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15화 (15/77)

〈 15화 〉 14화 - 결집(結集)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주명의 지시대로 대원들을 소지하려 달려가던 히로시는 바로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그 일을 생각하니 전력으로 달리느라 안그래도 세차게 뛰던 가슴이 더욱 격동하는 것 같았다.

***

하루 전 주명 일행이 머물고 있는 별장 겸 연무장 앞에 별 시덥잖은 무리들이 와서 시비를 걸었었다.

"오, 저새끼가 그 유명한 병신할배인가? 그 허접한 다나카의 패거리에서조차 저나이 쳐먹도록 변변찮은 자리하나 얻지못해 유명한."

"맞아, 해적이라는 놈이 피를 보는 걸 무서워 한다지? 나같으면 쪽팔려서 당장 칼을 물고 뒤지겠다. 아? 칼을 물고 자살하는 건 피를 무서워 해서 또 어렵겠네 크크크."

우연이 참으로 재수업게 걸친 것인지, 하필이면 질 나쁘기로 유명한 세이죠 패거리가 이 한적한 별장을 지나갔다. 그것도 그들과 악연이 있는 야마모토가 경비를 서던 중에.

히로시는 야마모토와 저 세이죠 패거리들 사이의 악연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원래 야마모토 키요시(山本清)가 그의 본명이며, 야마모토(山本 : やまもと)란건 그의 성이었다.

성이 있다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전대 대마도주였던 요시시게의 이복동생 소 마사모리(宗将盛) 휘하의 하급무사(아시가루)였다.

하지만 에이로쿠(永禄) 2년(1559년)에 소 마사모리가 일으킨 모반이 진압되자 낭인의 삶으로 굴러떨어졌고, 삶이란 고되고 힘겨운 진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해야 했다.

그래도 그 사이 참한 시골 처자를 만나 가정을 일구었던 나날은 몹시도 없이 살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그는 키요시(清)란 이름을 스스로 버렸다.

하필이면 구름한점 없이 너무나도 푸르른(清) 하늘 아래에서 가족들을 묻어야 했으니까. 그때부터 그냥 야마모토일 뿐이었다.

그리고 야마모토가 가족들을 묻어야 했던 이유, 피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바로 세이죠 때문이었다. 야마모토가 무사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된 놈은 무슨 억하심정이 들었는지 패거리를 끌고 가 이유없이 잔인한 선택을 강요했다.

"자식과 아내 둘 중 하나만 살 수있다 크크크. 한 쪽을 네 스스로 찔러 죽여야 다른 쪽이 사는거지. 어때? 무사의 명예를 두고 고민할 만한 일인가? 크하하!"

미치광이가 준 선택지는 모두 오답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비극을 물고올.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뒤로 하고 어린 아들의 목을 베었다. 아들의 뜨거운 피가 그의 얼굴에 닿았을때 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차게 식어버린 아들을 붙들고 오열하던 아내는 야마모토가 들고 있던 칼에 뛰어들어 목을 그었고 그날 가족은 모두 죽어 버렸다.

"무사도란 게 원래 죽이는 거에서 나온 거라며? 이거 죽여주는데! 아주 환장하게 끝내주는 무사도야 크크크."

무사였었던 과거의 삶을 기억하며 보관해 두었으나..가족들을 베어버린 그 검을 가족들과 함께 묻고서, 야마모토는 이 저주받은 대지에 더이상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아 바다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아들이 흘린 피에서 느껴진 따스한 온기기 떠올라 다시는 피를 보기가 두려웠고, 그저 노잡이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흘러들어간 곳이 다나카 해적단이었다.

노잡이로만 살아왔으니 직접적인 죄가 있을리 만무. 그래서 노년의 왜구임에도 주명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

목숨을 살려주고, 평생 쳐다도 보지 못할 진수성찬을 맛보게 해 주고, 비천한 해적 무리들에게 명예로운 연무장을 쓰게 해 주었던 주명에게 야마모토는 진심으로 감복해 있었다.

