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7화 (7/77)

〈 7화 〉 6화 - 불시착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운명을 세치 혀로 결정짓게 된 조커들이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될 때가. 그의 생각에 통신사 중 한명인 김성일은 조선 입장에서 X맨이었지만.

“왜적들이 틀림없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은 쥐와 같아 마땅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

단 두 문장의 말이 조선의 운명을 나락으로 쳐박아 버렸다.

절대 안온다는 왜적들은 17만이나 되는 병력으로 무려 두번이나 쳐들어왔고, 쥐눈이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이미 통일하고는 중국마저 정벌하겠다는 망상을 지닌 일본 역사상 손에 꼽히는 유능하고 야심찬 영걸이었다.

마치 당나라 군대가 절대 안올거라 믿고 내부 숙청에 골몰하던 백제 의자왕 수준의 병크를 저지른 것이다.

백제 얘기가 나오니 주명은 빡친 나머지 신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김성일은 신라 최후의 왕인 경순왕 김부를 시조로 하는 의성 김씨였는데, 세도정치의 안동 김씨도 그렇고 반도국가로 완전히 틀을 굳혀버린 경주김씨 김춘추도 그렇고 왜이리 신라 왕족 출신의 족속들은 역사앞에 죄인인 것인까.

누가 사기 올린답시고 불쌍한 어린 미소년의 얼굴에 분칠하고 닥돌시킨, '반자이 어택'과 비견되는 화랑표 병맛 '반굴 어택'을 탄생시킨 나라가 아니랄까봐 존재 자체가 권위주의와 파시즘에 쩔어있는 미친 국가가 신라였다.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람 목숨이 깃털처럼 가벼운 신라였으니, 외세를 끌어들인다는 개짓거리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었겠다. 그런 새끼들이 꼭 당나라와 싸울 때는 삼한의 자주성을 부르짖더라. 신라 개새끼들.

비록 자신도 신라 왕족 출신인 경주 김씨지만 이런저런 이유에서 신라 놈들을 좋아할 수 없는 주명이었다.

"하지만 설사 정사로 갔던 황윤길이나 허성 같은 사람의 주장이 먹혔어도 임진왜란은 역사대로 갔을 거야."

왜냐면 황윤길이나 허성 마저도 일본 국력의 실체를, 20만이나 되는 대군을 해외로 투사할 수 있는 그 엄청난 저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조선이 리즈 시절이던 태종-세종 대에 대마도를 친다고 간신히 동원한 병력이 고작 2만이다. 그걸 한다고 정말 눈물겹게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런데 20만의 원정군이라니. 조선의 스케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니까 개털렸지.

일본이 침략할 거라 경고했던 통신사의 정사 황윤길마저 그 규모를 2만 ~ 3만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했고, 그건 나름 깨어있다던 조선의 다른 관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사학도로서 만약 통신사들이 일본의 국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상상을 평소 해왔었다. 1589년인 지금, 2년의 시간 동안 그래도 원래 역사보다는 준비를 철저히 했을 것 같다는 기대에서.

"일단 눈앞의 저 해적새끼들부터 어떻게 해야 하겠는걸."

그의 눈앞에 넘실대는 붉은 물결(적)을 피해야 한다는게 당면한 과제였다.

"아무리 게임이었어도 저 숫자를 상대하는 건 무리야. 피하는 게 상책일 텐데."

원래 계획은 당연히 왜구들의 본거지로 직행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별다른 항해사가 없었던 주명 일행에게는 불행하게도 조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왜구의 본거지가 자리잡고 있었고, 되는대로 항해를 해 왔던 참수리 호가 그곳에 당도하는 것은 어찌보면 정해진 수순이었다.

무능력과 무관심이 불러온, 위험한 불시착이라는 참사였다.

다행히 지금은 밤이 늦었고 어두워 시야가 제한된다.

놈들이 아직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인 지금이라도 배를 돌려 안전한 다른 항구로 가야 했지만,

"어이! 한탕 제대로 했는가?"

"그, 그렇다!"

