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영보스의 오른팔은 6살입니다(3)
- 아들~ 오빠가 아니라 형아라고 해야지.
- 형아? 옵바?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민이. 윤슬이에게 보내는 의문의 시선. 내 호칭에 대해 윤슬이에게 묻는 듯하다.
"옵바."
- 응, 옵바.
두 아이는 서로를 보며 끄덕거린다.
- 옵바!
유민이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확인시켜준다. 심지어 손가락 끝엔 내가 있었으니 확정이다.
나는 유민이에게도 '옵바'가 되어버렸다.
그걸 보고는 미정 쌤은 쿡쿡거리다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 그래, 오빠든 형이든 할아버지든 집사든 뭔 상관이냐. 그냥 오빠라고 불러라.
"제 의견도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 네 의견은 어쩔 수 없지. 내 아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는데.
"그런가요."
아무래도 좋긴 하다.
유민이에게도 '오빠'나 '형아' 등의 기본적인 호칭 개념은 있을 것이다. 유치원도 다닐 테고 무엇보다 교직 생활을 하시는 분의 아들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옵바'라고 호칭을 굳힌 것은 아마 윤슬이와 호칭을 통일하기 위해서 아닐까?
두 아이는 지금 막 친구가 되기로 한 상태이니 말이다. 내 호칭을 통일함으로써 작은 소속감과 동질감을 얻으려 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귀엽기도 하고, 허락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윤슬이와 유민이가 떠드는 것을 한참 구경하다가 선생님은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긴다.
- 제육은 어제 먹어서 오늘은 가지튀김 먹어야 되려나. 근데 유민이는 가지 싫어하는데.
"오늘의 메뉴도 있어요."
- 오늘의 메뉴?
"매일 바뀌는 메뉴인데. 오늘은 토마토 소스 얹은 미트볼이에요."
- 미트볼? 유민이가 되게 좋아하겠다. 음... 그럼 가지 튀김이랑 미트볼 하나씩 주문할게.
"접수했습니다."
미리 뭉쳐둔 미트볼을 꺼내어 요리하려는데, 윤슬이가 말하는 것이 들려온다.
"가지두 마시쓰니까 꼭 머거."
- 가지 시른데.
"옵바가 만들므는 마시써. 윤스리두 별루 안 조아핸는데. 옵바가 만드는 거는 마시써."
- 옵바가 만들면 마시써?
"응."
- 그러믄 옵바 믿구 머거볼게.
자꾸 멀리에서 나를 지칭하며 옵바옵바 거리니까 가슴팍이 근질거린다.
요리에 집중하기 위해 고개를 두어번 젓는다.
볶아둔 양파와 당근을 다진 고기에 뭉쳐 미트볼을 만들어두었다. 손으로 일일이 하느라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윤슬이와 같이 만들었기에 즐거웠다.
밑간이 된 채로 소스에 졸여지는 미트볼. 적갈색으로 달아오른다.
평소에 가지 튀김에 사용하는 칠리 소스도 있지만 미트볼의 소스는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
식초를 조금 첨가해 신 맛을 넣었다.
오늘은 신 맛이 인기라며 [요리사의 촉]이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소스에 산미가 있는 것은 의외로 맛의 밸런스를 잘 잡아준다. 특히 육류에 곁들이는 소스라면, 지방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에 더욱 그렇다.
"미트볼이랑 가지 튀김 나왔습니다."
미정 쌤이 앉아계신 바 테이블 위에 가로로 하나씩 올려드린다. 내 목소리를 듣더니 유민이가 반응하여 다시 제 엄마의 곁으로 다가온다.
- 유민이 밥 먹자.
- 응.
유민이를 따라서 윤슬이도 옆에 왔는데 그걸 보더니 미정 선생님은 미소를 숨기지 못하며, 유민이 옆쪽 의자에 윤슬이를 같이 앉힌다.
혹여 뜨거울까 호호- 불어 유민이한테 반으로 자른 미트볼을 먹이자 오물오물하고 받아먹는다.
- 우무... 마시따! 엄마두 머거바.
- 알았어, 엄마도 먹어볼게.
선생님은 엄마 미소를 짓더니 남은 반쪽의 미트볼을 입에 넣곤 고개를 수차례 끄덕인다.
- 주현아, 최고다. 안에 양파랑 당근이 들어가있어서 고기 먹는데도 부담이 없네.