'대장께 누가 될 수는 없다.'

대장(주명)의 의중은 이곳에서 조용히 수련을 하는 것.

"문제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어기면 알지?"

또한 그에게서 받은 명령도 있으니 절대로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었다.

주명이 이미 세이죠 패거리와 엮여서 싸움까지 벌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야마모토로서는 자신 때문에 질나쁘기로 유명한 그 무리와 대장이 엮이게 만들 수는 없었다.

여기서 칼을 뽑으면 저 둘을 죽여 묻어버리지 않는 이상 일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피를 볼 수 없게된 한심한 자신은 누군가를 죽이는 선택지가 불가능하다.

죽일 수 없다면 결국 제압뿐인데, 저놈들은 보복에 철저하리만큼 집착하는 집요한 자들이라 분명 이곳으로 우르르 몰려올 것이다.

"크크크 병신 할배새끼."

그렇기에 피가 치솟는 모욕에도 참았다. 한때 아시가루(하급무사)였기에 저런 허접한 불량배들쯤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음에도.

"크윽..."

이어지는 구타에도 참았다. 갖은 욕설로 자신을 조롱하며 온 몸이 멍이 들때까지 주먹질을 해댔음에도.

마치 그날의 세이죠처럼 광기어린 눈빛을 한 놈들은 정말 노인을 때려죽이기라도 할 작정인 것 같았다. 무기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손속에 아무런 거리낌도 주저함도 없었다.

비록 가족을 지키지도, 복수도 하지 못한 무능력자에 비겁자지만 참을성 하나 만큼은 뛰어나다 자부했던 야마모토.

'자식을 제손으로 벤 죄는, 설사 맞아서 죽더라도 속죄할 수 없는 법이지. 지옥이 곧 보이겠구나.'

그마저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력에 점점 의식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저승사자가 곧 찾아오겠지...'

하지만 쉼없이 이어지던 구타가 일순 멈춰버리더니, 곧이어 들리는 목소리에 그의 의식이 다시 또렷해졌다.

야마모토 말대로 곧 '저승사자'가 오긴 왔다. 야마모토 말고 불량배 두놈에게 볼일이 있는.

"괜찮나?"

그 목소리의 주인은 주명이었다.

주명의 손에는 야마모토를 구타하던 세이죠 패거리 중 한명의 목이 붙들려 있었다.

"하, 이 섬나라 새끼들은 자제력은 저 바닷물에 던져버렸나 싶을 정도로 단체로 발정난 것처럼 굴더니, 이젠 예의도 바닷물에 쳐박아 두었냐? 노인공경 몰라 이 새끼들아?"

주명 일행이 묵고 있는 이 별장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적당한 높이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렇다는 것은 바다가 지척이라는 뜻이었다.

"끄아아아!"

한놈을 그대로 바다에 던져 버리고 다른 놈은 냅다 발로 스파르탄 킥을 날려 저 멀리 날려버렸다. 본래 두번의 비명이 들려야 했지만, 킥을 맞은 놈은 너무나도 강렬한 충격에 목소리도 낼 수 없어서 그랬던 것.

"용케 뒤지지는 않았네."

바닷물에 던져지고 코끼리 앞발에 날아가고도 사람이 어찌 목숨을 부지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은 걸 보니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을 듯 했다.

"흠. 너도 지은 죄가 있으니, 아 뭐 죄는 없었긴 했지만 그 배에 왜구로 타 있었다는 게 죄지. 그러니 앞으로도 그냥 평대한다? 오케이?"

"물론입니다 다이쇼!"

괜히 예의타령해 놓고 노인에게 반말을 까는 게 민망했던지 야마모토에게 이미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졌다. 그것 역시 주명에겐 민망할 것.

"대체 왜 당하고만 있었던 거야?"

"저놈들은 세이죠란 질 나쁜 자의 패거리입니다. 다이쇼께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굳이 일을 키우기 싫었습니다."

"..."

