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66화 - 함선(艦船)(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문명과 멀고 야생에 가까울수록 사람은 원초적인 신령이나 정령같은 것에 빠져든다.
제 스스로 늑대들이라 칭하는 야생의 존재들인 여진족들은 그래서 샤머니즘을 신봉했고 샤먼이 사회에서 큰 권위를 지녔다.
늑대중의 늑대 누르하치도 여진족답게 개인적으로 샤먼을 신봉하고 그들이 내뱉는 예언이라는 것을 꽤나 신뢰하고 있었다.
저 진시황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 이 거인조차도 미신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가 짊어진 대의의 무거움 때문이기도 하겠다.
"예허부의 고귀한 핏줄을 이은 여인을 칸의 여인으로 취하십시오. 예허부 여인의 혈맥에 황기가 서려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의지했던 샤먼의 저 말을 굳게 믿었다.
실제로 예허부 족장의 딸과의 사이에서 뛰어난 후계자이자 제국 청나라의 반석을 닦았던 홍타이지가 몇년 뒤 태어났으니 어쩌면 그 샤먼은 정말 천기를 내다본 것일지도.
더군다나 홍타이지의 증손자가 바로 중국사 최고의 명군이라는 건륭제다!
그러니 정말로 예허부의 핏줄에는 진하고도 진한 황제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런 것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누르하치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후사를 보고 싶었다.
그것도 훌륭한 녀석들로.
그래서 샤먼의 말이 맞다면 분명 훌륭한 자식을 잉태해줄 여인이 속한 예허부가 무척이나 탐이 났다.
만주 통일의 과정에서 해서여진을 우선적으로 병합하려 했던 것도 바로 예허부 족장의 여식을 취하려는 목적또한 포함되어 있었던 것.
예허부는 해서여진의 수장격인 부족이니 해서여진을 얻어야 예허부도 얻는 것이니까.
30대의 나이로 아직 정정한 그였지만 전장을 전전하는 전사의 삶을 사는 그에게 후계자를 얻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누르하치의 실력을 본다면 절대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 자신이 패배하고 죽어버린다면 자신이 일궈낸 대업은 누가 이어받는다는 말인가.
그런데 아무리 예허부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본인에게 뭔가 결함이 있다면 하늘을 보더라도 별을 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 결함이 남자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에 대한 결함이라면 말이다.
무려 네명의 여인들이 전라의 상태로 농익은 몸매를 자신앞에 펼쳐 놓으며 어서 가까이 오라 손짓하고 있었지만...
“왜, 왜 먹지를 못하니?!”
마치 반어적으로 운수가 좋다는 제목의 그 소설같은 대사를 거의 울것같은 비통함으로 내뱉는 이는 바로 저 건주여진의 칸이 되시겠다.
"어째서, 어째서 서지 않는 것이냐!?"
바로 ‘할 수 없는’ 자 누르하치.
천하의 누르하치도 한 사람의 사내였고 당연히 자존감의 한 축을 그 능력이 당당히 차지했다.
‘할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자존감을 저 바닥을 뚫고 멘틀은 물론 내핵 깊숙한 곳까지 떨어뜨렸다.
‘나는 밤의 제왕이란 말이다!’
밤의 제왕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고자.
하루에 몇명의 여인도 거뜬히 상대하던 절륜한 남자가 그였는데 요 몇주동안 단 한번도 그 절륜함이 발휘될 수 없었다.
애초에 물건이 서야 그 이후의 지속력을 가지고 절륜하고 자시고가 판가름이 날 텐데 발기부터 안되는 관계로 애초에 근본적으로 절륜할 수 없는 남자가 되어 버렸으니까.
할 수 없는 남자.
그런 비극이 너무 오래 지속되자 뭔가 변화를 주려고 여인을 하룻밤에 넷이나 부른 것인데 그의 쓸데없이 커다란 물건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채로 변화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어째서, 어째서어어어어!"
와장창창
“까아아악!”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집기를 때려 부수는 그의 모습에 넷이나 되는 여인들이 비명을 지른다.
원래는 여인들이 공포에 질리는 모습에 더욱 흥분이 되었던 짐승같은 놈이 누르하치였지만 전혀,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르하치의 자비만을 바라고 있는 네명의 여인들처럼 그저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을뿐.
이 침실에 들어서 있는 모든 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차라리 죽고 싶구나...’
남자로서 너무 치욕스럽고 끔찍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이런 식이라면 황기가 서려있다는 그 예허부의 핏줄을 이은 여인을 설사 부인으로 들이더라도 뜻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가 았았다.
