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47화 - 훈풍(薰風)(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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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과 부하들의 등장은 생태계 교란종을 넘어선 파멸종의 등장과 같았다.
닥치고 사냥되어 가죽으로 쌓이고 있는 수달뿐 아니라 이미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지위를 잃은 호랑이, 그 밖에 가죽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모든 동물들이 수달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그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는데 바로 동물들도 경험치를 주었다는 것.
물론 적을 처치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낮은 미미한 수치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저 경험치는 주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병대와 총병대를 위한 것이었고, 적은 경험치로도 '훈련병의 깃발'이라는 사기템이 있으면 충분히 뻥튀기가 되었으니까.
[이름 : 훈련병의 깃발]
[레벨 : 220(경험치: 0/265)]
[효과 : 직속 부하들의 경험치 획득률이 448% 증가합니다.]
[훈련병들의 비명이 연병장에 메아리칩니다.]
요즘 부하들을 키우는 맛에 재미가 들려 개인 무력을 뻥튀기 해 주는 '조부' 보다는 '훈련병의 깃발'에 시간이 차며 CP가 모이는 족족 투자하고 있는 주명이었다.
예를 들어 해병대원 한명이 수달 한마리를 잡아서 경험치를 5 얻었다고 치자.
경험치의 448%가 뻥튀기 되니 22.4라는 경험치를 얻게 되는데, 왜구 한명을 전투에서 목숨걸고 잡았을 때 얻는 경험치가 50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꿀 사냥을 해야겠는가 말아야 겠는가?
동물보호나 동물의 권리같은 것은 싸그리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값나가는 가죽을 지녔을 것 같은 동물들을 쳐죽인 결과 사방 수십킬로미터에 동물들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물론 단지 부하들의 성장 때문이라는 이유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명도 감정이 메마른 자가 아니니 어찌 생명을 그렇게 함부로 죽이려 하겠는가.
동물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보이는 족족 사냥하는 이유는, 특히 수달은 싸그리 몰살시키는 이유는 두가지였다.
먼저 다가올 병자호란에 대비한 경제 사보타주.
누르하치의 여진족들이 군비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반농반목생활을 했던 그들이 기르는 말과 또 산천을 누비며 채취한 약재, 그리고 사냥을 통해 얻은 가죽들을 명나라에 팔아서 가능했다.
나중에 여진족의 성장을 두려워한 명나라가 무역봉쇄를 감행하지만 이미 군비를 축적해 싸울 준비를 어느정도 갖춰 놓았기 때문에 화만 돋굴 뿐이었고 그 결과는 사르후 전투의 패전으로 돌아왔지.
말, 약재, 가죽 중에서 여진놈들의 경제력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가죽.
명나라에서는 여진족이 파는 가죽을 최상품으로 치고 높은 값으로 거래했던 덕분에 명나라와의 무역에서 비중으로 치면 최소 5할(5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교역품이 바로 가죽이었다.
여진족이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기에 놈들이 약탈을 했던 게 아니던가.
놈들의 가죽무역만 망쳐놓을 수 있다면 그 성장을 늦출 수 있다.
그래서 놈들의 가죽 공급을 박살내기 위해 여진족들을 소탕하면서 동시에 동물들도 사냥하는 것.
또다른 이유는 수달이라는 동물에 한정된 것이었다.
건주여진 놈들은 제놈들의 족장인 누르하치를 수달의 아들이라고 믿으며 수달이란 동물을 신령스런 동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충분히 값나가는 모피를 얻을 수 있음에도 사냥하지 않았던 덕분에 그 숫자가 많이 늘어나 만주의 계곡에 널린 게 수달이었다.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겼던 동물이 어느날 갑자기 보이지 않게되고, 또 시장에 가죽으로 팔려나오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 신령스러운 존재의 아들이라는 프로파간다로 큰 이득을 본 어떤 놈의 권위가 떨어질 것 같지 않은가.
겸사겸사 수달 가죽으로 돈도 벌고 말이지.
지금처럼 콘솔 명령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무한한 자원의 보고로 사용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명령어 대신 '현실'에 기반한 경제력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잠재적으로는 여진족의 경제 잠재력을 붕괴시키면서 단기적으로는 녹둔도의 경제를 대신 부흥시킬 수 있는 방책으로 일단 지금상황에서는 나름 최선의 방도라고 생각해 택한 게 수달가죽을 포함한 가죽을 파는 것.
"오오! 이렇게 훌륭한 모피가 있다니!"
덕분에 하야타카만 신이 났다.
명나라는 너무 멀어서 어렵고 조선에서는 드러내놓고 상행위를 하기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상업 자체가 발달하지 않아 마땅한 판매처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사실상 사카이라는 훌륭한 매입처와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그가 낙점되었던 것.