"전 원래 최고에요."
"옵바는 얼래 체고에여."
모자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진행했다.
도중에 유민이가 가지 튀김을 향해 불온한 시선을 보냈으나 미정 쌤보다 윤슬이가 먼저 한 번 먹어보라며 권유했다.
"옵바가 만드는 가지는 마시써. 꼭 머거바."
엄마인 미정 선생님은 외려 권유할 생각이 없던 것 같은데, 윤슬이의 말을 듣더니 먹어볼 마음이 생긴 유민이였다.
굳은 결심을 갖춘 듯 턱에 힘을 주더니 눈을 딱 감고 소스가 듬뿍 묻은 가지 튀김을 베어물었다.
그리곤 눈을 반짝 빛내며 '이게 뭐지?'하는 표정을 짓곤 다시 여러 번 베어물어 가지 튀김으로 입안을 가득 채웠다.
- 우물우물... 옴총 마신네...
그렇다고 한다.
우리 식당에 와서 새로운 맛에 눈을 뜬 차유민군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미정 쌤은 곧장 돌아가실 생각이셨던 것 같은데 유민이와 윤슬이를 보더니 도로 자리에 앉으셨다.
- 자리 좀 차지하고 있어도 되냐?
"어차피 만석까지 가는 일은 잘 없으니까, 더 계세요."
손님들이 간간이 들어오시긴 했지만 바쁜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윤슬이와 유민이가 너무도 즐거워보였다.
서로 무슨 대화를 하는지 잘 들리진 않았으나 자동차 얘기를 하거나 엄마와 오빠 얘기를 하거나 아무래도 좋은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윤슬이가 나와 함께 살며 처음으로 제 또래 친구가 생긴 것이니까 말이다. 지난 번에 가게에서 손님들과 함께 축하해줬던 생일이 생각났다.
그때 윤슬이는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 것 같았는데, 그 소원이 정말 머지 않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봤을 때, 권수영이 우리 가게로 야만스런 몽둥이(구 그레이트 제노사이더)를 들고 도망온 것은 결과적으로 고마운 일이다.
"유민이는 몇 살이에요?"
- 올해로 여섯 살, 얼마 전에 생일이었어.
"뭐야, 유민이가 오빠네. 윤슬이는 다섯인데."
- 근데 이미 둘이 친구 먹은 것 같은데?
"그렇긴 하네요."
저 나이대에는 서로의 연령이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
- 윤슬이는 유치원 안 다니나보네? 어제도 이 시간대에 가게에 있던데. 아니면 브레이크 타임에 유치원까지 마중 나가서 데려오는 거야?
"아뇨, 안 다녀요. 시간 조금 지나면 다니게 할지도 모르는데. 아마 본인이 끝끝내 거부할 것 같긴 해요.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어서. 웬만하면 안 보내는 방향으로 하려고요."
- 아... 그랬구나. 그래 잘했어. 유치원은 꼭 보내야 되는 것도 아니니까. 우리 유민이도 아침마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맨날 징징거리거든. 얼마나 고생인데.
어제 언뜻 듣기로는 유민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J 고등학교의 근처인지라, 선생님이 출퇴근할 때 유민이를 챙겨서 등하원시킨다고 한다.
"그래요? 유민이가 소심한 성격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 아냐, 또 은근히 애가 낯을 많이 가려서 유치원에도 친구가 별로 없다고 선생님들이 그러시더라고.
그럼 아까 엄마의 곁을 떠나 윤슬이에게 한 걸음을 옮긴 것은 유민이 나름 용기를 낸 행동이었나보다.
- 이건 내 생각인데, 내 성격을 닮은 게 아닐까?
"무슨?"
- 이쁘고 잘 생긴 거 좋아하는.
"그럼 방금 윤슬이한테 먼저 다가간 게 그런 이유라는 말씀인가요? 윤슬이가 너무 귀여워서?"
- 내 추측이긴 해.
"잠시만요. 저 오빠로서 위험을 느꼈습니다. 당장 저 6살짜리 늑대를 윤슬이한테서 격리..."
- 넌 무슨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하니! 엄마는 난데, 나보다 더 극성이야 지금 네가.
바 테이블 쪽에 앉아서 묵묵히 식사 중이던, 다른 손님들이 우리 대화를 듣고 큭큭- 거리며 웃음을 참는 게 눈에 보인다.
