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믿음의 대가
(2/203)
2화 믿음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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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믿음의 대가
2021.10.03.
크로스보우의 시위에서 벗어난 볼트가 빗발처럼 날아가 타라스크의 등갑과 주둥이 근처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불에 타지 않은 금속 볼트들이 타라스크의 화염 숨결을 뚫고 들어가 목구멍 안쪽 가장 부드러운 살갗에 박혀 들어갔다.
“캬아아아악!!”
타라스크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불을 뿜던 것도 멈추고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오오…… 굉장하네.’
여러 번 던전 키퍼의 외형만 감상하다 도망쳤던 자신과 달리, 이 귀족과 병사 일행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잘 싸웠다.
스테치는 병사들이 느리지만, 희생자 하나 없이 착실하게 타라스크를 상대로 포위망을 좁혀 나가는 광경을 보며 남몰래 감탄했다.
그러는 사이 날뛰는 타라스크를 향해 빠르게 접근한 방패병 다섯이 타라스크의 옆구리에 스킬을 시전했다.
《액티브 스킬 : 실드 배쉬(lv 5).
방패를 강하게 휘둘러 적을 날려 버립니다. 물리 데미지와 낮은 확률의 ‘혼란’ 상태 이상 효과가 있습니다.》
쾅!
바위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잠시 몸이 기울어진 타라스크가 비틀거리기만 하고 끝끝내 버텨 서자, 병사들은 악을 쓰며 스킬을 재시전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타라스크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등갑으로 인해 금방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제라드 님, 마무리를!”
타라스크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뒤집히자 발스톡이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방패병들의 뒤쪽에서부터 누군가가 총알같이 튀어나와 타라스크를 향해 돌진했다.
제라드라 불린 그 귀족 남성은 그대로 전열 병사들이 치켜 올린 방패들을 발판 삼아 높이 뛰어올랐다.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을 쥔 그는, 타라스크의 드러난 뱃가죽을 향해 그 칼날을 꽂아 넣었다.
등갑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은 뱃가죽은, 허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제라드의 검으로 꿰뚫렸다.
푸욱!
순간 크게 몸을 움츠러뜨린 타라스크가, 몇 초 뒤 여섯 개의 다리를 축 늘어뜨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스테치는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입이 쩍 벌어졌다.
저런 용력을 지닌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몸이 날쌘 스테치조차 감히 저런 식의 움직임은 도저히 내보일 수 없다.
제라드가 검을 비틀어 뽑는 동안 숨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제라드가 승리를 확신한 듯한 표정으로 검을 치켜 올리자 환호성을 질렀다.
스테치도 분위기에 휩쓸려 소리쳤다.
“이겼다!!”
“이야아아!!”
대공동 안이 함성으로 크게 울렸다.
* * *
최중심부.
“……드디어 왔다! 정말로 해냈어…….”
제라드와 그 병사 일행을 이끌고 앞장서던 스테치는, 어느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던전 키퍼를 뚫고 도달한 던전의 최하층. 파티라도 구하지 않는 한 자기가 볼 수 없을 거로 생각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저게…….”
떨리는 손으로 스테치가 가리키자, 뒤따라오던 제라드도 무심코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 그들이 들어선 곳은 쭉 뻗은 직육면체 형태의 방. 그 방은 온갖 희귀 금속으로 된 주괴, 보석, 패물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스테치 일행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값비싼 금은덩이나 장신구 따위가 아니었다.
입구의 맞은편에는 지면으로부터 약 1m 정도 높이에 반지가 떠 있었다.
청록빛을 은은하게 발산하고 있는 그 반지는,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채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이것은 심장 소리인가?
반지로부터 녹색 빛이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 나올 때마다, 방 전체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사방이 보물로 쌓여 작은 둔덕들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지는 그것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발스톡과 병사들은 넋을 잃고 반지를 응시했다.
“…….”
모두 이 이질적인 광경에 얼어붙어 있을 때, 제라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 이름이 스테치라고 했던가.”
