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66화 (66/77)

〈 66화 〉 65화 - 함선(艦船)(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저 미친놈이 누가 일본놈이 아니랄까봐 아주 해적왕이 다 되셨다며 어이없는 기분도 들었지만 그런 감정은 아주 극히 일부였을 뿐.

99.9%의 감정은 개소리로 귀를 더럽힌 것에 대한 짜증이었다.

짜증이 확 올라와 참을 수 없었던 주명은 욕을 내뱉고 놈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 세상의 모든것을 두고와? 이런 미친놈 같으니, 두고 온 건 네놈의 모가지와 겁대가리겠지!"

하지만 왜인은 마치 그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적어도 야마토 민족이라고 스스로를 높이는 저 왜놈들은 정말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뭐?”

“놈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끔찍히도 아끼는 그 물건, 바로 단노우라 전투에서 유실된 삼종신기의 진본이 거기 잠들어 있으니까요.”

삼종신기란 말이 주는 파급력에 주명의 표정이 일순 진지해졌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고 하여 단 한번도 단절되지 않았다는 자랑하는 섬나라 일왕가.

상징적 존재인 누군가를 위에 두고 그의 영도 아래에서 서로 평화를 추구한다는 게 섬나라의 전통이라고 본다면,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그 전통을 충실히 지켜 일왕이라는 정신적 지주를 두고 설령 실권은 빼앗더라도 그 상징성과 권위많큼은 빼앗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빼앗을 수 없었다.

화목할 화(和)

일본어로 '와(和)'라고 불리는 그 화목함이 바로 일본이라는 섬나라의 섬나라다운 고유 특성.

그 '와(和)'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이뤄지도록 마치 살아 움직이는 인간 십계명처럼 당위와 정당성을 실어주는게 저 살아있는 신이라는 일왕이었던 것.

십계명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들 수 없었던 것처럼 섬나라에서 누구도 일왕을 건들 수 없었던 것.

애초에 그 '와(和)'를 주장한 놈도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실질적으로 일왕 역할을 한 쇼토쿠 태자라는 녀석이었다.

일본에서는 덴노(천황)이라 부르는 저 일왕의 신성함을 증명하는 신물이자 종교적 권위의 상징이 바로 저 삼종신기였으니,

일본에서 삼종신기란 물건들이 가지는 위상은 저 왜인의 말대로 이 세상 모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도 그 삼종신기가 가짜라는 설이 나돌며 진위를 의심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1185년에 단노우라에서 벌어진 한 해전 이후에 천황가가 가진 삼종신기는 가짜라는 것.

일본의 남북국시대를 끝낸 그 단노우라 전투에서 패배한 남조의 일왕인 안토쿠 덴노가 진본을 품에 안고 투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랬던지라 그 이후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건 모조품이라는 설이 있었고 분실되었다는 정황이 충분한 구체적인 기록까지 있기에 단순 루머를 넘어 가설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근데 그 가설이 진짜였다니!

일왕가가 이후 천년동안 잘도 자랑스럽게 보관하던 그 삼종신기가 짝퉁이었다니.

역사학도로서 기록에 가려진 실체적 진실을 마주하고 그 증거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는 큰 흥분을 느꼈다.

물론 삼종신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과 범선이 있다는 것이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다.

'돈 안받았지만 너님 평판이 신뢰가 가니 미리 정보 알려줌'이란 이유로 저놈이 장난치듯 내뱉은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이 시대는 너무 미개했고 야만적이었으니까.

무려 이시대 기술의 총아라 할 수 있는 범선이 에조치(훗카이도) 동편의 섬에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많이 의심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녹둔도에서 있어봐야 도저히 범선을 구할 길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음 항해의 첫 행선지로 생각한 곳이 일본이었다.

조선과는 달리 일본에는 자주 들락거리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배들을 상대로 현지에서 범선을 '구입'하면 되니까.

