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36화 (836/862)

36화. 별의 조각 (2)

별(星).

혹은 별자리(Constellation).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자신들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줄곧 스스로를 가리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저 밤하늘을 가득 메우며 스스로 빛나는 별처럼, 자신들도 그렇게 화려하게 빛난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빛나는 존재들이었다.

* * *

남쪽 화살도 바로 그런 별 중 하나였다.

그는 원래 어느 원시 부족을 다스 리던 추장(酋長)이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질퍽질퍽한 늪지대가 펼쳐진 정글을 무대로 살아가던 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용력과 기민한 감각, 그리고 타고난 근육으로 날렵한 민첩성을 자랑했다.

그 때문에 그와 적으로 만난 이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며 몸을 떨기 바빴다.

전투가 벌어지면 그는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 이후, 바위틈에서 독침이 날아들고, 나무 사이로 넝쿨 채찍이 튀어나오며, 땅이 아래로 움푹 꺼지면서 숨겨져 있던 창날이 불쑥 튀어나와 적들을 괴롭혔다.

그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남쪽 화살이 추장으로 있는 부족과 대입하기를 꺼려했다.

아니, 대립할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옳았다.

부딪치는 순간 죽음만이 찾아올 뿐이었으니까.

-남쪽 화살은 죽음의 신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소문이 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령과 신들을 가장 무서워하는 정글 부족들에게는 그만큼 두려운 것이 없었고, 결국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수백 개로 갈라져 있던 정글 부족들은 모두 남쪽 화살 아래에 하나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수십 년간 남쪽 지대에 살아가는 문명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렵 제국의 탄생이었다.

남쪽 화살의 왕성한 정복 활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치 그것만이 자신의 숙명이라는 듯, 남쪽 화살은 부족민들을 외부로 끊임없이 내보내 영역을 팽창시켰다.

정글을 벗어나, 초원으로, 사막으로, 빙하로 넘어가면서 소위 비문명권이라 불리는 지역을 통합하고, 나아가 그들의 진입을 가로막던 ‘장벽’을 넘었다.

무수히 많은 문명국가들이 무너졌다.

왕의 머리가 저잣거리에 걸리고, 왕궁이 불탔으며, 약탈당한 수도 곳곳에서는 비명과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든 남쪽 화살을 막아 보고자 했지만, 그들의 말발굽을 당해 낼 수 있는 곳은 어디도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하나뿐인 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게 되었을 때.

우습게도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이라며 거들먹거리던 황제와 황족들의 시신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온 세상을 내려다보게 되었을 때.

남쪽 화살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황제가 애지중지하던 보물을.

그건 옥새였다.

-눈처럼 새하얗고, 금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며, 피처럼 불그스름한 빛깔이 감돌아 불길함과 황홀함, 신성함을 모두 담은 옥새(玉靈).

황제가 말하길, 그것은 대대로 황실을 상징해 온 장식품이라고 했다.

제국을 세운 시조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정체 모를 신비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길, ‘너의 손길로 세상이 광명을 되찾으리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단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잠에서 깬 시조가 밖에 나가 보니 밤하늘에서 운석이 하나 떨어졌다던가?

시조는 그것이 하늘이 내린 천명이라고 판단해, 운석으로 옥새를 만들어 신물로 삼아 군사들을 모으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국의 기원이었다고 했다.

또한, 옥새는 그 신묘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다친 환자들을 낫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눈먼 소경을 눈 뜨게 하는 등 갖가지 기적을 이뤄냈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남쪽 화살은 옥새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멍청한 놈들. 보물을 앞에 두고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로 썼구나.

옥새는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사람들을 치료하고 황족들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데 쓸 게 아니라, 보다 더 큰 일에 써야만 했다.

보다 더 높은.

인간의 한계로는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위치까지 다다르기 위해 써야 하는 보물.

그래서 남쪽 화살은 옥새를 제발 돌려달라고 소리치는 황족들을 모두 죽이고, 그날 옥새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단순히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안에 담긴 힘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서.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보물을 남들에게 주기는 싫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위장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남쪽 화살의 그러한 판단은 아주 정확했다.

눈이 뜨였다.

