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21화 (21/77)

〈 21화 〉 20화 - 귀향(歸鄕)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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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의 예상대로 결국 대마도주는 주명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사실 조선인 출신 노예들을 귀향시킴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그들의 공백으로 매우 불편하다는 그런 차원인데 반해, 대마도를 구원한 은인에게 적합한 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다이묘로서의 위신과 자리보전에 관계된 문제였다.

게다가 전례도 있지 않은가? 불과 몇달 전에 통신사 파견을 위한 일종의 선수금 성격으로 사을화동(沙乙火同)이란 변절자와 조선인 상당수를 보낸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완수금은 뭐냐고? 원 역사에서는 신사부로, 긴지로, 마고지로라는 왜구 삼인방의 수급이었다.

여러모로 고려했을 때 당연히 맨정신으로 저울질을 해 보면 보상을 해 주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김성일은 알았던 것.

"나으리, 감사합니다유. 증말 감사합니다유."

"참말로 감사합니다 나으리. 감사합니다!"

조선 팔도에서 몰려든 듯 각양각색의 사투리로 울부짖었던 백성들이 이젠 그 다양한 목소리와 말투로 통신사 일행에게 감사를 표했던 것.

"대감마님, 쇤내가. 쇤내같은 더러운 여자가 고국 땅을 밟아도 될까요? 흑."

물론 귀향을 거부하는 기구한 사연들도 있기는 했지만 노련한 관료인 김성일은 차근차근 그들을 설득해 결국 귀향을 위한 배편에 타도록 할 수 있었다.

역시 원 역사에서도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에도 동분서주하며 현지 지방관과 의병장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을 때 중재하는 등 출중한 관료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모습이 어디 안 가는 거라 주명은 생각했다.

지방관과 대립해서 때려치고 산으로 숨을 뻔한 의병장 중 하나가 바로 홍의장군 곽재우니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으로 가는 배편은 전투에서 패한 왜구들이 지니던 다수의 배가 전리품으로 대마도주의 손에 들어온 관계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길잡이는 대마도주가 붙여준 사람들로, 인솔자 겸 귀향의 실무를 맡을 관료는 200명이나 되었던 통신사 수행원 중 일부가 자원하여 역할을 하기로 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었으니 400여 명이나 되는 조선 백성들의 귀향길은 순조로워 보였다.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다는 기쁨에 연신 통신사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조선의 백성들을 보며, 황윤길은 저들이 고향에서 이 타향으로 끌려온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제라도 다시 돌아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의 진심어린 감사가 진실로 향해야 할 은인에겐 이어지지 않는 것이, 진정한 저들의 은인의 공로를 마치 가로챈 것 같아 선비로서 불편함을 느꼈다.

"자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정녕 괜찮은 것인가?"

"저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냥 조정의 은덕이라고 말씀하시어 민심을 위무해 주십시오."

"허허, 어린 나이에 고절한 무위를 지녔다는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건만 또 이런 훌륭한 품성이라니. 자네는 정말 나를 여러번 부끄럽게 만드는 구먼."

아무리 본인이 원치 않는다고 하지만, 누구나 칭찬받기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지라 받아야 마땅한 칭송을 마다하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존경스럽다는 마음도 들 정도였다.

물론 주명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미친 또라이 의심병자인 하성군(선조) 새끼에게 벌써부터 눈에 띄면 안되지.'

조선에는 6명의 '조(祖)'가 있었는데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가 그 9명의 군주였다.

그중에서 멸칭으로 쌍'좆'이라 불리는 두명의 암군이 있었으니 그 선'좆'와 인'좆'이 그들이며, 각각 지랄같은 의심병과 아들며느리조차 사약으로 죽이는 막장 인성으로 유명했으며,

'조(祖)'라는 시호가 아까운 두놈, 하성군(선조)과 능양군(인조)을 더 유명하게 한 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무능한 군주였다는 게 컸지.

공교롭게도 두놈은 할아버지(선조)와 손자(인조)의 가족관계가 있는데, 가족끼리 아주 나라를 결딴낼뻔 했지.

임진왜란은 솔직히 이순신 장군이란 걸출한 분 아니었으면 조선을 결딴냈을 게 분명했다. 후방지역 평정이라는 전략적 목적이 분명한 병자호란과는 달리 정복이라는 목적이 뚜렷한 침공전이었으니까.

정말 그 의심병자(선조)의 개지랄과 트롤짓을 다 받아주고도 28전 28승을 이뤄낸 장군님이 정말 대단한 거다.

