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22화 (22/77)

〈 22화 〉 21화 - 귀향(歸鄕)(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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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누구인교, 내 동생 개똥이 아이가!"

"아이고 성님! 성님!!"

남해에 위치한 부산진의 해안에서는 때아닌 대선단의 입항과 함께 백성들 사이의 상봉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가, 아가 흑흑. 정말 고생이 많았다. 살아있어줘서 다행이야."

"어머니, 어머님을 뵐 낯이 없어요. 전, 전 이미..."

"무신 소리!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게 다 내 아들놈이 제 각시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탓인 것을. 다 그노무 자식 때문이야."

"어머니. 흑흑."

저마다 지닌 눈물겹고 기구한 사연에 상봉이 이뤄진 해안가는 그야말로 눈물바다로 변했지만, 그래도 그 울음은 보고싶었던 가족을, 다시 못 볼것 같았던 피붙이와 다시 만나게 되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었다는 게 다행.

그 광경을 지켜보던  통신사(通信使)의 서장관(書狀官)이었던 허성(許筬)은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부지."

"아이고 내새끼, 금쪽같은 내새끼. 살아돌아왔구나."

특히나 어린 소년이 조부와 상봉하는 장면을 보게 되자, 저 어린 소년이 부모를 잃고 멀리 타향에 보내져 어떤 고초를 겪어왔는지가 떠올라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그 물기 가득한 눈에 조선의 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어, 어찌 이리도 참혹한 수준이란 말인가.'

어찌보면 일본과 바다를 두고 접하고 있는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부산진의 병졸들인데 차마 병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바닷바람에 녹이 슬어버린 창날과 썩어버린 창대, 검집과 혼연일체가 되어 뽑히지도 않을 것 같은 저 쇠몽둥이보다도 못한 환도.

갑주는 커녕 군포(軍布)조차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는지 군복조차 제대로 걸친 이가 없었다. 아예 윗통을 다 드러내고 다니는 자도 있었는데 그자의 잘못이 아니라 이게 다 보급이 부족한 탓이라는 것을 알기에 차마 그 병졸을 탓할 수도없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조선 병졸들의 눈이었다.

악귀와 같은 잔인함 짐승의 거친 사나움을 담은 왜인들의 눈빛에 비해 저건 마치,

'썩은 동태의 눈이 아니던가.'

자신들이 지키지 못한 백성들을 보며 분노의 감정이라도, 하다못해 죄책감이라도 들 줄 알았건만 그들의 눈빛에 서린 것은 그저 귀찮음이었고 배고픔이었다.

밥도 제대로 주지 않는 군역을 살면서 항시 따라붙는 배고픔과, 이런 자신과 상관없는 사역에나 동원되는 귀찮음.

이래서 정해년에 그토록 허무하게 왜구들에게 당했던 거라고 허성은 짐작했다.

저들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람이 성현이요 선비는 아닐진데 제대로 무기와 식량을 제공해 주지도 못하고 거지꼴로 방치하면서 군대의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지.

방군수포제의 폐단이 크다는 것을 들었지만 이정도인 줄은 몰랐다.

조정에서 신료들 모두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은 하고 있지만, 자신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관료들은 모든 것이 그래도 풍족한 한양에서 귀족의 화려한 삶을 살아왔던지라 그 실상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겠지.

실상을 접했다면, 이 참담한 현실을 알았다면 그저 조정에서 공론화를 시킬지 말지에 대해서도 지난한 논의나 길게 이뤄지는 그 쓸모없는 정쟁을 집어 치우고 당장이라고 개혁에 나선다고 할 터인데.

"형님, 진짜 큰 도적이라도 나타나 백성들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면 조정도 좀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어허, 균아! 그런 참람한 생각은 하지 말거라. 조선 백성들의 나라는 오로지 조선뿐이니라!"

그때는 자신의 어린 동생 허균(許筠)의 급진적이고 치기어린 말이라 치부하고 역성냈지만 오늘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조선만이 이 백성들을 통치해야 한다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허어, 내 이런 참람된 생각을 하는 게 그렇지만 너무 마음이 갑갑하구나.'

바로 몇일 전 대마도에서 있었던 일은 자신도 똑똑히 보았다.

주명이라는 이름의 장사가 홀연히 나타나 환란을 평정하는 그 영웅적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유학자로서 감정을 절제하는 데 익숙한 자신마저도 가슴이 벅차올랐으니까.

그는 영웅적인 활약으로 이룩한 위업에 대해 본인 앞으로 받게될 개인적인 보상을 포기했다.

"우리 강아지,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 이 할애비가 당과를 가져왔단다."

"와아! 맛있겠다!"