자신이 이룬 거대한 나라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영역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는 온갖 희귀한 것들이 많아 엄청난 크기의 소금 호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너머에 자신들이 있는 대북만큼 큰 다른 대륙들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저 끝없는 북쪽으로 가면 대낮처럼 하얀 밤이 찾아온다는 것도 그제야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행성이 ‘콴’이라고 불리며, 끝없는 어둠의 바닷속 한 줌의 모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는 것도 깨답았다.

그 뒤에 찾아온 감각은…… 희열이었다.

자신이 보던 세계가, 시야가, 사고가 얼마나 좁은 틀에 갇혀 있었는지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너무나 왜소하다는 사실에 좌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일쑤였지만.

남쪽 화살은 도리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모든 걸 가지고 싶다. 저 우주를 가득 채운 별들처럼 나도 아름답게 빛나고 싶다. 어느 곳에 있어도, 전혀 다른 행성과 세계에 있더라도 우러러볼 수밖에 없을 별자리가 되고 싶다.

그것은 허황된 희망이 아니었다.

옥새만 전부 소화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실제로 삼키기만 했을 뿐인데도, 이토록 뛰어난 눈과 예민한 감각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남쪽 화살은 행성 콴을 모두 정복하고, 스스로를 가리켜 신의 화신이라 칭했다.

모든 백성들에게 자신을 그렇게 부르라고 지시하였다.

백성이며 신하들, 여러 군주들까지 모두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기도를 올렸다.

실제로 그들의 눈에 남쪽 화살은 이 땅에 내려온 신의 재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절대 없을 대업적을 세운 위인이 신이 아니면 대체 누가 신이란 말인가?

그것은 전설이자 신화였다.

행성 콴에 남아 있던 그 어떤 신화도 남쪽 화살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이미 문명과 행성을 지배하는 유일신, 그 자체였다.

그렇게.

남쪽 화살은 예순다섯이라는 나이를 일기(一期)로 눈을 감았다.

만인의 존경과.

경외와.

공포와.

두려움을 받으면서.

그리고.

신앙을 한 몸에 받으면서…….

* * *

남쪽 화살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육체는 그저 영혼을 가둬 두는 감옥과 족쇄에 불과할 뿐.

그것을 훌훌 떨쳐 버렸으니 이제 진짜 자유를 얻은 셈이었다.

그는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하늘을 채우는 별자리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기뻐하던 백성들은 새롭게 수놓아진 별들을 이어서 ‘남쪽 화살 자리(Sagitta)’라고 불렀다.

-나는 별이 되었구나.

남쪽 화살은 자신이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감기 직전에 마지막 남은 옥새의 부분을 소화하면서 옥새,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옥새는 운석, 즉 별똥별이었다.

별의 사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남쪽 화살은 그 사체를 흡수하고 계승하는 데 성공하여 새로운 부활을 이뤄 낸 것이었다.

영혼은 운석과 융화되어 새로운 존재로 진화하였고, 이제는 스스로 빛을 뿜을 수 있게 되었다.

별처럼!

그래서 남쪽 화살은 스스로를 ‘별’이라고 불렀다.

신이니 악마니 용종이니 거인이니 하는 것들은 타고나길 위대한 존재로 태어나 힘을 가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혈통과 태생이 좋아서 얻은 행운이었을 뿐, 스스로를 증명한 이들은 거의 없는 셈이었다.

물론, 스스로 신화를 차곡차곡 쌓아 격을 완성하여 탈각과 초월을 이룬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남쪽 화살은 그들도 자신과는 아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결국 한 사회에서 하급 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다가, 그 이상 강해지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반면에 자신은 어떤가?

타고난 혈통과 태생 따윈 없었다.

문명인들이 야만족이라며 무시하고, 같은 비문명인들까지도 괄시하던 정글의 어느 작은 부족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다행히 작은 재능을 타고나, 이를 갈고닦았고, 덕분에 스스로를 증명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늘에서부터 떨어졌다는 운석을 만나 승천(昇天)을 이룰 수 있지 않았던가-남쪽 화살은 탈각과 초월이라는 개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게, 육체의 탈을 벗어던지고 하늘로 올라가 ‘스스로’ 별자리가 되었으니 승천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렸다.

그래서 스스로를 승천자(昇天者)라고 부르고자 했다.

