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62화 (462/862)

12화. 중앙 관리국 (4)

“아니, 그러니까 그놈을 당장에라도 패대기쳐 버리자, 이 말 아니오!”

“흥. 나이를 저리 먹고도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때리자, 죽이자, 이딴 말밖에 없으니. 저러니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뭐? 그거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냐?”

“그럼? 여기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는 게 너밖에 더 있나?”

“이 개 같은 년이……!”

“시끄러, 이것들아!”

“으아아암.”

언제나 여러 플레이어들의 사건 사고로 혼잡하던 관리국이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평소보다 더 시끄러웠다.

난데없이 51층에서 사고를 친 작자 때문이었다.

영왕.

플레이어 네임도 공개되지 않아 블라인드 처리되는 까닭에,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카인’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인물이었다.

최근 들어 관리국의 SSS급 요주 인물이 되어 버린 자.

그런 녀석이 또 사고를 쳐 버렸다.

51층을 통째로 날려 버린 것이다.

“으음.”

회의를 진행하는 내내, 클루스는 머리가 아파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야만 했다.

‘이래서 내가 국장은 절대 맡지 않겠다고 그리 소리를 쳤던 것인데…… 젠장!’

연우에 대한 처분을 논의하는 중앙 회의.

통칭 십이지신으로 분류되는 12명, 아니, 이제는 11명으로 줄어든 최고 관리자들은 서로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기 말만 내뱉기에 바빴다.

하나같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캐릭터도 명확한 녀석들이라, 원래는 이렇게 잘 모이지도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긴급 소집령을 내린 것이다.

30여 년 만에 모였으면 서로 반갑거나 하는 것도 있어야 할 텐데.

이 빌어먹을 것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서로 멱살을 잡으면서 으르렁거리질 않나, 어떤 놈은 늘어져라 하품을 해 대질 않나. 또 어떤 놈은 꾸벅꾸벅 졸거나 주변 눈치를 보면서 울음을 터뜨리려는 등, 도저히 어떻게 통제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씨발, 다 엎어 버릴까?’

클루스는 한순간 갈등했다. 자신이라고 해서 국장 자리를 맡고 싶어서 맡았던 것도 아니고, 이들을 끌고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가는 일 년을 꼬박 새워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클루스의 코드 네임은 인(寅). 즉, 호랑이었다.

그만큼 한때, 플레이어였을 시절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있으면 뒤집거나, 다 때려 부수고 다녔었기에 붙은 것인데.

그래도 나이를 먹은 데다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참을성이 많이 생겼던 차였다.

하지만 자꾸 이런 식이면 아무리 부처가 와도 폭발할 게 분명 하다.

결국 클루스의 두 눈에 스산한 안광이 감돌고, 탁상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갈 무렵.

짝!

갑자기 여태껏 가만히 있던 이블케가 크게 박수를 쳤다. 순간,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오효효. 이제 어느 정도 개인적인 의견도 발표한 듯싶으니, 국장님의 의견도 들어 보는 게 어떨는지요?”

최고 관리자들은 헛기침을 하면서 저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무도 이블케와 눈을 마주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클루스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나같이 망나니나 다름없는 것들이 저리도 이블케의 눈치를 보기 바쁘니.

하지만 그라고 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분명 무력적인 면에서는 자신이나, 진(辰)의 디아블로가 우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블케에게는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든 무형의 벽이 있다고 해야 할까. 옆에 서는 것만으로도 위축되는 게 있었다. 분명히 작은 체구였지만, 이블케는 누구를 갖다 대더라도 오히려 그가 훨씬 더 커 보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항상 존대와 예의를 잃지 않았으니. 그에게는 가까운 지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도 없었다.

덕분에 이블케는 최초로 관리국장의 자리를 4번이나 연임하는 기염을 토해 내기도 했다.

만약 이번에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5번 연임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최고 관리자직에는 가장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수많은 종족들 중에서도 최하위 종에 해당하는 고블린 출신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자와 현자를 존경하는 클루스로서는 그런 걸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게 조금 흠이긴 하지만.’

관리국이 집중 관리하는 블랙리스트는 보통 최고 관리자들이 도맡는 경우가 있었다. 그중 가장 상단에 있는 영왕은 이블케가 맡고 있는바.

그런데도 이블케는 그동안 영왕에 대해 이렇다 할 큰 제재를 가한 적이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의도성이 다분했던 이번이 전부였다.

그래도 자신이 맡은 일은 말끔하게 잘 처리하니 뭐라고 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이 분위기를 바로 잡아 준 그에게 감사했다. 가볍게 목례를 하자, 이블케가 이해한다는 듯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우선 영왕에 대한 처분은.”

