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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탐색 시작 (1/203)


1화 탐색 시작
202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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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조심하세요. 거기 식물에 닿으면 지독한 독침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렇군, 주의하지.”

보기만 해도 후끈해질 정도로 두꺼운 가죽 갑옷을 걸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크게 내디뎠다.

따가운 햇볕이 나뭇잎 틈새로 쏟아지는 어느 숲속, 산행으론 어울리지 않는 일행이 마침내 수풀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여기인가?”

행렬의 선두에서 말을 몰던 남자가 갑자기 내리쬐는 햇빛에 눈부시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 눈은 숲 한가운데 위치한, 비상식적으로 거대한 돔 형태의 구조물로 향하고 있었다. 숲속 나무로 시작해서 돔으로 향해 갈수록 주위에는 잡초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마치 자연 그 자체가 이 구조물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테치는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예, 이 던전이 왕국에서 제일 오래된 던전 중 하나입니다.”

던전.

모든 몬스터의 근원이 되는 사기와 불운한 기운들이 한계까지 응축되는 순간, 위치에 상관없이 별안간 형성되는 지하 미궁.

그 주변은 항상 부정한 에너지의 영향으로 탄생한 몬스터들이 들끓고, 최중심부에는 던전의 핵이 되는 아티팩트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던전의 크기와 깊이, 그리고 그 코어인 아티팩트의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며, 근래에 들어서는 수많은 왕국이 아티팩트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며 자국민들의 안위보다도 영토 내의 던전 관리에 정신을 쏟아붓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오는 중이다.

무리 중 유일하게 말을 타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발스톡, 짐을 풀고 병사들의 목을 축여라. 기본 재정비가 끝나는 대로 진입하겠다.”
“바로…… 말입니까?”

항상 군기가 바짝 잡혀 명령이라면 항상 반문 없이 즉각 이행하던 발스톡조차 이번만큼은 그 특유의 두꺼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곳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왕복으로 2주일이면 두 형님이 술수를 부려 놓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단 한 시간조차 지체할 여유는 없다.”

“……알겠습니다.”

대체 얼마나 잘난 놈이기에 개인 사병까지 부리는 거지?

병사들과 귀족 어르신의 대화를 기웃거리며 엿듣던 스테치는 순간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웠지만, 곧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스테치는 인근 마을 출신의 A급 탐험가였다.

타고난 신체 능력도 좋고, 미지의 지역을 앞장서서 탐험해 볼 정도의 담력도 있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자신의 재능에 자만하지 않는 신중함 또한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인근 마을을 돌며 나름대로 커리어를 쌓아 자신의 실력을 꾸준히 증명하였고, 그런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딱 봐도 ‘나 귀족이요.’하고 드러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주제에 어설픈 위장을 두른 이 일행은, 별안간 마을에 들어온 뒤로 스테치에게 던전까지의 길 안내를 부탁하고 싶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알아서 한 몫 단단히 챙겨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던전은 사람의 마음을 홀린다.

죽어 나간 생명의 수에 비례하여 발생된 기운으로 자신을 강화하고, 더욱 많은 희생양들을 유인하기 위해 스스로 달콤한 ‘미끼’를 생성한다.

스스로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는 자에게 있어 던전은 그 미끼만을 취해 일확천금을 노려 볼 수 있는 노다지였지만…… 아쉽게도 충분한 경험을 쌓은 스테치에게조차 아티팩트 획득, 즉 던전의 완전 답파는 그 난이도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물며 지금 가려는 던전은 흔하게 널린 저급과는 다르게 특A급으로 위험이 차원을 달리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전력이라면 가능하다.

귀족의 거만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가 끌고 온 이 수많은 병사들과 무장 수준이라면…… 그들은 최소한 스테치와 의뢰인이 임무를 달성하기 전까지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이다.

“어이! 움직이자!”
“아, 네!”

병사들의 외침에 스테치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는 허둥지둥 반쯤 풀어 둔 짐을 허둥지둥 다시 챙겨 일어났다.

* * *

《액티브 스킬 : 패스파인딩(lv 7).

어떤 복잡한 구조의 미로 속에서도 목표지점까지 도달하는 최단 루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스테치가 탐험가로서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발동한 스킬은 바로 ‘패스파인딩’. 이 스킬을 사용할 시 최대의 단점은, 패스파인딩으로 찾아낸 길이 안전할지 아닐지의 여부를 알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부분을 테크닉으로 커버할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A급이라 불리는 법.

《액티브 스킬 : 애니멀 인스팅트(lv 6).

발끝과 손끝의 감각을 극대화하고, 청각을 강화하여 반향정위(反響定位, echolocation)능력을 부여합니다.》

박쥐와도 같은 음파 탐지 능력, 그리고 지면과 맞닿은 신체 끝으로 전해지는 진동감지 능력에 의해 사실상 스테치는 마술사의 클레어보이언스(천리안)과도 같은 능력을 얻게 된다. 아니, 촘촘하게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할수록 오히려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위 조심하십쇼.”

선두의 스테치가 천장을 가리키자, 그의 뒤에 바짝 붙어오던 일부 병사들과 단단히 무장한 귀족 젊은이가 스테치의 손끝으로 시선을 올려 들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천장을 횃불로 비추어 보니, 아래쪽의 스테치 일행 방향으로 겨눠진 채 발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쇠 창날 촉이 바위틈새를 통해 반짝이고 있었다.
일반적이라면 쳐다볼 일도 없고, 눈치챌 수도 없는 구조의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트랩. 스테치가 말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진동에 의해…… 삐걱거리는 벽 너머 스프링 장치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던전 생성 초기에 나온 트랩이 노후한 탓에 그런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바닥의 발판과 트리거가 연결되어 있으니 옆으로 살짝 돌아서 이동합시다.”