상대방이 거래창을 띄울 생각이 있든없든 '조부'를 보면 응당 장유유서에 따라 고개를 숙이며 거래에 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범선값은 후하게 줄 생각이니 주명은 스스로가 해적놈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또 삼종신기가 진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애초에 유물 따위는 그저 역사학도로서 흥미만 동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임진왜란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그깟 청동기 유물이 중요할까.

진짜든 아니든 정 궁금하면 범선 찾으로 가서 확인해 보면 그만인 것이, 스캔 명령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범선이 진짜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그걸 찾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길잡이로라도 저놈을 데려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선이 없다면? 길잡이가 아니라 그 시점부로 목이 잘릴 위기에 처한 죄인이 되겠지.

어차피 일본에 갈 계획이었던 주명에게는 범선과 삼종신기의 실존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추궁할 가치를 못느꼈다.

오히려 주명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굳이 자신을 왜인들과 구분하는 것 같은 저자의 태도였다.

“너는 마치 그 야마토민족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군.”

느믈거리면서도 태연자약하며 여유 넘쳤던 놈의 얼굴에 최초로 어두운 기색이 비쳤다.

아마 출신에 얽힌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라고 짐작한 주명에게 전과는 달리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절반만 맞지요.”

“···!”

“제 이름은 쓰네히라(経衡)라고 합니다. 왜인 아버지와 아이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짜리죠.”

“왜놈들과 아이누 짐승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놈이라 그런지 하는 일도 바다 위를 떠도는 검이니까요 하하하.”

잠시 어두워지는듯 했지만 다시 쾌활함을 찾은 놈의 얼굴은 처음에 봤던 그 태연자약한 면상으로 금세 되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놈의 눈빛을 보며 주명은 마치 놈이 못다한 이야기를 눈빛으로 대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마치 다이묘 당신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놈의 눈빛.

정식으로 김시민의 양자로 입적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보다 그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는 놈의 저런 대쪽같은 모습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쪽바리답지 않네.’

일본놈들이 싫은 건 면종복배하는 그 이중성 때문인데 놈에게는 그런 건 없었으니까.

다만 궁금했던 건 눈빛만 봐도 세상물을 먹을 만큼 먹은것철머 생긴 놈이 마치 죽고 싶어 안달난 것 처럼 왜 이리 무례하고 당당하냐는 것.

일본에서 권력자에게 무례하게 굴면 재판이고 뭐고 없이 끔살이라는 것을 저녀석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무리 반쪽짜리 왜놈이라지만 말이다.

또 아무리 여기가 일본에 비해 온건한 조선이라고는 하지만 주명은 그런 것을 떠나서 이곳 녹둔도의 지배자인 동시에 실질적인 무력을 지닌 강자다.

앞에서 까불면 어떤 응징이 뒤따를 것이란 걸 모를 리가 없을텐데.

그 궁금증이 놈에대한 짜증을 넘어서게 되었고 결국 행동으로 이어졌다.

"네가 원하는 일만냥이다."

대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여 약속대로 일만냥을 놈에게 주었던 것.

무려 명나라 은으로 1만냥의 금전이 허무하게 소모되었지만 그게 어때서?

지금 시기의 설탕은 그 가격의 최고점을 찍어 같은 무게의 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녔는데, 명나라 은화 한 냥의 무게가 37.5g이고 은의 가치가 금의 10분의 1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콘솔 명령어로 한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차오르는 수준의 CP(1포인트)를 소모하여 설탕 5,000Kg만 소환해도 명나라 은화 1,333냥이다!

주명에게 있어 1만냥의 돈이란 그저 8시간만 멍때리면 저절로 벌어지는 아주 하찮은 가치를 지닌 푼돈이었을 뿐이니 그정도야 길바닥에 던져도 아쉬울 게 없었다.

길바닥에 던지는 푼돈 정도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면 주명의 손익계산법으로는 이득이었다.

“···!”

진짜로 놈에게 일만냥을 쥐어준 결과는 놀라웠다.

그 엄청난 스케일의 은빛 덩어리들의 눈부시도록 찬란한 광채에 놀라고, 그 무지막지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진짜로 자신에게 쥐어줬다는 것에 더 놀라고.