아니 무슨 저런 답답한 이유로 그리도 쳐맞아도 참았단 말인가.

마음속에서 고구마가 몇개씩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자신이 조용히 지내고 싶은 건 맞지만 왜 그렇게까지 한건데란 물음을 짜증을 반쯤은 섞어 말하려던 주명은,

연무장 대문 안쪽의 공터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도열하는 나머지 19인의 왜구들을 보며,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화가 나 시뻘개져 있고 한명도 예외없이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며, 하나같이 무기를 꽉 쥐고 있었던 건지 손에 멍이 들었다는 것을 보자 왜 그런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구나. 그걸 저들은 명령으로 받아들인 거고.'

동료가, 그것도 가장 연장자인 야마모토란 노인이 다른 불량배 무리로부터 구타당하고 있는데 누가 가만히 있고 싶겠가. 저들을 묶어놓은 건 자신이 아무 의미없이 던진 한마디 말이었다.

어느샌가 저들은 자신의 명령을 마치 부하라도 된 것마냥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가 충심인지 공포심인지 간에. 괜히 마음이 짠하면서도 울컥해졌다.

"다들 돕고 싶었을 텐데, 야마모토도 그저 맞고만 있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다 내 명령 때문에 이런 거였군. 미안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아, 아니됩니다! 다이쇼께서 고개를 숙이시다니요!"

주명이 고개를 숙이자 야마모토와 왜구들은 기겁한 나머지 우르르 몰려와 무릎을 꿇고 말리며 야단이었다.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응시하며 주명은 복잡한 심경으로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명령으로 들어주니 뭔가 고맙다만. 특히나 난 니들을 꽤나 싫어했던 게 사실이고, 많이 때리기고 하고 니들 동료들도 많이 죽인 것 같은데 솔직히 의아하긴 하다."

"우릴 배불리 먹여 주셨잖습니까!"

한 젊은 왜구의 대답에 주명이 기가차서 되물었다.

"아니 고작 그런 걸 갖고?"

"고작 그런 게 아닙니다. 제 부모님이, 지금은 죽어버린 제 누이가 먹어보고 싶다 말한 꿈의 음식들이 한 상에 차려진 그건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 같았습니다!"

"맞습니다! 굶주림이 일상이던 저희같은 놈들이 언제 그런 천상의 음식들을 배터져라 먹어봤겠습니까?"

"죽은 다나카와 선임들과는 다르십니다! 그놈들은 항상 맛좋은 음식으로 포식하면서도 우리같은 신병들에겐 썩어가는 쌀죽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

밥에 진심인 대식의 민족 한국인 못지않게, 저들도 먹는 것에는 진심이었던 것인가.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누이가 먹고싶었던 꿈의 음식이란 대목에서, 아 얘네들도 순탄한 삶을 살아온 건 절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탐욕과 광기에 사로잡혀 해적행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삶에 치여 내몰린 애들이구나 하는 생각 역시.

진짜 끔찍한 죄를 이미 저지른 놈들은 이미 모조리 자신의 손에 경험치로 화했고, 그저 왜구의 무리에 속해있었다는 저들의 죄를 가지고, 자신은 평생 녀석들을 죄인으로 멸시하고 미워할 수 있는가?

그냥 이대로 노잡이 떨거지 겸 노예로 생각없이 방치하는 게 옳은가? 저들도 삶에 내몰렸을 뿐인 민초에 불과한데, 저들도 사람인데.

주며은 자신에게 배불리 먹여줘서 다이쇼라 생각했다고 답한 그 젊은 왜구를 불러 세우더니 말했다.

"이름이 뭐지?"

"히, 히로시입니다!"

"죽은 누이가 뭘 먹고싶어 했는지 말해 줄래?"

