

부는 감히 주제도 모르고 주인님을 해하려 한 이들을 모두 쓸어버리겠다는 듯, 마력의 출력을 더 높이기 시작했다.

마성이 사라진 뒤, 파우스트로서의 기억과 정체성을 다시 잃어버리긴 했어도. 여전히 그에게는 그만한 파우스트가 남긴 잔여 기억이 있었다. 무면목법서가 빠르게 돌아갔다.

우우우-

귀곡성이 음산하게 퍼졌다.

영괴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해골 문장을 가로챘다.

[혼돈이 가만히 전장을 굽어봅니다.]

* * *

[화이트 팀의 ‘해골 문장 × 5’을 수거하였습니다.]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블루 팀의 ‘해골 문장×5’을 수거하였습니다.]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권능, ‘전투 본능’을 사용, 디버프를 해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우는 몸이 계속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지만, 오래전에 아레스로부터 받은 권능을 사용해 전부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전투 본능〉은 전투에 참여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것들을 일시적으로 해제해 주는 데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전장은 권속들에게 전부 맡겨 두고, 다른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시오.”

“오랜만에 볼…… 아니, 이제는 존대를 해야겠구려. 그대는 폐하의 절친한 벗이니. 오랜만에 뵙소. 카인.”

혈국의 수상, 괴(怪) 뚜언띠엔 공작이 빙긋 웃으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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