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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87화 (87/200)

87화: 어떻게 상어가 105cm (3)

미정 선생님은 잠수의 요령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숨은 될 수 있을 만큼만 참고.

바다에서는 따가우니까 눈을 뜨면 안 되고.

자기 자신을 휴지라고 생각하고 몸을 축 늘어뜨려보라고.

그러나 유민이는 얼굴을 물에 담그는데까진 문제가 없었으나 몸을 띄우는 데는 계속해서 실패했다.

파도가 거센 탓인지 지레 겁을 먹고 다리를 허둥대다가 결국 지면에 발을 놓아두려고 하는 게 문제였다.

-  엄마... 히잉...

끝내 울상이 된 유민이.

안쓰러웠는지 윤슬이가 다가가서 머리를 쓰담아준다.

아기 상어가 옆부근의 지느러미로 작은 범고래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림처럼 보여 귀여웠으나, 당사자들은 제 나름대로 진지하다.

유민이가 울상을 짓자 미정 선생님은 자상한 미소를 띤 채로 무릎을 수그려 아들내미와 눈을 맞춘다.

-  아들, 괜찮아. 원래 누구나 처음 하는 건 많이 실패하는 거야. 엄마도 처음엔 수영 연습할 때 1시간 넘게 실패했어.

-  우웅... 진짜?

-  그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엄마랑 잠깐 나가서 같이 수박 먹고 쉬다가 다시 연습하러 올까?

-  수박...! 아라써, 훌쩍.

코를 훌쩍이며 입술을 앙다문 유민이.

울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기 상어는 범고래의 기분을 북돋아주려한다.

"이따가 윤스리도 도와주께. 오늘은 윤스리랑 유미니랑 헤엄치는 게 목표인 걸루 정해써."

유민이는 "웅..." 하고 작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쪽에는 엄마, 한쪽에는 윤슬이의 손을 잡고 모래사장 쪽으로 걸어나왔다.

우리 네 사람은 아까 잡아둔 돗자리 쪽에 나란히 앉는다. 멀리서 보더라도 쉽게 우리 자리를 찾을 수 있었는데 미정 쌤의 트레이닝복이 허물처럼 아무렇게나 벗어져있는 탓이다.

아까 막 자리를 잡았을 땐 당황했다.

돗자리를 깔고 짐을 내려두자마자

-  오케이, 그럼 바로 갈아입어볼까?

라며 트레이닝 복 상의의 지퍼를 끝까지 내려버리는 게 아닌가.

내가 지금 무엇을 보는 것인가.

하고 눈을 의심하다가 그 안에 있는 것이 수영복이란 걸 깨닫고 한숨을 돌렸다.

그러니까 지금 돗자리 위에 놓여있는 것은 그때 벗어두고 제대로 정리를 안 해둔, 트레이닝복이다.

수박을 꺼내기 전에 자리를 정리하고 개어두려고 했는데. 유민이가 먼저 가서 그 옷을 집는다.

그리고 정갈하게 접어서 개어둔다.

각과 주름까지 이쁘게 잡았다.

-  땡큐, 아들.

-  응!

챙겨온 아이스박스에서 수박을 꺼내는 미정 선생님이 감사 인사를 전하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유민이.

미정유민 모자의 관계는 조금 특별한 것 같다.

"옵바, 옵바."

"응?"

"윤스리가 옵바 옷 접어주께."

"이미 정리해서 가방에 넣어뒀습니다요, 아가씨."

"히힝, 아깝따."

윤슬이는 그 특별한 관계가 부러웠나보다.

미정 선생님이 꺼낸 수박은 시원하다 못해 차갑다.

투박하게 각진 모양으로 깎인 수박들이 마구 뒤섞인 채로 플라스틱 용기안에 담겨 있다.

그 용기를 손으로 잡았는데 바깥의 온도와 차이가 커서 놀랬다.

-  차갑지? 아이스박스 갖고 오길 잘하지 않았니? 빨리 선생님 칭찬해줘봐.

"대단하십니다. 최고십니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들고 오느라 고생 좀 했지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맛있어보이긴 한다.

준비해온 플라스틱 포크를 들고 하나씩 푹- 찍어 입에 넣을 준비.

"잘 먹게씀미다! 아구... 읍!"