주명이 자신을 부르자 무척이나 긴장한 표정이었던 히로시는 누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이린지(梅林寺, 매림사)에서 나눠준 걸 평생 딱 한번 먹어봤던 나미꼬 누나는, 누나는 당고(団子: 간장과 팥을 올린 떡)를 무척이나 먹고 싶어했습니다. "

"누나는 왜 죽었는지 물어봐도 되나? 굳이 말하주기 싫으면 그냥 안 말해줘도 돼."

"...사무라이(무사)에게 범해지고 목을 메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누이의 죽음 얘기가 나오자 히로시의 눈에선 닭똥깥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하, 참으로 사람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 곳이구나 섬나라 해적국은.'

온갖 음란한 성인식으로도 유명한 성진국 클라스가 어디 안간다. 문화란 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니 씨발 사무라이 새끼들이 가장 성(性)스럽겠지.

그래서 히로시란 젊은 왜구가 약탈에 가담하지 못한 거였나 하는 생각에 주명의 마음 한켠에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왜구 20인에 대한 거리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냥 내가 다이쇼진 다이소인지 할께."

"...!"

"대신 오늘처럼 쳐맞고 다니지 말고. 그런 의미에서, 음...그래, 잠깐만 수련이나 하고 있어라!"

"하, 하이!"

주명은 갑자기 뜬금없이 야마모토만을 데리고 도심을 향해 뛰어갔다.

몇 시간 후, 명령대로 착실하게 수련을 하다 쇠가 절그럭 거리는 소리에 뛰어나와본 왜구들의 눈에 자신들의 대장이 들어왔다.

수십벌의 갑주와 무기가 산더미처럼 실려 있는 수레가 그의 뒷편에 세워져 있었고, 그 수레에 실린 물건들의 무게가 만들어낸 무척이나 깊이 패여있는 수레자국은 항구의 도심지역으로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수레를 끄느라 꽤나 힘들었는지 땀으로 범벅이된 주명의 뒤로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있는 야마모토의 모습이 보였다.

야마모토 역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다, 다이쇼..흑'

야마모토를 쳐다보던 히로시는 얼굴이 빨개지며 울컥했는데, 그 이유는 짐 안에 달콤한 내음을 솔솔 풍기는 당고(団子)가 가득 담겨져 있다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

주명의 지시대로 집결한 해병대(海兵隊) 대원(隊員)들은 관리가 무척이나 잘 되었는지 기름을 먹여 번들거리는 갑주를 정씨 어르신과 옥현의 도움으로 신속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전직 왜구들을 부하로 받아들이기로 한 주명은 그들에게 전직 대한민국 해군병장이었던 경험을 살려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름하여 해병대(海兵隊)!

뭐, 스스로의 군기뽕에 가득차 해병대부심을 부리는 한국의 해병대가 수병 출신인 그로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름은 심플하니 멋지지 않은가.

간혹 착용법을 몰라 머뭇거리는 대원들도 있었지만 무기와 갑옷의 스페셜리스트인 정여수와, 왜어에 서투른 그를 보조하는 통역사 옥현의 도움으로 그 머뭇거림도 잠시뿐이었다.

"이, 이런걸 우리가 입어도 되는 겁니까?"

아무리 봐도 아시가루는 커녕 진짜 사무라이라도 쉬이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질 좋은 갑옷.

남편의 갑옷을 구해주기 위해 아내가 상인에게 하룻밤 시중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갑옷이란 것이 얼마나 비싼 물건이던가.

그런데 그 비싼 물건 중에서도 상등품의 갑옷, 거의 전신을 방호할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을 착용하자니 과연 이걸 사용해도 되는 건지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조용! 대장께서 목숨을 챙기라 내려주신 물건. 이정도 갑옷을 입고도 뒈지고 놈들은 없겠지!?"

"물론이죠 야마모토 어르신!"

"이정도면 전쟁터에 나가도 안 죽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맞고 다니지 말라고 주명이 해병대원들에게 준 것은 아시가루들이 입는 오카시구소쿠(御貸具足, 어대구족)도 아니고 무려 토오세이구소쿠(当世具足, 당세구족)!