이순신 장군이 활약할 수 있도록 전라 좌수사로 초고속 승진시켜 캐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판을 깔아주었던 자가 선조지만, 이후에 그 의심병때문에 갖은 방해와 견제를 했던 놈도 같은 인물인 선조다.

장군께서 겪어야 했던 모진 고초과 고난, 범인이라면 진작에 충성을 포기하거나 생을 포기했을 그 고통을 견디고 조선의 바다를 수호했던 성웅을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날 정도.

어쨌든 주명은 선조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는 것은 그가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을 구축한 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성을 구한'이란 타이틀을 붙여 선조에게 보고되면 당장이야 좋다고 치하할 줄은 몰라도, 상황에 변하면 그 타이틀이 '자신의 옥좌를 위협할 수 있는'으로 통역되어 분명 견제질을 할 놈이니 일단 안 띄는게 상책이다.

"대감께서는 언제 오사카로 출발하십니까?"

대마도에서 기약없이 기다리다 내년 봄이 되어서야 겨우 히데요시의 승인이 떨어져 오사카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안다. 거기서 또 몇달을 더 기다려서야 원숭이 새끼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히데요시 그 원숭이 새끼가 조선을 진짜 속국(진)으로 여겨 업신여겼던 점도 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이맘때쯤 관동지방의 대영주인 호조 가문을 22만이란 대군을 일으켜 한창 뚜드려 패고 있던 중이였다는 거였다.

전쟁중이라 만날 시간도 없거니와, 그 인도까지 정벌한다는 원대한 꿈을 품은 원숭이 답게 일본 전토를 복속한 개선장군의 지위에서 사신들을 폼나게 맞이하고 싶었겠지.

그럼에도 굳이 물어본 것은 이번 왜구들의 난을 계기로 혹시 원 역사와 달라진 점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

"왜국 인솔자를 재촉해 보아도 묵묵무답이네. 기다리라는 말뿐이지."

하지만 황윤길의 말을 들어보니 원 역사와 크게 달라진 거 없이 통신사를 대마도에 대기시킬 모양인가 싶었다.

"주제넘은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왜인들의 본거지가 있는 큰 섬(혼슈)에 가시더라도 보이는 것만을 믿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속임수에 능한 왜인들이니 정말 전쟁을 준비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실상을 전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히데요시 놈의 본거지인 오사카에 가서도 원 역사처럼 조선 통신사는 계속해서 대기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정찰이라도 잘 하라고 저 말을 그에게 건넨 것이었다.

소박함을 넘어 궁벽해 보이는 왜놈들의 생활상이 가는길에 보인다고 그들의 경제력이 최소 조선의 두배를 훌쩍 넘는다는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몇달동안 연거푸 대기만 타다보니 시간관념이라도 왜곡된 것인지, 아니면 200년 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너무나도 믿는 것인지, 놈들의 영토가 협소하여 20만은 커녕 2만을 내기도 어렵다는 말도안되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실제 통신사의 착각과 일본에 대한 무지, 히데요시의 교묘한 공작질이 맞물려 조선은 전쟁 발발 직전까지 일본에 대한 제대로된 정보를 알지 못했다.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징비록(懲毖錄)에서 지난 잘못을 질책하여 후대에 전한다고 할 정도로 졸렬한 전투력이란 과정과 참혹한 민생이란 결과를 낳았던 임진왜란이었고.

계속해서 김성일을 변호하는 것 같은데, 조선 조정도 일본의 침공에 대해 대비를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백성의 원성을 들어서면서까지 성곽을 쌓고 병력을 충원하려 노력했으니까.

물론 통신사마저 일본의 저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전쟁 위험을 역설했던 정사 황윤길 선생께서도 "전쟁 분명 일어납니다. 한 몇만 명 정도? 얼추 지난 을묘왜변 수준?"이라는 대단한 착각속에 머무셨었지.

그런 조선인들의 세계관의 한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수준에 머물렀던 국제정세와 정보의 공백이 이어지는 한 혹시 이번 역사에서는 전쟁 위협이 조정의 중론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을묘왜변 수준의 침공, 그러니까 몇 만 수준의 '왜변'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했었으니까. 17만이라는 유례없는 대군이 쳐들어와 '왜란'급의 재앙이 벌어지자 대비고 자시고 박살났지만.

