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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68화 (68/200)

68화: 남자형제(1)

큰 일 날 뻔했다.

만약 이번 기억을 윤슬이와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다섯 살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 품에 꼭 안고 귀를 막아주었다.

"윤슬아, 너 정말 아무 것도 못 본 거지?"

"움? 옵바가 다 가려버려써!"

"그래? 그럼 다행이다."

권수안씨 눈가에 수술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후천적인 장애일 것이라곤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의 과거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도 다소 충격적이었으니.

폭력의 현장은 누구의 목전에서 벌어지던 두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 만큼 잔혹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설령 기억의 단편이라 하더라도 막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개입할 수 없었다.

윤슬이와 나.

두 사람 모두 기억의 타자로 취급되어 권수안에게도, 권수영에게도 닿을 수 없었다.

확정된 과거를 혹은 마주해야 하는 과거를 멋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의 끝자락에서 울고 있는 권수영을 위로해주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 주눅 들지 않은, 눈가가 젖은, 입가에 미소 띤, 조심스런, 두 손을 꽉 쥔 수영이가 권수안에게 가보겠다고 했으니까.

굳은 걸음으로 가게를 나섰으니까.

-  주현 오빠, 잘 먹었어요. 뭔가, 되게 이상한데. 떡볶이를 먹으니까 갑자기 있지도 않던 기억이 막 머리 속에서 떠오르고 그러네. 등신 같이 떡볶이 먹다가 우는 사람이 어디 있대? .... 는 여기 있구요. 암튼 담에 또 올게요. 될 수 있으면, 우리 오빠랑 같이.

[오누이 타이쿤!]

[J 고등학교 2학년생 권수영]

[종합 만족도: 100%]

[J 고등학교 2학년생 권수영 – 패밀리로 등록됩니다!]

권수영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다.

"그래도 잘 얘기 됐으면 좋겠네. 남매끼리."

그저 바랄 뿐이다.

서로를 아끼던 남매가 비극적으로 엇갈리는 것은,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마음 아프니까.

"움? 윤스리랑 옵바가 남매자나."

"윤슬이가 그것도 아네?"

"윤스리는 다 알어. 똑또카지?"

"응, 엄청 똑똑해."

"히힝- 알어! 옵바 동생이라 그래."

수영이가 돌아가고 나선 여느 때와 같이 장사했다.

손님은 띄엄띄엄 들어왔고, 하루 매출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윤슬이와 함께 귀가하는 길.

돌연히 불안해졌다.

언젠가 내가 한 눈 판 사이에 동생이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최대한 눈에 담아두려고 노력하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권씨 남매의 일도 그렇다.

수영이도 처음엔 그 악마 같은 남자를 의심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구스를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물론 그 남자의 경우 특수하긴 했다.

권씨 남매의 부친, 그 직장 동료였으니까.

설마 앙심을 품고 그런 짓거리까지 저지를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중요한 건 우리 남매라고 그런 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윤슬이, 만약에 모르는 아저씨가 와서 따라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돼요?"

"움? 모르는 아저찌여?"

"네."

"따라오라구 하므는 옵바랑 가치 따라가여."

"만약에 오빠가 옆에 없으면요?"

"그러므는 윤스리는 옵바를 먼저 차자."

"오빠랑 같이 있지 않을 때는 꼭, 절대, 아무도 따라가면 안 되는데. 약속할 수 있지?"

"움... 아라써. 그러므는 손가락 걸므는 대겠다."

저번에 루이를 데리고 가게에 다시 들리겠노라고.

권수안씨와 약속하듯 새끼손가락을 건다.

5세의 손가락은 너무도 얇고 소중하다. 짧고 작아서 내 손가락에 제대로 걸리지도 않는다.

지켜주고 싶단 마음이 더욱 강하게 든다.

"옵바, 근데 왜 따라가므는 안 대? 만약에 초코 주므는 어떠케 해?"

"따라가면 위험해요."

"윤스리가 이길 쑤 이써!"

얍! 얍!

소리를 입으로 내며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고, 앞차기를 선보인다.

저걸 정통으로 맞는다고 한들 데미지가 0에 수렴할 것 같지만 본인은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쪼매난 입술이 옴싹거린다.

"윤슬이 잠깐만 오빠 봐봐."

"움..."

장난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

"만약에 윤슬이가 오빠 없을 때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

"몰라여."

"그렇게 되면 오빠가 엄청 크게 다치는데?"

더 이상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다치고 아플 것이다.

"잉! 옵바가 다쳐? 윤스리 말구?"

"응, 오빠가 엄청 아플 수도 있어. 그런데 윤슬이는 오빠 지켜주잖아."

"그치! 윤스리가 옵바 지켜주지."

"그러니까 윤슬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옵바 말구 아무도 안 미더. 아무두 안 따라가."

"옳지!"

다소 배타적인 결론이 난 것 같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해두면 더 안전하겠지.

적어도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 어릴 때만큼은 내가 잘 보살펴야지.

곁에 두고, 소중하게.

**

벌써 집에 도착해버렸다.

하교길은 늘 멀게만 느껴졌는데, 신기하게도 집에 느리게 도착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드는 오늘따라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교복의 단추를 풀며, 권수영은 작게 한숨 쉰다.

"오빠한테 뭐라고 해야 되냐."

집에 돌아오는 길.

곰곰이 생각했다.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어느 쪽도 사실이었다.

"오빠, 덕분에 살았어!!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줄은 몰랐는데. 진짜 진짜 미안해! 그리고 너무 고마워!"