사무라이 중에서도 재력이 되는 자들이나 갖춰 입을 법한 당시 갑(甲)옷중의 갑(甲)인 물건이었다.

대체 그 재원을 어디서 마련했냐고 주명에게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어, 음...겜블링은 다시 않하기로 했는데. 도박이란 게 뭐 그렇더라고."

운이 좋게도 3가지가 동시에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돈은 겜블링으로 어찌 복권에 당첨되었고, 상인은 때마침 전국구 명성을 날리는 거상이 쓰시마에 재고를 잔뜩 지니고 방문했던 차였으며, 단원들의 체구가 거의 대동소이해 그 재고로도 충분히 치수를 맞출 수 있었던 것.

어린아이처럼 제 손에 쥐어진 무구를 보며 좋아하는 대원들을 보며 야마모토는 격세지감과 함께, 마치 수십년 전의 무사였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마음 한켠이 쓰리면서도 간지러웠다.

그때는 저런 갑옷을 입은 이들과 부대껴 살아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할아버님이, 지금 입고 계신 무구가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세요."

"최고라 전해 드리거라."

씨익

소년의 웃음에 이미 뜻이 전해졌는지 정씨 성을 가졌다는 조선인 노인이 굳이 조선말로 통역을 해주지 않아도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미소를 지었다.

야마마토는 생각을 정정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수십년 전의 무사였던 그날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되었다. 지금이 훨씬 좋았다.

일전의 주군 마사모리(将盛)의 아시가루였던 시절과 주명의 해병대원인 지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주명을 모욕하는 일이었다.

어제 함께 나누어 먹었던 당고의 단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야마모토는, 그런 자애로운 인망과 오니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엄청난 무위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주군은 주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께서 양 어깨 뒷부분의 연결부위가 기본적으로 조금 불안하니 주의하라고 전해달라 하시네요."

거기에 정여수란 이름의 이 엄청난 실력자는 무어란 말인가. 대장장이라고 하기엔 쇠를 다루고 망치질을 하는 것을 직접 본적도 없고해서 애매하지만, 무기와 갑옷을 다루는 데는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원래 중급 무관이었고, 무구를 손보는 기술 자체는 역모로 인해 노비생활을 한 몇달 동안에 배운 거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이야말로 그 재능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천재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심지어 나중에 들어보니 대장장이 기술도 다 배웠단다. 단 몇주만에 말이다.

'저자가 손을 본 무구라면 보나마나 최고의 상태겠지.'

그런 천재에 대한 경외감에 야마모토는 정여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씨 어르신과 야마모토, 두 노인을 바라보는 주명의 시선은 왠지 전보다 들떠있는 것 같았다.

"역시 할배가 최고지."

예의를 따지며 세이죠 패거리 두명을 조진 그가 왜 굳이 할배란 말을 쓰며, 두 노인을 보고 즐거워 한단 말인가?

"헤헤, 역시 우리 할아버지 실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손자인 옥현이 정씨 어르신에게 조잘대는 것을 듣고도 왜 입꼬리를 올린단 말인가.

"맞아, 할배가 짱이야."

왜냐면,

끊지못한 도박(갬블링)에 손이 미끄러진 나머지, 방금 전 또다시 주사위를 굴려 얻게된 물건으로 검술 재능이고 나발이고 이젠 게임 끝이었으니까.

[이름 : 거대한 검 '조부(祖父)']

[레벨 : 1(경험치: 0/0.5)]

[효과 : '파괴불가', +100% 증가된 피해, +10% 명중률 상승, +2 모든 능력치 상승, +100% 피해저항]

[모든 검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추앙받는 검입니다.]

"어르신 이 검 어떤가요?"

"음, 뭔가 양손으로 들고 회오리처럼 적들 사이를 누비고 싶...다는 마음이 왜 드는지 모르겠네만."

장유유서가 뭔지 모르는 섬나라 오랑캐들을 문명개화가 아닌 문명교화 시켜줄 시간이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할배가 먼저다 이 섬나라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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