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07화 (707/862)

7화. 지구 (3)

‘차 중사……?’

우지훈 준장은 눈앞의 인물이 방금 전까지 그리고 있었던 사람 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너무 멀어서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쩐지 ‘카인’이 맞을 거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다만, 너무나 급작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품에 다른 누군가가 안겨 있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우지훈 준장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치칙!

[준장님! 어서 명령을……! 브레이크 뒤에 있을 웨이브 위험……!]

방금 전의 게이트 브레이크로 마력장이 퍼지고 있어서 그런 건지, 교신에 노이즈가 잔뜩 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우지훈 준장은 곧장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게이트 브레이크는 단순히 게이트가 부서지면서 생기는 폭발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뒤에 있을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가 가장 큰 문젯거리였다.

하지만 우지훈 준장은 도저히 군 병력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곧이어 하늘에서부터 불어닥친 굉음과 폭발 때문이었다.

콰르르릉~ 하늘을 따라 넓게 퍼져 나가는 검고 붉은 벼락 줄기와 노란색 섬광을 보면서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시, 신격이 왜……?”

그리고 그 시각.

그 자리에 있던 스피리얼 밴드를 비롯한 모든 플레이어들은 공통된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경고! 당장 현재의 위치에서 벗어나십시오!]

[경고! 측정이 절대 불가능한 존재가 강림하였습니다. 어서 현재의 위치를 벗어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경고! 현재의 행성에서 탈출하십시오. 계속 남아 있을 경우,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 * *

지구에서 활동 중인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가장 기쁜 순간이라면, 바로 신과 악마들로부터 사도직을 제안받을 때였다.

제아무리 재능 따윈 찾아볼 수도 없고, 성장 가능성도 없는 F급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부터 선택을 받게 된다면 하루아침에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절대 꿈도 꾸지 못할 권능급 스킬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을 추종하는 신도들의 수장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와 별개로 플레이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바로 ‘직접’ 신과 악마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신은 오만하다. 그리고 악마는 괴팍하다.

그들의 성정은 인간들의 잣대로 절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사도들도 모시는 신으로부터 이따금 계시(啓示)와 신탁 (信託)만 받기를 바랄 뿐. 그들이 직접 내려오는 것은 꺼려 하는 편이었다.

그들의 속내를 도저히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들이 어떤 일로 심사가 언짢아지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운명 따윈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어지는 셈이니.

그렇기에 이따금 신과 악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릴 경우, 그곳은 보통 언클로징 게이트로 남겨 두는 편이었다.

신과 악마의 성역일지도 모르는 데다가, 단순히 유희를 나온 것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엮여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처음 ‘까마득한 태곳적의 늪지대’의 오로라가 전대미문의 칠흑 색으로 판정 났을 때, 우려했던 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게이트 브레이크나 몬스터 웨이브도 문제이지만, 그 속에 악마라도 한 마리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아주 간혹가다가 봉인된 악마를 무찌르라는 말도 안 되는 시련을 던져 주는 게이트들도 있었기에 들 수밖에 없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츠, 측정을 할 수 없다고?”

“이게 무슨……!”

“서, 설마 ‘언터처블’이라도 나타난 건가?”

한편, 현장에 있던 플레이어들을 비롯해 게이트 브레이크에 대비해서 여러 첨단 장비로 현장을 감시하고 있던 ‘안전 통합 지휘부’도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에게 공지 사항으로 떠오른 경고 메시지 때문이었다.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언터처블(Untouchable)을 의미했으니.

물론, 인간들에게 있어 모든 신과 악마들은 ‘손을 댈 수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최선두를 달리는 이들은 따로 분류되고 있었다.

주신.

혹은 대신격을 포함하여 소속된 사회 없이 홀로 유희를 즐기는 존재들.

정확하게는 ‘혼자서도 충분히 지구를 원시 행성으로 돌릴 수 있는’ 무력을 지닌 존재들을 의미했다.

대표적으로 케르눈노스, 비마질다라, 아가레스, 헤르메스 등이 여기에 해당했으니.

“젠장! 가뜩이나 비마질다라의 활동 때문에 남미 쪽 피해가 커도 너무 큰 상황인데……!”

