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부자지간 (3)
쿠쿠쿠쿠!
마치 종이를 강제로 찢거나 구겨서 자그마한 구멍에 꾸역꾸역 밀어 넣듯이.
활짝 열린 톱니 이빨 사이로, 의식 세계가 무참하게 뜯기면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죽인다…… 죽여 버린다, 이것들……!』
마성은 이성이 날아간 상태에서도 연우가 무엇을 시도하려는지를 깨닫고, 더 크게 몸집을 부풀렸다. 외부로 방출시킨 혼탁한 칠흑을 거둬들이면서 의식 세계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려는 것이다.
크로노스가 검은 질풍을 보다 더 크게 일으키면서 마성의 그런 발악을 계속 차단하려 했으나, 부풀어 오르는 속도는 도저히 끝을 몰랐다.
그때.
촤르르륵!
별안간 마성의 주변 곳곳으로 공허가 잔뜩 열리더니 검은 쇠사슬이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쇠사슬은 마성의 비대한 몸집을 압박했다.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몇 겹이나 덧대어졌다.
그렇게 꽉꽉 묶인 상태로도, 녀석의 살집은 쇠사슬 사이사이로 어떻게든 튀어나왔다. 그럼 다시 그 위로 쇠사슬이 더해지면서 가두는 등,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자 마성은 금세 누에고치처럼 괴상한 몰골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촤르륵, 촤륵!
마성을 완전히 구속하지 못해, 쇠사슬로 이뤄진 고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크게 떨렸다. 끊어질 듯이 팽팽해지는 쇠사슬이 요란하게 움직여 댈 때마다, 쇠가 서로 부딪치면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식령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신력이 흡수하고 있습니다. 허용치를 벗어나는 수준입니다.]
[경고! 흡수하려는 신력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현재 가진 육체로는 수용이 불가능한 양입니다. 재정비 이후 재도전할 것을 경고합니다.]
[경고! 흡수하려는 상대의 격이 너무 높습니다.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할 경우, 식령검에 막대한 과부하가 발생하여 ‘과식’으로 인한 격의 붕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경고! 흡수하려는 신화의 양이 너무 방대합니다. 잘못된 흡수는 자칫 자아가 뒤바뀌는 위험을 낳을 수 있습니다. 당장 흡수를 중단할 것을 권고합니다.]
[경고! 흡수하려는 존재의 크기가 너무 커…….]
[경고! 흡수하려는 대상의…….]
……
잇달아 떠오르는 경고 메시지.
이유는 저마다 다 달랐지만, 하나같이 식령을 중단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만큼 주신격, 그것도 ‘황’에 근접했던 존재를 삼킨다는 것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제우스조차도 크로노스의 자리를 차지하고도, 그가 가진 것들을 쟁탈하기가 너무 버거운 나머지, 다른 형제인 포세이돈, 하데스와 함께 나눠 가졌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놈들이 차지할 수 없게 타르타로스에 처박았던 것이고.
그런 크로노스를 전부 가지겠다고?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물며 아직 초월은커녕 탈각도 이루지 못한 존재가 해내기에는.
자칫 과도한 양 앞에서 영혼만 짜부라질 위험이 컸지만.
연우는 하데스의 식령검이 가진 한계를 믿었다.
이것은 언제나 위기 때마다 자신을 몇 단계 이상씩 발전시켜 주곤 했으니까.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현자의 돌을 믿었다.
[경고! 흡수하려는 대상이 너무 큽니다.]
[경고! 흡수하려는 대상이 너무 큽니다.]
……
[한계치를 훨씬 초과하였습니다.]
[‘상태 이상: 한계 초과’가 되었습니다.]
[‘상태 이상: 소화 불량’이 되었습니다.]
[‘상태 이상: 영혼 압박’이 되었습니다.]
……
[수용하지 못한 인자들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하데스의 식령검’의 톱니 이빨이 흔들립니다.]
[한계치 초과로 인해 육체가 과부하 상태에 잠겼습니다. 육체 중 일부에 균열이 퍼집니다.]
[균열이 가속화됩니다.]
[붕괴가 시작됩니다.]
[스킬, ‘재생’이 발동합니다.]
[스킬, ‘재생’이 발동하여 육체의 붕괴를 복구합니다.]
