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512화 (512/862)

12화. 시나리오 퀘스트 (12)

아가레스는 당장에라도 펜리르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마치 내 것에서 떨어지지 못하겠냐는 듯 분노에 찬 눈빛이었다.

하지만 펜리르는 연우에게 보이던 애교 가득한 모습과 다르게, 아가레스에겐 이를 드러내며 힘상궂게 짖었다.

왕!

“뭐냐, 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왕왕!

“저것은 내 것이다. 그러니 떨어지라고 한 것이다.”

왕! 왕!

“뭐? 그건 내 착각이라고? 이 개 따위가 감히……!”

왕왕!

“흥! 개를 개라고 부르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거지?”

왕!

“닥쳐라! 어찌 내가 너처럼 개라는 것이냐!”

왕왕!

다섯 살 정도 된 어린아이와 강아지가 서로를 노려보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일견 귀엽게 보이지만.

녀석들을 따라 퍼지는 공기의 파동은 언제라도 크게 폭발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펜리르 역시 아가레스에 못지않은 격을 가진 대악마. 그러니 막상막하의 대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먼저 공격을 감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미 연우가 사절들 모두에게 단단히 못을 박아 뒀기 때문이었다.

만약 시끄럽게 굴거나, 탐사를 방해하는 놈이 있다면 바로 탈락시키고 말겠노라고.

그래서 아가레스와 펜리르는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만 벌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사회들까지 조용히 있는 건 아니었다.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이 악마의 사회, ‘니플헤임’에 적개심을 보입니다.]

[악마의 사회, ‘니플헤임’이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에게 강한 경고를 날립니다.]

[바알이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로키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찹니다.]

아가레스와 동마왕군은 임시 탈퇴 이후에 다시 사회로 복귀한 상태라 그런지 메시지가 즉각 날아왔다.

연우는 그쪽까지 간섭하지는 않았으니, 신경전은 사회의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의 수장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지만.

이런 상황은 비단 이 두 사회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가 당신에게 적극 항의합니다!]

[신의 사회, ‘올림포스’가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에 접촉을 시도합니다.]

[신의 사회, ‘데바’가 주변 사회들을 경계합니다.]

[신의 사회, ‘딜문’이 당분간 지역 폐쇄 조치령을 선포합니다.]

……

[악마의 사회, ‘절교’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신의 사회, ‘천교’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핍니다.]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곳들 간에도, 계시록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경계심으로 부쩍 날이 서 있는 상황.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간에는 불신감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태였다.

연우로서는 천계가 연합을 하는 것보다 잘게 파편화되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적절하게 더 부추기고 있었다.

아가레스와 펜리르가 저렇게 대치하고 있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유적지만 날리지 않는다면야.’

연우는 피식 웃으면서 둘을 무시하고 유적지의 입구로 진입했다.

그곳에는 어려지거나 작아진 여러 사절들이 눈을 말똥하게 뜨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있던 장치들은 모두 제거했다.”

“시킨 대로 마지막 본방에 진입하지는 않았어.”

“이곳은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해제에 제법 힘이 들었다. 큰 비밀이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의 신권도…… 사회의 인과율도 상당히 소모해야만 했다.”

“그러니 한쪽 구석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줘. 제발…….”

녀석들은 더 이상 진언이 아닌 육성으로 목소리를 냈다. 진언을 사용하면 상대의 영혼에 구속력을 심을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지만, 정작 연우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으니 인과율을 아끼기 위해서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제발 이 유적지 끝에 있는 비석을 공유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연우는 사절들을 부려서 유적지를 물색하게 하는 한편, 각 유적지에 설치되어 있을지 모를 트랩이나 기관 등까지 전부 찾아 해제하게 시켜 놓은 상태였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계시록과 관련된 석비가 있을 마지막 방에는 들어가지 말 것. 실수로 들어가더라도 석비를 살피지 말고 바로 나올 것.

사절들은 여태 여러 유적지들을 돌면서도 이 규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괜한 욕심을 부리다가 아스가르드처럼 탈락할 수 없잖은가. 게다가 기회를 노리고 싶어도 다른 사절들이 수시로 경계하고 있으니 그럴 틈도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판국에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어차피 그들은 석비에서 계시록을 추출하는 방법도 모르고 있는 상태.

그러니 연우가 하라는 대로 따르면서 그가 자비를 베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유적지까지 찾아 온 지금도 조금이나마 계시록을 나눠 주길 희망했지만, 연우는 여태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포기해야만 하는 건가, 사절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려는데.

“따라올 거면 따라와라.”

생각지도 못한 말.

“저, 정말인가?”

“그럼 드디어……!”

순간, 사절들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하지만.

“대신에 뒷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

“……물러나지.”

“나도.”

곧 뒤이은 말에 다시 한 발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뒷감당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연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으면서 그들을 지나쳤다.

사절들은 그 모습에 울컥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화를 참아야만 했다. 아마 ‘인성’이나 ‘갑질’이라는 신위가 있다면 저놈이 거기에 가장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반드시 연우와 아르티야를 전부 몰락시키고 말겠노라고.