“무, 예? 네, 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을 더듬는 스테치. 하긴 누구라도 이런 장면을 보면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으리라. 제라드는 스테치를 바라보며 물었다.
“듣자 하니 자네는 A급의 유능한 탐험가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던전 클리어에 성공하지 못했다더군. 정말인가?”
이 타이밍에 그런 질문을 하다니?
스테치는 순간 아무 대꾸도 못 하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동안 혼자서 맨땅에 헤딩해 온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제라드는 그런 스테치의 반응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해하네. 파티도 없이 혼자서 던전을 들어갔으니 혼자선 해결 불가능한 부분이 있는 게 당연할 테지. 하물며 유능한 파티원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고.”
“예, 예…… 그렇습니다.”
얼떨떨해하며 스테치가 대답하자, 제라드가 말했다.
“한 번 만져 보겠나?”
“네?”
“트랩에선 문제없었을 자네가 던전 답파를 실패했다면 그건 필시 던전 키퍼 때문이겠지. 아티팩트도 이번이 처음 보는 건가?”
“예…….”
목소리가 더더욱 기어들어 간다.
“자네에게 보답으로 좋은 경험시켜 주는 셈 치지. 저 아티팩트를 먼저 만져 볼 수 있는 영광을 주겠네.”
“……제가 저걸 가지고 도망칠 거란 생각은 안 드십니까?”
스테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묻자, 제라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안 될 건 뭔가. 다만 그러면 자네만 죽겠지.”
그 말에 응하듯, 제라드의 뒤에 서 있던 발스톡과 병사들이 검과 창날을 슬며시 내보였다.
그 말에 스테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계약상 던전의 보물은 전부 스테치 본인의 차지이다. 아티팩트는 고용주의 소유.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 자신이 악의를 품고 아티팩트를 빼돌리려 들어도 저들을 따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스테치에겐 충분히 남는 장사이므로, 스테치에게 있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윽고, 스테치는 감격으로 인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누구나 감히 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라드에게 있어 이것은 필시 스테치를 믿고 한 제안일 터. 앞으로 자신이 더 큰 판에서 활동할 것을 고려하면 제라드와는 좋은 인연을 쌓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스테치는 진심 어린 목례를 한 후 반지가 있는 곳으로 제라드와 함께 나아갔다.
반지에 접근해 갈수록, 반지에서 나오는 빛이 점점 더 강해졌다.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도달하자, 스테치는 긴장으로 숨을 훅 들이켰다. 제라드는 팔짱을 낀 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그리고 뻗어지는 손.
.
.
.
“……이걸로 됐다.”
빠지지지직-!
“으아아아악!!”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제라드의 말과 동시에, 온몸이 저릿저릿 울려 퍼지는 통증에 스테치는 비명을 질렀다.
반지에서 방출된 스파크가 사방으로 퍼지며 보물방의 벽들을 강타했다.
벽돌 파편이 흩날리는 가운데, 반지를 움켜쥔 스테치의 손은 마치 타서 굳어 버린 시체의 그것처럼 새까맣게 변해 굳어가고 있었다.
반지를 통해 수십만 줄기의 전기가, 스테치의 심장과 내장을 차례로 관통하며 발끝까지 타고 내려갔다.
입안에 고였던 침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며 스테치가 바닥에 쓰러지고 경련을 일으키자, 아래를 내려다보던 제라드가 한 마디 던지듯 말했다.
“미안하네.”
“그르륵- 크르르륵-.”
말이 나오지 않는다.
스테치는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은 것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 제라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를 보는 스테치의 표정은 말이 없어도 누구나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째서? 왜?
제라드 또한 그런 스테치의 의문에 답해 주듯 말했다.
“온갖 부정적 에너지의 근원인 아티팩트가 순순히 사람 손에 넘어올 리는 없잖은가. 자네의 도움은 잊지 않겠네.”
그 말을 듣자, 스테치의 머릿속에서 주마등 같은 기억들이 떠오르며 연결되기 시작했다.
왜 제라드가 굳이 자신에게 ‘선의’를 베풀었는가.