"하하하! 환영하네! 말투로 보아 초행길로 보이는데 초심자의 행운이라도 얻었나 보군, 축하하네 하하!"

밤에도 순찰을 돌고 있던 왜구들에게 딱 걸려 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넓고 넓은 밤바다에서 어찌 그리도 쉽게 발견되었냐고 하겠지만, 야간에 배를 움직인다고 참수리 호도 불을 훤하게 키고 다녔다는 것이 문제였다.

왜구들의 순찰선 역시 불을 킨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순찰선이란 목적에 걸맞게 크기는 작아도 엄청 빠른 속도를 지닌 정찰선과, 왜구를 완전히 믿지 못하기에 한 곳에 몰아놓을 수 없어 노잡이도 충분히 배치하지 못한 참수리 호는 그 속도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아직까진 의심을 사지 않은 걸로 보이지만, 에스코트를 하듯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왜구들의 배가 이미 세척.

분명 항구에 배를 대자마자 검문이든 뭐든 하게 되면 모든게 다 끝장이었다.

저희들끼리 뭐라 쑥덕거리며 한두명씩 붉어지기 시작하는 참수리 호의 왜구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건 덤.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뭔가 수를 내어야 했다.

'썅, X됐는데 이거?'

혼자서는 충분히 도망치는 등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가능성이 꽤나 상당했지만, 사람된 자로서 다른 일행을 어떻게 버리고 간다는 말인가.

"이대로 괜찮을까요?"

겁에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괜찮을 거다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초희의 눈을 봐서라도 뭔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 그가 패하게 된다면, 그녀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이미 한번 봐 버렸기 때문에.

"괜찮을 겁니다. 저만 믿어요."

괜찮다며 그녀를 위로했던 주명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안일했다며, 스스로의 힘에 너무 도취된 나머치 피할 수 있는 위험에 일행을 처하게 했다며 자책을 이어가던 주명은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난 고구마 전개 존나 싫어하거든.'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시원시원한 해결책이 되어줄 방법이 생각나 버렸다.

아직까지는 항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황. 그리고 자신들을 발견한 것은 오로지 주변의 배 세척이 전부다.

보름달이 떴다고는 하지만 불빛 없이 야간 항해하는 것은 불가능. 주변에 불빛이라곤 저 세척의 해적선 외에는 없는 상황이니 바다 위의 적은 저들이 전부.

해적들의 항구에선 거리 문제로 이쪽의 상황을 모를 것이니, 저것들만 모두 '암살'하면 아직까지는 왜구의 본거지에서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목격자가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죽여 버려도 다 암살이지.'

어떻게 다 죽여버리냐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콘솔의 권능에 힘입어 코끼리 쌈싸먹는 무지막지한 괴력과, 칼이나 화살을 제대로 직격당하지 않는 이상 스치는 걸론 아무런 피해가 없는 미친 맷집을 지닌 자신이니까.

시간이 될 때 실험을 해 보았었다. 자신의 맷집이 어느 정도인지를.

맷집이 충분히 강한데도 몸을 사린다면 극도의 낭비였으며, 반대로 맷집이 생각보다 별로인데도 나댄다면 극도의 만용이었으니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시험삼에 칼로 살짝 팔뚝을 베었는데도 마치 단단한 나무를 써는 듯한 느낌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고, 용기를 내어 조금 더 힘을 주었는데도 종이 모서리에 살짝 베인 정도의 미미한 상처밖에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정도면 압도적인 숫자의 적에게 포위되어 무수히 푹찍 당하는 다구리가 아니라면 크게 목숨을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일행이었다. 자신이 세척의 해적선을 '암살'하려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일단 그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안전하게 무기고에 들어가 있으세요.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자신의 이상한 지시에도 굳은 믿음으로 아무런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따라주는 일행이 고마웠다.

"무사히, 다치지 말고 돌아오세요."

"형, 우린 걱정하지 마요. 어떻게든 해 볼게요."

오히려 뭔가 위험한 일을 벌일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안 모양인지 걱정의 말을 건넨 초희와 옥현의 말에 주명은 울컥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상황을 짐작한 듯 정여수 어르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응원해 주었다.