여진족의 침입이 사라지자 농사를 짓는게 더 수월해지기도 했는데다가 가죽을 가공하는 데 손을 보태며 두둑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녹둔도의 경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김종서에 의해 개척된 이후 단 한번도 세워진 적 없었던 주막이라던가 잡화점이 생겨났으며, 아무것도 거래할 게 없었고 위험하기 때문에 올 일도 이유도 없었던 외부인들이 수시로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호황은 가죽 공급처가 된 연해주와 간도 지역에서 그 가죽을 원 주인이며 공급처인 동물들이 씨가 마르게 된다면 끝날 단기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모래위의 성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주명이 계획한바가 따로 있었던 관계로 이곳의 호황이 금방 그치게 될 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이어질지는 그에게 달려 있었다.
***
"이게 그 사카이 상인에게 천금을 주고 구했다는 수발총(燧發銃)인가?"
"왜 그러나 사이토. 혹시 나리께서 주신 이 총이 못 미더운 건가?"
"그럴리가 있나! 주인께서 주신 총이 못 미더울 리가 없지!"
나베시마가 왜구들에게 임대한 50인의 조총병 중 가장 선임이었기 때문에 총병대에서도 가장 오랜 경력을 지닌 최선임이 되었던 사이토는 눈앞의 사내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지금 그가 들고있는 총은 주명이 하야타카에게 엄청난 재화를 찔러주며 남만인(서양인)들에게 구하도록 했던 수발총, 그러니까 플린트락 머스켓이었다.
기존의 조총(아르케부스)이 최대 연사력이 1분에 2발 정도였던 반면 이 플린트락 머스켓은 1분에 4발을 쏠 수 있으니 엄청난 연사력의 진보를 이룬 혁신적인 무기였다.
게다가 개머리판이없어 조준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총과는 달리 견착도 가능하고 또 총신도 길어서 총검을 부착하면 마치 창처럼 근접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었다.
정확성 또한 개선되었으니 기존에 쓰던 조총보다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총이었던 셈.
다만 기존까지 쓰던 총을 버리고 새로운 총을 사용해야 한다는 그 변화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특히나 최선임이었기에 기존 총을 통해 일궈낸 게 많았던 사이토로서는 그 부담감이 유별나게 컸던 것 뿐이었다.
하늘에 닿아있는 무력과 금력, 그리고 혜안을 지닌 자신의 주인이 선택한 이 총이 분명 뛰어날 것이라는 것 자체는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나도 솔직히 처음에는 왜 굳이 이 플린트락인가 뭐시긴가 하는 총으로 갈아타야 하는지 몰랐네. 솔직히 실력이 더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
사이토는 눈앞의 사내 역시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에 동질감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다.
변화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자신뿐인게 아니라고.
눈앞의 사내는 함경도의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했다는 장호식라는 자였다.
집안 대대로 호랑이 사냥을 업으로 살아왔던지라 이름도 호랑이를 먹는다는 뜻의 호식으로 지었던 것.
총병대에서 적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최고의 사수라는 타이틀을 뺏긴다면 바로 저자에게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이토는 장호식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스스로 최고의 사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호식도 마찬가지였지만 같은 대원끼리 정식으로 붙어볼 수도 없었거니와 지금까지 사살하고 사냥한 적과 사냥감의 수도 비슷해서 아직까지는 우열이 갈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 사격술에 대한 재능 만큼은 녀석에게 밀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존심 강한 사이토는 어떻게든 아득바득 노력으로 그걸 메꾸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저 대단한 장호식 역시 신식 총으로 바꾸는 데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니 안도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근데 써보니까 알겠더라고. 이건 미쳤다고!"
그러면서 이 총만 있다면 조총으로도 20초에 1발이라는 빠른연사력을 자랑하는 총병대의 실력이라면 무려 10초에 1발이라는 미친 연사력을 뽐내며 전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침을 튀겨가며 사이토에게 강조했다.
"그리고 말야, 더 중요한 건.."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하늘을 향해 총구를 들어 조준하는 장호식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평소에도 사냥 내기 등 자유롭게 총기를 사용해 왔던 총병대였기에 기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총기 사용.
화약이 금처럼 귀한 이 시대에 다른 조총수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미친 짓이 주명의 콘솔 명령어로 인해 산더미처럼 풍족해진 화약 재고량 덕분에 여기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매일매일 수십발씩 사격을 연습하는 미친짓마저 하는 통에 그딴 게 문제일까.
일본에서는 화약 한통을 얻기 위해 여인 하나를 노예로 남만인에게 팔아 넘겨야 했을 정도로 귀중한 전략물자였다.
그래서 총기 사용을 극도로 절약하고 아끼던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던 나베시마의 부하 출신 조총병들은 이러한 넘치는 화약 재고량과 수시로 이뤄지는 훈련에 특히 감회가 남달랐다고.
물론 조선에서도 화약은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기에 조선의 포수 출신 총병대 역시 화약을 극도로 절약해야 했던 것은 그들과 마찬가지라 무척이나 신나하면서 총을 쏴 재꼈었고.
그러니 총병대는 엄청난 연사력은 물론 뛰어난 정확도를 가진 최정예 사수가 될 수 있었던 것.
