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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47화 (47/200)

47화: 레종 데트르(2)

월세 얘기가 나오자 상가 주인은 너털웃음을 치며 얼버무린다.

"혹시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  그러시죠.

무얼 물어보려는지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다.

"저희 가게에 월세 깎아주신 이유가 뭔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신경 쓰여서요."

-  호연 형님 말씀이니까 그렇게 한 거죠.

단순하고 명료한 답변.

그러나 그 대답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상가의 월세 문제는 결국 저분에겐 자본을 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장사를 하듯 말이다.

못해도 30대 후반처럼 보이는 남자가 친척 형의 말을 듣고 월세를 낮춘다는 것은 간단히 납득하긴 어렵다.

본인이 답하고도 걸리는 구석이 있는지, 상가 주인은 잠깐 시선을 회피한다.

굳이 답하고 싶지 않은, 그 이유를 파고드는 것 역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

지난 번에도 그랬듯이 그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그렇게 짐작하고 넘어가는 것이 어른스런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가요."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저씨, 아저씨."

-  응?

"호여니 삼촌이랑 사이 조아여?"

-  그럼, 사이 좋지. 같이 오래 일하기도 했으니까.

"가치?"

-  응, 아저씨랑 그 삼촌이랑 같이 일했던 적 있어. 꽤 오래.

그 얘기는 또 처음 듣는다.

하지만 호연 형님이랑 일하셨다고 하면.

"호연 형님은 거의 20대때부터 식당에서만 일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  맞아요, 저도 형님 가게에서 일했어요.

"아아! 그러셨구나."

-  바빠 죽는 줄 알았는데 진짜. 가게 브레이크 타임도 없었던 거 알아요? 그땐 그런 개념도 잘 없었죠.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니까요.

그리고는 흘끔- 본인 앞에 놓인 밥그릇을 쳐다본다.

제육 소스와 밥풀이 듬성이 묻어있다.

-  개밥마냥 한꺼번에 비벼먹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되게 우습기도 한데.

"저도 거기서 일했던 거 아세요?"

-  네, 들었어요. 형님이 그동안 뽑았던 알바 중에 제일 아끼는 친구라고, 그렇게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호연 형님이 저한테 되게 잘해주셨어요."

-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그랬을 거예요. 옛날부터 일 잘하는 친구들은 꼬박 이뻐했으니까.

우리 두 사람은 호연 형님이 서로를 소개하기 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니까 저분은 내가 그 가게, <빨간 돼지>로 들어가기 훨씬 이전에 일하셨던 듯하다.

추억에 잠긴 듯 잠시 입을 닫는다.

그러더니 시계를 확인한다.

두 시 반이다.

-  아차, 브레이크 타임 됐네요. 빨리 계산하고 나갈게요.

"아뇨 아뇨, 계산은 됐습니다."

-  네?

"저번에 그렇게 약속했잖아요. 가게 오시면 밥 한 번 대접해드리기로. 월세도 깎아주시는데, 식사 대접해드리는 정도면 남는 장사죠."

-  왜 형님이 그렇게 칭찬하는지 알 것도 같네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지갑을 꺼내어 윤슬이 쪽으로 가신다.

붕붕이 3호의 운전 패널을 정비 중이던 윤슬이.

정비라고 해봤자 버튼을 만지작거리거나 옷 소매로 닦아내는 정도지만.

누군가 곁으로 다가오는 걸 몰랐는지 화들짝 놀라면서 한 마디.

"앗! 암호를 보진 못했게찌?! 들키므는 안 대는데!"

운전 패널을 필사적으로 가린다.

저 20만원짜리 유아용 전동차에 도대체 어떤 암호가 있다는 걸까.

이쯤 되면 저 총잡이의 정신세계를 해체 분석 해보고싶다.

-  못 봤으니까 안심해. 이거나 받어.

멀리서 봐도 초록색이다.

세종대왕님의 얼굴이 찔끔 보인다.

윤슬이 손에 꼭 쥐어주신다.

-  이건 밥 값 아니고, 아까 윤슬이가 사이다 가져다주길래 팁 주는 겁니다.

"오오...! 옵바, 윤스리 돈 버러써!"

이젠 붕붕이 3호의 안위따위는 아무래도 좋은지 내게 도도도- 하고 달려와 만 원짜리 지폐를 들이민다.

"그러면 그거 윤슬이 주머니에 잘 넣어놓을까요? 그걸로 초코 사먹으면 되겠지?"

-  그러믄 대겠따!

좋아서 방방 뛰는 윤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가 주인에게 작게 목례했다.