그래서 남자로서뿐 아니라 야심찬 군주로서도 도저히 이런 상황이 견딜 수 없었던 누르하치.
그날밤도 전날과 마찬가지라 결국 여인들을 눈물을 머금고 물리친 그는, 방법을 찾겠다는 마음에 밤을 새며 고민하다 다음날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호랑이, 호랑이 고기를 대령하라!"
그 결단이라는 건 뭐라도 해 봐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마음에 다음날 아침부터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호랑이 고기를 미친듯이 찾는다는 것.
불임이라는 의심을 받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조선 땅에서 임진왜란 중에도 가토 기요마사가 호랑이를 잡아다 바쳤던 적이 있는데, 누르하치는 히데요시와는 달리 본인 스스로 바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콘솔의 권능으로 구현된 디버프를 해제할 수 있을 리 만무.
일주일동안 내내 호랑이 고기를 거의 매끼 쳐먹어 수십마리의 호랑이 백골이 그의 치소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였음에도 차도가 없었다.
쨍그랑
"제길! 효험이 전혀 없지 않은가!"
누르하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머지 호랑이 고기를 담은 접시를 던져 버렸다.
그렇게 코너에 몰리자 절로 찾게되는 것은 평소에도 의지하던 샤먼에 의해 행해지는 무속.
하지만 무속이 그렇듯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수단에 의존했기해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결과를 얻기에는 힘들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진 음식과 복채로 사용될 눈부시도록 화려한 패물들.
그것들을 가지고 온갖 요란한 짓거리로 굿판을 별여 샤면이 내어준 해결책이란 것의 수준은 참으로 가관.
"청동 잔에 서린 아침 이슬을 드시면 됩니다."
그걸 또 무릎을 탁 치며 좋아라 받아들이는 누르하치.
‘어찌하여 칸께서는 저런 미신따위를 믿으신단 말인가.’
또 그런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수단에 자신들의 지도자가 의지한다는 것을 알게되는 가신들의 마음에서는 점점 칸에 대한 불신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일반 백성들이야 무속이 삶에 대다수 영역에 걸쳐 있으니 오히려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엘리트들은 달랐다.
통치와 전쟁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건 전쟁을 같이 수행해줄 엘리트인 가신들인데,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무속에 빠진 최고지도자를 진심으로 지지할 상식있는 엘리트들은 없었으니까.
물론 아직까지는 누르하치의 엄청난 카리스마에 가려져 무시해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한번도 지지 않았다는 불패의 신화속에 쌓여진 그의 전쟁 지도자로서 가지는 카리스마는 너무도 빨리 쌓아올린 것인만큼 취약점도 존재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큰 참패를 겪을 경우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더군다나 너무도 초라하고 비참해지는 자신의 밤을 저주하며 요즘 부쩍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이 늘고 있는 누르하치.
“에이 젠장! 앞으로 당분간 축첩을 제한하겠다!”
본인이 못한다고 남마저 못하게 만드는 누르하치의 그 명령에 다들 불만이 많았지만 만주족의 절대자이자 태양인 그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
쌩뚱맞게도 만주족 귀부인들의 누르하치에 대한 지지도가 쥐똥만큼 올라간 건 나름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누르하치는 누르하치였다.
‘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서도 끝끝내 만주 통일을 향해 쉬임없이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저 7개 부족 연합군을 두배의 병력 차이란 악조건에도 대파한 위대한 지도자가 바로 자신들의 칸 아니던가.
그 과정을 되짚어 본다면 누르하치가 주명과 담판을 지은 뒤 바로 올라 부족을 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대오도 갖추지 못하고 헐레벌떡 달려온 연합군의 허약함을 매복으로 제대로 찌른 덕분에 만주를 통일하는 데 있어 큰 분수령 될 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그 전투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수십번의 전투를 겪었으면서도 단 한차례의 패전도 없이 승리한 상승불패의 명장이 누르하지 아니던가.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가신들의 눈빛에는 아직까지는 이전의 절대적인 경외감이 다들 서려 있었다.
저 영웅이 이뤄낸 성과와 앞으로 이뤄낼 위업을 너무나도 확신하기 때문에.
하지만 마치 눈에 내려앉은 한 두개의 작은 티끌처럼 조그만 불신의 씨앗이 자리잡고 있었다.
‘요즘 고자가 되셨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래서 축첩을 금하시는 거 아냐?’