조금 자중하기로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자 갑자기 신기하게 느껴졌다.
선생님과는 거의 10년 동안 연락 한 번 못하고 지내다가 어제가 되어서야 오랜만에 뵌 것이다.
그런데도 주에 한 번쯤 만나는 친구나 동료처럼 평범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아무리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분이라고 해도, 이는 특별한 일이었다.
선생님이 지난 10년 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그동안 뭐하고 지내셨어요?"
- 나? 교직 생활하는 인간이 다를 게 있겠냐. 교과과정대로 수업하고, 극성 학부모들한테 시달리고, 애들 사고치는 거 수습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불행해져서 이혼하고. 또 수업하고, 시달리고, 수습하고. 그런 거지.
"...."
긴 문장 속에 살벌한 사건이 대뜸 끼어있던 것 같다.
- 넌 별 일 없었냐?
"저는 동생이 굴러들어왔죠. 그것 말고는 일하던 것밖에 없어요. 선생님이랑 비슷하죠."
- 흐응... 일이라는 게 다 똑같지 뭐. 장사도 매일 음식 준비하고, 팔고 돈 벌고- 하는 반복일 거 아냐?
"대충 그렇죠."
나 같은 경우는 엉뚱한 동생과 우리 남매를 남몰래 도와주는 오누이라는 존재 덕에 일상이 다소 스펙타클하긴 하다만.
짧게 환원하자면 장사하는 일상은 선생님이 말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생님은 핸드폰을 꺼내어 유민이 사진을 내게 보여주신다. 머리털이 솜털처럼 날리는, 아주 어렸을 적의 사진부터 처음 유치원에 입학하던 때 찍은 사진까지.
대략 1,000장이 넘는 사진이 편집된 영상처럼 빠르게 슉슉 넘어갔다. 그중에서 남편분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옵바 모해?"
"잠깐 사진 보고 있어."
붕붕이 쪽에서 열띤 토론을 나누던 윤슬이와 유민이가 어느새 미정 쌤 쪽으로 돌아왔다.
유민이와 윤슬이는 나란히 미정 쌤 앞에 서서 두 팔을 45도 각도로 들어올린다.
본인들도 의자 위로 올려달라는 뜻이다.
다른 손님들도 오신 터라 유민이는 선생님의 무릎 위로, 윤슬이는 그 옆자리로 가게 되었다.
"옵바, 윤스리 보고 시픈 거 이써."
"뭐가 보고 싶어서 오셨어요?"
"윤스리 촉! 촉! 하는 거 보여죠."
"저번에 아저씨랑 같이 찍은 거?"
"웅, 유미니랑 볼 거에여."
"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촉! 촉! 하는 것이라면 하나뿐이다.
저번에 연우씨와 함께 기획하여 찍은 윤슬이의 고무줄 총 사격 영상이다.
윤슬이는 본인의 활약상을 직접 보고 싶은지 내게 그 동영상을 틀어달라고 가끔 요구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재생하자 윤슬이의 위풍당당한 뒷모습이 비춘다.
손에 들린 것은 목재 장난감 총.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권총 모양인 덕에 두 손으로 무게를 잘 지지하는 게 인상적이다.
연우씨가 알려준 대로 팔을 쭉 뻗곤 침착히 사격한다.
촉!
촉!
촉!
고무줄이 날카로운 타격음을 내며 애호박들을 쓰러뜨린다.
만세를 부르는 윤슬이의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종료된다.
그것에 감명 받았는지 미정 쌤과 유민이 모자는 우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작게 박수를 친다.
"유미니, 바써?"
- 응, 바써. 머시써.
"그러믄 윤스리가 보쓰인 거야 알게찌?"
- 아라써, 윤스리가 보쓰. 내가 부하 하께. 응... 오른팔 하께!
딱 네 번 오고간 두 아이의 짧은 대화.
그걸 듣고 나와 미정 선생님은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 윤슬아 방금 뭐라고?
선생님이 묻자 윤슬이는 의자에서 앉은 채로 배를 뽈록 내밀고 자랑한다.
"윤스리가 보쓰야! 유미니는 윤스리 오른팔하기루 해써! 방금부터 그러기루 해써."
내 동생이 보스가 되었으며 심지어 그 오른팔이 한 살 연상인 6세인 것을, 지금 막 목격하고야 말았다.
조직 구성원은 단 두 명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