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중앙 관리국 (5)
동생이 흡혈군주의 행방에 대해 알게 된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계속되는 전쟁이 결국 대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이를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여겼던 건지 관리국은 아주 잠깐 개입을 선언했다.
이때, 나는 다른 왕들과 함께 감옥 ‘야네크의 암굴’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흡혈군주를 만난 건, 바로 그곳에서였다.
야네크의 암굴.
흔히 관리국이 말하는 감옥이었다. 시스템이나 스테이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이들을 일정 기간 동안 가두는 곳.
하지만 대전쟁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던 아르티야와 8대 클랜은 관리국의 중재하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회담을 갖게 되었다.
비록 평화를 목적으로 한 회담은 8대 클랜의 말도 안 되는 요구로 인해 결렬되고 말았지만.
동생은 우연히 중요한 인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죄수로 수용되어 있지만, 도저히 죄수로 보이지 않는 신비한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페렌츠……?”
회담에서 도무지 진전이 보이질 않아 답답한 마음에 바람을 쐬러 나왔을 때,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나를 다른 사람과 착각했던 건지 멍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가, 곧 정신을 되찾고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군. 너, 설마 라나의 후예냐?”
동생은 설마 ‘암굴’에서 두 번째 스승인 라나와 관련된 인물을 만나게 될 줄 생각도 못 했기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눈치가 빨랐던 동생은 신비한 여인에게서 라나의 기색을 읽고, 단번에 그녀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여인은 오래전에 실종된 라나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라나는 언젠가 지나가듯이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흡혈군주의 유일한 피붙이라고.
탑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공포의 대명사나 다름없던, 저주받은 존재의 후예. 그렇기에 한평생 스스로를 숨기며 살아야 했지만, 절대 그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고 했었다.
푸른 장미와 수정궁의 주인, 라나.
그녀는 본래 흡혈군주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유일하게 사랑했던 이종족 남성과 낳은 아이.
비록 적이 많은 관계로 남편과 아이의 존재만큼은 숨기고 살았지만, 가족에게 쏟았던 애정은 진짜였다고 했다.
그런 흡혈군주가 바로 암굴에 있었던 것이다.
동생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스승의 친모를, 그것도 오래전에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하고 만 셈이었으니.
흡혈군주는 동생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라나와 사뭇 비슷해 접근을 했던 것이다. 혹시 자신의 손자인가 하는 기대심을 갖고서.
비록 그녀의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동생이 딸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많이 아껴 주었다.
정말 소문 속에 그 악랄하고 흉포하던 마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동생도 그녀 덕분에 복잡했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비록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둘 모두에게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생은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흡혈군주가 가장 아끼던 스킬이자 애병이었던 바토리의 흡혈검이 튜토리얼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
‘다만, 전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흡혈검을 마음 편하게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관리국이 튜토리얼을 개방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두 번째는 그녀가 암굴에서 가장 오랫동안 복역 중인 죄수라는 사실.
다만, 오래되어도 너무 오래된 탓에 다른 죄수들은 물론, 심지어 교도보들조차도 그녀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끄러운 게 싫은 나머지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숨기고 있어, 아무도 그녀가 암굴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된 것이다.
때문에.
연우는 흡혈군주를 찾아 바로 이 암굴에 오고자 계획했다.
가장 오랫동안 암굴에서 생활한 그녀라면, 이 복잡한 암굴의 구조를 아주 훤히 꿰뚫고 있을 테니까.
그녀의 도움을 빌려, 암굴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심처(深處)’를 찾는 것이, 연우의 최종 목표였다.
‘그곳에 분명히 녀석이 갇혀 있을 테니까.’
튜토리얼을 방문하기 위해선 관리국의 허락 내지 ‘입장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관리국이 입장권을 내어 줄 리는 없으니, 입장권을 보유한 사람을 찾아 양도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이곳 암굴에는 입장권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아니, 가졌을 거라 예상되는 사람이 있었다.
묘(卯)의 라플라스.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몰라도, 단숨에 최고 관리자의 신분에서 죄수로 몰락하고 말았던 녀석이라면.
입장권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아니, 없더라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녀석은 오로지 재미와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변태. 머릿속에 담긴 꾀는 관리자와 플레이어들을 모두 통틀어 단연 최고라 불릴 정도였다.
* * *
[히든 스테이지, ‘야네크의 암굴’에 입장했습니다.]
[스테이지 효과가 적용됩니다.]
[힘이 초기화되었습니다.]
[민첩이 초기화되었습니다.]
……
[모든 속성력과 저항력이 초기화되었습니다.]
……
[모든 스킬과 권능이 정지되었습니다.]
[적용되던 모든 시스템이 중단됩니다.]
야네크의 암굴은 플레이어들을 구속하는 데 특화되어 있는바. 관리국의 의도에 따라 탑의 모든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과거에 동생이 8대 클랜의 대표들과 비밀 회담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들어오는 데 성공했으니까. 다행이야.’
사실, 관리국이 직접 관리하는 ‘감옥’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탑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녔다지만 모든 구획이 개발된 것은 아니었고, 여전히 ‘히든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미개척지는 보통 관리국, 그중에서도 중앙 의회에서 직접 관리를 한다.