그런 정확도는 장호식이 격발하자 저 멀리 800보(200m) 정도 떨어져 있던 곳의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작은 새가 피를 뿌리며 떨어지는 것에서 드러났다.
"이, 이건!'
하지만 저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아무리 장호식이 뛰어난 사수라 할 지라도 분명 400보(100m) 정도가 고작이었을 텐데 어찌 저런 말도안되는 사거리가 나온다는 말인가!
무려 두배나 뛴 사거리에 저건 저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놀라워 하는 사이토에게 장호식이 신식 총을 자랑스럽게 흔들며 말했다.
"사거리가 아주 작살나지. 이정도면 그거 가능하지 않겠어?"
그거라는 말에 사이토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 저 칼잡이놈들에게 지들 없으면 아무 힘도 못쓸 거라고 놀림을 받았던 게 얼마나 분통 터졌던가.
근데 저런 정확도와 사거리라면은, 지형만 따라 준다면은 저 무식한 칼잡이 놈들에게 진정한 지옥이 뭔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사이토가 전국시대의 나가시노 전투에서 들은 바 있는 오다 노부나가의 전법까지 사용할 수 있게되면 정말 죽여주는 화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뭐 진짜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같이 여진족 놈들을 상대하며 총병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각인시킨다는 것.
그 순간 평소에도 사냥으로 쭉쭉 올라가는 부대들의 등급을 보는 재미에 푹 빠진 나머지 때마침 부대 상태창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주명의 눈앞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
[부대명 : 총병대]
[부대 등급 : 17]
[적용효과 : 공격력 +33%, 방어력 +33%]
[병력 : 200/200]
[사기 : 230/230]
[특성 : 속사, 저격]
[전법 : 3단사격]
[무장 : 수발총(연사력↑, 사거리↑)]
"어, 뭐야?! 저격이 생겼다고? 또 3단 사격이라는 전법도 생기고?!"
1분에 6발이라는 미친 연사력, 천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800보(200m)에 달하는 장거리 사격이 가능해진 총병대.
또한 다케다 가문이 자랑하는 그 무서운 기병대를 격멸하여 조총의 위력을 알린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사용한 3단사격을 전법으로 구현 가능해진 총병대.
게다가 플린트락 머스킷을 쥐어주는 순간 무장이라는 별도의 항목이 추가되기까지 하니 전장의 괴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탕탕탕탕탕탕
일분에 6발, 많게는 7발까지 쏟아지는 그 무수한 총탄의 세례를 겪고 죽음으로 참회하지 않을 여진족은 없었다.
게다가 3열로 나누어 사격-장전-대기를 반복하여 장전 대기시간을 최소화 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몇 초마다 사격이 이뤄졌다.
그건 적들이 실감하기에는 한시도 쉬지않고 자신의 몸을 꿰뚫는 총탄이 쏟아지는 것 같은 공포스러운 지옥도였다.
강제로 야만인들을 주님 곁으로 보내는 총병대의 3단 사격은 양떼를 대상으로 하는 목사의 경건한 안수세례와는 달리 사냥감을 대상으로 하는 사냥꾼의 잔혹한 참수세례였다.
숲길로 유인된 적군을 상대로 정예 총병대원 몇이 숨어서 지휘관급 인물들을 죄다 저격해 버리는 바람에 적군이 열받았는지 아무런 질서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이쪽을 향해 들이박으며 전개된 이번 전투.
한번에 여러 방향으로 나누어 돌격해 왔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한방향으로만 치달아 온 적들은 총병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손쉬운 목표물이었다.
좁은 산길을 따라 순차적으로 축차 투입이 강제된 적들은 총병대의 그 3단사격이라는 전법을 통해 가능해진 '지속사격'이 이어질수록 그 기세를 완전히 잃어갔고 결국 온 몸이 벌집이 되어 쓰러진 마지막 적을 끝으로 전멸해 버렸다.
200명의 총병대가 동수의 기병대를 스스로 격멸시켰다!
그 충격적인 결과를 바라보며 주명은 신이나서 사이토와 장호식을 불러 치하했고, 총병대를 바라보는 해병대의 표정은 경쟁의식과 함께 두려움이 조금씩 자리잡고 있었다.
그냥 소리만 요란한 장식품 정도로 생각했기에 평소 총기와 그것을 다루는 총병대에 대해 극도로 무시했던 해병대였지만 오늘의 모습을 보니 절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주인의 휘하에 있으면 신묘한 힘을 받아 강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찌 저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여진 기병을 상대로한 200대 200의 싸움을 자신들이 벌였다면 저런 압도적인 결과를 과연 낼 수 있었을까?
오늘처럼 저렇게 저격으로 지휘관을 사살하고 기세를 꺾어 놓은 뒤 달려오는 놈들을 삼단 일제사격으로 무력화시키는 총병대를 과연 해병대가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 전과는 달리 확신할 수 없었다.
도열해 있는 800여 명의 해병대원들의 등 뒤에는 하나같이 식은땀이 한줄기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