……
[죄악석(오만·식탐)이 흔들립니다. 죄악석의 성질, ‘식탐’이 수용할 수 없는 한계에 잔뜩 성이 납니다.]
[죄악석의 성질, ‘식탐’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탐욕스러운 이빨을 들이댑니다.]
[죄악석의 성질, ‘오만’이 폭주하는 신력을 강제로 짓누르고자 합니다.]
현재 현자의 돌이 가진 성질은 두 개.
한동안 깊게 잠들어 있던 것들이 다시 포악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오만’은 절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질. 당연히 폭주하는 신력을 다스리고자, 육체에 어마어마한 활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현자의 돌 쪽으로 신력을 끌어당기면서 강제로 복종시키고자 날뛰었다.
신력은 이에 반발하여 난리를 쳤지만, 그럴수록 오만의 성질은 신력을 강제로 누르면서 수용을 시도하려 했다.
‘식탐’도 마찬가지. 반사적으로 흡수하는 양을 줄이려던 하데스의 식령검을 강제로 제어하여, 오히려 이전보다 더 커다랗게 톱니 이빨을 뽑았다. 그리고 단순히 크로노스의 의식 세계뿐만 아니라, 산맥처럼 크던 그 넓은 본체 전부를 한꺼번에 탐식하려 했다.
현자의 돌이 오히려 더더욱 난리를 피워 대는 것이다.
이래서야 ‘소화 불량’이나 ‘과식’의 범주를 벗어난 수준이었지만, 연우는 육체와 영혼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끌어안으면서도 어떻게든 크로노스가 남긴 모든 유산을 먹어 치우고자 했다.
콰드득, 콰득-
분명히 이곳은 의식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육체가 탈바꿈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재생’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71, 72%…… 96, 97%…… 100%]
[축하합니다! ‘재생’의 스킬 숙련도를 Max치까지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킬과 관련된 모든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힘이 25만큼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32만큼 상승했습니다.]
……
[스킬과 관련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상위 스킬을 오픈합니다.]
[스킬 ‘초월재생(超越再生)’이 생성되었습니다.]
[‘초월재생’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여 빠른 Max치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산정하여 새로운 스킬을 탐색합니다.]
[죄악석 ‘오만’이 강한 영향을 끼칩니다.]
[죄악석 ‘식탐’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상위 스킬 ‘상태 회귀(狀態回歸)’를 오픈합니다.]
……
[‘상태 회귀’의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여…….]
……
[스킬의 한계를 벗어나 권능의 영역으로 재탄생합니다.]
[죽음의 태엽이 작동합니다.]
[권능, ‘만능 복원(萬能復原)’이 생성되었습니다.]
[만능 복원]
등급: 권능
숙련도: 0.0%
설명: 신이 되려는 자는 언제나 한결같아야 하고, 왕이 되려는 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수없이 불어닥치는 폭풍우 앞에서도, 뿌리가 깊게 박혀 절대 쓰러지지 않는 소나무처럼, 이 권능을 지닌 자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도무지 피할 수 없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신의 심장에 박힌 죽음의 태엽이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 상태 회귀
컨디션이 왕성할 무렵의 육체와 영혼이 이데아(Idea)에 백업된다. 이후에 아무리 크게 다쳐도, 설사 뇌 기능이 정지하거나 죽을 위기에 처했어도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데아에 백업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육체와 영혼을 복원시킨다.
이때, 필요로 하는 시간이나 소모되는 마력량은 육체와 영혼이 입은 상태에 따라서 달라진다.
* 사망 거부
‘죽음’을 다스리는 존재 중에서도 가장 높은 영역에까지 올랐던 크로노스의 왕좌를 잇고자 하는 당신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은 이미 발아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에 따라서 실제 ‘죽음’을 맞게 되더라도, 이것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이에 필요한 데이터는 이데아에 백업된 것을 바탕으로 한다.
단, 한 번 ‘죽음’을 맞게 될 시, 최소 1주일에서 길게는 1년이 넘게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연우는 새롭게 재탄생한 재생 스킬, 아니, 만능 복원을 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죽음을 거부한다니!
재생 스킬이 아무리 회복력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필요로 하는 마력량이 많을뿐더러 죽은 목숨까지 살려 내는 이적은 이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의 신위, 정확하게는 크로노스가 남긴 반쪽짜리 ‘태엽’이 더해지면서 완전한 이적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으니.