그런 곳에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관리국이 직접 미개척지 내 모든 시스템을 확인한 뒤에야, 플레이어들에게 차례로 개방하는 절차를 가졌다.
개척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처럼 ‘감옥’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죄수들을 주로 활용하는 편이었다. 야네크의 암굴도 그중 한 곳이었다.
다만, 연우는 자신이 야네크의 암굴로 배정될 것이란 확신은 없었다.
죄의 경중과 종류에 따라 배치되는 감옥이 다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암굴에 배당되리라 추측되는 죄를 저지르긴 했다지만. 그래도 내심 찝찝했던 건 있었다.
만약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탈옥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의도했던 대로 잘 들어맞은 것 같았다.
‘다만, 이블케 녀석이 조금 꺼림칙한데.’
연우는 자신을 하나비에게 인계하면서 보였던 이블케의 미소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 여유로운 눈빛과 즐거운 웃음.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걸어 들어온 이상,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음, 그쪽이 말로 듣던 영왕이로군. 나는 교도보장 타넥이라고 한다.”
하나비의 말대로 통로 끝에는 안내자가 서 있었다.
족히 3미터는 넘을 것 같은 키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자였다. 산양처럼 미간에 높게 선 두 개의 뿔이 위협적이었다.
‘미(未)의 타넥. 외부에는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더니 이런 곳을 맡고 있었군.’
타넥은 웬만한 일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최고 관리자들 중에서도 가장 비밀에 휩싸인 자였다.
하지만 십이지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지혜롭기로는 자(子)의 이블케가 가장 뛰어나고, 강하기로는 인의 클루스와 진의 디아블로가 손꼽힌다지만, 두렵기로는 미의 타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코드 네임 ‘미’는 양을 뜻한다. 분명 외부에는 온순하다는 인상을 줄지 모르지만, 반대로 양의 굽은 뿔과 단단한 발굽은 악마를 상징하기도 하는바.
‘그리고 실제로 타넥은 악마왕 출신이기도 하지.’
하계의 필멸자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본래 탑은 천계, 올포원, 관리국의 3개 세력이 미묘한 대치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중앙 관리국 소속의 최고 관리자들, 십이지를 이루는 개개인이 하나같이 뛰어난 신격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각 사회에서 손꼽히던 대신격들.
다만, 소속되었던 사회가 세력전에서 밀려 무너지거나, 하계의 신앙을 잃어 신격을 상실하거나, 혹은 추방되어 흘러들어 왔을 뿐.
여하튼 타넥도 그중 한 명이었기에, 그가 암굴의 수장으로 있는 한 죄수들은 저항이나 반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니, 애당초 시스템이 차단되었을 때부터 어떻게 엄두도 내지 못할 테지만.
이미 연우는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 수용된 대다수의 죄인들이 비슷한 처지일 테지.
‘물론,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들과 다르게 자신은 스스로 힘을 되찾을 방법이 있었다. 이미 의념 통천으로 기어 다니는 혼돈의 간섭도 물리치지 않았던가.
게다가 여차하면 칠흑왕의 권능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잠들어 있는 마성을 깨워야 한다는 게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그대에게 적용된 형벌은 유예. 그러니 일정 시간 동안 이곳에서 정해진 노동량과 할당 시간만 채우면 끝날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넥은 기본적으로 죄수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서는 하루 3번씩 정해진 시각마다 식사가 나오며, 별도로 6시간가량의 수면 시간이 있다. 이 시간들을 제외하면 전부 할당된 ‘노동’을 해야 하는데, 바로.
“광맥에서 바로 이 혈루석(血淚石)을 캐는 것이다.”
타넥은 선혈처럼 붉은 빛깔을 내는 돌을 꺼내 보였다. 얼마나 색이 선명한지 최상급 루비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연우의 눈이 살짝 빛났다.
‘정우의 일기장 내용이 사실이었어. 암굴 안에서 죄수들이 무보수로 한창 캐내고 있을 거라더니.’
혈루석은 탑 내에서도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어 아는 사람들도 극히 드문, 매우 귀한 광석이었다. 강도는 물론, 마력 전도율도 아주 높기로 유명했다. ‘피눈물’이라는 뜻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어 붙은 이름이며, 색이 선명할수록 고급으로 쳤다.
‘특히 아다만틴의 주재료가 되기도 하지.’
아다만틴이 오리하르콘이나 엘레멘티움, 미스릴보다 상위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생각했을 때. 탑의 플레이어들이 들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혈루석을 유일하게 캐낼 수 있는 광산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은데.’
야네크의 암굴. 관리국이 직접 관리하는 ‘영역’ 중 한 곳이나, 이곳에 대한 것은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동생 역시도 딱히 알아낸 사실이 없었다. 연우도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알고 있는 건, 관리국이 직접 관리하는 곳인 만큼, 탑에서도 이질적인 공간이며, 튜토리얼처럼 ‘바깥’과도 연결되는 장소라는 것뿐.
