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9화 (9/200)

9화: 식탁의 목적(4)

[장윤슬의 재능 '식신'이 발동합니다.]

재능?

발동?

익숙치 않은 단어들이다. 확실한 건 단 한 가지.

일상보단 게임 용어에 한 없이 가깝다는 것.

게임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뭔가 범상치 않게 느껴진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시지 창을 누른다.

[식신: 식사 시 주위 영역에 식음 욕구와 행복을 전파합니다!]

[유용하게 써주세용! Represented by 오누이]

"오누이는 또 뭐야..?"

처음엔 누군가의 장난 혹은 스팸 메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이 설명이 윤슬이를 중심으로 벌어진 현상황과 아주 닮아있단 걸 알 것이다.

특히 메시지 창엔 분명 내 동생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지금 단 한 번이라면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 기준으로 보면 이런 현상은 단 한 번이 아니었다.

식음 욕구는 둘 째치고, 윤슬이에게 음식을 직접 해주거나 먹일 때마다 내 행복이 불어났다.

동생이니까 그런 것 아닐까.

그런 단순한 문장으로 넘겨짚을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깨가 떨리며, 볼에 닭살이 돋는다.

주위를 둘러본다.

-  음! 크레페 먹으니까 되게 기분 좋아진다?

-  이거 엄마한테도 포장해갈까?

-  야, 가다가 다 떨어지겠다. 다음에 같이 들려서 사드려.

주변도 얼추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오누이라는 인간들이 나한테 보낸 메시지에 따르면 이 현상이 윤슬이 때문에 일어났다는 게 되는데.

보통의 일은 아니었다.

게임에서나 볼 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꼴이 된다.

"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윤슬이는 그저 크레페 먹기에 전념하고 있다.

어느새 크레페의 밑동까지 냠냠.

말랑한 볼에 생크림이 드문드문 묻어 더욱 무구해보인다.

동생의 푹신한 머리를 쓰다듬는다.

혹시 주위가 너무 소란스러워서 놀랐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만큼 많은 인파가 순식 간에 몰렸다.

아니, 솔직히 내가 진정하고 싶어서 그랬다.

이런 판타지적인 일이 눈 앞에서 일어났단 게, 심지어 내 동생과 관계돼있단 게 선뜻 받아들이기 버겁다.

"적어도 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긴 한데... 그치?"

"앗... 미아내. 옵바."

"응? 갑자기 뭐가."

"옵바랑 나너먹기로 핸는데... 윤스리가 다 머거써여."

아니 크레페 얘기가 아니잖아요, 아가씨!

"크흣..."

그래도 코웃음이 난다.

이것도 윤슬이의 능력 덕일까?

아마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윤슬이의 순진한 몇 마디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내 마음의 버거움마저 금세 가벼워진 것이다.

갑자기 믿을 수 없이 침착해졌다.

"이 메시지가 사실이면 뭐 어때서."

어차피 윤슬이는 내 동생이다.

그건 변함 없는 사실이고, 또 그 능력이 남한테 피해를 줄 만한 것도 아니다.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먹방 너튜버들처럼 식사를 함으로써 남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 단지 그걸 내가 '인지'했을 뿐이다.

[오누이]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렇게 생각하면 별로 큰 일도 아니네?"

어차피 윤슬이가 잘 먹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자, 자! 윤슬아 진정하자고."

"움? 진정?"

그래, 주현아 진정하자고.

그런데 침착히 생각해보자니 비교적 최근에 비일상적인 일이 몇 개인가 더 일어났던 것 같다.

요리.

원래 내가 요리를 못 하는 편은 아니다.

7년 동안 자취했으니, 제 나름의 실력은 갖췄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것 이상의 실력을 최근 몇 번 발휘했던 것만 같다.

가령 소면을 빡빡 씻어야 한다는 지식이나

토마토를 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익었는지 안다거나

또, 처음 생각해본 레시피를 그대로 뚝딱 만들어낸다거나.

원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명백히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오히려 그 지점이 더 소름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단서는 현재 없었고, 윤슬이에 관한 오누이의 메시지도 어느새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사라져있다.

