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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0화 (10/200)

10화: 식탁의 목적(5)

읏.

숨 막혀.

살려줘.

아주 머지 않은 과거처럼 느껴지는 기억.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일.

죽일 듯이.

죽이고 싶은 듯이.

수마와 의식의 경계에서 이성의 끈을 놓쳐버린 나는 결코 삶의 의지를 주장할 수 없이.

그저 내 목을 조르는 여인을 사시만큼 불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건 엄마였다.

그리고 꿈결이었다.

"프헉! 윤슬아, 오빠 숨막혀 죽겠다."

"움... 응..."

서슬퍼런 눈빛의 레슬링 선수처럼 내 가슴팍을 음푹 끌어안은 장윤슬씨.

자다가 내 위로 슬쩍 기어올라온 것뿐이다.

가끔 이런다.

좋지 않은 꿈을 꾸다, 윤슬이의 천진하게 잠든 얼굴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동생이 잠버릇 탓에 내 위까지 올라와 그런 꿈을 꾸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묻어두자.

어차피 과거는 과거.

지금은 지금이니까.

이제 와서 질질 짤 일도 아니다.

[05:34]

"다시 자기도 애매하네."

보통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다. 그 부분에 관해선 조금 예민한 성미일지도.

안 일어나고 쭉- 자면 정말 오랫동안 잘 때도 있다. 그 덕에 17 ~ 19살 때엔 수면의 힘으로 키가 180까지 넘기는 기염을 토했는데.

이렇게 애매하게 깨버리면 다시 잠들기 힘들다는 게 내 개인적인 문제점이다.

"흐아아암... 졸리다."

그럼에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대로 누워봤자 어차피 못 잔다.

뒤척이면 윤슬이가 깰 수도 있으니 그냥 가만히 누워서 우리 동생 얼굴이나 감상해야지.

"나도 어렸을 땐 이렇게 귀여웠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된다.

우리 집안이 딴 건 몰라도 미모는 좋다.

흑갈색으로 어깨까지 늘어지는 고운 머릿결.

술떡처럼 말랑하면서도 탱글한 볼살.

강아지처럼 처진 눈.

누가 봐도 호감상이다.

혹시 인터넷에 윤슬이 사진이라도 떠돌게 되면

-  음,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군.

-  부탁이니 이대로만 자라다오.

같은 댓글이 달리게 될 것만 같다.

치가 떨린다.

"절대로 인터넷에 윤슬이 사진이 떠돌아다니게 두진 않아야겠구만."

너희 같은 놈팽이들에게 넘겨줄 동생은 없다!

창문 너머 은은히 내리는 푸른 새벽의 빛이 윤슬이의 얼굴에 들이친다.

몇 시간이고 줄곧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자신감이 든다.

"식신..."

그 [오누이]라는 작자들이 보낸 메시지는 십중팔구 사실이리라고

내 머리 속에선 이미 결론 지어졌다.

하지만 그보단 중요한 건 나의 '요리 실력'이다.

갑자기 요리의 실력이 늘어난 것이 그 오누이의 건으로 우연처럼 여기지 않게 되었다.

마침 그 기점이 떠오른다.

내 요리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느낀 그때.

'그래, 마침 안쪽에 주방도 있겠다. 우리 패밀리 밀로 만들어먹던 식재료도 얼마 있겠다.

요리 솜씨 한 번 보여줘. 네가 정말로 사업 한 번 뛰어들 정도 실력 되는지 안심은 시켜줘야 할 거 아냐?'

고깃집 사장님, 아니 호연 형님이 말씀을 꺼내는 바람에 만들게 된 토마토 계란 라면에서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 요리를 만들기 전, 묘한 현기증에 휩싸이면서 휴대폰이 줄곧 진동했던 것 같다.

이전엔 곧잘 없던 경험이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만약 그때도 오누이란 놈들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라면..."

나도 요리에 관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비현실적이지만 현상이 그렇다.

"마침 오늘이 직접 확인할 기회일지도."

오늘은 강씨 아저씨와 호연 형님을 집으로 초대해 몇 가지 음식을 맛보게 해줄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다보면, 뭔가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 든다.

**

[08:21]

동생 얼굴만 보고 있자하니 심심해서 핸드폰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우연히 아까 내가 멋대로 망상하던 것('이대로만 커다오'를 유도하는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실제로 발견했다.

그 덕에 내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고, 슬슬 일어나야 한다.

식객들을 맞이하려면 식재료를 준비하는 게 우선이니.

세상 모르고 곤히 잠든 윤슬이의 편안한 얼굴을 보니 깨우는 게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혼자서 냅두고 마트를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침밥도 같이 먹어야 하니까.

삼시 세끼 잘 챙겨먹어야 건강하게 자란다.

"윤슬이~ 이제 일어날까요?"

"우웅..."

"안 일어날 거야?"

"음, 아니에여."

"안 일어나면 같이 마트를 못 가는데?"

"우... 마트...!"

수마와 힘겨루기 하는 윤슬이.

눈을 꼬옥 감은 채로 손만 앞으로 나란히.

꽃잎 같은 손발을 휘휘 젓자 여린 바람이 인다.

잠에 약한 게 내 동생다워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쓰담쓰담.

베개보다 푹신해서 계속 이러고 있고 싶다.

"으으... 초코가 피료해.."

"초코가 필요해? 일어나려면?"

"네!"

"그럼 윤슬이 혼자 집 지키면 되겠다. 나는 마트 가서 맛있는 거 혼자서 먹구."

"앗, 아니에여.. 지금 일어나."

벌떡-!

일어나서 졸린 눈을 부비적거리는 윤슬이.

단순한 녀석.

벌써부터 오빠를 그렇게 휘두르려들면 안 돼요.