놈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더니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 같았다.

“은화는 가져오는 시늉만 하고 제 얘기만 들은 뒤 절 죽여 버리려던 게 아니셨습니까?”

“내가 왜?”

“...이러면 죽음을 각오했던 저만 이상한 놈이 되는군요.”

왠지 저놈이 굳이 자신앞에서 배의 위치를 먼저 술술 불은건 어차피 협박과 회유에 당하게 될 거 당하느니 냅다 줘버린다는 마음에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 죽이실 줄 알았는데. 분명 그러실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로 제 손에 쥐어진 일만냥을 보고 당황하며 놈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서 자신이 목숨을 건졌다는 것에 대해서 돈을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놈을 당황하게 만든 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돈을 받는다는 기대는 거의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죽음을 기대하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에서 떠오른 강한 추측.

더군다나 옆에 따라온 관원이 어느새 객잔 주인을 취조해 파악했는지 급히 속삭이는 말을 듣고는 그 추측에 확신을 더했다.

이녀석이 표류했던 주제에 이렇게 고급 객잔에서 비싼 술을 마시는 화려한 삶을 누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이게 다 녹둔도를 자주 들르는 왜놈 사채업자에게 진 빛이라고 한다.

딱 뒤가 없는 놈이 미친듯이 갚을 생각따윈 없는 빛을 끌어다 오늘만 살것처럼 흥청망청 해대다 자폭하는 모양.

그렇다면 왜(Why) 뒤가 없는 놈이 되었을까.

"제 전부었던 배가 폭풍에 날아간 그날 전 이미 그때 죽었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 이곳으로 표류했지만 사는 게 아니었죠.”

또 어떻게(How) 자폭하려 했을까? 그건 주명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만.

“보잘것 없는 목숨이지만 생의 마지막은 거물의 손에 끝맺고 싶었습니다. 무사는 누구에게 죽는지에 따라 격이 달라지니까요. 다이묘께서 홀로 수만의 기병을 상대로 싸우셨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제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분이라면 제 끝을 맡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찾아 오게끔 만들어 무례하게 굴었던 것인데..."

놈에겐 주명이 스스로를 태워줄 폭약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것도 대미를 장식해줄 화려하고 더없이 강력해서 더없이 주목받을 수 있는 그런 폭약.

그런 생각이 드니 왜 저놈이 그토록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물론 이해가 된다는 거지 공감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스스로 뒈지려는 주제에 '멋지게' 뒈질 계획을 세웠다는 시점부터, 죽음에 멋짐 따위를 규정한다는 시점부터 이미 미친놈 확정.

놈의 말대로 이곳에 표류한 뒤부터 죽을 생각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주명의 위업을 듣고는 그 '멋지게' 뒈진다는 미친 생각이 떠올랐던지 제 죽음을 미화하기 위해 이딴 자살계획을 세웠던 것.

뒤 주명이 범선을 구한다는 소식을 어떻게든 알게 되자 일부러 주명을 끌어들이는 소문을 퍼트려 제놈의 사형 집행인이 되어줄 자신을 꾀어냈던 것이며, 형의 집행을 위해 주명에게 최대한 오만불손하게 대하여 칼을 꺼내게 만들려 했던 것.

그럼 주명의 손이든, 아니면 주명의 부하의 손이든 빌려 끝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아까 히로시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놈의 뜻대로 되었을 터였다.

검에 자신이 있어보이는 것로 봐서는 그 끝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칼을 빼어든 자신이나 히로시에게 칼을 들고 맞서는 일종의 결투를 빙자한 사형이 되었겠지.

"다만, 범선과 삼종신기가 숨겨져 있다는 건 진짜입니다."

아마 놈의 생각을 추측해 보자면 그 정보를 사형 집행에 대한 대가 정도로 내뱉어 주려던 것이었겠다고 주명은 생각했다.

왜 사형수가 처형인에게 본래 던져주는 동전이 있지 않던가.

그 경우에는 고통스럽지 않게 해달라는 바람에서 던져주는 거라면, 놈의 경우에는 제 죽음을 화려하게 장식해 달라는 바람에서였다는 게 차이점이지.