우선 윤슬이를 무릎에 앉히고 잠시 주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  오늘 재고 마감 됐습니다. 뒤에 계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다음 번에 와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재고가 떨어졌다고 사장님께서 안내했고, 뒤의 손님들은 툴툴거리며 자리를 떠난다.

오늘 이 정도의 인파가 몰릴 줄은 모르셨겠지.

그런데 손님들의 이어지는 반응이 아까와는 조금 상반됐다.

-  아, 그러니까 줄 빨리 서자고 했잖아.

-  내가 일부러 늦었냐? 근데 이 크레페가 그렇게 맛있나... 왜 이렇게 줄을 많이 선데?

-  몰라. 근데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우리 단 것도 별로 안 좋아하잖아. 우리는 왜 줄 선 거냐?

-  네가 먹고 싶다며!

-  애기 먹는 게 귀여워서 그랬다! 왜!

득달 같이 달려들더니, 호평이 사그라든다.

그건 크레페를 다 먹은 사람들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그렇다.'

'적당히 맛있다.'

'그런데 줄 설 정도는 아니다.'

와 같은 반응들이 이어진다.

동생이 크레페를 이미 다 먹은 상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새 흩어지는 사람들이 크레페 가게 인근을 한산한 광장처럼 만든다.

나는 조심스레 크레페 트럭 쪽으로 다가간다.

"어... 아직 있었나요?"

"아, 네. 왠지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는가 싶어서 조금 구경하느라요."

"그러게요, 이런 일은 정말로 드문데. 무슨 일인지 저도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일인지 내가 사장님께 설명드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신경 쓰이지만 직접 겪고싶진 않았다.

사장님께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트럭 밑부분의 서랍에서 남은 딸기를 몇 개 꺼내 종이컵에 담아 건네주신다.

"동생이랑 나눠 먹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렇게까지 주시면 죄송스러운데."

"마싯겠다..."

윤슬이는 안 괜찮은 모양이다.

사장님은 인자하게 웃으시더니 나에게 컵을 들이민다. 떨어질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받아버렸고.

사장님은 손을 훽 빼어 점포 정리에 착수하시기에 다시 돌려드릴 수 없었다.

"윤슬이 잠깐 여기 앉아서 이거 딸기 먹고 있어! 오빠 저거 좀 도와드리고 올게."

"아움, 니예."

이미 딸기를 입에 담은 윤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쫄래쫄래 트럭 옆 벤치에 착석한다.

내가 사장님을 따라 트럭에 들어오자 슬쩍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신다.

"고맙네요."

"아뇨, 제가 더 감사하죠."

이 트럭을 알 수 없는 현상에 휘말리게 했다는 일말의 죄책감.

그리고 아무리 남은 재료라도 산뜻하게 건네주시는 인심 때문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또, 소규모 업장이라 정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오랜 알바 경험 덕인지.

아니면 내게도 윤슬이와 같은 신비한 무언가가 깃들었는지.

트럭 내부의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손은 빠릿하게 움직인다.

그런 날 보며 사장님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렇게 트럭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윤슬이가 딸기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어느 모녀의 대화.

-  엄마 오늘 딸기 사갖고 들어갈까?

-  넌 평소에 과일 잘 먹지도 않으면서 무슨 딸기니?

-  그냥 저 애기 먹는 거 보니까 나도 먹고 싶어져서.

-  으휴, 그럼 한 박스만 사갖고 가던지.

밖에서 뭘 먹일 땐 조심해야 되려나.

우리 동생이 소비 경제에 영향을 주겠는 걸?

"옵바...!"

"응?"

"다까주세여."

두두두두-

딸기를 다 먹은 동생이 내 쪽으로 달려와 볼따구와 손을 내민다. 크레페랑 딸기를 먹느라 손이랑 볼에 달다구리한 것들이 덕지덕지 묻은 것이다.

"후후후... 내가 그럴 줄 알고 다 준비를 해놨지요."

자켓 안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낸다.