그 덕택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픈 저들의 기구한 이야기가 이리도 훈훈하게 끝마치게 된 것이 아니던가.

수천의 적을 섬멸하고 대마도주의 자리를 보전한 그 엄청난 업적에 대한 대가로 금은보화를 요구할 수 있었음에도 억류된 조선인들을 구하는 것으로 갈음했다는 그 대인의 풍모에 서얼(?)출신인것 같다는 정사 황윤길의 말을 듣고도 한명의 선비로서 존경심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영웅의 자취는 그 스스로 밝히기를 원치 않았다 해도 이 백성들의 웃음 섞인 울음소리에 명명백백히 남아 있는데, 대저 이땅의 어버이라는 조선은 어디 있단 말인가.

저 허수아비 같은 병졸들? 기방에라도 틀어박혔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현감?

이 불쌍한 백성들이 끌려가는 동안, 또 귀향하는 동안 이나라 조선은 대체 어디 있었단 말인가.

"호오, 450명이면 족히 몇 필은 나오겠는걸?"

인근의 관청에서 나왔는지 탐욕스러운 눈을 번들거리며 마치 체납된 군포라도 계산하는 저 쥐새끼같은 아전들을 보면 조선이 차라리 자리에 없는게 다행인 게 아닐까.

"형님! 소제도 알 건 다 압니다. 백성이 어디 시전의 물건입니까? 이 썩은 조정이 육의전의 그 장사치들마냥 독점하는 품목입니까? 그리고 조정이 독점할 자격이라도 있답니까?"

"오히려 장사치만도 못합니다! 저 장사치들은 적어도 제 물건들은 애지중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백성들이 물건이라면 그들에게도 다행이었을 겁니다. 물건이었다면 그래도 고통받지도 상처받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날 동생의 항변이 머릿속에 더욱 강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날도, 그리고 오늘은 더더욱 동생의 주장에 뭐라 반박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균아,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백성들을 서둘러 관아에 인계하고 본연의 임무인 통신사 수행단의 역할을 하기 위해 대마도로 복귀해야 하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허성이었다.

본인이 저 불쌍한 백성들을 다시 수탈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것 같아서.

***

한 사람의 수컷으로서 세이죠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의 인생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씨부랄, 왜 차려져 있는 밥상도 못먹는 것이야. 크아아아!"

허공에 울분을 담아 소리를 질러 보지만 오로지 유곽(遊廓) 담벼락에 부딛쳐 되돌아 오는 그 자신의 소리만 되돌아 올 뿐이었다.

오히려 저 담 너머에서 여인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신 앞에서는 대인이라고 치켜세우며 웃음을 팔았던 그년들은, 뒤돌아 서면 서지도 않는 '고자'라고

비웃으며 조롱하겠지.

본래 창녀라 함은 술, 웃음과 함께 몸을 파는 여자들을 말하는데, 주업인 몸을 파는 행위가 자신에게는 불가능하니까.

왜냐하면 그는 불능이 되어버렸으니까.

"어째서, 어째서!"

4일 전부터였다. 눈앞에 전라의 여인이 농익은 속살을 내보이며 끈적한 유혹의 눈빛을 보내와도 '서지' 않았던 지옥같은 나날이.

심지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시에 두명의 여인을 발가벗겨서 품으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그 어떤 강렬한 성적 자극에도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자신의 남성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걸 깨닫기 전까지 날린 돈이 대체 얼마던가. 주명이라는 이름의 호구새끼에게서 거둔 금전을 상당수 소비해야 했으니 입맛이 썼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우연히 지나가는 노파를 보더니 지금까지 쌓여 왔던 욕망이 해방되었는지 그곳에 피가 쏠려 바지가 뭉툭 뒤어나온 것을 본 때에.

자신이 병영에 갖혀있는 병졸도 아니고 노파를 보고 그런 충동을 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지만 그래도 그 지옥같았던 불능에서 벗어난 게 어딘가!

그래서 굳은 결의와 함께 그날 저녁 평소 눈여겨보던 기녀가 있는 유곽에 행차를 하려 했는데,

"해, 해적들이 쳐들어 왔다!"

"도망쳐야해!"

미친 해적새끼들이 난리를 일으키는 바람에 여인과 함께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그의 꿈은 산산히 부서지고 그냥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도망을 쳐야 했다.

그러나 몇일에 걸쳐 쌓인 수컷의 욕구는 전쟁에 대한 공포보다도 컸다.

난리가 생각보다 빨리 진압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유곽을 다시 찾는 것이었다.

"어머, 나으리. 제가 그리도 매력이 없었나요?"

하지만 미색이 출중한 그 기녀를 상대로 제대로 즐길 생각에, 대낮부터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유흥의 경험을 총동원해 공들여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렸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지금껏 팽팽하게 솟아있던 물건이 다시 사그라들어 버렸고, 그의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쪼그라들어 버렸다.