굳은 표정으로 가장 밀폐된, 가장 외부와 차단된 곳인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에 다른 3명의 일행을 들어가게 한 뒤 주명은 자신 외에는 풀 수 없도록 쇠사슬로 감아 놓았다.

혹여 문 자체를 부술 수 있기에 온갖 무거운 물건들을 쌓아 두어 혹시라도 인질로 잡힐 가능성을 차단했다.

일행의 안전을 확보했지만 거리를 두고 항해하는 세척의 해적선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지만,

'Player_walk_on_water'

[물 위를 30분 동안 지상처럼 걸을 수 있게 됩니다.(CP 1 소모)]

[남은 CP : 5/10]

걸으면 되었다.

세 척의 배에 타 있는 족히 백에 가까운 적들을 상대하러 가는 길이라 주명의 심장은 터질듯이 뛰었고 긴장감에 입이 바싹 말라왔지만, 주명은 의외로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했고 외려 이 긴장감을 즐기는 것 같았다.

정여수 어르신이 장인에서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은 것처럼, 주명의 천직은 애초에 전사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물론 확실한 자신감에 기반한 것이었다.

'Player_hard_defense'

[플레이어의 방어력이 30분 동안 100% 증가합니다.(CP 1 소모)]

'Player_resistance_to_damage.'

[플레이어의 피해에 대한 저항력이 30분 동안 100% 증가합니다.(CP 1 소모)]

[남은 CP : 3/10]

주명의 몸 주변에 달밤에도 은은한 빛을 내뿜는 투명한 막이 덧씌워진 것이다. 그것도 두겹이다!

안 그래도 엄청난 맷집을 지닌 그였는데, 콘솔의 밸런스 따윈 무시한 무시무시한 버프가 더해지자 과연 냉병기로 그를 어찌해야 하는 상대방측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처음 올라탄 해적선에서 주명은 전투경험이 부족한 관계로 어리바리하게 움직이다 둘러싸이게 되었는데, 그래서 저도 모르게 뒤에서 칼로 등을 베는 왜구의 공격을 받아 버렸는데,

잡철로 만든 것이라지만 그래도  철판을 댄 갑옷을 쪼갤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으나, 그 참격의 결과는 검도에 나름 조예가 있어 보이는 왜구 검객이 기대했던 것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크윽."

"마, 말도 안돼!"

그저 살가죽만 살짝 베이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일반적인 냉병기와 일반적인 수준의 공격으로는 힘 36의 코끼리 맺집과 방어력 +100%, 피해저항 +100% 버프로 떡칠한 그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만 증명한 꼴이었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자신감을 얻은 주명이 무차별 학살을 시작했으니까.

일전에는 최대한 조심해 가며 투척으로 짤짤이를 하는 식이었다면, 이제 스스로의 방어력에 대한 확신이 서자 근접병기를 들고 인파이터마냥 파고들어 무기를 되는대로 휘둘러 댔다.

문제는 그 되는대로 휘두른다는 공격이 주명의 엄청난 힘 수치와 맞물려 거의 자연재해 수준의 참변을 왜구들에게 겪게 했다는 것이다.

"끄아악!"

비명소리가 사방에 퍼졌지만,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속에 주명의 비명은 섞여 있지 않고 오로지 왜구들의 비명만이 차가운 밤바다 위에 울리다 가라앉을 뿐이었다.

"너, 내 수급이 돼라!"

"크어억!"

"너, 내 경험치가 돼라!"

"도, 도망쳐! 꾸엑!"

지난 번의 첫 전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전투. 주명은 점점 전투를 이어갈 수록 피에 대한 거부감이 옅어지고 실력이 느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신나서 자신감 있게 들이댔지만 결국 그도 사람이었다.

"크윽... 이번 건 좀 위험했어. 하필 목 부근이라니. 내게 버프가 없었다면 백퍼 죽었을 거야."

근접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주명이니 아무런 피해 없이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상대는 단병접전에 익숙하고 무수한 실전을 거친 흉악한 왜구들이니.

