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664화 (664/862)

14화. 스퀴테 (14)

‘메타트론? 바알? 저들이 왜?’

연우의 눈이 커졌다.

수많은 대천사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메타트론과 마왕들로 하여금 폭격(爆擊)을 가하게 하는 바알.

둘은 그가 지난번에 다과회에서 보았던 것과 분명히 닮은 외형을 하고 있으면서도,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만약 알림창이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여겼을 지도 몰랐다.

한데, 저들이 ‘낮’의 소속이라고?

“그런 거군.”

연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들도 그럼 배반자들…… 그 ‘찌꺼기’였던 거구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저들도 계시록에 기록될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었던 존재들인 건 분명했다.

‘그럼 절대선이니 절대악이니 하는 건……?’

연우는 메타트론과 바알이 주최하던 다과회를 떠올렸다.

말라흐와 르 인페르날은 분명히 세간에는 주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각각 절대선과 절대악을 표방하며, 신의 진영과 악마의 진영을 대표하여 대립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천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진영 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월동주의 심정으로 협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물론, 다과회를 접하면서 그것이 그들이 벌이는 기만이며, 두 세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것이라면?

‘모두가 속고 있는 거로군.’

어쩌면 애초에 천계의 질서라는 것이 그들의 철저한 각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우라노스의 시대부터 탑의 시대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메타트론과 바알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억겁의 세월 동안, 오로지 칠흑왕의 ‘기지개’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던 그들이, 숭고한 이상을 위해 살아왔던 그들이, 과연 무슨 일이 있다고 해서 흔들릴까?

연우는 힘들다고 봤다.

‘어쩌면 다과회에 나를 초대했던 것도,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고.’

크로노스 대(代)의 올림포스는 말라흐, 르 인페르날과 이렇다 할 교류를 가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건 제우스 대에도 마찬가지.

그런데도 그들에게 연우에게 접근한 건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식이 죄다 틀어지는군.’

연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은 단순히 시간의 태엽을 복원할 수 있을 기술을 얻으러 온 것일 뿐인데, 어째 판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릉, 쿠르릉!

콰콰콰-

하늘을 따라 거센 빛무리가 번져 나갔다.

이곳은 이 드넓은 우주에서도 변방이라 취급받는 외곽. 인지하고 있는 이들조차 그리 많지 않을 여기에서 종말이라도 찾아온 것 같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밤’에서부터 기어 나오려는 혼세팔신을 어떻게든 틀어막으려는 대천사와 마왕들의 모습은 한 폭의 성화(聖畵)를 보는 것처럼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만큼 끔찍하기도 했지만.

우라노스와 올림포스의 공신들도 어느새 그 무리에 합류하고 있었다. 우라노스가 손을 흔들 때마다 벼락이 내리꽂히고, 그러는 족족 타계의 신들이 불타올랐다.

‘나도 나서야겠지.’

연우도 그들을 보면서 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이미 난장판은 시작되고 말았다.

이런 판국에 프네우마의 하늘을 얻었다고 해서 이곳을 나가는 건 안 된다. 자칫 크로노스의 신화가 망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타계의 신들을 물리칠 수는 없을지언정, 도로 ‘밤’ 안쪽으로 밀어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의념, 아니, 프네우마를 집중했다. 하늘 날개에 신력을 불어 넣으면서 ‘작은 굴레’에 간섭해 보려는데.

‘뭐지?’

연우는 한창 타계의 신들과 싸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 마왕들 중에서 유독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개를 돌린 곳. 아가레스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광기에 젖은 눈을 하고 있던 녀석이었지만, 여기서는 마치 얼음을 조각한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녀석이 왜 저러나 싶었지만. 아가레스는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로 싸움터로 돌아갔다.

아직 아가레스와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기 때문에 무언가 조금 찝찝했지만.

[프네우마로 인해 흔들렸던 시간의 축을 다시 올바르게 잡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제한 시간이 다시 집계됩니다.]

[7:35:66_49]

[7:35:66_48]

……

“해 보자.”