‘녹둔도에서는 별로 재미를 못 보셨다고 들었는데 그걸 승리라고 봐도 되는 건가? ㄱ럼 상승불패가 아닌 거 아냐?’
주명이 뿌린 ‘불능’이라는 잿가루 한가닥이 다된 흰 쌀밥과도 같았던 만주족의 통일에 뿌려져 미꾸라지 이상으로 주변을 흐리고 있었다.
“대체 서지 않을 거면 이딴 게 왜 달려있는 거냐! 이럴 거면 차라리 잘라버리겠다!”
한 사람의 마음도 흐려놓고 말이다.
“...음. 아니야, 내일은 또 모르는 일이지.”
삼정의 문란이 없으니 애절양(哀絶陽)은 그에게 가능하지도 또 가당치도 않겠지만.
애절양을 지으신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가라사대, 탐관오리의 수탈에 자르는 경우는 들어봤어도 네놈처럼 발정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른다는 못 들어봤으니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하실 것이다.
***
“미친 늑대새끼가 발정날 수 없으니 발광하고 있겠지? 짐승새끼가 그걸 못해서 어쩌나? 큭.”
소중한 백성들을 인질로 데려가고 기분나쁜 휴전을 강요한 누르하치에게 큰 절망을 안겨줬다는 생각에 주명은 기분이 좋았다.
국가라는 배는 그게 크던(艦, 함) 작던(船, 선)지도자라는 선장이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선장이 지랄 발광하고 있으니 원래대로라면 최대속도로 순항해야 할 만주족이라는 배도 그저 조금 빠르게 순항하는 데 그칠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선장의 발광에 점점 항해사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힘들어 항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원래 역사에서라면 닿았어야 할 중요 기항지에도 닿지 못하겠지.
그런 식이라면 최종 종착지인 그 '사르후'에 과연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러라고 일부러 고자로 만든 것이다.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라고.
또한 선원들의 마음을 흔들어 배 전체를 흔들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백성을 위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준 것이다.
평등을 갈망하게 만들려고.
물론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 들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팔기군의 신화? 전설은 물론 설화로도 못 써먹게 망가트려 줄 것이다. 만주 통합의 상징 팔기군은 네놈 망상에서나 키우라고.”
아무리 놈 자체를 흔들더라도 놈의 전쟁 실력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놈의 주변을 흔든다.
놈의 평정을 흔들어 가신들로부터의 신뢰를 지우고,
놈이 치켜든 통합의 깃발에 대한 여진족들의 환상과 열망을 체제의 '비교'우위로 박살내 백성들의 민심과 병사들의 군심을 찢어 놓을 것이다.
백성들을 아끼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뿌린 돈과 음식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여진족들에게 자신들의 병영국가 체제가 주명이 통치하는 녹둔도의 그 인본주의적 낙원와 비교해 얼마나 쓰레기같은 곳인지를 깨닫도록 작업을 칠 것이다.
명나라는 그저 부유함만을 내보여 오히려 여진 놈들의 정복욕만 자극했지만 주명 자신이 내비칠 모습은 부유함이 아닌 인간다움이니 달랐다.
그러면,
우두머리 늑대가 아무리 잘 싸워도 간부늑대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부하늑대들의 눈빛이 죽어있다면 절대로 주명이라는 도깨비를 이길 수 없다.
거기에 홍이포까지 갖춘 도깨비라면 누르하치 할애비가 와도 못이기지.
“홍이포를 얻으려면 범선을 잘 굴려야해. 범선이 있어야 원양 항해를 하고, 그래야 홍이포를 구해올 수 있어.”
아직은 홍이포는 이 동방에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발발되고 한참이 지난 1604년이나 되어야 겨우 명나라에 처음 전파되니 1590년인 지금으로서는 15년이나 남은 셈인데 주명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 전에 홍이포를 얻으려면 서양인들이 군대 규모로 주둔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인 필리핀에 가서 구하던가 아니면 나가사키의 서양인과 접선을 해야 하는데 후자는 솔직히 가능성이 적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번 항해가 중요했다.
범선을 얻어 원양항해가 가능하도록 해 주는 성장의 분기점.
주명이 이끄는 녹둔도라는 작은 배(船, 선)가 더 멀리 나아가고 덩치가 커져 큰 배(艦, 함)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니까.
자신의 세력이 큰 배 정도는 되어서야 비로소 이미 함대를 이룰 정도로 거대한 존재들인 히데요시나 누르하치에게 맞설 수 있으니.
