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474화 (474/862)

24화. 흡혈군주 (6)

우우웅-

콰아아앙!

연우는 자신을 물어뜯고 있는 괴물들이 느낄 정도로 드래곤 하트와 죄악석의 공명을 끌어 올렸다가 단숨에 외부로 방출시켰다.

검은 불길이 사방으로 터지면서 괴물들이 그대로 곤죽이 되어 날아갔다.

“하아…… 하아……!”

연우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단 몇 초 사이에 그의 안색은 누렇게 떠 있었다. 신체도 갈가리 찢긴 채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이 체내에 침투하였습니다. 감염 상태가 되었습니다.]

[스킬 ‘무채독’이 해독을 시도합니다.]

[해독이 실패하였습니다.]

[스킬 ‘무채독’이 해독을 시도합니다.]

[해독이 실패하였습니다.]

[해독이 실패하였습니다.]

……

[드래곤 하트가 더 많은 양의 용혈을 공급합니다.]

[죄악석(오만·탐욕)이 정화를 시도합니다.]

[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해독할 수 없는 물질입니다. 조속히 빠른 치료를 위해 물러날 것을 권고합니다.]

[비마질다라가 당신의 강한 의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비마질다라가 마해를 보며 강한 영감을 얻습니다.]

[감염 상태로 인해 ‘재생’의 효율이 현저히 저하됩니다.]

연우는 떠오르는 메시지창과 자신의 몸 상태를 빠르게 체크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죽겠군.’

체내로 침투한 정체불명의 독.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스킬 숙련도를 대폭 올릴 정도로 대단했던 독기는 체내에 들어온 순간, 폭군이 되어 흉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팔다리며 내장은 모두 부서진 상태. 이리저리 찢긴 신체는 회복 속도가 너무 더디기만 했고, 마력은 순환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어째서 신과 악마들이 마해의 괴물들과 부딪치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했는지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마해와는 양립 자체가 불가능했던 거야.’

마치 빛과 어둠과 같은 관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건 단순한 비교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근본부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질서와 혼돈의 차이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자연스레 체력과 채널링에도 악영향이 미쳤다.

[‘냉혈’ 특성을 발휘하여 흐트러지려는 이성을 되찾습니다.]

[모든 죽음의 신이 당신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모든 죽음의 악마가 당신이 ‘죽음’을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지를 기대합니다.]

죽음의 신이며 악마들도 그가 당장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

그나마 다행이라면.

[〈혈정〉에서 채취한 신의 인자를 바탕으로 침투한 물질을 일부 해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채독’의 스킬 숙련도가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무채독’의 스킬 숙련도가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

[새로운 인자를 터득하였습니다.]

[기존의 인자와 융합합니다.]

완전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란 점이었다. 미리 혈루석과 혈정에서 성분을 채취한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

당장 살길부터 확보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시차 괴리]

연우는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고자 했다.

‘당장 독기를 해독하려는 건 미뤄야 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은 한계가 있으니 우선은 신체 회복부터…….’

연우의 생각이 이어지는 내내.

샤논은 옆에서 그런 연우의 생각을 읽고 조금 섬뜩함을 느꼈다. 자신의 주인은 본인의 육체를 너무 도구처럼 여기고 있었다.

애당초 그가 목숨조차 목표를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몇 번씩 봐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화아악-

연우는 수많은 일을 동시에 진행하던 마력 순환을 멈추고, 오른팔 재생성에만 집중했다.

잘려 나간 하체야 하늘 날개로 균형을 잡으면 그만. 하지만 무기를 다루기 위해서 양팔은 필수였다.

‘녀석에게 심상 개변이 있는 한, 무한투를 극복할 방법은 없어. 내가 네시를 이길 가능성도 제로(0).’

연우는 계획을 단번에 바꾸고자 했다. 어차피 네시와 싸워서는 절대 승산이 없었다. 그는 무한투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시야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자 했다.

이렇게 계속 위기를 겪으면 흡혈군주가 나설 거란 생각은 뒤로 물렸다. 지금은 한낱 도박에 목을 걸 타이밍이 아니었다.

‘내 목적은 네시가 아닌 라플라스의 신병 확보.’

연우의 오른팔이 어느새 재생성을 마치며 비그리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미 완성된 왼손은 쇠사슬을 쥐었다.

‘그렇다면.’

연우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다시 한 번 더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지이이잉!

유성검결을 전개했다. 백여 개의 검환이 다시 그를 중심으로 성단처럼 나타났다.

마력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질 않아 좀 전보다 훨씬 광열(光熱)이 적었지만.

대신에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하고자 했다.

“터져라.”

[무차별 난사]

연우는 동생이 소싯적에 사용했던 스킬을 가져와 똑같이 전개했다.