정보를 강제로 토해내라는 말을 듣게 되느니 그전에 직접 던져준다는 나름의 자존심도 있었을 것이고.

물론 미친놈의 자존심일 뿐이다.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놈의 그런 스스로를 앞으로 던지듯이 직진하고 또 직진하는 그 무대포 성정이 왠지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건 어떻게든 피하려고 별의별 수작질을 하며 어떻게든 한 푼의 이득이라도 가져가려고 개짓거리를 하는게 섬나라 족속들.

하지만 저놈은 부나방처럼 불길로 달려들어 진짜 죽으려고 했고 또 이익과는 상관없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린다는 점에서 왠지 익숙한 어떤 민족을 닮아 있었으니까.

주명은 저 미친놈에 대한 약간의 호감과 함께 대체 뭐하는 놈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멍한 눈으로 일만냥이 든 궤짝을 바라만 보던 놈을 굳이 다그치지 않고 사연이라도 들으려는 마음이 들었다.

"말해봐, 네가 어떤 자였는지."

이후 놈에게서 살아온 경로를 듣게 되었는데 나름 기구한 삶을 살아온 놈이었다.

일본인 우월론에 빠져 에조치(훗카이도)의 지배자인 카기자키(蠣崎) 가문 휘하에서 아이누를 누구보다 잔혹하게 살해하며 쌓아온 피의 명성.

"에조치에서 전 아이누의 저승사자란 의미에서 '사신(死神)'이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일생을 바쳐 얻은 '사신(死神)'이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드높이다 마주하게 된 진실.

"어느날 아이누 전사의 목을 베어 자랑도 할겸 대문에 걸어 두었던 날, 어머니가 울면서 제발 그만하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가 되서야 알았습니다. 제 외삼촌을 죽이고 수급마저 모욕했다는 사실을요."

친족 살해자란 것에 더해 지금까지 쌓아온 피의 길에 대한 업보가 있다는 것을.

"전 동족을 살해한 더러운 학살자에 불과했던 겁니다."

야만인들을 청소한 뛰어난 검객이란 허상에서 깨어나 자신의 피 반쪽을 물려준 동족을 살해한 학살자라는 진실을 마주하고서는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고용주였던 카키자키(蠣崎) 가문의 가주가 쓰네히라의 혈통을 이미 알고서도 아이누를 사냥하는 최일선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닥치는 대로 베고 뛰쳐나와 지금처럼 낭인이 되어 버렸다고.

카키자키 가문으로부터 당연히 척살령과 수배령이 내려왔기 때문에 왜인들 사이에서 배척을 받게된 그에게는 낭인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동족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을 쉬이 인정하기 두려워 그들을 짐승이라고 치부했고, 동족을 살해하게 등을 떠밀어준 카키자키(蠣崎) 가문과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원망스러운 나머지 멸칭이라 할 수 있는 왜인(倭人)이라고 부르며 증오했던 그 쓰네히라.

자신을 도구처럼 이용한 왜인들에 대한 분노가 너무도 컸던 탓인지 왜인들을 상대로 해적질까지 가담하며 살아온 그.

사신이라 불렸을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 덕분인지 금새 재물을 모아 자신의 배를 소유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아이누인이라는 짐승과 에조치의 왜인 둘중 어디에도 끼지 못했던 그는 육지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왜국의 바다 곳곳을 누비는 탐험가가 되어 탐험가 겸 해적으로 일본의 근해를 누볐다고.

"3년을 닥치는대로 이곳저곳 탐사하다 보니 아까 말씀드린 거기서 서반아(西磐牙, 스페인)의 남만인 중 가장 유명한 탐험가라는 그 마젤란이란 자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

스페인의 탐험가로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역사적인 항해로 유명한 자다.

마젤란은 처음 5척의 배를 가지고 탐험을 시작했는데 2척은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며 잃어버리고 아시아에 도착했을 때 남은 건 단 세척.