그러자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입 모양으로

'뺏. 으. 면. 안. 됩. 니. 다.'

라고 하시는 것 같다.

아무렴 이 총잡이의 돈을 빼앗았다간 쌍권총에 치명적인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바쁘지 않으시면 모처럼이니까 앉아서 얘기나 좀 하다 가시죠."

-  그럼 그럴까요?

윤슬이 덕분에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아무 얘기도 못 듣고, 그냥 보낼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아까에 비해 입가도 풀어진 듯 보인다.

"저거 윤스리가 할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슬씨."

"걱쩡 마시오."

빈 그릇을 가리키는 윤슬이.

상가 주인분이 다 비우신 그릇을 본인이 싱크대에 갖다놓고 싶다는 것이다.

테이블에서 내려서 손에 얹어주자 "힝~ 힝~"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용돈을 받아서 신난 게 틀림 없다.

-  일을 많이 도와주네요? 아직 어린데.

"나서서 많이 도와주려고 해요. 저 혼자 하면 힘들까봐 걱정된다면서."

발판을 밟고 올라 싱크대에 접시를 내려놓는 윤슬이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본다.

물을 틀어 접시를 잠기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렇게 하지 않으면 밥풀과 양념이 바닥에 말라붙어 설거지 할 때 힘들다.

그 사실을 저번에 알려줬더니 확실히 기억했다며, 먹고 난 그릇엔 빠짐 없이 물을 채워둔다.

점점 야무진 5세가 되어가는 중이다.

컵에 남아있던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가시는 상가 주인분.

탄산 때문에 눈썹을 살짝 찡그러더니 운을 뗀다.

쉽지 않던 삶에 대해.

과거를 반추하듯.

-  군 전역하고, 서울 오기 전까지는 촌놈이었습니다.

늦게라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권 대학을 목표로 두었기에 서울을 목전에 두어야겠다고 결심했다나.

-  그런데 촌놈이 돈이나 제대로 있었겠어요?

굶어죽을 뻔했다고.

농담처럼 웃으며 말하시지만 그 당시엔 심각했을 것이다. 요즘만 하더라도 진학을 위해 서울을 상경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고통 받고 있다고 하더라.

집값이든 물가든 비싼 수도권이니 말이다.

십 몇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겠지.

-  그때 저한테 손 뻗어주신 게 형님이에요. 5평 정도였던 것 같네요. 그때 형님 사시던 월세 옥탑방 있었는데, 거기 얹혀살게 해주셨죠. 일자리도 구해주시고.

"그때 구해주셨다는 일자리가."

-  빨간 돼지요.

친척이라고 하더라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좁은 집을 공유하는 일이.

하물며 본인 업장이라지만 선뜻 알바 자리에 넣어준 것도 감사한 일이었을 것이다.

-  몸은 힘들었죠, 아무래도. 수능 공부도 빡센데 식당 일도 해야하니까.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제가 울상일 때마다 형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살면 살아진다. 그니깐 포기하지 말아라... 맞나요?"

-  요즘도 자주 하시나보네요. 그 말.

언뜻 들으면 오그라들기도 한다.

하지만 의미를 곱씹으면 잔뼈가 굵게 느껴지는 말씀이다.

"저도 가게 나온지 쫌 돼서요. 저 있을 때는 알바생들 일하는 거 힘들어 죽겠다고 울상일 때, 농담 반으로 말하셨는데."

-  그랬나요? 그 형 성격 상 멋있는 대사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럴 수도 있구요."

그 오그라들면서도, 멋있는 대사의 출처를 아직 이분께는 공개하지 않은 것 같다.

가족이기 때문일까.

-  어쨌든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형님 덕분에 여러 모로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형님이 아끼는 동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주현씨가. 그래서 그런 거죠, 월세요.

그렇게 됐던 거구나.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상가 주인 입장도 이해됐다.

"호여니 삼쵸니 조은 사람?"

어느새 그릇을 가져다두고 의자에 앉아있던 윤슬이가 입을 연다.

나를 올려다보며 두 눈을 깜빡인다.

대략적으로나마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한 것 같다.

-  그렇지. 좋은 분이지.

"그러믄 담에 올 때두 총으루 싸야겠따."

빵- 빠방- 빵!

"윤슬이, 방금 너 입으로 좋은 사람이라면서 왜 쏜다고 그래?"

"윤스리 갑자기 악땅하기루 해써."

후후후- 인위적인 웃음소리를 내며 사악한 표정을 짓는다. 악당으로 취향이 바뀌셨단다.