연우는 ‘밤’에서 깨달았던 바를 토대로, 프네우마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비튼다는 생각으로 ‘작은 굴레’를 굴리고자 했다. 원활한 작동을 위해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렸다.

그 속에서 자신은 시계를 돌리는 태엽이었고, 프네우마는 태엽과 연결된 무수히 많은 부품들을 같이 작동시키는 자잘한 톱니바퀴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맞물리면서 다 같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시곗바늘이 움직였다.

[권능, ‘프네우마의 하늘’이 작동하여 ‘작은 굴레’에 간섭합니다!]

[‘작은 굴레’가 굴러가는 속도가 현저히 감소합니다.]

[인과율이 작동합니다.]

[일정 범위에 걸쳐 시간이 현저히 느려집니다!]

그리고.

[7:35:51_30]

[7:35:51_30]

[7:35:51_30]

[7:35:51_29]

……

카운터가 떨어지는 속도도 현저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 * *

연우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기어 다니는 혼돈이었다.

어느새 경계의 거주자를 따라서 ‘밤’의 바깥으로 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놈은 꾸역꾸역 몸을 움직이면서 연우를 인지하고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물론, 전체가 아닌 일부에 불과했지만.

[‘기어 다니는 혼돈’이 당신을 관찰합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당신에게 강한 흥미를 갖습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당신을 중심으로 빚어지는 여러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쿠우우-

녀석을 이루는 거대한 몸체가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커다란 구름이 떠다니듯.

[당신이 삼킨 ‘기어 다니는 혼돈’의 잔재 신화가 원주인과의 만남에 여전히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당신이 삼킨 ‘기어 다니는 혼돈’의 잔재 신화가 원주인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당신의 정체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내비칩니다!]

너. 는.

낮. 의. 존. 재. 아. 니.

누. 구. 냐.

기어 다니는 혼돈은 아예 대놓고 연우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우에게서 자신의 신화를 엿보았으니까. 그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겠지.

신화라는 것은 신격이 걸어온 길이며 정체성이다. 당연히 똑같은 신화라는 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본다면 거세게 분노할 일이었지만.

기어 다니는 혼돈은 별다른 동요 없이 침착하게 연우를 분석하려 하고 있었다. 한낱 미물이 자신을 모방하려 들었다면 불쾌하게 여겼겠지만, 연우에게서는 그분의 냄새도 같이 풍기지 않는가.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그것이 ‘바깥’에 그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될 테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벌써’ 나타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가 예측하기로, 그분의 흔적이 발견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분께서 조금씩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한다는 뜻일 텐데,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절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분의 흔적을 지니고 있고, 이상하게 자신의 신화마저 가지고 있다.

그게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기어 다니는 혼돈은 주로 본능이 앞서는 다른 타계의 신과 달리 지적인 호기심을 타고난 성격이었고, 현상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취미로 즐기곤 했다.

그런 여러 궁구 끝에. 기어 다니는 혼돈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연우는 절대 이 시간대의 사람이 아니라고!

먼 미래.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간대에서 우연히 칠흑왕의 흔적을 얻게 된 존재가 자신을 처치하였고, 그 와중에 모종의 일을 겪어 이 시간대에 잠시 출현하게 되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물론, 그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분석을 하는 데 있어 재료로 활용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괜히 ‘밤’에서도 책사라고 불리는 게 아닌 것이다.

여하튼.

기어 다니는 혼돈은 여기서 연우를 어떻게든 붙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를 생포할 수만 있다면 아주 많은 걸 캐낼 수 있으리라. 그분을 찾는 속도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테고, ‘낮’과 관련된 정보도 상당수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그분을 잠들게 했다는 천마에 대한 것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최후가 어떤지도.

꾸우우우-

그러한 기어 다니는 혼돈의 여러 복잡한 생각들은 정제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연우에게로 전해졌다.

그리고 인상을 팍 찡그리고 말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걸, 즐긴다고?’

기어 다니는 혼돈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죽음이란 신과 악마들에게도 미지의 영역. 죽음을 신위로 두는 이들조차도 그 개념에선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도 녀석들이 스스로를 불멸이라고 외치는 것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죽음을 당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혼세팔신이라면 더 그러하겠지.