하지만 마젤란이 필리핀의 원주민들과의 싸움에서 전사하고 선원들도 다수 죽임을 당하자, 남은 부하들은 지금의 인원으로 도저히 배 세척을 다 운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중 한척을 불태웠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 불에 탄 흔적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70년이 지났는데도 꽤나 멀쩡했습니다. 아마 불태우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나머지 그냥 망망대해에 운항인력 없이 풀어 놓았던 게 운 좋게 에조치 동쪽의 그 섬까지 닿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콘셉시온(Concepción).

스페인어로 '잉태'를 뜻하는 그 카락(Carrack) 급 선박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임신하게 되는 '원죄없는 잉태'와도 닿아 있는 거창한 이름이었으며, 이제는 주명의 배가될 범선의 이름이었다.

신학적으로 해석한다면 '예수 = 신 > 이 세상 전부'란 공식이 성립한다.

따라서 '예수의 잉태'라는 그 이름을 해석하자면 "이 세상 전부를 그곳에 두고 왔다!"는 개소리도 굳이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서역인이 아니라 크리스트교를 접할 일이 없었던 쓰네히라 녀석은 그런 생각따윈 하지 못하겠지만.

배가 상징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이며 그 배가 세계일주라는 거대한 위업을 달성한 것은 예수의 탄생이라는 기적에 비교할 수 있으니.

이 배를 얻게된 주명은 그 여정을 통해 어떤 기적을 보여줄 것인가.

"근데 삼종신기란 건 왜 거기 있는거지?"

"하하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태연한 모습 자체는 꾸민 게 아니었던지 곤란한 질문은 속 편하게 모르겠다고 머리나 긁으며 때워 버리는 녀석의 모습은 그 진지병 걸린 일본인답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너, 그 돈으로 뭐할 거냐?”

그래서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애초에 품었던 길잡이로의 역할 이상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기대가 들어서.

“빛을 갚고 나면 다시 배를 사고 싶습니다. 이자가 아주 지랄같이 높은 사채라 꽤나 큰 돈이 나가겠지만 다이묘께서 주신 일만냥의 돈이면 뭐든 못할까요."

하긴 명나라의 1년 수입이 200만 냥이었다고 하니, 대국의 국가재정의 200분의 1이란 거금을 개인이 손에 넣으면 뭐 하고싶은 거 다할 수 있겠지.

1만냥이 단순하게 지금의 원화가치로 추산하면 고작 16억이라지만 무려 500년 전의 당시 물가를 고려해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하다못해 우리나라 한해 예산이 500조 그걸 200분의 1 하면 2.5조원이니 1만냥을 실제로 몇조원의 미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건 어차피 주명에게는 푼돈이니 그렇다고 치고, 대체 어떤 새끼가 자신의 영지에서 사채놀음을 하는지 궁금해진 주명은 조만간 그새끼를 한번 손봐줘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 신성한 조선에서 ‘대쉬 앤 캐쉬’질이야!

몇조원이라는 엄청난 거금을 들고 어서 빨리 플랙스(Flex)할 생각에 몽롱한 눈빛을 하고있는 쓰네히라라는 낭인을 보며 주명은 어떻게 놈을 영입할 것인지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 말을 걸었다.

“낭인이라고 했지?”

“저를 영입하시려는 겁니까?"

고작 낭인이냐고 묻는 한마디에 주명의 의도를 간파하다니 역시나 쓸데없이 촉이 좋은 놈이었다.

그래서 더 영입하고 싶은 놈이기도 하고.

"아무리 진실을 소문으로 흘렸다고 하지만 다이묘를 농락하고 무례하게 굴었는데도요?!”

“거기에 더해 일만 냥도 쓸데없이 날리게 만들기도 했지.”

주명이 승부수를 건 첫번째는 바로 일만냥이 놈에게 지닌 비현실적인 가치였다.

어찌나 비현실적인 숫자이던지 저 쓰네히라라는 놈도 그걸 주명이 듣고는 진짜 '거래'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배제하고 제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는 자살 설계를 했을 정도가 아니던가.