“보아하니 이 광물이 지닌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
타넥은 살짝 빛나는 연우의 안광을 봤던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웃었다. 어쩐지 비웃음처럼 보이기도 하는 웃음이었다.
“뭐, 실제로 이것이 탑 내에서도 여기에서만 난다는 걸 알고 죄수가 되기를 자청하는 놈들도 있으니까. 우리도 딱히 너희들이 이것을 몰래 숨긴다고 해서 제재를 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것도 너희들의 ‘업’에 해당하는 일일 테니.”
타넥은 혈루석을 도로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할당량은 무조건 채워라. 그래야 주어진 형벌이 그만큼 감형될 테니. 시스템의 가호에서 오랜 시간 벗어난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해가 되면 되었지.”
시스템에서 오랫동안 벗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격을 유실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혈루석을 캐는 데 목매어 괜히 오랫동안 암굴에서 지낼 멍청한 생각 따윈 추호도 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혈루석을 캐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아서 눈치껏 배우도록 하고. 그럼 받아라.”
타넥의 지시에 따라, 옆에 서 있던 교두보는 뭔가가 잔뜩 담긴 꾸러미를 연우에게 건넸다.
꾸러미 안에는 인부복과 소량의 간식, 그리고 채굴에 필요한 곡괭이 두 자루 외에 여러 크고 작은 도구들이 담겨 있었다.
연우는 알겠다는 듯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꾸러미를 등 뒤로 매면서 죄수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타넥은 그런 연우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흠! 제 스승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가?’
타넥은 너무 순순하게 말을 잘 듣는 연우가 못내 찝찝하기만 했다.
그는 암굴을 맡은 지 오래되어, 최근 위쪽의 동향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분명히 위에서 듣기로 영왕은 최근 들어 스테이지를 일상처럼 부수고 다니고, 혼란이라는 혼란은 죄다 일으키는 재앙의 원천이라고 했다.
뭐, 워낙에 허풍이나 엄살이 심한 작자들이 모인 곳이 중앙 관리국이니 절반은 흘려듣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왕의 제자라는 것.
타넥은 무왕의 ‘무’자만 꺼내도 이가 갈리는 사람이었다. 녀석이 젊은 시절에 다양한 경험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되도 않는 이유로 다짜고짜 암굴로 쳐들어왔다가, 답답하다며 하루 만에 죄다 깽판을 쳐 놓고 탈출한 사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분명히 시스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상태였을 텐데도 불구하고, 무왕은 그런 것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타넥도 녀석과 맞서 싸우다가 한쪽 팔과 늑골 다섯 대가 부러졌겠는가.
-오. 영감은 좀 하네?
그때 무왕이 지껄였던 말은 아직도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왱왱 울리는 것 같았다.
탑에 갇히기 전에는 악마왕으로서 수많은 차원과 세계를 유희거리처럼 여겨 왔던 그가 짜증 날 정도로 이죽댔으니, 오죽하랴.
‘빌어먹을 트리니티 원더 놈들. 소호 금천, 그놈이 제 후예들을 죄다 저딴 망나니로 만들어 놓은 게지.’
맨 처음 이 세상에 탑을 열고 시스템을 구축했던 존재가 트리니티 원더였으니, 그중 한 명의 후손인 외뿔부족이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는 않긴 했다.
그런데 그 후예는 아니더라도, 반쯤 발을 걸쳤다는 녀석이 찾아왔으니 내심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녀석은 사고를 쳐 놓고서 별다른 저항도 없이 자수 아닌 자수까지 했다지 않은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계속 뒤를 밟아라. 수상쩍은 짓을 저지른다 싶으면 즉각 나에게 알리고.”
『명을 받듭니다.』
귓가로 작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공간이 출렁이면서 곧 기척이 사라졌다.
타넥은 연우가 사라진 쪽을 보다가, 다시 걸음을 반대로 옮겼다.
* * *
‘역시 주의를 사는군.’
연우는 타넥은 물론, 보이지 않는 공간 너머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눈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볍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감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았다. 단순히 요주의 인물이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랬다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타넥이며, 다른 교두보들까지 이렇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을 테니까.
‘스승님이 아주 오래전에 깽판을 치고 간 적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연우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무공 외에는 딱히 도움이 안 되는 스승님이야.’
연우는 무왕이 들었다면 노발대발할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슬쩍 주변을 훑어보았다.
갱도를 따라, 꽤 많은 숫자의 죄수들이 곡괭이질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다. 몇몇은 연우를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흡혈군주를 특정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외부에 드러나길 꺼려 하는 그녀를 떠올려 본다면. 제법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았다.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부려 먹을 놈이 딱 두셋 정도 있으면 좀 편해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이게 뭐야? 간만에 들어온 신입인가? 그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서 선배님들께 인사를 드려야지, 뭘 하고 있어?”
뒤에서 짝다리를 짚으면서 다가 오는 삼인방이 있었다.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딱 어리바리하니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신인에게 텃세를 부리러 오는 꼴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딱 맞춰서 오는군. 숫자도 이 정도면 적당하고.
연우는 그들을 보면서 송곳니가 드러나라 환하게 웃었다.
마치 반가운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