클루스는 모든 최고 관리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까부는 건 허락지 않겠다는 듯 강한 마력을 실어서일까, 대기가 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오래전, 무왕에게 했던 것과 동일하게 진행할까 하는데, 다른 의견이 있는가?”

* * *

저벅.

저벅.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좁은 통로를 따라, 연우는 두 손이 수갑으로 단단히 구속된 채 다섯 명의 관리자들의 호송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연우가 어떤 해코지라도 할까 싶어 두 눈을 부릅뜨며 그를 철저하게 감시했지만.

연우는 그들에게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자신이 지나는 곳을 둘러보거나, 자신의 마력을 봉인시키고 있는 수갑을 탐구심 어린 눈빛으로 보았다.

분명히 신진철은 아닌데. 대체 이것의 재질은 무엇일까? 알아낼 수 있다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망막을 가득 채운 지난 메시지들을 다시 체크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15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모든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위대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시겠습니까?]

……

[52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다행히 골치 아플 거라고 생각했던 51층의 시련은 무사히 끝난 것 같았다. 그것도 명예의 전당에 다시 압도적인 1위를 갱신하면서.

‘등산을 하는 게 시련의 내용이긴 하지만, 그 산을 부숴서 조각들의 위에 섰으니 같다고 판단한 거겠지.’

탑의 시스템은 어떨 때는 되게 깐깐한 듯 굴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편법에 눈감아 주는 경우도 많았다. 이것 또한 나름대로 정해진 룰이 있는 듯한데, 그 정확한 내용까지는 알기 힘들었다.

연우로서는 골칫거리를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원했던 대로 관리국도 만났으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더구나 그가 새롭게 탄생시킨 궁극기도 마음에 들었다.

[유성검결(流星劍訣)]

넘버링 ???(측정 중)

숙련도: 2.5%

설명: ‘불의 파도’를 기반으로, 제천류와 마룡신체의 특성, 사왕좌의 신성, 칠흑왕의 권능, 수천 개의 채널링 등, 다양한 힘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검환(劍丸)을 다량으로 형성하여 부리는 검술.

사용법에 따라 다양한 응용기가 탄생할 수 있다.

그 폭발적인 위력과 가능성은 모든 신과 악마들이 주목할 정도로 대단하다. 다만, 아직 통제를 하는 데 있어 부족한 면이 보여 개량의 필요성이 있다.

* 검환 생성

심력과 마력이 마르지 않는 한 다량의 검환을 생성할 수 있다. 이때 만들어진 검환은 스스로 자전하여 형체를 유지하며, 폭발력은 회전 속도에 비례해서 커진다. 그 외의 효과는 ‘불의 파도’의 옵션과 동일하다.

* 성계 출현

형성된 검환이 시전자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이때 발생되는 빛과 열은 다른 검환에 영향을 끼쳐 위력을 증폭시키며, 검환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증폭 효과도 더 커진다. 검환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며, 공전이 멈출 시에는 자동적으로 폭발이 이뤄진다.

* ???

현재 알 수 없음.

**이 스킬은 ‘레전더리’입니다. 탑 내에서도 오로지 당신만이 구사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절대 전수하거나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아직 미완성인 스킬입니다. 권능 혹은 신권으로 발전할 잠재 가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완성’을 이루어 당신만의 고유 스킬로 장착하세요.

***사용 가능한 응용기(2/???)

성계: 다량의 검환으로 신체를 보호한다.

폭우: 지정 위치에 다량으로 쏟아 내어 폭격을 구사한다.

레전더리 스킬!

그 단어를 본 순간, 연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타인에게 전수도 양도도 불가능한 스킬. 오로지 시전자의 기량만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올포원의 〈축지〉나 〈천리안〉, 무왕의 〈무극〉, 여름여왕의 〈푸른 여름〉이 바로 여기에 해당했다.

물론, 당장 그들과 견주려면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 그래도 같은 선상에 놓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무려 탑의 시스템이 인정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레전더리 스킬은 달리 다른 단어로도 대체할 수 있었다.

권능.

혹은 신권.

초월자인 신과 악마들의 신성을 상징하는 힘.

연우가 완전한 탈각과 초월을 이루면 이것이 자연스레 그만의 권능과 신권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필멸자의 몸으로 그만큼 탈각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니. 영혼의 격도 그만큼 상승했을 터였다.

하지만 연우를 설레게 한 것은 단순히 레전더리 스킬이라는 단어만이 아니었다.

이것이 앞으로 대립하게 될 다른 초월자들에게도 충분히 먹히리란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잘 가다듬는다면 나아가 올포원과도 충분히 겨룰 만해질 테지.