아주 죽이도록 비현실적인 가치라 하겠다.

“그, 그건 정당한 거래가 맞습니다! 제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찾지 못할..”

“기대도 안했다며 그 일만냥. 일부러 뒈지고 싶어서 '거래'가 안 일어나고 '처형'이 일어나가 니가 설계한 거면서 왜그래.”

“···”

줬다가 뺏는다는 상황이 기본적으로 열받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기도 했지만, 일만냥을 스스럼없이 쾌척하는 주명의 배포에 감탄하기도 했던 쓰네히라는 그 경외감이 실망으로 되돌아온 것 같아 무척이나 화가 난 것 같았다.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는지 검에 손을 가져가는 놈을 바라보며 주명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거 그냥 고용에 대한 계약금도 겸한다고 퉁 치자고. 물론 급료는 따로 주겠지만."

물론 이 시기에는 선수금, 중도금, 잔금이란 구분이 없으니 계약금이란 말 그대로 저걸 모두 합한 총액을 말한다.

"네?!"

"난 너란 낭인을 내 검으로 고용하고 싶다. 그래서 묻고 싶은데, 넌 일만냥의 가치를 지닌 검인가?”

너, 내 검이 되어라!

이딴 말을 괜시리 하고 싶었지만 ‘이세상 모든 것’ 드립을 이미 쳐버린 저놈에게 그 말로 어울려 주면 그 빌어먹을 만화를 혐오했던 자신이 너무 우스워지니 그러지 않았다.

주명의 말에 쓰네히라는 꽤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설마 그 손에 죽으려고 수작질을 벌인 자에게 고용제의를 받을 줄은 몰라서.

또 너란 검은 일만냥의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에 검사로서의 자부심을 건들었는지 마음속에서 격동하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고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놈을 고용하기 위한 승부수의 두번째는 그 비현실적인 가치의 일만냥을 가지고 놈의 검사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검사로서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자부심이 넘치는 저놈이, 주명처럼 한국인의 그 허세를 너무도 닮아있는 저놈이 '너 일만냥짜리 검 맞냐?'라고 했을 때 과연 '아뇨, 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고작 몇냥짜리 검입니다!' 라고 말할까?

그리고 승부수의 세번째.

배를 잃어버렸을 때 삶의 의미를 잃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주명과 함께라면 다시 배를 타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꼬드기는 것.

“난 곧 바다로 나갈 거다. 아마 네가 좋아하는 탐험도 꽤나 해야할 거고.”

1만냥이란 돈이면 제 스스로 배를 사는 것을 넘어 선단을 꾸려도 될 정도지만 이미 첫번째와 두번째 승부수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고 평정심이 흩트러졌던 쓰네히라는 그런 침착한 판단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겠습니다!”

“좋아, 에조치에 있다는 범선까지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도 해주면 딱이겠네.”

바다로 나간다는 말에 쓰네히라는 완전히 생각을 굳혔다.

자신이 태어난 땅 어디에도 발일 붙일 수 없는 죄악과 악명으로 가득찬 자가 자신이니 바다는 그의 새로운 고향이자 전부였던 것.

그래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배를 잃었을 때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게 아니던가.

자신을 일만냥어치 검객으로 봐 주고, 또 바다라는 삶의 의미이자 고향으로 데려가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챙길 것은 챙겨야 했다는 마음이 강하게 드는 건, 쓰네히라 자신의 씀씀이가 꽤나 헤펐기 때문에 재물욕이 상당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근데 제가 아마도 다이묘께, 아니 주군께 최고 검객이 될 것 같습니다. 최고의 검이 날카로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유지비로, 음 제게 급료는 많이 챙겨 주시겠지요?”

영입제의를 수락하자 마자 최고 검객 운운하고 연봉협상부터 하는 꼬라지가 능글맞고 뻔뻔한 것도 꾸민게 아니라 본모습이었던 것 같았다.

어차피 최고 검객 어쩌고 하는 부분에서 검술에 있어서는 너무도 오만한 그 정신머리가 같잖았지만.

“일단 따라와봐.”