“대체 저런 놈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나타난 거야?”

“오! 주여. 저희 인간들에게 주시는 고난이 저 빌어먹을 게이트 말고도 또 있단 말씀이시나이까.”

그런데 그 급의 존재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나타났다?

당연히 통합 지휘부로서는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고, 가뜩이나 칠흑색 오로라로 인해 한국을 우려에 찬 눈으로 주시하고 있던 UN 안전 관리국도 이러한 사실을 속보로 접하고 서 비상 경계령을 내려야만 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건너의 미국까지도 일련의 사태에 대비해 군 경계령을 발동시키기도 했다.

“서둘러! 저 두 존재들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신명부터 소속된 사회까지 전부 알아 와! 당장!”

“그, 급보입니다!”

“또 뭔데?”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었던 살왕과 빅 마운틴의 공략대가 전원 무사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뭐? 저 폭발에서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정확한 사실 내용을 확인 중에 있습니다!”

“생존자가 있다면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다른 정보국에 정보가 넘어가지 않도록, 생존자들의 신병 확보부터 서두르라고 해! 어서!”

그리고 갑작스레 출현한 두 존재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각국의 정보기관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콰릉, 과릉, 콰르르르-

연우와 제우스의 충돌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조금 불편한데, 이건.’

연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만치 먼 곳에서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김범승-제우스의 꼴을 보고 있노라니 배알이 꼴렸던 것이다.

물론,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저 정도쯤은 쉽게 찢어 버릴 수 있었다.

직접적인 강림도 아닌 이상에야 별 어려울 것도 없으니까.

아니, 진짜 제우스의 본신과 싸운다고 해도, 설사 녀석이 두 개의 영혼석을 부린다고 해도 연우는 그를 꺾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제우스를 찾아서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고, 매번 제우스를 볼 때마다 징징거리는 아버지 앞에다 던져 줘 버릴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문제는 녀석을 ‘생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마음에 안 든다고 그냥 모가지를 바로 댕강 잘랐다간 아버지가 많이 우울해하실 테니. 거기다 이블케에 대한 정보도 알아내야 하고.’

하르모니아도 죽은 이때. 이제 연우에게 있어서 상대해야 할 적은 이블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문제는 이블케의 목적도 성향도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를 찾을 수 있을 만한 단서는 딱 하나, 제우스밖에 없었으니.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연우로서는 제우스를 반드시 살려 놔야만 했다. 사지 멀쩡하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입은 붙여 놔야 하지 않겠나.

문제는 녀석은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생포될 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점이었으니.

물론, 그런 상황들을 전부 무시하고, 그냥 모른 척 죽여 버린 뒤 사자 소환을 해서 신병을 구속해 버리는 것도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곳은 스테이지가 아니니까.’

탑의 층계라면 부서뜨려도, 백업된 데이터가 있으니 언제든 복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탑에 있을 때는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마구잡이로 날뛰었던 것이지만, 지구는 여러모로 달랐다.

여기서 힘을 잘못 개방한다면? 그냥 모든 게 끝장이었다.

연우의 감각은 예민하다.

이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의 활동들이 시시각각 인지 정보로 수용되고 있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자신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운 것도 귀찮은 판국에, 실수로 나라가 두어 개쯤 날아가기라도 한다면 그냥 귀찮은 정도로도 안 끝날 게 분명했다. 아니면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그냥 가루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고.

물론, 지구에 별다른 미련이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명색이 그의 고향이 아닌가.

더군다나.

‘르’뤼에가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니. 잘못 건드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라.’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제우스를 본 것만 해도 짜증 나는 판국인데, 녀석이 거기다 더 화를 부채질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제우스도 연우의 그런 생각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날 계속 이렇게 죽이려 들다간 이곳을 전부 날려 버리고 말 텐데. 그래도 괜찮나? 듣기로는 여기가 아버지가 도망쳤던 곳이며 너의 고향이기도 하다면서?』

깔깔 웃는 모습이 더 짜증 나기만 했다.

“게이트라고 했었나?”

“네? 네.”

