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우리 집에 왜 왔니?(3)
송주현은 달님이의 말을 듣고 그제야 납득했다.
아까 송지아와 권수영을 위해 돼지김치말이찜을 요리할 때
남는 시간 짬을 활용해 슬쩍 들여다본 오누이 타이쿤. 그곳엔 이렇게 표시돼있었다.
[요리의 길(LV. 3)- 숙련도 80%]
[숙련도 100% 달성 시 다음 단계로 레벨업합니다.]
'매일 같이 요리를 했으니 숙련도가 오를만도 하지. 근데 레벨이 올라가면 뭐가 좋은 거야?'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달님이의 설명을 듣고 지금 막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달님: 오? 지금 확인했는데, 오늘 우수 고객을 하나 더 모으셨네요. 축하드려요!]
[송주현: 응, 다행히 우리 식당 요리를 좋아해주더라고.]
[달님: 손맛에 반한 모양이군요.]
[송주현: 수영이는 그런 것 같애, 자주 오는 다른 손님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달님: 기세가 좋은 것 같네요. 이대로라면 분명 지명도 레벨 2까지도 금방 달성하겠어요!]
[송주현: 지명도 레벨?]
[달님: 뭔지 모르시죠? 아직 때가 안 된 것 같아서 설명은 제대로 안 드렸습니다만.
이런 기세로 손님들을 쭉 모을 수만 있다면 지금부터 말씀 드리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송주현: 뭔데 그래?]
[달님: 음, 지명도란 간단히 말해서 손님들 개개인 만족도의 총합입니다.]
[송주현: 그럼 우수 고객이나 단골을 늘릴수록 지명도가 오르겠네.]
[달님: 그렇죠. 그 수치가 올라서 지명도 레벨이 오르면 손님 유입이 점점 늘어날 겁니다. 이 가게 덕분에 인근 상권의 유동 인구가 조금씩이나마 증가할 정도로요.
수익 폭증! 가게 확장!도 꿈이 아니라는 얘기죠.]
[송주현: 그래... 그건 뭐 천천히 생각해볼게.]
대충 궁금한 건 다 알려줬으려나.
싶던 달님이는 양팔을 벌려 동적 스트레칭을 실시한다. 팽창한 대흉근을 옆으로 늘여주며 자극을 지속해가는 것이다.
이러면 근성장과 회복, 양쪽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메시지가 끊겼는가 싶어 다시 운동 기구 쪽으로 돌아가려 하니 다시 한 번 연락망이 울린다.
빨리 벤치 남은 2세트 더 쳐야하는데 말이다.
"이번엔 또 뭐죠..."
메시지를 보고 흠칫 어깨를 떤다.
[송주현: 윤슬이가 그러던데, 너희 엄청 몸이 좋다는데?]
[달님: 음...]
[송주현: 부정하지는 않는구나?]
[달님: 크흠, 늘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저희 남매는요.]
[송주현: 너희가 운동을 열심히 할 이유가 뭐가 있는데?]
[달님: 그야 동앗줄을 타고 다녀야 하니까 그렇죠. 체력을 얼마나 많이 소모하는데요.]
[송주현: 응, 그래 알겠다.]
송주현은 더 묻고 싶지 않아졌다.
타이쿤 어플에서 재빠르게 접속 해제했다.
두뇌 속에서 확실하게 정리됐다.
오누이는 컨셉에 미친 놈들이라고.
"호랑이랑 직접 싸웠어도 얘들이 이기지 않았을까? 그건 좀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어진 송주현의 시선은 동생에게 향했다. 버스에 앉아서도 산만하지 않고, 얌전히 있던 것이다.
옆을 보니까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수를 세고 있다. 표정은 비장하다.
"윤슬이, 숫자 몇이야 지금?"
"942... 943..."
다섯 살이 이 정도까지 수를 셀 수 있다면 천재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장윤슬이 열심히 수를 세고 있는 이유를 떠올려보면 웃픈 상황이었다.
방금 핸드폰에 띄워진 배경화면을 보고 자극 받은 것이다. 초콜렛이 묻은 얼굴이 고스란히 찍혀있으니 말이다.