그래서 정신교육부터 시킬 생각이었다.

‘해병대 애들한테 쳐발리다 보면 현실을 깨닫게 되겠지.’

본인보다 강한 이들이 이 녹둔도에는 수두룩 빽빽하다는 것을.

당장 녀석을 아니꼽게 노려보고 있는 히로시 녀석과 붙어보면 십초지적도 안될 놈이다.

히로시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니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게 저 쓰네히라라는 놈의 고생길이 훤하게 열린게 머릿속을 그려졌다.

싸우는 족족 깨지고 개패듯 쳐맞겠지.

특히 자신을 너무도 극진하게 대해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할 정도인 그 야마모토 해병대 총대장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히로시가 귀띔해 준다?

지옥을 맞볼 것이다.

근데 그 지옥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차라리 녀석에게는 나을 수 있는것이, 그 순번 0번의 최종병기 그녀와 상대하게 되면 검이나 제대로 뽑을 수 있으려나?

아니 앞으로 검을 뽑을 생각을 할 수 있으려나?

‘나미에랑 대련해 보게 되면 아예 검을 잡기 싫어질걸?’

하늘 위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검술 때려 친다며 펑펑 울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치트 가지고도 안되는데, 니가 나도 검술로는 절대 못이기는 나미에를 어찌이길래?’

순수하게 검술만 따지고 보면 아직도 주명은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조부'와 50이 넘는 힘으로 상대하면 되긴 하지만 그러기엔 나미에는 너무 예쁘니까 굳이 그럴 이유가 없겠지.

***

누르하치가 기거하는 건주여진의 수도.

녹둔도에서 이 먼곳까지 말을 달려온 수십의 기마대가 말에 짊어지고 온 보따리를 가득 어딘가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서 있는 수십의 만주기병들은 그 모습에 조건반사적으로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크으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지난번에는 그 슈니첼(돈가스)인가 뭔가가 최고 맛있었는데 이번엔 뭘라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녹둔도 놈들이 가져오는 건 죄다 맛있다고!”

“그건 그렇지.”

지난번의 전투에서 누르하치에게 붙들려간 수십의 백성들이 주명은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고,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주민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찢어졌다.

특히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고 뛰쳐나가 구하러 가고 싶을 정도.

하지만 지금 당장은 누르하치와 적대시 하지 않는 게 좋으니 잡혀간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누르하치의 주머니를 채워주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면서도 그들이 모진 포로생활을 하지 않도록 건주여진의 주요 권력자들에게 온갖 뇌물을 찔러주었고, 또 밥을 굶길까봐 수시로 샤를이 특별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들을 전해주었던 이가 주명이었다.

"후후, 양떼들의 우두머리는 역시 양일 뿐이지."

누르하치는 그런 주명의 행동을 비웃었을 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자리에 있는 만주 기병들은 주명의 이런 행동이, 특히 직접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음식을 전해준다는 부분이 너무 맘에 들었다.

“여기 그대들 몫이오.”

잘 봐달라는 뜻인지 자신들에게도 그 미치도록 맛있는걸 나눠주었으니까.

물론 태생이 거친 만주기병들인지라 그걸 배달하는 와르카 부족의 배달부들에게 조롱, 회유 등등이 쏟아졌지만.

“와르카 부족 놈인가?”

“그렇소.”

“쯧쯧. 동족의 영웅이 버젓이 계신데 어찌 조선놈의 개가 다 되었는가! 어디 한번 개처럼 짖어 보라고!”

“밥은 먹었소? 근데 개가 주는 음식은 받기 싫을 것 같소만?”

“아? 아! 이런 제길...끄응”

요리가 예술이라면 정녕 걸작에 가까워진 녹둔도의 그 음식들이 지닌 극상의 맛있음 앞에 동물 피에 밥이나 말아먹던 여진놈들은 그저 입을 닥치고 쳐묵할 수밖에.

"근데 녹둔도 놈들은 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만드는 걸까?"

"시간과 돈이 썩어나나 보지."