전장에서 싸워온 병사들이 던전의 트랩을 경험해 봤을 리 만무하다. 스테치의 정확한 진단과 초인적으로 증강된 감각에 감탄사를 흘린 병사들은 순순히 트랩 타일을 피해 앞으로 전진하였다.

스테치에게 있어 던전 트랩들을 피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끈적한 휘발성 액체의 희미한 향을 포착하고, 세트로 위치한 화염 방사 트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소리의 차이로 땅바닥 아래 공간이 비어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해, 바닥이 꺼지는 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

피할 수 있는 트랩은 피하고, 피할 수 없는 트랩은 와이어와 툴을 이용해 강제로 해체해 준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 스테치의 손길에 의해 차례대로 트랩들이 무력화되어 가는 광경을 본 병사들은 일말이나마 가지고 있던 불신감을 버리고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이다.

“음…… 이건 곤란하네요.”

한창 던전의 심층으로 병사 일행을 이끌고 가던 스테치가 잠시 멈춰서더니,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스테치가 멈춰선 공간은 거대한 대공동의 앞. 그의 예상대로라면 이 공동 너머에 던전의 코어 역할을 하는 아티팩트가 잠들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이 이후부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한다는 점.

홀로 돌아다니기 좋아하여 솔로잉으로 던전을 도전해 왔던 그로선 언제나 던전의 최종 장애물을 통과할 수 없었다.

바로 던전의 수호자, 던전 키퍼.

던전이 아티팩트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 두는 최종방어라인이자 괴물.

스테치 아텔리어, 그러니까 스테치의 직업은 어디까지나 탐험가이지 전사나 마법사가 아니었다. 전투를 못 하느냐고 묻느냐면, 그래도 탐험가 중에서는 상위권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항상 던전 수호자의 방해에 가로막혀 던전에 잠들어 있을 아티팩트의 모습을 상상만 해 왔던 스테치는, 답파 실패 횟수를 새로 카운트할 때마다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스테치가 귀족 젊은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그는 대공동의 한가운데를 응시한 채 팔을 크게 휘두르며 명령했다.

“방패병들은 전원, 선두에 서서 전진하라.”
“전방 방어 대형으로!”

귀족의 손짓에 응한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면으로 거대한 타워실드를 내세운 병사들이 촘촘히 스크럼을 짜올리자, 후방에는 크로스보우를 든 궁병들이 모여 배치되기 시작했다.

휘익-!

스테치는 병사들의 대형 준비 과정에 맞춰 대공동을 향해 돌멩이를 내던졌다. 순간, 육안에 보일 정도로 가시화된 사기가 폭발적인 기세로 대공동 한가운데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겁먹지 마라! 전열은 앞으로 전진!”

주춤거리는 병사들에게 소리친 남자는 발스톡이라는 이름의 남성이었다.

두꺼운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그가 검을 뽑아 들며 부하들을 다독이자,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방패와 스파이크를 앞으로 내세웠다.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 검은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와 방패를 두들김과 동시에, 대공동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형체가 연기를 두른 채 일어나기 시작했다. 실루엣의 정체를 알아본 병사들 중 하나가 탄식하듯 외쳤다.

“타라스크다!”

검은 사기의 연기가 걷히며 거대한 사자 주둥이가 드러나자, 지옥 불처럼 작렬하는 불꽃이 병사들에게로 쏟아져 왔다.

화아아악-!

던전 키퍼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퇴각만 반복해 왔던 스테치는, 자기도 모르게 그 광경을 보고 뒤로 몇 발짝 물러서고 말았다.

사자의 머리, 곰 형태의 발 여섯 개, 황소의 몸통, 거북의 껍데기를 가진 타라스크는 생긴 건 종잡을 수 없어도 일단은 드래곤이다. 어설프게 접근했다간 저 강력한 화염에 의해 흔적도 없이 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데다 이쪽은 접근하지 못하면 공격조차 할 수 없다. 화살을 쏜다 한들 저 단단한 등갑과 비늘을 상대로 먹혀들긴 할까?

어느샌가 견제용 스파이크를 거둔 병사들.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방패를 보던 그들이 기겁하자, 귀족 남성은 사열하듯 병사들의 뒤쪽을 스윽 지나친 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잘 짜인 방패벽은 우레와 폭풍을 상대로도 지지 않는다. 벽을 거두지 마라! 후열 사수는 목표의 입을 향해 조준!”
“방패 벽 전개!”

《액티브 코옵(Co-op) 스킬 : 실드 월(lv 6).

2인 이상의 인원으로 방패의 벽을 형성합니다. 시전자들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화학적 공격으로부터의 저항 능력을 부여합니다.》

병사들이 방패를 고쳐 쥐자 열로 달궈진 방패가 희미한 빛의 막을 형성하여 불길을 밀어내는 장벽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장 방패가 녹아내리는 사태는 막았지만,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 사이, 후열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허리춤에 매달린 통에 손을 뻗어 거무스름한 무언가를 뽑아 들었다. 흑묵색으로 횃불 빛에 반짝이는 그것은 살대가 금속으로 된 볼트였다.

전열이 틈을 벌어 줄 동안 차분히 볼트를 시위에 걸고, 장전자를 당긴다.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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