땅에서 증명하고 하늘에서 선택을 받았다.

이것이 자신이 타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가리키는 증거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남쪽 화살은 생각했다.

-별자리가 되었으니, 이제는 밤하늘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별이 되고 싶다. 어느 별들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크게 빛나고, 거대한 별이!

-밤하늘을 낮으로 바꿔 버리는 저 태양처럼, 어둠만이 가득한 우주를 자신의 빛으로 채워 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위대한 별이 어디 있겠는가!

남쪽 화살은 그런 생각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남은 별들을 모두 먹어 치우며 은하수를 자신의 빛으로 물들이는 것은 물론, 우주까지 빛으로 잠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있던 세계-언젠가 차정우가 ‘#136,888,994,312,545,479’라고 명명한 새끼 우주는 종말을 맞이했다.

세계선의 삭제였다.

* * *

‘……이게 대체 뭐야?’

세샤는 한순간 백일몽처럼 자신의 눈앞으로 스쳐 지나간 장면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덜덜덜…….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녀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남쪽 화살이 빛을 뻗을 때마다 빠른 속도로 소멸하던 신과 악마들.

그리고 하계의 여러 행성과 문명들.

모두가 혼란에 잠겼고, 비명을 질렀다.

저항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부질없었다.

도리어 그들 모두는 원료가 될 뿐이었다.

남쪽 화살이라는 별자리를 더 찬란하게 빛나게 해 주는 원료.

혹은 장작.

번호를 제대로 기억하기도 힘들 만큼 아주 어리디 어린 새끼 우주는 제대로 꽃을 피워 보기도 전에, 남쪽 화살의 탐욕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음……? 하하하. 이런. 아무래도 본 모양이로군. 특이한 ‘눈’을 가지고 있나 보지?”

남쪽 화살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세샤를 보면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이유를 깨닫고 피식 웃고 말았다.

새카만 얼굴 사이로 유달리 하얗게 드러난 건치가 세샤에게는 두렵게만 느껴졌다.

왠지 저 이빨에 자신이 뜯어 먹힐 것만 같아서.

암흑의 구는 남쪽 화살이 만들어 낸 심상 세계.

당연히 그 속에는 남쪽 화살이 쌓은 무수히 많은 신화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고, 세샤는 그 일부를 엿본 것이었다.

아주 ‘사소한’ 일부만 엿보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 뒤로 벌어진 일도 얼추 볼 수 있었다.

‘남쪽 화살을 별로 만들어 준 그 운석…… 그게 각 세계선마다 꼭 하나씩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마저 삼키기 위해 세계선을 넘나들기 시작했어.’

또한, 그 과정에서 남쪽 화살은 자신과 비숫한 처지의 승천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무한대에 가깝게 뻗어 나가는 무수히 많은 세계선에서, 운석이 주는 가치를 깨달은 사람이 그만 있으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다만, 남쪽 화살은 다른 승천자들을 만나면 죽이려 하지 않고, 손을 잡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에 못지않게 강한 힘을 자랑하는 데다가, 어떻게 이긴다고 해도 피해가 너무 큰 나머지 도리어 다른 승천자들에게 사냥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승천자들은 그들끼리 비침략 맹약을 맺고, 연맹체를 만들어 다른 운석들을 찾기 위해 합동 작전을 펼쳤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운석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데다가, 설사 주인이 있다고 해도 연맹체를 거스를 만한 존재는 거의 없었으니까.

남쪽 화살과 같이 나타난 남자와 여인도 바로 그러한 연맹체 소속의 승천자…… 즉, ‘별’이었다.

그들은 각각 티그리스 자리(Tigris)와 해시계 자리(Solarium)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운석.

일개 필멸자를 승천자로 만들어 주는 에너지 덩어리.

별로 재탄생시켜 마지막에는 세계를 집어삼키게 하는 전능원(全能源).

남쪽 화살과 다른 별자리들은 그것을 두고 이렇게 불렀다.

‘별의 조각.’

세샤가 이를 악물었다.

‘그것을 찾아 차원을 넘어서…… 이 세계선으로 넘어온 거야.’

이 세계선에 있는 별의 조각은 지금 세샤, 자신의 옆에 있다.

바로 민채영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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