"왜인들은 본래 야욕에 불타는 진짜 마음을 숨기고 겉으로는 약한 내색과 웃는 척을 하며 거짓된 행동을 하는데 매우 능한 놈들입니다."

그래서 황윤길에게 강조했다. 보여지는 왜소한 일면에 속지 말라고.

"음, 자네의 말이니 내 분명 명심하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황윤기를 바라보며 주명은 기원했다.

부디 왜인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저들의 진짜 실력에 대한 '경계심'을 지닌 이번 통신사를 통해 원 역사에서 조선이 겪어야 했던 정보의 공백이 조금은 메꿔지길.

자신 같은 민간인이 백날 떠들어 봐야 바뀔 수 없다. 조선 조정은 주명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조선의 눈과 귀가 되어줄 이는 오로지 통신사뿐. 그들이 보고 듣는 깊이와 넓이에 조선의 운명이 달렸다.

***

쿠울

라면이라도 잔뜩 퍼먹었는지 잔뜩 부어오른 얼굴, 몇걸음밖에 더 다가가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풍겨우는 시큰한 주향.

"이 여자, 미친 듯이 퍼마셨네. 어젯밤에."

아직 라면이 있는 시기가 아니니 설마 어제 주고 간 경단을 먹었다고 저렇게 얼굴이 부어오른 건가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때 무척이나 숙취가 심한 듯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끄으으..."

주명은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누가 신의없고 옹졸하며 야만스러운 왜인 아니랄까봐, 어제 자신의 호의를 날선 반응으로 답례한 저 무례한 여자가 숙취로 저리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고소해서.

하지만 그런 소소한 복수의 시간, 그러니까 나미에의 숙취로 신음하는 모습을 웃으며 구경하는 그런 시간을 오래 잡아 끌 수는 없었다.

이제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을 해야 했으니까.

그 전에 항해에 따라올 건지 물어봐야 하겠지만,

'전쟁터에도 따라오던데 그건 물어봐서 뭐해? 무사의 명예 어쩌고 하면서 약속한 검술 수업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말야.'

"이봐, 일어나."

"흐으. 좀 더 자고싶어."

몸을 부비적 거리며 평소와는 달리 계속해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이 놀랍긴 했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임진왜란이란 재앙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다.

빨리 다음 행선지로 정해둔 나가사키로 이동해야 했다.

연체동물처럼 방바닥에서 흐물대는 나미에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주명은 그녀를 깨우기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안되겠군.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해서 확 하고 올라오는 시큼한 알코올의 향을 무릅쓰고 그녀에게 다가간 주명은 몸을 기울여 그녀가 잘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튀김우동 먹으로 갈래?"

"무, 뭐? 어디로?!"

튀김우동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정도로 조건반사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올 줄 몰랐던 주명은 얼떨떨했다.

심지어 숙취에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도 튀김우동이란 말에 반응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음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그 강렬한 열망에 왠지 실망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녀를 무슨 뛰어난 실력과 용기를 지닌 여검객으로 여겨 일종의 선망과 환상을 품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에휴, 사자는 무슨.'

특히 입가에 묻은 저 침과 눈가에 번진 저 자국은 뭐란 말인가. 무슨 눈물자국도 아니고 말이다.

'저녀석, 눈이 퉁퉁 부어있는게 설마 어젯밤 궁상맞게 펑펑 울었던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눈물자국으로 의심되는 번진 자국을 유심히 관찰하려 했지만,

"씨발, 검 존나 못 휘두르네."

나미에의 얼굴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그녀의 괄괄한 목소리가 자동재생 되며 그런 생각은 눈녹듯 사라져 버렸다. 그 나미에가 그렇게 감상적일 리가 없으니까.

그런 속마음을 감춘 채 주명은 약간의 짜증을 담은 단답형의 대답으로 그녀의 물음, 튀김우동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생각하고 있던 행선지를 밝혔다.

"나가사키."

아직 핵폭탄 2방을 쳐맞기 전이라 짬뽕은 없겠지만 서역과의 개항지라는 특성상 항해술에 능한 이를 찾기가 수월한 곳이 나가사키.

그곳에서 항해사를 구하러 갈 시간이었다.

***

"초희 누나가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에요."

해병대라 부르기로 주명이 결정한 20명의 전직 왜구들과 함께 출항준비를 하고 있던 옥현은, 그의 할아버지 정씨 어르신에게 안도의 표정으로 말했다.