"그냥 하던대로 해야겠다."

피해가 누적되고 상처가 쌓여감에 따라 다시 원거리 전투 방식으로 회귀하였긴 했지만 어쨌든 적을 학살한다는 압도적인 우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세 척의 해적선과 거기 타고있던 60여 명의 왜구들이 초토화 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채 한시간도 되지 않았다.

적을 원거리 투척(왜구들에겐 마치 공성병기의 그것처럼 느껴졌을)으로 정리하려 했기에 그정도 시간이 걸렸지 칼로 능숙하게 쓸어버릴 수 있었으면 반의 반도 걸리지 않았을 터였다.

'근접 전투를 익히긴 해야 할텐데...'

그랬다면 필을 받아 인파이터로 파고들어 잠깐 무쌍을 찍어 보았던 초반의 그 짜릿한 경험을 다시 할 수있을 것만 같아 기대되었다.

마치 자신 안에 내재된 전사의 핏빛 본능이 깨어나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느 것 같은 성취감과 해방감을 느꼈던 그 순간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

"오, 오니야. 씨발, 저, 저자는 오니가 틀림없어!"

주명이 활약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참수리 호의 선원이자 전직 왜구들은 부르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경험치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도 섞여있긴 했지만 해적들을 파리 때려잡듯 쳐죽이는 주명의 신위는 마치 전설의 도깨비(오니)가 현세에 강림한 것 같았다.

저 미친 괴력의 오니는 심지어 바다 위를 땅처럼 걷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어디 일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던가.

개중 몇몇은 그 광경에 놀라 오줌까지 지릴 정도였다.

두목과 동료를 주명에게 잃고, 또 주명에게 구타를 당하며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지금까지야 좁쌀만한 반심만 품어도 귀신같이 알고 무자비한 폭력을 퍼붓는 주명의 행동 덕분에 그런 불만이 눌려 있었지만, 운 좋게도 왜구들의 본거지에 배가 오게되는 행운이 찾아온 덕분이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제 들고 일어나자! 형제들이 주변에 많으니 저 괴물같은 놈도 충분히 고기밥으로 만들 수 있어."

라고 주장했던 왜구들도 있었고, 가장 고된 노잡이일을 맡았기에 불만이 가득 쌓일 수밖에 없었던 왜구들을 중심으로 점점 그 수를 불려가고 있었다.

주명이 조금이라도 수세에 몰리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들고 일어나 지금까지의 설움을 복수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다들 내심 기대했다.

'복수다!'

하지만, 그 기대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며 허탈함을 넘어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만약, 만약에 진짜 행동에 나섰더라면? 들고 일어났더라면?

꿀꺽

"꾸어어억!"

창에 꿰여 저 먼 바다로 날아가고 있는 왜구들과 같은 운명이 그들을 기다렸을 것이었다.

가장 먼저 선상반란을 주장했던 젊은 왜구 히로시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가장 구석에 짱박혀 있었다. 어차피 노를 저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러고 있어도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마치 관심법이라도 지닌 듯 불만을 지닌 동료를 정확히 찾아내 후드려 패는 저 무서운 도깨비(오니)의 신묘한 능력을 생각하면, 실제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었다.

'X됐다.'

참수리 호의 왜구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주명에 대한 공포와 경외감이 더욱 깊게 뿌리박히는 순간이었다.

***

[이름 : 김주명]

[레벨 : 4(950/4,000)

[능력 : 힘 36, 민첩 23, 지능 22]

[기술 : 투척(Lv3), 피아식별(Lv201)]

"훌륭하네."

세 척의 해적선 위의 왜구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모두 침몰시킨 결과 무려 2번이나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전선(해적선)을 침몰시킨 것도 경험치로 크게 쳐준 것이 주효했다.

놈들이 타던 해적선은 정찰선에 불과했기에 왜구들이 지녔던 무기 외에는 건질 게 없었고, 배 차제의 스펙은 오히려 참수리호보다 속도 뺴곤 후달렸다는 이유로 주명은 바닥에 구멍을 내어 해적선 세척을 모두 침몰시켜 버렸다.