우웅, 우우우웅-
연우는 심장 한편에서 죽음의 태엽이 맹렬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 날개의 왼쪽도 마찬가지로 공명하고 있었다.
현자의 돌에서 죽음의 태엽으로, 그리고 하늘 날개로 회로가 연결되면서 신위가 더 크게 급상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마신룡체가 새로운 변태(變態)를 시도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여기에 따라 육체까지 새롭게 변모하면서, 허용치가 대폭 상승해 남은 신력들을 맹렬하게 빨아들였다.
덕분에 연우는 영혼이 자꾸만 커져 가는 고양감을 느끼다, 어느새 뭔가에 부딪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으니.
그 순간, 그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벽에 부딪혔다.’
이제 이 이상, 영혼은 더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순히 7차 용체 각성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었다.
필멸자로서 다다를 수 있는 최대 크기까지 성장한 것이다. 더 이상 탈각과 초월을 미룰 수 없다는 뜻. 완숙(完熟)에 이르렀으니, 그가 바랐던 순간이 찾아왔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우는 무모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탈각과 초월이야 원할 때 언제든지 해낼 수 있는 것이고, 지금은 마성을 완전히 찢어서 흡수하는 데 집중해야 했으니까.
그토록 자신이 무르익기만을 기다리던 녀석을, 도리어 반대로 자신이 잡아먹으려는 것이다.
『안 돼……!』
마성은 주변에 있던 모든 의식 세계가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나아가 폭발을 일으키려던 혼탁한 칠흑까지 흡수되는 것을 보면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모조리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크게 부풀었던 몸집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모든 의식 세계가 무너지고, 온통 새로운 칠흑으로 다시 물들었을 때.
그들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연우의 의식 세계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권능, ‘하데스의 식령검’이 식령에 성공하였습니다!]
[무소속의 신, 크로노스를 식령하였습니다. 그가 이룬 모든 신화가 전이됩니다.]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공적치가 제공됩니다.]
[공적치를 15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추가 공적치를 200,000만큼 획득했습니다.]
……
[정화가 시작됩니다!]
[크로노스의 자격을 잇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올림포스’의 왕좌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이 이뤄 낸 새로운 신화가 천계에 널리 공표됩니다!]
[동맹군, ‘니플헤임’이 당신이 이뤄 낸 업적에 크게 놀라워합니다. 수뇌부들 간에 대책 회의에 들어갑니다.]
[동맹군, ‘천교’가 당신이 이룬 위대한 업적에 찬사를 보냅니다.]
[동맹군, ‘동마왕군’이 새로운 신왕의 탄생을 기원합니다.]
[연합군, ‘아스가르드’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깊은 침묵에 잠깁니다.]
[연합군, ‘올림포스’가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
[중립, ‘데바’가 침묵합니다.]
[중립, ‘절교’가 침묵합니다.]
……
[신의 사회, ‘말라흐’가 새로운 존재의 탄생에 말을 아낍니다. 당신이 선역을 택하기를 기원합니다.]
[악마의 사회, ‘르 인페르날’이 당신의 빠른 성장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뱉습니다.]
[비마질다라가 당신의 성장을 기꺼워합니다.]
[케르눈노스가 당신을 가만히 살핍니다.]
수도 없이 많은 메시지를 뒤로 하고.
촤르르륵!
쇠사슬이 다시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간 마성이 양팔이 쇠사슬에 결박된 채로 끄집어 올려졌다.
어떻게든 쇠사슬을 풀어 보려 이리저리 꿈틀거렸지만, 이미 모든 힘이 흡수된 녀석은 쭉정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더 이상 연우의 형체를 유지하지도 못해, 검은 그림자의 형태만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곳곳에 난 구멍이나 상처들 사이사이로 혼탁한 칠흑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그런 녀석의 목덜미에다 스퀴테의 날을 갖다 댔다. 그 모습이 마치 처형대에 올라온 죄수 같았다.
『너희들을…… 어떻게…… 든 죽이고 말……!』
처참한 몰골이 된 상태로도, 눈동자는 여전히 광기로 번들거렸으니.
연우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비웃음을 던졌다.
“그 전에 주제 파악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크로노스가 스퀴테를 그대로 내리쳤다.
콰직!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퀘스트를 완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