".... 천천히 먹지 그랬어."

윤슬이가 수박을 아삭하게 씹었다가 크게 봉변당했다. 이가 시려서 몸을 벌벌 떤다.

상어치고는 치아가 부실한 듯하다.

거의 아이스크림 정도로 차가운 수박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한 번 호되게 당한 다음엔 입술에 톡톡 대보면서 얼마나 차가운지 가늠하고, 약간씩 베어문다.

야금야금...

수박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앉은 채로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근데 상어 모양 수영복이 사기급이긴 하다.

무슨 행동을 해도 귀여워보인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니까 덩달아 등에 달린 지느러미까지 좌우로 흔들리면서 귀여움이 두 배가 된다.

미정 선생님이 마땅히 전인류에게 칭찬받아야 할 부분은 수박보다는 이걸 우리 동생한테 선물해주셨다는 점이다.

"야금야금... 움?"

윤슬이가 수박을 야금야금 먹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앞니에 뭐가 걸렸는가보다.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떼어내고는 앞니로 손가락을 옮긴다.

"옵바, 씨가 나와써."

"수박 씨? 여기다가 뱉어."

미리 챙겨둔 검은 봉지를 윤슬이한테 내미는데.

묵묵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라써."

라더니 냅다 수박씨를 내 볼따구에 붙인다.

그리곤 코웃음 친다.

"히힝! 옵바 얼굴에 점 생겨써. 윤스리가 만들어조써."

"얼씨구? 우리 동생이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우리 남매는 수박을 먹다가 나오는 씨마다 족족 상대방의 얼굴에 하나씩 붙이기 시작한다.

수박에 스민 당도와 얼굴에 남아있던 염분 덕분에 씨가 찐득해져서 얼굴에 잘 붙는다.

어느새 우리 남매의 얼굴은 수박씨로 도배되었다. 멀리서 보면 머드팩을 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  남매끼리 잘 노는구만.

"옵바랑 윤스리가 쫌 잘 놀기는 하지여!"

-  두 사람 사진 찍게 붙어봐.

상어 수영복을 입은 윤슬이를 그대로 무릎 위에 올려 사진을 찍는다.

덕지덕지 붙은 수박씨가 얼굴을 가리지만, 누군지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귀여운 사진이 찍혔다.

-  엄마, 우리두.

-  그럴까?

범고래와 체육 선생님 모자도 얼굴에 수박 씨를 몇 개 붙여서 기념 사진을 찍게 되었고.

결국 네 명이서 모여서 한 번 더 사진을 찍었다.

화목한 사진이었지만 주변에선 흘끗거리며 쳐다봐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나마 아이들과 함께하면 이런 행동들도 덜 쑥스럽게 느껴진다.

수박을 먹고 심기일전한 우리 일행.

돗자리에 나란히 넷이서 누워 여름 날씨를 만끽하다가 배가 꺼질 때쯤 다시 바다로 향했다.

이번에야 말로 성공하고자 마음 먹은 유민이의 의지는 굳건해보였고.

-  오! 아들, 거봐 하다보면 되잖아.

-  응! 나 잠수해써!

아까는 실패했지만 다시 차근차근 미정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몸을 띄우는데 성공했다.

"유미니, 이번에눈 윤스리랑 가치 해보자."

-  응, 아라써.

상어와 범고래는 손을 잡고 바다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다리를 띄워 둥둥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모습이 마치 사이 좋은 바다 생물들이 나란히 헤엄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았지만 거칠게 호흡하며

-  하아... 너무 귀여워, 너무너무 귀여워! 못 참겠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핸드폰 좀 가지고 올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미정 쌤.

핸드폰을 가져온 선생님은 그 모습을 반드시 사진에 담겠다며 상어와 범고래에게 재차 잠수해줄 것을 요구했다.

두 꼬맹이는 어쩔 수 없단 듯이 고개를 젓고는 다시 한 번 잠수해 미정 쌤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그 두 마리의 포식자가 나란히 잠수하는 사진을 내 핸드폰에도 전송해달라고 했는데 사진이 너무도 잘 나와서 핸드폰 배경화면을 그것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잠금화면은 아까 넷이서 찍은, 수박 씨를 얼굴에 달고 있는 사진으로 설정했다.

그렇게 리조트 숙박 첫 날 차는 성공적으로 놀았다.