그런데도 기어 다니는 혼돈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낯선 개념이 흥미를 돋운 것이다. 자신은 어떻게 죽는 걸까. 그리고 죽은 뒤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단순히 소멸하고 마는 걸까, 아니면 어딘가에 남아 기생하고 있는 걸까. 자신의 흔적은 이 세상에 어떤 형태로 남은 걸까 하는 등의.

‘원래 제정신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때는 더 막 나갔었군.’

탑에서 마주친 기어 다니는 혼 돈은 연우와 맞닥뜨렸을 때에도 이랬었다. 그와 칠흑왕의 연결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싸우다 말고 갑자기 강제로 의식 세계를 비집고 들어왔었지. 호기심과 흥미란 녀석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걸까. 그렇다면 미쳐 있어도 단단히 미쳐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 번 더 삼켜 주지.”

이미 한 번 처치했던 상대다. 두 번이라고 못할까. 오히려 똑같은 신화를 두 번 삼키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발동하여 ‘검뢰팔극’의 위력을 증폭시킵니다!]

[프네우마가 집중됩니다.]

연우는 처음부터 음검을 전개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을 완전히 찢어 버릴 생각으로. 검뢰를 동반한 무수히 많은 빛살이 기어 다니는 혼돈을 난도질했다.

그렇게 조각난 파편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파편이라고 해도 웬만한 섬보다 더 큰 크기를 자랑하는 것들이었고, 그중 큰 파편 하나가 사람의 형상을 갖추면서 연우에게로 달려들었다.

콰아앙!

그것은 크로노스가 아닌 연우에 가까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기어 다니는 혼돈이 계속해서 연우를 분석하면서 빚어낸 화신체. 그렇기 때문에 생김새도 연우와 많이 닮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짜증 나는군.”

다만, 연우는 그런 녀석의 모습이 자신보다는 동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못내 불쾌했다. 그들은 쌍둥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구석들이 있었으니까.

콰르르르-

쿠쿵, 쿠쿠쿵!

그렇게 연우와 기어 다니는 혼돈의 격돌도 번져 나가면서.

‘낮’과 ‘밤’의 충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엿 같군. 대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란인가? 간만에 집에서 데바산 쿠키나 먹으면서 힐링하려고 했었는데…… 죄다 망쳐 놓지 않았나!”

바알은 간만에 주어진 휴식 시간이 방해받은 게 짜증 났던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랴부랴 급하게 나왔음을 말해 주듯 입가에는 쿠키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미안하군. 우리 손자 놈이 사고를 쳐서 말일세.”

“손자? 자네에게 그런 게 어딨……!”

바알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저 멀리 기어 다니는 혼돈과 열심히 치고받고 있는 연우를 보고 미간에 골을 더 깊게 했다.

“자네가 매번 망할 놈이라고 구시렁대던 그놈이 아니로군.”

“그 망할 놈의 아들이라네.”

“호오. 그 성격을 받아 주는 여아가 있었나 보지?”

“레아.”

“……음?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바알은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 되었나 싶어 귀를 가볍게 후벼팠다.

우라노스의 양자들 사이에서도 그가 기억하는 아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크로노스는 하도 사고를 치고 다녀서, 레아는 지겹도록 우라노스가 칭찬을 하고 다녀서 그랬다. 특히 레아는 자식이 있다면 며느리로 삼아도 괜찮겠다 싶기도 할 정도였었는데. 뭐? 그 두 사람이 만난다고? 미래에?

이게 대체 무슨 옆집 개 짖는 소리냐는 얼굴로 바라봤지만, 우라노스는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자기네들이 좋다는데 뭐 어쩌겠나.”

“허! 프네우마와 퀴리날레가 하나로 합쳐진다고? 면상만 봐도 서로 찢어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앙숙의 후손들이? 정말이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바알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덮다가,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럼 그 아둔한 미치광이가 충분히 탐낼 만하겠군. 허! 그래서 죽음의 개념이 저렇게 강렬하게 느껴졌던 건가? 차라리……!”