‘물론, 그 전에 스승님의 낯짝부터 후려쳐야겠지만.’

연우는 언젠가 이루리라 다짐한 생각을 정리하다가.

“여기다.”

앞서 걷던 관리자가 걸음을 멈추자, 생각을 멈추고 자신도 똑같이 정지했다.

관리자가 흉흉한 낯으로 이쪽을 돌아봤다. 그에게서는 우악스러운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웬만한 아홉 왕들과도 비견할 만한 기세. 자신이 전력을 다해 부딪친다고 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든 이였다.

‘중급 관리직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대단해.’

관리국은 웬만한 사건 사고에 대해서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각 층계와 시련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음지에서 관리하는 것. 플레이어들을 안내하고, 시스템의 손길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감당하는 게 그들의 몫이었다.

이를테면, 탑에 예속된 정령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일까. 간혹 플레이어들 중에는 관리자들이 단순히 시스템의 가호를 받는 NPC라고 여기며 괄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봤을 땐 정말이지 멍청한 놈들이었다.

시스템의 가호를 받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탑의 정령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본다면 알 수 있을 텐데.

관리자들에 대한 정체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가명이나 코드 네임을 써서 정체를 가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그들 중 상당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하이 랭커쯤 되면 관리자들과 엮일 일도 많아, 눈치를 채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오래전에 갑자기 자취를 감췄던 하이 랭커들. 죽었거나, 은거를 했다고 알려진 이들. 혹은 어떤 간절한 소망이나 비원이 있지만, 정상을 밟을 실력이 없어 눈조차 제대로 감을 수 없었던 이들.

버릴 수 없는 미련과 번뇌에 가득 차, 어쩔 수 없이 시스템에 종속되어 노예를 자처하게 된 가련한 자들.

그리하여, 옛날의 자신들을 떠올리게 하는 후배들을 음지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뒤치다꺼리만 해야 하는 불쌍한 이들.

그들이 바로 관리자였다.

관리자들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한때 명성을 날렸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재능을 지녔으나, 거기서 그쳐야만 했던 이들.

정상을 밟고자 하는 의지로 탑에 올랐지만. 다른 랭커들과 부딪쳐서, 세력전에 밀려서, 재능의 한계를 느껴서, 실력이 부족해서, 혹은 올포원에 좌절해서, 끝내 여러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제 손으로 칼을 꺾어야만 했던 자들.

그런데도 그들은 마지막을 보고 싶다는 미련 하나로 탑에 예속되어 멀리서 지난날을 그리기만 해야 했다. 절대 자신들을 다시 드러낼 일도, 위명을 떨칠 수도 없었다. 오로지 그림자로만 남아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지금 연우를 이곳으로 끌고 온 자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하나비.

한때, ‘마물왕’이라고도 불리면서, 올포원에 대항할 만한 적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던 그가. 한낱 이름 없는 중급 관리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이 본다면 충격에 빠질 광경이었지만.

하나비는 그런 자신의 모습 따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한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대에게 주어진 형은 유예(猶豫). 저곳에 가면 새로운 인도관이 있을 테니, 부디 그곳으로 가면 더 이상 사고 칠 생각 말고 반성하라.”

하나비가 가리킨 곳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새카만 통로였다. 길을 따라가면 네가 머물 옥실과 해야 할 일이 나타날 것이다. 그곳에서 형이 끝날 때까지 반성하고 있으라. 그것이 ‘유예’의 내용이었다.

마력도 기감도 전부 구속구에 잠긴 상태에서, 저곳으로 들어간다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해질 것이다. 여태껏 그를 보좌하던 시스템이 전면 차단될 테니. 아마 모든 힘을 잃은 듯한 착각이 들 테지.

활발한 육체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에게 그만큼 끔찍한 형벌도 없을 터였다.

그래서 간혹 유예형에 처해진 플레이어들 중에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발버둥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곧 ‘교도보’라 불리는 관리자들에게 제지되기 일쑤였다. 그들도 하나비에 못지않은 실력자들이었으니까.

연우는 하나비를 슬쩍 보다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감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나비는 연우가 반항할 줄 알았던 듯, 의외라는 표정이 되었지만. 연우는 전혀 그쪽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는 건, 그가 바라던 일이었다.

애당초 관리자들을 부르려 했던 이유가 바로 그녀와 접촉하기 위해서였으니까.

‘흡혈군주.’

수많은 권속들을 부리며 탑을 공포로 몰아넣었으나, 갑자기 자취를 감췄던 존재.

또한, 연우가 즐겨 사용하던 바토리의 흡혈검의 주인이기도 했던 군주 에르체페트 바토리.

그녀가 바로 저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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