[기술 : 투척(Lv3)]

[원거리에서 적을 향해 투사체를 던져 피해를 입히는 기술입니다.]

[투척 시 피해량과 정확도가 1% * 스킬레벨 만큼 증가합니다.]

"투척 스킬이 레벨업을 한 건 좋은데, 어디서 근접전 관련한 스킬을 얻을 수 없을까?"

"갬블링으로 대박 한번?!"

계속 꽝이 나왔던 갬블링을 통한 스킬북 획득에 더 미련을 가지기엔, 그로인해 전의 그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던 것 같아 아직까진 거부감이 들었다.

"...은 무슨. 그렇게 삽질하고도 그딴 안일한 생각을 하다니!"

상황이 종료된 후 일행과 해후한 주명은,

무사히 돌아온 자신을 보자 초희가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곤 주저앉은 것을 바라보며 안일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에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피칠갑을 한 자신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뛰어들어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안겼던 옥현을 보며 미안함에 눈을 감아야 했다.

분명 그 안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고, 여인과 어린 소년이 견디기엔 가혹할 정도로 무서웠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면 그 결과는 무서움 따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비참한 삶이었을 것이다.

저들 스스로 따라온다고 선택한 거지만, '니들 선택이니 어떤 결과도 니들 책임임. 오케이?' 라는 마음을 품는게 정상일까?

본인이 호구가 되는 건 달갑지 않다고 하지만, 일단 그들을 일행으로 받아들였을 때와 그들을 이끌고 항해를 했을 때 과연 난 제대로 했던 것일까?

현실감각이 부족한 나머지 저들을 대할 때 반쯤은 무슨 게임 NPC 대하듯 장난으로 생각했던 게 아닌가? 중요한 결정도 게임에서 그리했던 것처럼 대충 스킵하듯이 넘겨짚었던 것이 아닌가?

"형! 형이 정말 최고에요!"

NPC가 과연 이렇게 진심으로 선망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아니라면, 자신이 이들을 이끌고 있는 이라면 장난으로 게임하듯 '플레이'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삶처럼 진지하게 살아 갔어야지.

그래서 되도 않는 확률 따위에 일행의 목숨을 함부로 걸 수는 없었다.

가장 싸구려 판돈이라 생각했던 경험치 100포인트 마저도 그로인해 일행의 목숨이 저울질된다면 절대로 싸다고 할 수 없으니까.

차라리 경험치로 레벨업이나 했다면, 아니 애초에 갬블링 따위 할 시간에 항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야 운 좋게 잘 해결되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었다.

"일단 쓰시마 섬에 도착하면 생각해 보자."

매우 고분고분 해진 왜인들은 전과는 달리 매우 협조적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주명은 참수리 호의 경로를 대마도의 정식 항구가 있는 곳으로 틀게 했고 곧 입항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우와! 배가 엄청 많아요!"

비록 어젯밤에 왜구들의 본거지를 본 적이 있는 주명이었지만 그건 야간이었기에, 또한 전투상황이었기에 제대로 풍경을 감상할 처지는 아니었다. 옥현은 선실에 있느라 그마저도 못 보기도 했고.

하지만 짠내와 비린내가 섞인 바다향기 너머로, 수백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의 모습.

끼룩거리는 갈매기 무리 아래로, 산 중턱에 허연 구름을 허리에 두른 영주성의 천수각이 이곳의 지배자라는 것을 사방에 과시하듯 우뚝하니 서 있었다. 그 아래로 큰 항구에서는 마치 개미들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와!"

과거 조선과의 교역으로 영화를 누렸던 적이 있는 대마도의 항구답게 그 번화함은 옥현이 살아왔던 한적한 어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뭐야? 별거 없네.'

뉴욕에도 가본적 있는 글로벌한 남자 주명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지만.

"..."