"그래서 잘 인도할 수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쓰네히라는 그 능글맞고 태연한 모습은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부대명 : 해병대]
[병력 : 821/821]
그거야 뭐 본래 820명이었던 해병대의 인원이 한명 늘었다는 것을 봐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잘 인도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저기 서 있는 히로시에게 내가 잘 말해주지."
"그, 그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놈에게는 불행하게도 하필이면 놈이 소속된 대(隊)의 대장이 바로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며 이를 갈았던 그 히로시였으니, 무서운 직속 상관이 옆에서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고 있는데 군기가 들지 않으면 지가 어쩔려구.
길잡이의 그 매우 협조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를 본 주명은 고개를 들어 녹둔도의 항구에 떠 있는 네척의 배를 쳐다보았다.
왜구들이 주로 사용하는 초기형 세키부네(関船)의 날렵한 외관을 지닌 저 배들의 최대 탑승인원은 40명 정도인데, 필요 인원인 30명에다 10명씩 더 태운 이유는 바로 카락이라는 함급의 승무원 숫자가 딱 40명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카락을 발견하면 네척에서 열명씩 각출하면 딱 40명이 되니까.
그런 이유로 가장 성능이 좋고 튼튼한 네척을 선별하여 선단을 구성했고, 당연히 주명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나미에와 속도 부스터를 쓰기 위한 가장 필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샤를놈도 대동했다.
녀석이 항해에 나선다고 하자 대한학교의 식당에서 근무하는 미혼의 처자들의 울음소리가 녹둔도에 울려 퍼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난봉꾼의 그 버릇을 전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새끼가 간다고 하니 여인들을 노리는 녹둔도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왠지 녹둔도에 가득 울려 퍼졌을 거 같다.
그리고 당연히 160명의 선원들은 쓰네히라를 포함해서 전부 해병대원으로 구성했는데, 총병대는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지녔으니 도저히 길어질 지도 모르는 이번 항해에 포함시킬 수 없었으니까.
"야마모토, 너라면 녹둔도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목숨을 바쳐 지키겠습니다!"
해병대의 총대장(總隊將)인 야마모토에게 모든 군권을 맡기고 또 총병대는 이제는 서열 정리가 끝났는지 실력으로나 인망으로나 No. 1이 된 장호식을 총대장(總隊將)으로 삼았다.
대장(隊將)은 뭐고 총대장(總隊將)은 뭐냐고 할텐데,
1개의 대는 현대의 소대(小隊)라고 보면 되며 대략 40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장(隊將)이 그들을 지휘한다.
그리고 해병대의 20개 대(隊)와 총병대의 5개 대(隊)는 각각의 총대장(總隊將)에게 지휘를 받는 식이다.
물론 규모에서 봐도 5개의 대는 중대급이니 장호식은 중대장 급이고, 20개의 대는 대대급이니 야마모토는 대대장 급이라 당연히 야마모토에게 군권을 준 것이다.
주명의 병력이 더 늘어나면 중대장일수도 있고 대대장일수도 있는 지금의 고무줄 같은 총대장(總隊將) 계급으로는 체계적인 편제가 어려우겠지만 아직까지는 대원-대장(소대장)-총대장(중대장~대대장) 편제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그리고 야마모토를 선택한 데에는 그가 여기서 유일하게 병력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번 피옹돈이라는 놈이 800기를 이끌고 왔을 때 능숙하게 요격에 성공한 경험도 있고 하니 큰 이변만 없다면 충분히 녹둔도를 잘 지켜줄 것이다.
"옥현이 녀석이 따라가지 못해 무척 아쉬운 것 같네."
군권은 야마모토에게 맡겼다면 내정과 녹둔도를 통할하는 권한을 주어 사실상 주명을 대리하게 될 이는 정여수였다.
야마모토에게도 정여수의 말을 따르도록 말을 해 놓았는데, 본래 종사관 계급으로 군인 생활을 했던 정씨 어르신의 말을 야마모토도 존중할 것이고 또 그런 어르신의 경력 덕분에 군무까지 아우를 수 있든 대리자의 직함을 맡기기도 든든했다.
다만 옥현이 녀석이 정말 따라가지 못해 아쉬울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었다.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녀석은 학교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윤아를 옥현이 연모하고 있다는 것은 녀석의 사부인 나미에로부터 들었다.