"흐음... 조만간 배경화면을 바꾸는 게 나으려나."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동생이 열심히 수를 세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당분간은 이대로 냅둬야겠다고 마음 먹는 송주현이었다.
**
"어제 저녁이랑은 아예 딴 판이네."
돼지말이김치찜을 시험 삼아 준비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 저녁은 손님이 적었다.
점심만 하더라도 평상시만큼은 들어오셨다.
허나 저녁이 되니 유독 주변이 한산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마침 윤슬이도 브레이크 타임부터 지금까지 쭉 낮잠을 자는 중이다.
그 시간대에 낮잠을 자는 일은 종종 있으나, 현재 시각 저녁 일곱시.
기절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래 수면 중이다.
'으어어... 햇니미 그뉵...'
이라고 잠꼬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장사따위 때려치고 병원에 데려갔을 수도 있다.
윤슬이 자는 얼굴을 괜히 한 번 쿡 찔러보곤 스마트폰이나 좀 만지려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 오우! 사장님! 저희 왔어요.
- 오랜만입니다.
몇 주 지난 시점이었지만 워낙 첫인상이 강렬해서, 누구인지 곧바로 기억 났다.
"아! 개업날 들려주셨던 부부 손님."
- 정답!
여전히 아내분은 활달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시고, 남편분은 다소 점잖으시다. 다시 봐도 대학생 커플로 착각할 정도로 젊은 외모다.
오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으시더니 아내분이 먼저 내게 말을 붙인다.
- 사장님, 오늘 장사 어때요?
"아... 오늘따라 손님이 좀 적네요. 유독 저녁에만요. 점심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 저런 저런, 그럴 줄 알고 저희가 와드린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 여보, 그렇게 말하면 당황하시지.
- 왜 그래, 나름 유익한 정보인데. 이 정도 전조는 깔아도 괜찮아! 그쵸 사장님?
"정보요? 오늘 혹시 무슨 날인가요? 집에서 밥 먹기로 사회적으로 약속한 날이라던가."
내 말을 듣고 아내분이 걸걸 웃기 시작한다.
산적을 연상케 한다.
- 무슨 드립이래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진지하게 물어본 거였는데.
- 옆동네에서 마라톤 있거든요. 그거 보려고 아마 우리 동네 사람들도 얼마 빠진 것 같더라고요.
"아... 마라톤."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기억을 거슬러보니 어제 가스 버너를 사러갈 때, 어느 언론사에서 마라톤을 개최한다고 광고하는 문구를 봤던 것 같다.
어차피 점심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이 이 근처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이다.
그러니 점심만큼은 손님이 줄지 않았던 것 같다.
허나 저녁의 경우 인근 주민이나 외식을 하러 굳이 길을 나선 이들이 많다.
근처에 행사가 있었더라면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연예인 여럿 참가한다고, 거기 현수막에 걸려있던 것 같기도 한데... 아이돌들도 온다던가?"
- 맞아요! 그 사람들 보려고 몰리는 거죠.
"이 시간대면 마라톤 끝났을 텐데. 그냥 그쪽에서 식사까지 하고 집에 들어갈 생각인가보네요, 다들."
- 아무래도 그렇죠? 꽤 번화가 쪽이니까, 맛집도 많거든요.
이런 경우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겨야지.
- 대신 저희가 맛있게 먹어드릴 게요! 지금 엄청 배고파요.
- 저번에 먹었던 거 맛있던데. 한 번 더 주문할까, 여보?
- 아니, 자기 오늘은 딴 거 먹어보자.
아내분의 딴 거 먹어보자는 말이 기회처럼 들렸다.
"그럼 새로운 메뉴 시험 중인 거 있는데 그거 드셔보실래요?"
- 음... 저번에 먹었을 때 기억이 괜찮았어서 좋을 것 같긴 한데. 메뉴 뭔데요?
"간장고기국수요."
- 고기는 다진 거?
"다진 고기입니다."
- 간은 어때요?
"달고 짠 맛이요. 위에 어린 잎 몇 개 덜어서 건강까지 잡았습니다."
- 미쳤다. 자기, 나 사장님한테 영업 당했어. 간장국수 먹어야겠다.
- 나도... 마침 담백한 거 먹고 싶었는데 잘 됐다. 사장님 2그릇 주문 가능할까요?