초희는 남편을 죽이고 자신을 범한 원수들의 소굴이라는 생각과, 그럼에도 항구의 풍경이 썩 나쁘지는 않고 아름답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동시에 들었는지 복잡한 표정으로 항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손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꽉 쥐어가며 눈을 질끈 감는 모습에 주명과 정여수 어르신은 혀를 차며 안타까워 했다. 왜놈에게 당했던 지난날의 끔찍한 경험을 그녀가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아서.

착잡한 기분에 참수리 호의 왜구들 기강도 잡을 겸 왜놈들나 때릴까 고민하던 주명의 눈에 어린 소년이 여인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들어왔다.

"에그머니나!"

충혈된 눈으로 슬프게 너머를 응시하던 그녀는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얼굴이 빨개졌다.

"남여가 유별한 법입니다! 대체 왜 이런..."

"헤헤, 누나. 전 아직 어리잖아요. 그러니 괜찮아요 히히."

"그래도!"

떼어 내려고 했는데도 끈덕지게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옥현에게 화가 난 듯, 점점 초희의 눈이 가늘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려 했지만,

"...엄마 생각이 나서요. 엄마도 바닷가를 좋아했는데..."

이어지는 옥현의 말에 초희는 말없이 옥현을 안고서는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런 그녀의 품에 옥현은 고개를 파묻고는 그녀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저녀석, 저번에 해적 두목한테 말하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나보다 용감해. 흠......'

뭔가, 뭔가 아름다운 광경이어야 할 터인데 주명은 왠지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것 같은 비참함을 느꼈다.

'썅, 왜 옆구리가 시린 것 같지?'

배를 대마도의 항구에 댄 뒤, 도저히 왜놈들과 일행을 같이 둘 수가 없어 주명은 참수리호에 왜인들을 남겨둔 채로 일행과 같이 하선하기로 했다.

"니들. 배 갖고 토끼면 뒤진다?"

"하, 하이! 그럴 일 없으므니다!"

"이 배와 운메이(운명)를 같이 하겠스므니다!"

다만 왜구들을 믿을 수 없었기에 단단히 겁을 준 것은 물론, 단시일 내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돗대를 아예 배에서 뽑아 뉘어 버렸다. 엄청난 괴력을 다시 눈앞에서 보여 줬으니 충격요법을 통해 딴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돗대를 뽑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꽤나 수리비가 깨질 게 분명한 뻘짓이었겠지만, 주명의 엄청난 괴력 덕분에 원래 박혀 있던 구멍에 다시 꼳아 넣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 주저함이 없었다.

뭐 이미 해상에서 뛰어 다니고, 일백의 해적을 홀로 쳐죽인 그 도깨비(오니)같은 무위의 주명에게 완전히 두려움을 품고 있는 왜구들이었기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만.

배를 갖고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냥 몸만 갖고 튈 수도 있겠지만, 이곳이 정규군이 다수 머무르는 대마도라는 것이 왜구들에겐 걸림돌이었다.

아무리 왜구의 준동을 조정이, 대마도주가 은근히 방조한다 하더라도 범죄자는 범죄자. 혹시라도 왜구라는 게 발각되면 끔찍한 운명을 맞을 게 분명했다.

확률 자체는 그리 크지 않겠지만 목숨이 걸려있다는 점에서 1%도 100%로 다가올 테니까.

그리고

'저렇게 강한 사람이 우리 대장이라면...?!'

강함을 숭상하는 왜인들이라 그런지, 저런 강한 자를 대장으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차고 굳이 배을 버리고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점점 참수리호 내에 퍼져가고 있어서인지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온갖 사람들이 모여드는 무역항이다보니 검문 자체는 까다롭지 않았다. 그저 어디서 왔는지만 물어본 정도.

"음. 조선이라. 때마침 조선에서 온 통신사도 영주님 성에 잠시 머무르고 있다는데, 혹시 조정의 수행원인가? 뭐 아닐 것 같네만."

하지만 항구를 관리하는 왜인 관리의 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은 건조한 질문에서 나온 세글자에 주명은 눈을 빛냈다.

임진왜란의 분기점, 역사의 변곡점에 가까이 온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