일행의 무구 관리인 겸 대장장이인 정여수는 지난 전투에서 손상된 무구들을 수선하던 중이었는데, 손자의 말에 그 역시 다행이라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희가 말없이 떠나고, 그녀를 찾아 나서다 나미에란 왜인 처자를 만난 날로부터 벌써 4일.

히데오란 자에게 주명이 의뢰를 맡겼다고 들었지만 그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이 마굴과도 같은 대마도에서 충분히 변고를 당하고도 남을 시간이라 그녀를 찾겠다는 기대를 반쯤은 포기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전 스승님을 만나 무당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은인의 그 큰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다시만날 그날까지 부디 보중하시길.-

그런데 오늘 아침, 그녀가 보낸 것으로 보이는 서신이 등장해서 주명 일행을 안도하게 했다. 숙취로 뻗어있던 나미에는 몰랐지만.

"근데 괜찮겠죠?"

"뭐가 말이냐?"

할아버지인 정여수가 평소 괴력난신을 멀리하는 선비였다는 것을 알기에 옥현은 무당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계속해서 말꼬리를 늘일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그, 뭐더라...음."

"무당이 되기로 했다는 거 말이냐?"

하지만 정여수는 옥현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즉시 알아채고는 오히려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덤덤한 반응만을 보이고 있으니 옥현으로서는 의아했다.

일전에 아버지가 운세라도 보려고 했는지 무당을찾았다 할아버지에게 반가의 자식으로서 어찌 괴력난신을 가까이 하냐며 회초리를 맞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 큰 어른이었던 자식마저 손자가 보는 앞인데도 회초리를 들었는데, 그때의 엄하고 무거웠던 분위기가 떠올라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 정도.

하지만 옥현의 그 의아함은 금방 해소되었는데, 정여수가 그 이유를 곧바로 말해주었기 때문.

"살아만 있으면 된게지. 양반이었든 노비로 지냈든 결국 중요한 건 내 손자인 옥현이 네가 내 옆이 이렇기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초희 그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맞아요 할아버지!"

무당이 되었다고 해서 초희를 할아버지가 탐탁치 않게 생각할까봐, 초희가 마치 친누나 같이 각별하게 느껴졌던 옥현으로서는 전전긍긍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신이나 보였다.

그런 옥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정여수는 자신이 기축년의 옥사를 겪고 집안이 역모로 몰려 풍비박산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 고루한 반상의 도리 계속 얽매여 있었을 거라고, 성리학의 완고함에만 갖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자신도 지금처럼 이렇게 망치를 잡아들진 않았겠지.

자신의 집안 뿐만 아니라 같은 동인이었던 이발의 집안도 멸문의 화를 입었다고 들었다. 오히려 자신의 집은 온건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화를.

이유는 당연히 정쟁이었다. 이발이 서인의 인사이자 기축옥사에서 임금의 사냥개로 활약한 정철의 정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발의 노모와 10살배기 어린 아들이 모진 고문을 받고 모조리 죽었고, 이발 본인 역시 고통스럽게 고문을 받다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 죽음에 죄가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정치라는 괴물이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괴력난신은 그저 어린이아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보잘것 없는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굿판이라도 벌이면 사람들의 마음이라도 편해게 해 주니 차라리 더 낫다고.

어차피 없는 죄도 만들어내 한 집안을 모조리 죽여대는 비정한 세상일진데, 없는 괴력난신을 만들어낸다고하여 그게 대수인가.

적어도 괴력난신은 혹세무민할 지언정 한 가정을 박살내는 비정하고 잔인한 구석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하는 법이니, 자신 역시 선비에서 장인으로의 변모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녀 역시 그저 유린당한 과부에서 한 사람의 역할을 할 수있는 무녀로 거듭나고 싶었고 그 바람에 따라 선택을 한 것 뿐이다.

그 선택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선택이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무당이 된다는 게 무슨 남에게 해를 끼치고 폐를 끼친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선무당이 문제인 거지.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와 쌓아온 정 때문이라도 그는 하늘이란 게 있다면 부디 그녀가 진짜로 신기를 깨닫고 무당이 되기를 바랐다.

고작 거짓에 기대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안그래도 기구하고 불행한 그녀의 인생이 너무도 가여웠기에.

'다시 볼 수 있기를. 그때는 정말로 대단한 무당이 되어 동정의 눈이 아닌 경탄의 눈으로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길 기원하마.'

마치 손녀같았던 그녀의 인생을 위해 선비이자 유학을 공부했던 정여수는 괴력난신이 이 세상에, 적어도 그녀에겐 부디 실재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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