“쓸데없는 짓할 거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바알.”

“……그것참 농담 한 번 한 거 가지고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 아닌가? 그보다.”

바알은 우라노스가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자 슬쩍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입맛을 다셨다.

칠흑왕이 관심을 기울이는 ‘그릇’이 있다면 진즉에 처리하는 게 속 편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지는 않았다. 우라노스와의 관계도 있는 데다가, 당장 연우를 처치하면 크로노스의 육체만 죽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속에 빙의된 연우까지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지랄 염병을 떨 텐데, 될 수 있는 한 좀 빨리 치워 버리세나.”

그래서 슬그머니 화제를 바꿨다.

그 순간.

“……젠장. 그랬었지.”

“시끄러운 건 딱 질색으로 여기니. 하지만 경계의 거주자가 있어 잘 잘될지는…… 안 되겠군. 이렇게 떠들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싸우는 게 낫지. 나 먼저 가겠네.”

우라노스와 메타트론의 안색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뭔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린 모습.

특히 메타트론은 이지적인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대다가, 안 되겠다는 듯 아공간에서 쌍검을 뽑아서 단숨에 경계의 거주자에게로 달려들었다.

경계의 거주자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신경질적인 성격을 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예전에 짜증 난다는 이유만으로 뒤통수를 맞았을 때는 몇 년이 지나도록 혹이 가라앉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쐐애애액-

그의 하얀 날개가 거칠게 해를 칠 때마다 신력이 소용돌이치면서 경계의 거주자를 갈기갈기 찢고자 했다. 빛살이 몇 번씩이나 지상으로 내리꽂히고, 무지개를 닮은 칠색 물결이 전장으로 한가득 퍼졌다.

우라노스와 바알이 바로 그 뒤를 받쳤다. 공간을 몇 번씩이나 찢어 낼 정도로 막대한 권능이 번쩍였다.

3대 1. 분명 수적으로는 그들이 우위였다. 그것도 ‘낮’을 대표하며, 전 우주와 차원을 뒤져도 손꼽힌다는 강자들이 합공을 하는 만큼 위력도 거셀 수밖에 없었지만.

경계의 거주자는 그들과 맞닥뜨리고도, 오히려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공세를 전부 쳐 내면서 다른 손을 거칠게 앞으로 뿌렸다.

공간이 떠밀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그에게로 쏟아지던 모든 권능들이 모조리 파훼되고 말았다. 대신에 일어난 ‘밤’의 해일이 세 사람의 머리 위를 덮쳤다. 우라노스 등은 재빨리 공간을 열며 대피를 시도해야만 했다.

경계의 거주자는 그런 그들의 뒤를 쫓아 바쁘게 움직였다.

쿠쿠쿠쿠-

그 뒤를 따라 ‘밤’이 확장을 시도하려 바쁘게 일렁였다. ‘낮’은 그것을 밀어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거대한 방벽을 쌓아 올렸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팽팽한 접전.

하지만 따지자면 ‘밤’ 쪽의 기세가 더 거칠었다. 어둠이 점차 빛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양상은 혼세팔신이 속속들이 모습을 비출수록 더 ‘밤’ 쪽으로 균형추가 기울어지는 듯했다. 우라노스 등도 그만큼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저 너머에서부터 갑 자기 공허가 열리면서 황금색 물결로 가득 찬 기둥이 내려앉았다. ‘낮’과 ‘밤’이 맞물리는 경계선을 정확하게 반으로 자른 채로.

그것을 보면서.

“……씨발.”

우라노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좆됐군.”

바알은 절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듯 안색이 시퍼렇게 질리고 말았으며.

“…….”

그리고 메타트론은 아무 말 없이 아주 조용히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세상이 전부 끝난, 시한부 판정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그리고.

황금색 물결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서.

“시끄러, 이 새끼들아! 우리 애 이제 겨우 잠드나 싶었는데, 너네들 때문에 다 깼잖아! 갓난아기 다시 재우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천마가 으르렁거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 여의봉을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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