그런 윤슬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상가 주인분.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  월세 깎아드리는 거, 부담 갖진 마세요. 어차피 저도 받은 만큼 갚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밥도 얻어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럼요. 배고파지면 오세요. 한 그릇 차려드릴 테니까."

-  달에 한 번은 들릴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문제 없습니다."

"또 와여! 아저씨!"

윤슬이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크게 흔들자 그에 답하듯 작게 손을 흔들어주신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응대 서비스에 감동합니다.]

[상가 주인: 식당 만족도가 12%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32%]

우우웅-

그때였다.

상가 주인분의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크게 진동한다. 꺼내어 화면을 확인한다.

그리고 살며시 미소 짓는다.

-  귀가 가려웠나? 마침 본인이 타이밍 맞춰서 전화를 거네요.

우리 쪽으로 발신자를 보여주신다.

[진호연]

담백하게 이름 석자로만 저장돼있다.

-  여기서 전화 받아볼까요?

"네 그러셔도 돼요."

화면을 눌러 전화를 받는다.

-  네, 형님. 지금 마침 주현씨 쪽 가게에 있는데.

호연 형님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미약하게 들려온다.

어떤 내용으로 말씀하시는지는 알 수 없는데, 이상하게 말이 길어진다.

목소리에도 팽팽한 끈처럼 긴장감이 돈다.

네.

네.

아, 네.

그럼 지금 가야 되겠네요.

아뇨, 지금 갈 수 있어요.

네.

네.

옷 갈아입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그럼.

통화를 마친 상가 주인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입술을 짓씹는 게 안 좋은 일로 전화가 온 것은 분명했다.

-  실례했습니다. 일이 생겨서 빨리 가봐야할 것 같네요.

"그럼 들어가보세요. 다음에 시간 될 때 또 들리시구요."

-  네, 다음에 봽죠.

들어올 때에 비해 훨씬 경직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가게 밖으로 나가자 서두르기 시작했다.

턱턱턱!

구두굽이 바닥과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잉? 모지?"

윤슬이가 보기에도 급하게 움직이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중요한 일인 것 같았지만 그야 말로 남의 집 사정이었다.

"윤슬아, 오빠랑 같이 붕붕이 타러 갈까?"

"응! 산책!"

"그러면 그 전에 윤슬이가 어떻게 해야 돼죠?"

"움... 옵바 도와서 조물조물."

"정답. 같이 금방 조물조물 하고 나서 놀러나가자?"

"조아여!"

그렇게 저녁 장사 준비를 마치고, 윤슬이와 성북천을 거닐던 도중 문자가 한통 날라왔다.

호연 형님이었다.

"그랬구나."

상가 주인분이 왜 그렇게 급하게 나가셨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후 8시쯤.

호연 형님이 가게로 오셨다.

평소보다 격식 있는 복장으로.

평소 같았으면 청바지에 맨투맨 혹은 반팔을 입고 다니시는데, 오늘은 단정한 셔츠를 입고 계신다.

"호여니 삼촌."

"윤슬이가 삼촌 이름 기억해준 거야?"

"응! 윤스리가 기억해써."

양 손을 들고 권총을 쏠 준비하다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가 자세를 바꿔 바닥에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 입으로

우다다다다다다다-

소리를 낸다.

몸이 반동으로 격렬하게 흔들리며 어떤 손잡이를 잡은 듯 허공에서 무언가를 강하게 쥐고 있다.

"게, 게틀링건?"

군필인 호연 형님은 바로 의도를 이해했는지, 적극적으로 맞는 척하는 연기에 돌입한다.

어깨, 허리, 골반, 무릎이 탈골이라도 한 듯 센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달달달달- 떨린다.

"브아아아, 아아아아악!!"

현실감을 몰고 오는 연기였다.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전장의 한 가운데를 방불케 하는 현장감이었는데.

문제는 식당에 우리 세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옆에서 다른 손님들이 애써 외면하는 게 눈에 띤다.

씹던 음식물을 뿜어내기 직전이다.

"크흠-"

내가 헛기침하며 눈치를 주자 그제야 호연 형님도 곁눈질을 하더니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자유자재로 돌아가던 관절의 속도를 늦추다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근육을 푸는 척한다.

"나이를 먹으니까 몸이 찌뿌둥하네. 주현아! 너도 나이 들면 몸 굳으니까 미리미리 유연성 길러놔라."

"방금 보니까 유연하시던데요? 골반이 180도 돌아가던데."

"내가 문어냐고."

"문어는 아니고, 스턴트맨 같더라고요."

'한 번만 넘어가주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와 작게 귓속말 한다. 윤슬이랑 놀아주다가 그런 일이니 이쯤에서 넘어가드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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