"당장 준비해드릴게요."
주방으로 들어오자 아직도 새근새근 자고 있다.
넓지 않은 주방공간에 의자를 두 개 붙여 잠든 동생을 수납해두었다.
마침 홀 쪽에서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 사장님, 근데 동생 어디 갔어요?
"지금 주방에서 자고 있습니다."
- 아항... 흐흐, 듣기만 해도 귀엽네.
아내분 붙임성이 참 좋으시다.
팬을 화구에 데우고 그 위에 다진 고기를 붓는다.
다진 고기에 두른 참기름과 설탕, 간장이 불 위에서 이쁘게 버무려진다.
"다진 고기는 금방 익으니까, 참기름 섞어서 구워도 되거든."
참기름은 발연점이 낮아 보통 마지막에 향을 첨가하느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헌데 이런 식으로 다진 고기 등을 볶을 때 사용하면 그 고소한 향이 배가 된다.
물론 타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치르르륵-
약불이지만 연기가 솔솔 오르며 고기가 익어간다.
- 와! 벌써 맛있는 향 난다. 미친 거 아냐?
- 여보... 좀 진정할까? 침 떨어진다.
참기름 향이 오픈형 주방의 바깥으로 새자 즉각적으로 반응이 온다.
약간 산만하지만 침착히 요리를 이어간다.
소면을 끓는 물에 삶고, 동시에 버무릴 간장을 준비.
간장 소스에는 설탕과 올리고당을 넣어 농도를 잡는다. 조금 찐득하게 소스가 늘어져야 잘 버무려지기도 하고, 먹었을 때 맛이 진하다.
다진 마늘과 후춧가루를 섞어 킥을 주고, 여기에도 참기름을 조금 섞어주자.
"향부터 꼬소하다."
잔 전분을 씻어낼 정도로 잘 씻은 소면과 간장 소스 그리고 갈색으로 익은 다진 쇠고기를 섞는다.
벌써 맛있어보인다.
"근데, 이렇게 손님 상에 내면 너무 없어보이니까."
미리 공수해둔 어린 잎을 위에 이쁘게 쌓아올린다.
안 그래도 그릇에 말아올려진 소면의 모습이 고운 모래성 같았는데, 그 위에 이파리가 오른다.
보는 맛이 살아난다.
"이렇게 하면 식감도 더 살고, 기름 맛도 잡아준다는 말이지."
어느새 두 그릇 뚝딱 완성이다.
어제는 조금 오래 걸리는 메뉴를 준비하다보니 신경 쓸 부분이 많아졌기에 오늘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봤다.
간단하다고 해서 맛까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쟁반에 걸친 국수를 들고 가자 부부가 작은 박수로 환영해준다.
다른 손님들도 없으니, 리액션이 또래 친구나 친척 같아서 마음이 따듯해진다.
- 와, 비주얼 봐.
- 여보, 빨리 사진 찍어.
남편분은 두 손을 공손히 무릎에 모으고 아내분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계신다.
이런 게 부부라는 걸까?
사소한 부분에서도 서로를 알아주고, 기다려주고, 배려하는 것.
"전부터 생각했는데, 사이가 진짜 좋으시네요."
- 저희요? 그럼요!
아내분이 능글맞게 대답하며 맞은 편에 있는 남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오히려 남편분이 내 눈치가 보이는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 아아, 여보 마실 물을 안 떠왔네. 사장님, 물 한 잔만 뜰게요.
"물은 백 잔 뜨셔도 돼요."
굳이 식당에서 물 뜨는 것에 양해를 구하는 저 태도.
아내분에 비해 남편분은 소심한 편인 것 같다.
그때였다.
주방에서 꼬맹이 하나가 주춤주춤 걸어나온다.
잠에 취한 듯 보인다.
"으으웅... 윤스리 인나써."
라며 작은 몸을 폭 기대어드는데.
그 대상은 내가 아니다.
- 아...
물을 뜨러간 남편분의 허벅지에 기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색의 청바지를 입은 까닭에 헷갈린 듯하다.
평소와 만져지는 다리의 촉감이 다르단 걸 인지한 윤슬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확인한다.
눈이 마주치고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에 맴돈다.
동생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표정이 심각해진다.
"헤... 헷갈려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