나미에에게 여인의 마음을 얻는 방법까지 물어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미에는 일반적인 여인이 아니고 무사이자 검객이기 때문에 과연 그녀의 조언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는 주명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음, 의술을 배우는 게 좋다고 하긴 했으니. 왜인들의 검법을 배우는 걸 허락하긴 했네만 사람을 죽이는 그런 기술보단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배우는 게 훨씬 낫지."
다행히 좋은 쪽으로 오해를 해 주시는 정씨 어르신 덕분에 옥현이 감추고 싶었던 비밀을 까발릴까 말까 하는 고민은 접어둘 수 있었다.
하지만 궁금했던 건 아무리 반역에 엮여 평민 신분으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한때 양반이었던 어르신이 손자가 양반답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였다.
"옥현이는 동래 정씨 가문의 후예인데 중인들이 배우는 의술을 배운다는게 마음에 안 들지는 않으십니까?"
"자네가 만들어가는 녹둔도를 보며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나. 그리고 저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든 나는 지지하고 응원해줄 생각이네."
본인도 양반답지 않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대체 손자에게 무슨 이유를 들어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껄껄 웃는 어르신을 보며 주명은 저분의 이런 모습이 이 시대상에서는 참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포와 증기선이라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온 외세의 개항 요구에도 그저 귀를 닫고 척화와 쇄국만을 외쳤던 이들이 바로 수백년 후의 양반놈들인데, 이분은 나라를 위한다는 핑계로 고루한 신분질서를 지키고자 했던 개화기의 양반 새끼들과는 차원이 다르도록 진취적인 분이니까.
물끄러미 네척의 배가 정박해 있는 항구를 바라보던 어르신은 시선을 저 멀리 남쪽의 바다로 옮기며 말했다.
"자네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저 배들처럼 점점 더 나아가고 있네. 그 바뀌어가는 세상에서 옥현이가 한명의 어른으로서 훌륭히 살아갈 수 있으려면, 뒤쳐지지 않으려면 내 손자가 조선이라는 산골짜기에서 벗어나 저 바다로 함께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업는 노릇이지."
이번 항해에 포함되지 않은 옥현이 바다로 나간다는 말에서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변화된 세상이자 새로운 세상을 의미하는 새로운 시대를 말하는 것이겠지.
어르신은 주명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결국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보고 있었다.
조선이라는 하나의 봉건적 시대에서 아직은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인본(人本)적인 시대로.
신분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 세상에서 양반이고 유학자라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검객이나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더 손자에게 나은 삶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자네가 선장이라네."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의 말은 단순히 저기 네 척의 배들을 이끌고 간다는 의미에서 한 것이 아니었다.
주명을 바라보고 있는 옥현이 같은 녹둔도 사람들의 지도자라는 의미겠지.
주명이 이끄는 이 녹둔도라는 배는 주명이 나아가는 방향에 따라, 또 주명의 여정에 따라 운명이라는 이름의 항로가 결정될 것이니까.
"난 자네가 그리는 곳이, 자네가 향할 바다가 어떤 모습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네."
"..."
"하지만 부디, 부디 지금처럼 녹둔도 사람들이 웃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를 바랄 뿐이지."
버려진 땅이었던 녹둔도가 반년도 안되어 북방의 보석이 되었다.
눈물과 통곡, 절망과 비탄만이 가득했던 이곳이 이제는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는 사람들의 행복으로 충만하고 더욱 거대해져가고 있었다.
어르신은 태평양(太平洋)으로 나아가는 네척의 선단을 보며 녹둔도 사람들에게 정말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열어달라고, 그 시대를 손자가 살아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부탁은 주명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그걸 구현해 줄 것이란 강력한 신뢰에 기반해 있었다.
그 부탁을 하는 어르신의 눈에서는 한점의 두려움과 의심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마 녹둔모의 모든 이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 책임과 믿음의 무게를 묵직하게 느끼며 주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곤 저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 그리고 미래.
하늘아래 모든 것이 평평한 세상을 보니 그저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탈당하던 일송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늘을 다 담을 정도로 넓은 그 세상을 보니 과학이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재주가 있음에도 북방의 혹한과 야만성에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했을 윤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 멀리 넓게 펼쳐쳐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보며 과거의 영광들을 버리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옥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저 바다를 보게 해 줄 것이다.
'그 바다에서, 그 미래에서 일단 원숭이 새끼랑 늑대 새끼는 치워야 겠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도깨비 방망이를 들어 잡귀새끼들을 치워 줘야 태평성대가 오지 않겠는가?
물론 의주로 런(Run)한 선존놈과 고려천자 만력제 새끼도 까불면 얄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