별 짓을 다해도 서지 않자 상심한 나머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시 시작했고, 결국 유곽의 어깨들에 의해 지금 이렇게 밖으로 쫒겨나 버린 것이다.

세이죠가 알진 못하겠지만 그건 주명이 1 포인트를 다시 소모하여 콘솔 명령어를 그에게 시전한 거였다. 놈에게 재차 3일간의 개 같은 기분을 맛보게 해 주려고.

"하, 인생 개같네. 썅!"

주명의 의도는 100% 성공했는지 세이죠는 더없이 참담하고 개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네놈이 세이죠인가?"

검게 탄 피부에 대머리를 하고 있는 침착한 인상의 거한이 나타나 세이죠에게 말을 건넸다. 거한의 얼굴에 사선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검상이 아니더라도 그의 우락부락한 몸을 보고있노라면 절로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건 세이죠같은 나름 거물급의 불량배 두목도 마찬가지였다.

"맞소. 무슨 일이신지?"

"그분께 듣던 대로 쥐새끼같이 생긴 놈이군."

"뭐? 이 씨발놈이!"

하지만 다짜고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세이죠는 새로 장만한 왜도를 뽑아 들었다.

그 무사 계집년의 배때지에 쑤셔 넣고 가져오지 않아 잃어버린 기존의 검 대신 웬 호구새끼에게 뜯어낸 돈으로 장만한 나름 명검이었다.

"아, 아니, 당신은!"

검을 뽑아 들었으면서도 세이죠는 상대가 누군지 정체를 알게 되자 식은땀을 흘렸다.

'쓰시마의 흑룡(黑龍) 히데오'

검게 변색된 피부색 탓에 검을 흑자가 붙기는 했지만 진정 중요한 단어는 바로 용이라는 것.

아무리 왜인들이 허풍을 떨거나 별거 아닌 일에도 호돌갑을 떨기를 좋아한다만 용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붙일 수 없는 무게감과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비록 자신이 나름 검의 고수로 주변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적어도 이 쓰시마에선 검술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없을 거라 당당하게 자부하고 있지만 저 히데오란 사내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저 작자가 용이라는 경칭이 붙은 이유는 놈의 뛰어난 무위도 한몫했지만 바로 그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이었다. 그 카리스마 때문에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저 대마도의 여러 군소 불량배 조직 중 하나, 사람을 잘 찾는 흥신소 역할을 하는 그저 그런 중견 조직을 이끄는 자로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저 두목의 이름을 딴 패거리로 불리는 다른 조직과 달리 쿠도(工藤)라는 조직명이 의미하는 것은, 이름이 붙은 조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조직원의 숫자는 빙산의 일각일 뿐, 그들은 그저 휘하의 진짜 조직원들을 부리기 위한 연락책들에 지나지 않았다.

쓰시마 암흑가의 삼할을 장학한 자, 용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자. 그런 자가 이끄는 조직정도 되어야 이 바닥에서는 이름이 허락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고작 삼할이 아니었다.

어제의 난리통에 해적들에게 가담한 다른 조직들이 쓸려나가나는 동안 무슨 사실이라도 알았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두려워 하는 것인지 히데오와 쿠도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탓에 세력을 온전히 보전했으니까.

개인 대 개인의 일기투에서라면 승리할 자신이 있다만 조직 대 조직의 싸움이라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칼을 빼어들었음에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야 했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고. 하지만 히데오의 입에서 나온 말에 다시 분기가 치밀어 올라야 했으니,

"대마도를 떠나라. 모든 것을 두고."

저 개소리를 하려고, 이제 암흑가를 거의 장악했으니 세이죠 자신이 이룬 것들에도 눈독을 들여 차지하려고 이곳까지 행차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개소리 지껄이지 마!"

지금까지 이 대마도에서 이룬 게 얼마인가.

말단 조직원과 기타 동원할 수 있는 잡패들까지 합치면 무력 백명을 동원할 수 있는 대세력을 구축해 기반을 닦은 곳이 이 대마도인데 어찌 이곳을 떠난단 말인가.

하지만 세이죠의 그런 반응이 같잖았던 것인지, 아니면 예상했던 그대로의 행동에 한심했던 것인지 히데오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치워라."

그리고 그가 차갑게 명령을 내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긴 창을 든 수십명의 왜인들이 세이죠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쇠뇌마저 들고온 이들도 나타나 지붕이나 담벼락에 신속하게 자리를 잡았다.