만통 특성을 이용해 미리 메모라이즈 해 둔 마법들을 한 번에 전개해 파괴력을 극도로 끌어 올리는 스킬.

도무지 투로와 궤적을 추측할 수 없기에 적들에게도 애를 먹였던 방식이 그대로 전개된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정형화된 마법이었다면, 지금은 그딴 것이 없는 검환 덩어리라는 점이었다.

콰르릉, 과릉, 콰르르르-

검은 불길이 다시 하늘을 수십 수백 갈래로 가로질렀다. 어느 것은 상공으로 치솟고, 어느 것은 마해로 내리꽂으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 허공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터진 불길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외부 시간이 제자리를 되찾으면서 괴물들이 달려든 것도 바로 그때였다.

덕분에 시야가 어지러워진 쪽은 괴물들이었다.

폭발이 이리저리 뒤엉키니 도무지 투로를 짐작할 수가 없어 전진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사방이 불바다이니 접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곳곳이 고열로 팽창한 대기로 가득하고, 수증기로 안개가 무성해 감각도 교란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우의 종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쿠어어어!

괴물들은 그제야 노림수를 깨닫고 빠르게 움직였다. 어떻게든 연우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불어닥치는 화염 폭풍과 쏟아지는 불벼락에 함께 돌진하던 괴물들이 이리저리 터져 나가는 통에, 도저히 감각을 확장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퍼퍼퍼펑!

이리저리 부서진 괴물들의 조각이 도처에 즐비한 가운데.

콰직, 쾅!

개중에 폭발을 뚫고, 연우를 발견해 달려드는 놈이 있었다. 연우는 네시를 향해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뭘. 노. 리. 느. 냐.

꾸우우-

네시는 연우가 목표를 바꿔 자신이 아닌 라플라스가 있는 섬으로 이동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수하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막아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먹어라.

괴물들이 연우를 잡기 위해 다시 허공을 한껏 유영했다.

하지만 도무지 접근이 쉽지 않았다. 무차별 난사로 퍼지는 불길이 너무 위협적이었다. 마해도 초고열로 인해 어느새 3할 이상이 증발해 버린 상태.

하지만 네시의 명령이 새롭게 하달되었다. 너희들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아라. 목숨을 도외시해라.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마해의 괴물들은 이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화염 폭풍을 감수하며 달려드는 놈들이 가득했다. 괴물들이 줄줄이 터져 나가면서 고기 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로 인해 마해의 수면이 온통 쓰레기장이 되었다.

크허엉!

연우는 부서지는 고기 조각 사이로 날아드는 괴물을 감지, 재빨리 왼손으로 쇠사슬을 잡아당기면서 녀석의 발톱을 묶었다.

동시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대낫 모양의 비그리드를 거칠게 휘둘러 목을 댕강 잘랐다.

퍼걱!

푸우우-

놈의 머리통이 튀면서 피 같은 것이 연우를 뒤덮었다.

치익-

몸이 녹는 끔찍한 고통. 용의 비늘이 녹으면서 하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단숨에 체내로 침투한 독소가 마력 순환을 다시 한 번 더 헝클어 놓았다.

가뜩이나 육체가 엉망인 상황에서 좋지 않은 신호였지만.

“파하하!”

연우는 한껏 웃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어 오히려 고통을 희열로 느낀다더니. 이미 호르몬은 제 의도대로 생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연우는 그마저도 넘어선 열락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죽음, 죽음, 죽음!

온통 죽음으로 가득한 사선(死線). 여기에는 적들의 죽음이 난무할 뿐만 아니라, 자칫 자신의 죽음도 있을 수 있었지만. 연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죽음’이 뭔지 비로소 절실히 체감할 수 있어 기뻤다.

죽음의 왕좌에 앉았다는 것. 하데스의 후인이 되었다는 것이 이제야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사왕(死王)으로서 자신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죽음밖에 없었다.

그래서.

놈들이 얼마나 날아오건 말건 간에,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하늘 날개를 활짝 펼치고, 활강을 시도했다.

촤촤촤-

〈심상 개변〉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학살극이 다시 한 번 무효가 되었다. 연우는 다시 수많은 괴물들에 둘러 싸여 사지가 뜯기는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 예지]

그때, 여태껏 숨겨 뒀던 스킬이 발동되었다. 미래에 닥칠 가능성을 예측-혹은 체험-해 강제로 비껴갈 수 있게 하는 스킬.

가뜩이나 마력 순환이 자유롭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마력을 소비해야 했지만. 덕분에 연우는 네시의 심상 개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었고.

팟!

연우는 되살아난 괴물들이 자신을 물어뜯기 직전, 정해진 위치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녀석들이 먹잇감이 보이질 않자 당황하는 사이.

촤르르-

촤촤촤촤!