왜 저 산더미와도 같은 보물들을 자기 한 명에게 모두 넘긴다고 했는가.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차피 처음부터 자신은 죽을 역할이었기 때문에.
부릅뜬 스테치의 눈에서 피눈물이 울컥울컥 흘렀다.
“가아아아아아아악!!!”
계속되는 격통에 스테치는 몸부림을 치다 크게 한 번 사지를 비튼 뒤, 바닥에 축 늘어졌다.
반지를 움켜쥔 손에서도 더 이상의 빛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쓰러진 스테치의 몸뚱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보일 뿐.
“…….”
제라드는 미동도 하지 않는 스테치의 옆에 선 채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새까맣게 타들어 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스테치의 끔찍한 몰골은 병사들조차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정적.
“……저주는 해제된 것 같습니다.”
발스톡이 조용히 말하자, 제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그럼.”
제라드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반지를 쥔 스테치의 손을 억지로 펴고, 반지를 들어 올렸다.
투둑.
“?”
이상한 소리에 제라드가 반지를 자세히 보자, 반지와 스테치의 손이 기다란 무언가로 연결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핏줄?”
콰드드득!!
순식간에 반지와 스테치의 손바닥으로부터 뻗어져 나온 핏줄과 살점이 서로를 잡아당겼다.
또한, 빛을 잃은 듯 보였던 반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보다 더 강렬한 빛을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스테치의 손바닥 안으로 삼켜져 들어갔다.
『고위협 감지.』
《액티브 스킬 : ?????.
??과 ??를 자동으로 회복합니다.》
《액티브 스킬 : ?? ????.
?? ??? ?의 ??으로부터 ??이 됩니다.》
곧이어 새까맣게 타들어 간 손과 몸뚱이가 원래의 피부색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제라드는 당혹감에 뒤로 물러섰고, 발스톡은 검을 뽑아 달려 나오며 스테치를 향해 크게 검격을 날렸다.
캉!
보이지 않는 장막이 검을 튕겨내어 저 멀리 어딘가로 날려 보냈다.
무기를 휘두른 팔이 충격으로 저릿거려 발스톡은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이 볼트를 장전해서 쐈지만 스테치의 몸에 닿기도 전에 부러져 나갔다.
제라드는 축 늘어진 채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스테치를 노려보며 평소의 잔잔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공생형 이였단 말인가! 빌어먹을 놈이!”
제라드는 분노에 찬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타라스크의 비늘을 일격에 꿰뚫은 그 검. 바람을 일으킬 정도의 힘을 실어 검을 휘둘러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스테치의 몸에 닿는 일 없이 전부 불똥을 튀기며 튕겨져 나갔다.
발스톡이 아픈 손을 부여잡은 채 외쳤다.
“소용없습니다! 검격이고 투사체고 아예 통하지 않습니다!”
그때, 갑자기 갑자기 바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와아악!”
“뭐, 뭐야?!”
병사들의 비명과 외침이 들려오는 찰나, 무너져 내린 천장 파편에 병사들은 끔찍하게 깔려 죽었다.
바닥 또한 순식간에 꺼져 내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드러냈다. 보물방 안팎에 서 있던 병사들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던전을 유지하는 것은 아티팩트, 즉 핵이다.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 이상 아티팩트와 던전의 연결은 끊기고, 던전은 스스로를 지탱할 힘을 잃게 된다.
떨어지는 바위 파편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스테치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제라드를 보며, 발스톡은 혀를 찬 뒤 품 안에서 스크롤을 꺼내며 제라드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제라드는 이성을 잃고 스테치에게 달려들었으나
떠오르던 스테치의 몸은 힘을 잃고 깊은 구덩이로 떨어졌고, 발스톡이 함께 떨어져 내릴 뻔한 제라드를 간신히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스크롤을 찢으며 발스톡은 시동어를 외쳤다.
“이스케이프!”
제라드는 끝내 격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스테에에에에에치!!”
그러나 깊고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던 스테치가 그 소리를 들을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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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 ‘메멘토 모템’이 스테치 아텔리어를 파트너로 인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