세이죠 저놈이 검술이 뛰어나다고 들었지만 이 포위망을 벗어나기란 요원한 일. 설사 벗어난다 하더라도 이 쓰시마의 암흑가 자체가 거대한 포위망에 진배없으니 죽은 목숨일 것이었다.

단 한번의 질문으로 놈에대한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으나 그걸 스스로 차버렸으니 뒈져도 원망하지는 못하겠지.

"대체 저놈같은 쥐새끼는 얼마나 개념이 없으면 자신이 물어뜯은 대상이 누구인지 짐작도 못하는가. 태어난대로 그저 시궁창에서 노닐었다면 적어도 목숨을 부지했을 것을."

하진 저 쥐새끼가 그분이 가진 거대한 힘의 한 편린이라도 알아챌 수 있었다면 저렇게 쥐새끼 짓을 하고 살지는 않아겠지.

그저 이빨이 조금 날카로운 발정난 쥐새끼.

세이죠에 대한 히데오의 평가는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평가도 이젠 기억속에서 잊혀질 것인즉, 쥐새끼가 죽어버리면 하찮은 평가마저도 내릴 필요가 없으니까.

방금 전 그분과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히데오는 차갑게 악전고투를 이어가는 세이죠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의뢰는 그냥 없던 걸로 해줘."

"예?!"

"다만 이미 준 선수금은 물론 주기로 했던 대금도 주도록 하지."

처음에는 이정도로 대단한 자일 지 몰랐다. 그냥 많이 강해 보이는, 가늠할 수 없는 하늘같은 강함을 지닌 의문의 사내란 생각에 이국적인 행색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다했다.

하지만 그 사내가 전장의 오니라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무위를 발휘해 전장을 평정한 두려운 존재였을 줄이야.

그래서 차마 의뢰를 완수하지 않았는데도 완수에 대한 대가로 받을 대금을 그냥 꿀꺽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비록 주먹이나 쓰고 다니는 천것이라고는 하지만 신의가 있다고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는 거야. 믿음이 가게 생겨서."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수북히 쌓인 금화, 당초 그가 받기로 했던 것보다 곱절은 많아 보이는 엄청난 재물을 히데오의 앞으로 밀며 주명은 부탁했다.

"의뢰에 대해 마음이 걸린다면, 초희란 이름의 조선인 여인을 돌봐 줘."

그리고 그 여인과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왜 그녀를 돌봐 달라고 하는지 히데오는 들을 수 있었다.

놀랐다.

저분께서는 고작 몇일의 인연이 만든 연민에서 나온 행동마저 이리도 거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그리고 감동했다.

하늘에 닿아 있는 힘을 지닌 저분께서는 흔하디 흔한 들꽃마저도 보호하려, 울타리가 되어주려 하시는구나.

오만하기 이를 데 없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저 귀족들과 무사들이 그저 꺾고 짓밟기만 할 이 잔혹한 시대에 저분은 정말 다른 분이구나 하고.

"얘기 들어보니 유곽의 여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보호한다지?"

그래서 자신의 하찮은 자비가 저분께 인정받았을 때 너무도 기쁜 나머지 떨리는 마음을 추스를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저 자신의 어미가 유곽의 기녀였기에, 술을 엎었다는 이유로 불량배에게 맞아 죽었던 상처가 있기에 그녀들이 행패의 대상이 되는 것을 참기 싫어 했던 별거 안니 행동이었을 뿐이었는데 이제 인정을 받으니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히데오 너로 정했어."

또다시 엄청난 재물, 정말로 금빛의 덩어리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금붙이들이 그의 품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그의 눈앞에 놓여졌다.

"새로운 의뢰를 맡겨도 되지? 초희를 돌봐줄 것과. 혹시 이곳에 당도하는 조선인들. 특히 힘없는 여인들을 돌봐줄 것. 기한은 음. 히데오 너에게 맡기기로 하지.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자신의 어미처럼 소리없이 스러져 가는 길가에 핀 꽃들, 그리고 초희란 이름의 여인처럼 그저 조선의 어느 곳에서도 필 것 같은 들꽃들을 도운다는 별거 아닌 일에 천금을 쥐어주고, 무제한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저 거대한 분의 의뢰에,

히데오는 피가 날 정도로 세차게 머리를 박으며 그러겠다고, 반드시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알게된 건 세이죠란 쥐새끼가 그분과 그분의 일행에게 큰 모욕을 주고 잠적했다는 사실.

그래서 조직원을 총 동원해 나선 것이다.

"쥐새끼가 감히 하늘을 향해 더러운 입으로 찍찍거렸으면 뒈져야지."

그분께 뭐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더러운 쥐새끼를 놈의 고향인 지옥으로 보내주는 귀향 정도론 그분의 성이 차진 않겠지만 이건 그저 첫걸음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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