하지만 연우는 그런 놈들의 생각 따윈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듯, 가볍게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어차피 초월자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기가 처음부터 글러 버린 상태.

특히 천계는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그를 여전히 장기말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똑같이 저들을 장기말로 부려 먹겠다는 건데 뭐가 나쁘단 말인가.

우위 지점만 놓치지 않는다면 저들을 부려 먹을 수 있는 곳은 아주 많았다.

그렇게 지하로 통하는 유적지 내부로 깊게 진입하는 사이.

[신의 사회, ‘말라흐’가 당신을 집요하게 관찰합니다.]

[메타트론이 엄숙하게 당신을 지켜봅니다.]

가브리엘을 희생양으로 던져 준 메타트론과 말라흐의 시선이 집요하게 그에게로 따라붙었다.

원하는 대로 선악과를 내어 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은 그에게 계속 강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그냥 지나칠 생각 따윈 절대 하지 말라며.

‘확실히 가브리엘까지 내놓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긴 했지.’

사실 연우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그것이었다. 저들로서는 아즈라엘을 잃은 것만 해도 전력상 아주 큰 손해였을 텐데, 가브리엘까지 내놓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전력적 손실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모르긴 몰라도 말라흐 내에서도 아마 말이 많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기꺼이 그런 것을 감수하고도 일을 진행했다는 뜻은 단 하나.

‘뭔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단 뜻이야. 계시록을 간절히 필요로 할 만큼.’

그리고 아마 그건 르 인페르날도 다르지 않을 테지. 그쪽에서도 서열 4위의 가미긴을 내쳤으니.

연우는 말라흐와 르 인페르날이 서로 언급하던 단어를 놓치지 않았다.

에녹서.

그리고 레메게톤.

이 두 가지는 각각의 사회에서 주로 언급되는 예언서(豫言書) 혹은 마도서(魔道書)에 가까운 것들.

그것은 ‘에메랄드 타블렛’이라는 명칭처럼 각 사회에서 계시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계시록은 모든 우주의 진리를 담았으되, 에녹서나 레메게톤은 그보다 상세하게 각 사회의 흥망성쇠를 위주로 담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쉽게 말해, 방대한 계시록의 내용 중에서 자신들에게만 필요한 내용을 고른 편집본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완성하고자 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일을 겪고 있다는 뜻일 터.

‘올포원과의 전쟁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걸까?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아니면 다른 뭔가를 또 획책하고 있기라도 한 건가?’

연우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아직도 저들로부터 빼먹을 것이 많을 테니.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들어가길 한참.

연우는 어느덧 거대한 석벽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지막 거인족 유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수집한 비석 수: 14/15]

마지막 유적지는 어떤 위대한 존재를 모신 무덤 같았다.

유적지를 구성하고 있는 벽돌은 하나하나가 섬세한 공정을 거친 듯했고, 갖가지 성화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곳곳에 많은 유물들이 매장되어 있는 방이 있기도 했다.

하나같이 스테이지로 나가면 S급 이상으로 분류될 거인족의 무구들이었다.

연우는 이곳이 왕릉이거나, 그에 준하는 권력을 가졌던 존재의 무덤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

다만, 뭔가를 알 수도 있겠다 싶었던 신과 악마들도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인 걸 봐서는 왕이 아닌 다른 권력자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곳에 매장된 석비까지 꺼내면 세 번째 시나리오 퀘스트도 전부 끝날 터였다.

“부.”

연우가 외치니, 그의 주변으로 검은 구름이 맴돌면서 부가 나타나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부 역시 샤논처럼 이전과 형태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크 리치]

위치: 권속

설명: 죽음을 좇았으며, 죽음을 그렸고, 이제 다시 죽음을 거스르고 다시 이 땅에 나타난 존재로서 닿을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앉은 존재. 죽음, 그 자체를 대변하는 현자(賢者)이다.

그는 당신을 추종하는 가장 높은 권속이자, 충실한 조언자, 그리고 위대한 지배자로서 당신의 뜻을 이 땅에 널리 알리고자 노력할 것이다.

특이 사항: 현재 품고 있는 ‘패란(敗亂)’이 완성을 이루어 신위 ‘창백(Pale)’이 탄생하였다.

부의 크기도 2미터 이상 커져 있었다. 샤논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지만, 오히려 풍겨 나오는 위압감은 샤논보다도 훨씬 강렬했다. 그리고 위험한 냄새가 가득 풍겼다.

칠흑에서 죽음만을 떼어다 뭉쳐서 빚어 놓은 형태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죽은 존재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자, 삼라만상의 이면을 통달한 대현자의 위치에 다다른 존재인 아크 리치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리라.

연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부는 전생인 파우스트의 경지를 이미 되찾았거나, 그것을 뛰어넘었노라고.

특히 설명창에 언급된 ‘신위’라는 단어가 가장 눈에 밟혔다.

창백.