연우는 쇠사슬을 그대로 잡아당기면서 괴물들을 한꺼번에 도륙하기 시작했다. 위쪽으로 공허가 활짝 열리면서 유성검결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콰콰쾅!

그가 예측한 시간은 단 1초.

하지만 반격을 가하기엔 그걸로도 충분했다.

쿠우우웅!

꾸어어-

죽음에서 되살아나고도 다시 죽어 가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녀석들에게로.

휘잉-

연우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베고 또 베었다. 터뜨리고 또 터뜨렸다.

그 와중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괴물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났다.

콰르릉-

무차별 난사를 통한 유성검결이 다시금 녀석들을 난도질했다. 그 사이로 연우가 재접근을 시도했다.

〈심상 개변〉

[시간 예지]

심상 세계를 움직이려는 녀석의 의지와 그것을 어떻게든 피해 반격을 시도하는 연우의 충돌이 계속 커졌다.

어리석다!

네시는 계속 라플라스가 있는 곳으로의 접근을 시도하는 연우를 차단하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아무리 수를 써서 라플라스를 데리러 가려 해 보아라, 어디 뜻대로 되는지. 몇 번이고 심상 개변을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연우가 아무리 가능성을 예측해 괴물들을 죽여 나간다고 해도, 그마저도 되살려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우를 물어뜯는 괴물의 숫자도 계속 늘어났다. 천여 마리에서 이천, 삼천…… 마해를 제외한, 이 ‘위장’ 속에서 사는 괴물들이 전부 몰려온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우는 시간 예지로도 잡아내지 못한 공격에 몸이 다시 물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놈이 덥석 무니, 다른 놈들이 맛난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와락 달려들었다.

그것이 커지고 커져 결국 연우를 물지 못한 괴물들이 안쪽에 있는 괴물들을 무는 형국까지 벌어졌다. 연우는 어느새 수백 마리의 괴물들로 둘러싸여 스노우 볼(Snow ball)처럼 되어 있었다.

계속되는 심상 개변의 결과였다.

그런데도 연우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드래곤 하트에 축적되어 있던 마력이 거의 바닥을 보였을 때 즈음, 여러 번의 시도를 해 본 덕분에 라플라스가 있으리라 추측되는 장소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다.

네시는 그런 연우를 보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자신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니 꼼수를 부리려는 녀석이 가당찮게 느껴진 것이다.

라플라스를 어찌 찾는다 해도, 다시 심상 개변으로 ‘없던 일’로 만들면 그만인 것을.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 건지. 필멸자의 한계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심상 개변을 사용하려던 그때.

쿠르르르릉!

쿠르르, 르르르-

마치 엄청난 크기의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어마어마한 천둥소리에, 네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하늘로 번쩍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경악했다.

어느새 머리 바로 위에 자신의 몸체만 한 크기의 광구(光球)가 태양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그제야 네시는 연우의 노림수를 깨닫고 말았다.

애당초 연우는 라플라스를 구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심상 개변이 계속된다면 머리를 먼저 치면 그만일 테니.

다만, ‘위장’의 괴물이 너무 많아 접근이 쉽질 않으니, 스스로를 미끼로 던져 저들을 전부 끌어낸 것이다.

더구나 본체를 뒤로 내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새 사방에서 공허가 열려 검은 쇠사슬이 그의 몸뚱이가 움직이지 못하게끔 옴짝달싹 못 하게 묶고 있었던 것이다.

“내려라.”

[검의 승화]

[악역 - 구축(驅逐)]

[뇌벽세]

비그리드의 옵션, 지정된 대상이 강할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검의 승화〉와 악귀를 물리치는 〈구축〉이 제천류로 풀어지는 순간.

백여 개의 검환을 ‘한 곳’에 모아 응축시키면서, 위력을 다시 수백 배로 증폭한 유성검결이.

관리국이 지켜보고 있어 선보이지 않았던 ‘진짜’ 유성검결이.

불벼락의 형태가 되어 그대로 네시의 머리 위로 작렬했다.

너무 뜨거워서 뜨겁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밝아서 밝다는 생각도 들지 못하는 빛이 세상을 가로질렀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의 눈에는 뭔가가 ‘번쩍’인다는 생각이 든 게 전부였다.

콰르르르르릉!

하늘과 대지를 잇는 기둥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네시의 목이 그대로 꿰뚫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해까지 그대로 밀고 들어가면서 저만치 밑에 있는 바닥이 휑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절반이 넘는 바닷물이 그대로 증발했다. 열기가 얼마나 대단하던지 범람할 기세도 없었다. 이미 주변의 대지도 시커먼 불길에 휩쓸린 뒤였다.

유성검결의 변식(變式), 유성검천뢰(流星劍天雷)!

줄여서 ‘검뢰(劍雷)’라고 부를 기술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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