이거 리얼 육아 꿀팁이다.

애들은 언제 어디다가 뭘 묻힐지 모르니까,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는 게 좋다.

이 정도면 육아 레벨이 조금 올랐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뒤를 돌자 크레페 사장님이 우릴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다.

"정리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뇨, 딸기 값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냥."

어차피 정리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됐으니 힘든 노동도 아니었다.

"윤슬이 감사하다고 해야지, 딸기 주신 거."

"고마씁니다! 잘 머거써여."

사장님은 동생의 볼을 슬며시 쓰다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장사... 할 거라고 했죠?"

"네, 아마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조만간 시작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혹시 귀따가운 잔소리일 수도 있지만 한 마디 첨언해도 되나요?

요즘은 이런 말하면 꼰대라구 싫어하나?"

"아휴, 전혀 아닙니다. 새겨들을 테니까 오히려 알려주실 수 있는 부분은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자상하고도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챙겨주는 사장님을 어찌 꼰대라 하겠는가.

선배님이지, 장사 선배님.

"일손은 워낙 싹싹한 것 같으네요. 예의도 참 바르고, 무슨 일 해도 성공할 사람일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근데 오래 장사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고 있나요?"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렇죠. 아직 장사 시작한 게 아니니까. 제 생각에 그건 같이 하는 겁니다."

"같이... 요?"

"네, 정확히 말하자면 외롭지 않은 게 중요해요.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든, 가족끼리 함께하든.

꼭 동료와 함께 하길 바랄게요. 그러면 조금 힘들더라도 웃으면서 할 수 있거든요. 내가..."

그 뒤론 말을 멈추셨다.

사장님은 그저 웃으며 손사레를 치셨고, 그 언어의 공백을 채울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멋대로 재생됐다.

-  내가 그랬거든요.

푸드트럭을 함께 정리하던 때가 떠올랐다.

홀로 채우기엔 넓고, 둘이 있기엔 조금 좁을 수도 있던. 그런 크기의 공간.

아내와 함께 채웠던 공간의 여백이 사장님껜 실제 넓이보다 더 넓고도 공허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후엔 사장님과 시덥잖은 대화를 서서 몇 마디 나누곤 헤어졌다.

'이 근처 오게 되면 그때 또 들리겠습니다.'

라는 기약 없는 인사를 남기며.

크레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니까 기분이 센치해졌고, 귀가길은 조금만 도로를 걸어다니자고 동생을 설득했다.

사실 설득이랄 것도 없이 윤슬이는 바깥 구경을 마냥 즐기며 좋다고 뛰어다녔지만.

"윤슬이는 나한테 행운인 건가."

앙증 맞은 손으로 내 검지와 중지를 꼭 잡은 윤슬이.

녀석한테는 들리지 않게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크레페 사장님의 말씀이 맞다면 유치원이 가기 싫다는 이유로 윤슬이가 가게에 머무는 일은 내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심적으로 말이다.

막연히 상상됐다.

홀로 채우기엔 넓은 사업장에 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일.

결코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면은 아니다.

외로울 것만 같다.

윤슬이를 힐끔 내려다봤다. 저녁의 도시를 비추는 형형색색의 간판들을 두리번거리며 관찰하는 중이다.

동생의 시선을 따라 나도 간판을 주욱 살폈다.

"요식업장이 엄청 많구나."

그것부터 보인다.

시야는 가치관을 따른다는 말이 이런 식으로 실감된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간판의 이름.

[식탁의 목적]

그 심상찮은 다섯 글자짜리 간판을 보고 난 윤슬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뜬금 없이 안아올리면 조금 불편해할 수 있으니까.

"동생, 오빠가 목마 태워줄까요?"

"움... 조아여!"

이번엔 제대로 생각하고 긍정한 거겠지?

행인들이 바쁘게 지나다니는 도심의 복판에서 윤슬이는 나보다 더 높은 시선으로 거리를 지긋이 관람했다.

식탁의 목적이라...

돌아가면 슬슬 식당 메뉴를 생각해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