그것은 죽음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이기도 했으니.

부가 탈각과 초월의 기초 자격인 신성을 획득했단 뜻이었다. 권속의 자격 여부를 떠나 그 스스로가 얼마나 높은 격을 터득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연우와도 맞먹을지 모르는 위치라 볼 수도 있었지만.

스륵-

「주인. 님을. 뵙습니. 다.」

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쪽 무릎을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연우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확고했다.

아니, 오히려 그의 태도는 더더욱 경건해져 있었다. 주종 관계를 넘어, 신을 영접한 광신도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것은 연우가 부가 획득한 신성을 엿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도 연우가 이미 칠흑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단 뜻이기도 했다.

당신을 추종하는 가장 높은 권속이자 충실한 조언자.

연우는 부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호칭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좀 돌아왔나?”

「주인. 님의. 은총으로. 전생을. 모. 두. 떠올릴 수. 있었. 습니다. 하지만. 그것. 은. 그저. 전생일. 뿐. 저는. 아닙니다. 저. 는. 부. 주인님을. 모시. 는. 권속일. 뿐입니다. 하명. 하십시오.」

첫 번째 유적지에서 아주 잠깐 눈을 떴을 때 이후로, 부는 자신의 기억을 복원하고 힘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려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든 정리가 끝나 탈피(脫皮)를 마치고, 완전한 아크 리치로 거듭난 상태.

연우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성장한 부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데다가, 전생의 자신과 현생의 자신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는 모습이 흡족했던 것이다.

“그럼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것 같나?”

부는 유적지 내부를 쓱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 습니다.」

떨그럭떨그럭. 턱뼈가 움직일 때마다 그런 소리가 났다.

「이곳. 만이. 아닙니다. 이곳. 히든 스테이. 지. 에. 제 전생은. 방문. 한 적이 있. 습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을. 찾기. 위해서. 였습. 니다.」

연우가 처음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 부가 나타나서 비석을 조합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부-파우스트가 전생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저는. 칠흑. 을 쫓고. 있었. 고. 기어. 다니는. 혼돈. 에게서. 해답을 찾고. 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놈. 은. 해답을. 주지. 않았. 으니. 저는. 이곳. 까지. 와서. 에메랄드. 타블렛. 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연우는 이곳 유적지를 둘러보는 부의 눈동자에 깃든 강렬한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감정은 총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환희.

그리고 다른 하나는 회한(悔恨)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것을 드디어 얻게 된 자만이 가질 수 있을 감정.

하지만…… 그것이 끝내 자신이 애달프게 찾던 곳이 아님을 알게 된 이의 슬픔이기도 했다.

“여기서 에메랄드 타블렛을?”

「그렇. 습니다. 기어 다니는. 혼 돈. 에게서. 거인족이. 부림을 받았다는 것. 을. 알게 된. 저는. 그들의. 유적을. 탐방. 하였. 던. 것 입니. 다.」

아무래도 여기서 에메랄드 타블렛이 적힌 석판을 얻고, 스테이지로 돌아가 던전을 만들어 마지막까지 연구를 했던 것 같았다. 그러다 훗날에 비에라 듄과 발푸르 기스의 밤이 그곳을 발굴해 냈던 것이고.

“그럼 여기에 남은 석판은 없나?”

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의. 저. 는. 몽매하여. 석판의 가치. 를. 몰랐고. 일부. 만. 캐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에는. 더 많은. 석판이 남아. 있으니. 그것을 합친다면. 주인님께. 큰. 도움이 될 것입. 니다. 다만.」

「다만?」

연우는 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석판까. 지. 갖고. 간다면. 기어. 다니는 혼. 돈이. 주인님. 께서. 오신 것을. 알 수. 도. 있습 니. 다.」

연우는 그 말에 아주 잠깐 고민했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기어 다니는 혼돈은 자신이나 천계에서 여러 사절들이 온 와중에도 여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연우가 빠르게 유적지들을 탐방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유적지는 강한 마력을 품고 있는 만큼, 비석을 발굴했을 시에 강력한 마력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어 다니는 혼돈도 눈치채게 되겠지. 부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만약 지금 기어 다니는 혼돈이 눈치를 챈다면? 아직 반거인의 무장도 덜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지 않을 수 있었지만.

“괜찮다. 부탁하지.”

연우는 금세 고민을 끝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기어 다니는 혼돈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 그렇다면 며칠 정도 시기가 빨라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명을 받듭. 니다.」

부는 아주 기쁘다는 듯이 양팔을 높이 들어 주문을 외웠다.

쿠쿠쿠!

무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유적지의 탐사까지 전부 마쳤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신와 왕의 증명 III)를 완수했습니다.]

……

[여태껏 수집한 석비들이 하나로 조합됩니다.]

[숨겨진 모습이 드러납니다.]

[아티팩트, ‘칠흑왕의 경전서(經典書)’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한쪽 공간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면서 거대한 의념파가 공간 전체에 강렬하게 내리꽂혔다.

또.

너. 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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