처음 질문을 던진 만주기병이 저 멀리 보이는 누르하치의 거대한 창고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우리는? 우리도, 아니 칸께서는 저 엄청난 재물을 쌓아 두시면서도 왜 우리에게 이런 걸 베풀지 않으시는 걸까?"

"...이 만주를 통일하셔야 하잖아! 그리고 약해빠진 놈들이나 먹는 거에 집착하는거야."

하지만 질문을 던졌던 젊은 만주기병은 전혀 동조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저 억류되어 있는 수십 백성들의 주인인 김주명이란 자가 건주여진 귀족들과 권력자들에게 엄청난 재화를 풀며 제발 잘 돌봐달라고 했다는 건 말단중의 말단인 자신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고작 백성들일 뿐인데 그 엄청난 재물을 풀다니.

건주여진의 백성이자 누르하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에 대한 생각이 미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의문을 던졌다.

'우리는?'

만약 자신들 수십이 김주명이라는 자에게 붙잡혔을 때 과연 누르하치 칸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지 궁금해서.

과연 누르하치에게 백성은 무수한 재화를 심지어 적군에게 뿌리더라도 돌봐야 하는 가치있는 존재일까 하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일송이란 녀석의 생일이라고 특별히 맛있는 그 케이크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걸 보내줬다며? 참 쓸데없는 데 집착하는 놈들이야 쯧."

'부럽다.'

오늘은 젊은 만주기병의 생일이건만, 이미 굶주림에 죽어버린 다른 가족들은 이땅에 살아있지 못하고 칸께서는 자신의 생일 따위는 관심도 없겠지.

어린 아이 하나도 저토록 소중히 대하는 김주명이라는 자와 만주통일이라는 거창한 대의 아래 부하들의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는 칸이 너무도 비교되어서 젊은 만주기병은 더이상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누르하치가 만주를 통일하면 창설한다는 그 위대한 만주 8기.

만주의 이름을 드높일 팔기군의 깃발에 소속된다는 것이 한때 최고의 목표였던 그였지만, 과연 그게 정말 중요한 것이고 자신의 전부였던 것일까 하는 의문과 회의감에 그 목표를 이대로 마음속에 계속 품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음식 받아 가시오!”

음식을 받아가라는 와르카 배달부들의 말에 그의 상념은 깨어졌지만 한번 피어난 의문은 사그라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의문은 모든 인간이라면 반드시 수긍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과 닿아 있고, 그걸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바스티유'에서 '뢰볼루숑'으로 증명했던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권!

아직은 그런 거창한 단어를 짐작하지도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시대의 언어로 인본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가지고만 생각을 해 보아도 주명과 누르하치 중 어느쪽이 인간을 가장 기본이자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지는 분명했다.

주명이 '프랑스' 출신 샤를을 통해 만든 음식는, 지금 와르카 부족의 배달부들에 의해 만주기병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그것은 음식 이상의 울림을 누군가에게는 주고 있었다.

그건 원체 체급이 작았던 탓에 천하를 거머쥐겠다는 누르하치의 대의를 구현하기 위해 극도의 군국주의 사회로 통제되어 오로지 군사력에만 몰빵했을 뿐인, 사람을 그저 병사이자 소모품으로 보는 여진족 사회에 붕괴의 씨앗을 뿌린 것과 같았다.

젊은 만주기병은 제놈들이 만든 것도 아닌 음식을 마치 선심쓰듯이 나눠주는 저 선임 만주기병들이 너무 싫었다.

제놈들은 한가득 쳐먹으면서 자신은 왜 부스러기만 먹어야 한단 말인가.

“음식 받아라!”

왜 저들과 나는 차이가 있는 것인가? 왜 칸과 백성들은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음식이라는 겉의 포장지 속에 담긴 진정한 내용물인 문화폭탄은 이미 투하되고 있었다.

아마 주명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리 말할 것이다.

"혁명 받아라 이 늑대새끼야!"

진짜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덜 개의 깃발아래 모인 팔기군으로 상징되는 만주족의 강한 결속력과 공동체의식도 아마 불가능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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