"동생, 초코 대신 아침으로 식빵 먹구 마트 갈까요?"

"식방?"

아직 식빵 구워준 적이 없던가.

뭔지 모르겠단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생.

"내가 땅콩 버터 발라서 맛있게 해줄게."

"조아!"

아마 땅콩 버터보단 '맛있게'란 단어에 좋다고 반응한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떤가.

윤슬이는 매일 같이 그랬던 것처럼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두두두- 달려간다.

세수하러 가는 것이다.

놀랍게도 혼자서 얼굴까지 씻으신다.

물기까진 완전히 닦아내지 못해서 수건질은 내가 해줘야하지만.

"저만한 애가 혼자 세수하는 게 어디냐."

내가 저 나이대에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서 이렇다할 비교 대상은 없다만.

적어도 난 대견스럽다고 생각해!

할머니랑 같이 자란 덕인지 탓인지 암튼 혼자서 뭘 자꾸 하려고 하고, 자립심이 강하다.

"옵바...!"

"네~."

"수건!"

"다 씻었어?"

화장실까지 가보니까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면서 윤슬이가 기다리고 있다.

드문드문 턱이나 귀밑에 거품끼가 묻어있다.

"오빠가 조금만 더 닦아줄게."

다시 세면대까지 데려가서 물로 한 번 더 헹군다.

으푸어푸.

가끔 이렇게 실수할 때도 있는 거지, 애니까.

동생을 씻기고 펜에 기름을 둘러 식빵을 굽는다.

한쪽 면이 금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옆에 준비해둔 접시에 세팅.

말랑했던 식빵이 바삭하게 올라오자 손으로 만져만봐도 식감이 상상된다.

냉장고에서 땅콩버터를 꺼내어 식빵의 갈색면에 펴바른다. 스윽- 스윽-

스패츌러와 빵이 마찰하는 소리가 ASMR처럼 귀를 기분 좋게 자극한다.

동생은 가만히 빵 굽는 걸 구경하다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옵바."

"으응?"

"그게 모야?"

"땅콩 버터?"

"아니야, 그거."

윤슬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 버터를 펴바르고 있는 도구 쪽이다.

"아, 이건 스패츌러."

"스... 스피, 스패치.. 스파츄..."

몇 번 발음하려고 시도하다 무리라는 걸 깨달은 모양. 입술을 마찰해 피- 소리를 내고 달려가서 식탁이나 피려나보다.

확실히 '스패츌러'가 발음이 어렵긴 하지. 아직 '오빠'도 발음 못해서 애매하게 '옵바'라고 부르는 애인데.

응? 잠깐만.

"뭐냐... 왜 나는 스패츌러라는 명사를 알고 있는 거지?"

지금까진 그냥 '빵에 잼 바르는 거'나 '식사용 나이프 비슷한 거'라고 부르며 어물쩡 넘어갔던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미간이 좁아졌지만 그 이유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일전의 토마토 라면 때와 똑같은 경우라고 보면 되겠지.

"참 알수록 신기하구먼."

-  그냥 신비한 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그런 문장으로 퉁치기엔 이미 나의 의식 깊은 곳까지 알 수 없는 힘이 스민 듯하다.

주의 깊게 살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나쁘게 생각되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의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으휴, 깊게 생각해봤자 뭐하냐. 윤슬아~ 빵 먹자."

"움!"

동생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이 이미 식탁을 펴두었다며 가슴팍을 내민다. 어딘가 우쭐대는 듯한 얼굴. 두 눈은 초롱하면서도 새초롬한 입술.

팡팡!

상까지 두 손으로 두드리는 꼴이 잘했다고 칭찬해달라는 것 같다.

"아구, 윤슬이가 상까지 다 펴놨구나? 잘했네."

"윤스리가 해써."

"그치, 윤슬이가 했어요. 잘했어 잘했어. 같이 빵 맛있게 먹자."

접시를 식탁에 내려두자마자 빵 하나를 낚아채 입에 무는 동생. 바삭!

오물거리며 먹는 걸 보기만 해도 가슴이 간질거린다.

네가 내 동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의 능력 때문일까.

잡생각까지 집어삼키고자 나도 동생 따라 빵을 한 입 베어문다. 바사삭-

한쪽면만 바삭하게 익은 식빵의 양면적 식감.

익지 않은 면은 말랑하고 그 반대는 타격감 있게 입 안에서 부스러진다.

그러면서도 입에 감기는 땅콩 버터의 찰기.

식빵의 잔열에 녹아흐르면서도 본래의 진득함은 꽤 남아있다. 이에 감기는 모양이 부드럽다.

아침엔 밥도 좋지만 가끔씩 이렇게 빵을 먹는 것도 삶이 윤택해지는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윤슬이와 함께 먹으니 식사의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진 것 같다.

게눈 감추듯 빵은 식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윤슬이 이제 외출 준비해야지... 근데 그 전에."

"움?"

순진한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동생.

물티슈를 꺼내 윤슬이 입가를 문질러 닦는다.

불찰이다.

빵가루랑 버터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늦게 씻기는 건데.

윤슬이는 물티슈로 얼굴을 다 닦고서야 저번에 구매했던 레이싱 자켓을 기분 좋게 걸친다.

입꼬리는 명백히 호형을 그리며 발걸음도 가벼워보인다.

"사주길 잘했네."

조금 어벙벙하게 큰 사이즈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귀엽다.

"옵바! 가여."

윤슬이는 마트가 기대되는지 현관 쪽에서 나를 목 빼어 기다린다.

웃음이 난다.

마트까지 가는 길, 윤슬이는 줄곧

스파치

스파츄

스패챠?

라고 발음하며 '스패츌러'가 신경 쓰이는 듯해보였고.

난 그 모습을 힐끗대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마트에 도착해선 여지껏 보던 것과 전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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