한편, 연우의 품에 안겨 있던 세샤는 멍하게 있다 말고 화들짝 놀라면서 연우를 올려다보았다.

게이트가 너무 쉽게 터져 버리는 것부터 드높은 열권 지역에 올라와서 격전을 치르는 것까지, 세샤로서는 여태껏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그리고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삼촌이 이미 디디고 있는 위치가 대단해도 너무 대단하다는 것을.

그녀 역시 차정우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여러 초월자들과 인연을 맺고 있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연우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갑자기 게이트에 대해서 묻자, 세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연우가 잠들고 난 뒤에 빚어진 새로운 현상이었으니, 궁금한 게 많으실 테지.

싸우시는 와중에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우스를 상대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세샤는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한 거지?”

“……네?”

“내구도가 너무 형편없어. 그냥 검뢰만 뿌렸을 뿐인데 그렇게 쉽게 터져 나가 버릴 줄은.”

“…….”

“원래 그런가? 아니면 거기만 유독 그런 거였나?”

“…….”

세샤는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방금 전 삼촌이 아주 가볍게 부수고 나온 곳은 십 년 동안 아무도 공략하지 못할 정도로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던 언클로징 게이트 중 한 곳이었다고.

원래대로라면 사회 하나가 들어가서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운다고 해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곳이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삼촌은 제우스를 그냥 던전 안에서 잡을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이뤄지지 않고 갑자기 밖으로 나오게 되니 당황한 것 같았다.

“만약 원래 그렇게 약한 거면, 대체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거기서 활동할 수 있는 거지? 뭐만 하려고 하면 그냥 쉽게 부서져 나갈 텐데?”

하지만 세샤는 거기에 대해 차마 아무 답변도 할 수 없었다. 연우는 진지해도 너무 진지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다른 방책을 강구해야겠어.”

“네? 무엇을 하시려고……?”

세샤는 우려에 찬 시선으로 연우를 바라봐야만 했다. 여기서 또 무슨 사고를 치시려고요? 언제나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이던 삼촌이었기에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샤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저물라.”

연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고, 세샤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허리를 쭈뼛 세워야만 했다.

여전히 활짝 열려 있던 용마안을 통해 결로 뒤덮여 있던 시야가 모조리 뒤틀리는 것이 보였다.

세계가.

법칙이.

진리가.

변하고 있었다.

온 우주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던 암흑물질이 그대로 내려와 지구를 뒤덮었다. 마치 막이 내려와 무대를 감추듯이, 지구에서 벌어지던 모든 활동과 현상들이 이면 속으로 감춰졌다. ‘꿈’ 속으로 잠겨 마치 원래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대신에 그 위에 있는 것은 오로지 연우와 세샤, 그리고 제우스뿐.

『‘꿈’을 현실에 덧칠해 버린다고……?』

지구를 두고 겁박을 일삼던 제우스도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꿈’의 위에 있는 것도 더 이상 그가 인형처럼 갖고 놀던 김범승이 아니었다. 제우스, 그의 본체가 서 있었다. 노란 곱슬머리를 사자처럼 길게 늘어뜨린 옛 주신의 모습.

세샤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지금 연우가 아무렇지 않게 벌인 행동이, 실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용언(龍言).

용종 중에서도 성인식을 치르고, 나아가 수많은 마나를 품으면서 ‘고대’의 칭호를 받은 이들만이 부릴 수 있다는 언령 마법.

아니, 정확하게는 아무리 용언이라고 해도 법칙을 이렇게 자유롭게 조작할 수는 없었다. 이건 그마저도 훨씬 뛰어넘은 무언가였다.

이 정도라면 법칙을 새롭게 창조했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임시 세계를 창조하여, 그 속에다 제우스를 가둬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우는 용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 순간, 세샤는 볼 수 있었다.

연우의 뒤편으로.

아니, 그가 서 있는 공간 위쪽으로, 웬만한 항성 따위는 우습게 볼 만한 엄청난 몸집과 기세를 자랑하는 검붉은 빛의 용이 서 있는 것을.

거마신룡.

저것이야말로 연우의 ‘진짜’ 본체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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