다만 윤슬이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 가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우... 옵바, 윤스리 실패해써."

"뭐를 실패해? 우리 엄청 재미있게 놀았잖아."

"재미이써. 근데 윤스리는 옵바랑 물꼬기를 잡으려구 그랬눈데."

"물고기를 못 잡은 게 아쉬웠어?"

"웅... 아시워써. 윤스리가 잘 찾아밨는데. 업써. 잠수도 열씨미 했눈데..."

포식자, 상어가 된 것은 외형뿐만 아니라 내면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사냥 본능을 감출 수가 없는 듯하다.

**

바다에서 돌아오자마자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수영복은 모두 리조트 내 세탁 시설에서 빨래하여 말리는 중이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  애들 아직도 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는데요?"

-  이야... 그럼 어쩔 수 없지. 우리끼리 먹자.

바다에서 오랫동안 놀았던 만큼 피곤해진 우리 꼬맹이들.

저녁 식사라도 멕이고 재우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씻자마자 침대에 누워 폭풍 수면에 돌입했다.

밥 먹으라고 깨우기도 애매한 상황.

그 사이에 미정 쌤은 차를 몰고 인근 시장까지 가서 그 시장의 명물인 닭강정을 사오셨다.

중요한 건, 맥주와 함께.

-  오랜만에 사제 지간이서 오붓하게 맥주 타임이나 즐기자고.

"오랜만이라기엔 오늘이 처음 아니에요?"

머쓱하게 웃는 미정 선생님은 조잡하게 고정된 닭강정의 박스를 마구잡이로 뜯어버린다.

그 탓에 박스의 뚜껑이 반쯤 너덜거리게 됐지만.

아무렴 어떤가.

탁! 치익...

맥주 캔의 뚜껑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거품이 지글지글하고 올라온다.

-  건배.

"건배."

맥주로 목을 축인다.

식도를 시원하게 쓸어내린다.

하루의 피로가 싹 달아나는 느낌이다.

여행지에서 한바탕 놀고 난 뒤 휴식 시간에 마시게 되니 풍미만큼이나 마음도 청량해진다.

-  제자, 주량은 어떻게 되는가?

"취해본 적이 없습니다."

-  크흐... 젊은 날의 허세. 싫지만은 않아.

"아니, 허세라기보단 술 마실 날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취할 때까지 마셔본 적이 없는데요."

-  앗, 아아... 그런 거였구나.

미정 쌤은 눈알을 굴리더니 다시 한 번 맥주를 크게 들이킨다.

-  그럼 오늘 취할 때까지 마셔보자고!

"그러다 애들 깨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그리고 내일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될 건데."

-  넌 젊은 애가 뭘 그렇게 따지니! 내 전 남편 같다, 얘.

블랙 유머인 셈일까.

농담처럼 가볍게 던지지만 웃어드릴 수 없다.

-  미안. 웃고 넘겨주라.

"그래요. 아무튼 맥주는 적당히 마시죠. 내일 선생님 또 운전하셔야 될 텐데 취한 상태면 위험하잖아요?"

-  그건 그렇지. 우리만 타는 것도 아니고. 애들도 있으니까. 그냥 농담 한 번 해본 거야.

"말 나온 김에 여쭤보겠는데. 선생님은 주량 어느 정도 되는데요?"

-  글쎄. 굳이 말하자면 이 맥주 500ml짜리도 버겁다고 할 수 있겠지.

통한의 술찔이셨다.

주량을 두고 가타부타하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맥주 한 캔도 버겁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이지 않나 싶다.

심지어.

".... 그런 주제에 왜 맥주를 8캔이나 사오신 거죠?"

-  너가 얼마나 마실지 모르잖아...

"제가 그럼 오늘 밤에 7캔 반 정도는 벌컥 벌컥 마실 줄 아셨나요?"

-  두고 두고 마시자는 뜻이지.

"두고 두고?"

-  응! 오늘 밤, 내일 밤, 그리고 체크 아웃 전날까지.

맥주랑 닭강정 모두 선생님이 자비로 사오셨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성격은 여전하시다.

- 여행 같이 온 김에 선생님 술 친구 좀 해주라. 너가 싱글맘의 고충을 알기나 해?

....

왜 벌써 취한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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