라고 직접 소리 내어, 큰 절 하며 시뮬레이션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명백한 계기도 없었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었다.

그때 권수영은 초등학생, 그리고 오빠는 중학생이었으니.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봤자 되게 새삼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권수영은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새로운 남매 관계가 시작될 것 같았고, 그러고 싶었다.

너무 오글거리는 대사가 아니라면.

"따, 딱히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흥... 그렇다고 안 고맙다는 건 아니고. 그냥... 적당히 고마워."

이런 방향의 대사도 읊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위 '츤데레'를 시전하는 것은 쓰레기 같은 선택이었다.

아까 야자 시간에 보던 웹툰의 최애캐를 따라해보았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그밖의 대사를 연습해보는 권수영.

"오빠를 위해 내 남은 인생을 바치겠어!"

청혼 멘트가 되었다.

"그래서 얼마면 되는데?"

강남 8학군의 극성 학부모 같은 대사가 되었다.

"아아, 내가 남은 인생 동안 당신의 눈동자가 되리라."

삼류 연애시가 되었다.

문제는 청중이 있었다는 점이다.

뒤쪽에서 마른 혓바닥이 권수영의 허벅지를 핥는다.

비명을 지를 것도 없었다.

종종 루이가 하는 행동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루이가 권수영의 방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즉, 문이 열려있었다는 뜻이고.

높은 확률로.

"수영아... 뭐하는 거야?"

오빠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좆됐다.

"오빠... 내 방에 막 들어오면 어떻게 해. 나 지금 옷 갈아입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너야말로 옷 갈아입을 땐 문을 닫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루이가 멋대로 들어가잖아."

"아... 내가 안 닫았구나."

그럼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을뿐더러 더 이을 말도 없다.

다만 물어야할 것이 있다.

"오빠 혹시 어디부터 들었니?"

"따, 딱히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부터."

다시 한 번 느꼈다.

좆됐다.

츤데레부터 삼류 연애시까지 이상한 것만 골라 들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될지 매우 곤란하던 찰나 오빠가 애잔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츤데레부터 삼류 연애시까지 읊는 동생을 두어 마음이 아프다!

같은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 무슨 일은, 있을 게 뭐 있어."

너무도 다정하게.

무슨 일 있던 거냐고 묻는 오빠에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고,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빠 나 사실..."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기나긴 고백이 시작되었다.

기나긴 참회가 시작되었다.

기나긴 감사가 시작되었다.

그것들이 "그래서 너무 고마워, 오빠."라는 문장으로 맺어질 때쯤.

오빠는 권수영을 품에 세게 안아주었다.

동생이 지난 과거를 이야기할 때, 조금 놀랬다.

기억 못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알고 있던 것일까.

지금에서야 그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게 석연찮게 느껴지지만 동생이 꺼낸 문장들이 진심이란 것만큼은 자명했다.

권수안은 두 문장을 건넨다.

마찬가지로 진심인 문장들을.

"수영아, 너 지켜주기로 한 약속 지킨 건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이야. 고맙다고 해줘서 나도 너무 고마워."

두 남매는 서로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그게 걱정되었는지 루이는 곁을 지켰다.

한참을 그랬다.

그런데 격정이 지나쳤는지 오빠의 반팔 시보리엔 권수영의 콧물이 묻어버렸다.

세탁해야 했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 빨아서 말린 것이었는데.

"미안, 오빠... 내가 오빠 옷에 콧물 묻혀써."

코맹맹이 목소리로 사과하는 권수영.

"그래? 그럼 세탁 통에 넣으러가자. 엄마가 보면 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몰래."

"그래 몰래 가자. 몰래."

결국 엄마에겐 들키지 않았고, 세탁기에 티셔츠를 몰래 집어넣은 남매는 조용히 웃는다.

그 별 것 아닌 웃음은 오래오래 머물렀다.

**

그 일이 있고, 다음날부터 권씨 남매는 우리 가게에 종종 들리게 되었다.

루이와 권씨 남매 둘.

거기에 가끔 송지아까지 껴서 넷이 세트로 다닌다.

그 그림이 이뻐서 가게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어주기도 했다.

-  주현 오빠, 요즘 우리 덕분에 매출 쏠쏠하죠?

"쏠쏠하지. 감사하지. 최고지."

-  주현씨 음식도 최고니까 저희가 이렇게 오는 거긴 하죠.

"저도 알아요. 이래 봬도 저희 가게엔 단골이 꽤 있거든요."

-  그럴 만한 가게죠. 어떤 음식이든 맛있으니까. 또...

"또?"

-  뭔가 음식 말고 신기한 분위기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느껴져서 계속 찾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오누이 식당은.

"그건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아래서 멀뚱멀뚱 서있던 윤슬이를 들어올렸다.

갑작스러웠는지 "움?"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저희 윤슬이가 가게 무드 메이커거든요. 동생이 복덩어리인지라 그런 거예요."

"윤스리 덕분?"

"응, 윤슬이 덕분."

윤슬이가 턱을 높게 치세우고, 그 모습을 보며 권씨 남매와 지아가 즐겁게 웃는다.

그리고 이런 따듯한 분위기의 식당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가게의 모습이다.

가게를 훈훈한 분위기로 덥혀준 손님들, 권씨 남매를 위해 약간의 오지랖을 부려보기로 했다.

강씨 아저씨랑 호연 형님 때 그랬던 것처럼.

사소하고 의미 있게.

스마트폰을 꺼내어 오누이에게 접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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