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5세와 바다(3)
낚시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바다 낚시는 더욱이 새롭다.
방파제 위에 앉아 적당히 낚시대를 휘젓는 정도의 일인 줄 알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다.
- 낚시 바늘 잡고, 거기다 이걸 끼워. 쑥! 하고, 한 번에.
직접 미끼를 다루는 시범을 보여주시는 데, 딱히 보면서 기분이 좋아질 만한 장면은 아니다.
- 어, 엄마... 나 못해게써...
- 아들. 그럼 엄마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엄마자나... 엄마가 해줘.
- 으윽.
꿈틀꿈틀꿈틀꿈틀....
흙이 섞인 플라스틱 통 안에서 생명력을 과시하는 존재들이 마구 뒤섞인다.
지렁이들이다.
모두 살아있다.
그걸 보더니 유민이는 진즉에 미정 선생님 뒤로 숨어버렸다. 덧붙이자면 선생님도 잔뜩 쫄아있는 게 얼굴에서 드러난다. 안티에이징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으나, 지금만큼은 팔자주름이 돋보일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면 우리의 두목이자 상어였던 5세.
겁 없이 지렁이를 한 손으로 잡더니, 할아버지의 시범대로 낚시바늘에 꽂아버린다.
찍-
바늘에 생지렁이가 꽂히자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린다.
"윤슬이, 손 안 찔렸지?"
"움! 윤스리는 갠찬쏘!"
바늘에 잘 꽂혔는지 몇 번 톡톡 만져보면서 확인까지 한다. 지렁이가 꿈틀대는 데 전혀 소름이 돋거나 징그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 어허이, 저기 윤슬이도 하는 데! 다 큰 양반이 쫄면 쓰나.
- 저는 본업이 선생인지라 살생은 자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르신.
- 뭐야... 그럼 그.... 뭐시기. 요즘 도시 쪽에서 유명한 베지테리안이래?
채식주의자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나저나 살생을 자제해야 한다는 말은 다소 모순되지 않는가. 일전에 자신의 전용 무기에 명명한 이름이 '그레이트 제노사이더'였던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제노사이드(Genocide)가 내 기억이 맞다면 집단 학살이란 의미였던 것 같은데.
- 그쵸! 저 베지테리안. 그래서 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꽂는 거는 좀...
- 구라 한 번 살발하게 치는구만. 아까 회 한 접시 뚝딱 비우는 거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늙었다고 무시하는 건가?
- 으아... 들켜버렸다.
선생님의 짙은 탄식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지렁이에 손을 뻗는데.
그 손보다 훨씬 작은 것이 앞서 지렁이밭 위에 얹힌다. 윤슬이가 지렁이를 대신 잡아주었다!
"선샌님! 윤스리가 해주께. 윤스리만 미더!"
- 구세주다.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토록 기뻐하는 김미정 선생님의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크게 소리 치고 있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선생님의 아들이 거리를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엄마가 부끄러운지 슬슬 거리를 벌리며 외면하고 있다. 마치 일행조차 아니라는 무빙이다.
유민이도 어찌 보면, 성격은 다를지 몰라도 윤슬이만큼 주관이 뚜렷한 여섯 살이다.
푹...
찍-
윤슬이가 두 개의 낚시대에 모두 지렁이를 꽂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내게 꿈틀거리는 지렁이, 즉 바늘에 꽂혀있는 것들을 들이밀며 자랑한다.
"옵바! 윤스리가 한 거 봐찌? 어때?"
"엄청 대단해! 근데 대단하니까, 조금만 거리를 벌려주라."
"움? 아라써."
다시 아래로 내려놓는다.
미끼가 얼마나 신선한지 바늘에 관통당했는데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온 몸을 흔들어젖힌다.
그걸 자유자재로 터치할 수 있는, 5세는 용감했다.
비위라는 개념을 초월한 듯한 초인의 모습이다.
- 미끼가 참 좋지? 이 정도는 돼야 여름 낚시 성공하는 거야.
"확실히 미끼가 괜찮네요. 제가 알기로는 여름엔 이렇게 싱싱한 지렁이를 써야 낚시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 옴마, 안씨네 큰 손주가 뭐를 좀 아는가보네. 맞는 말이지. 여름엔 물고기들이 식욕이 좋잖아. 그래서 맛있는 거만 처먹을라고, 눈에 불을 킨다고. 아주 배가 부른 놈들이지. 그래서 그른지 잡고 나면 토실토실하고 맛도 좋아!
"물꼬기... 맛두 조아... 자바머거...!"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는 더욱 전의를 불태우는 5세.
반면 미정 선생님과 유민이는 벌써부터 의지가 반쯤 나가떨어진 듯하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지렁이를 흘기며 어깨를 움찔거린다.
간단한 낚시 준비를 마치고, 각자의 낚시 포인트로 향했다. 윤슬이와 내가 한 조. 유민이랑 김미정 선생님이 한 조.
낚시대 두 개만 빌려서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낚시대를 대여해주신 할아버지는 그 중간지점 쯤에서 값이 꽤 나가보이는 캠핑용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계신다.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시겠다고 단언하셨으니 꽤 믿음직하다. 복장마저도 선캡과 땀을 닦기 위한 스카프를 구비하고 계셔서 더욱 전문가처럼 보인다.
"간드앗!"
윤슬이는 호기롭게 적장에 돌입하는 기마병 같은 대사를 외쳐보지만 사위는 적적하다.
그야 낚시 포인트에서 소란을 떠는 이들은 드무니까 말이다.
"윤슬아 조금만 조용히 하고 있을까? 안 그러면 물고기들이 다 도망가버려. 우리가 있는 줄 눈치 채고."
'아앗, 그러믄 조용 조용...'
금세 목소리를 TV 볼륨 3 정도로 줄이는 윤슬이.
얼만큼 낚시에 진심인지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고의 시간.
방파제에 들이받는 거친 파도.
바다 너머로 넘실거리는 아지랑이.
내 무릎에 앉은 윤슬이의 머리 냄새에 짠 내가 스민 것도 같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지열이 발바닥을 데운다.
콩콩콩-
콩콩콩-
윤슬이는 지루함을 견디려는 듯 내 가슴팍을 뒤통수로 두드린다. 그럼에도 시선만큼은 올곧게 낚시대로 향해있다.
집중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동생이 너무도 진지한 나머지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후-"
"프힝힝!!"
"윤슬이... 조용히 해야 되는데?"
'앗... 까머거써. 미아내.'
덧붙이자면 방금 윤슬이의 귓구멍에 바람을 불어보았다. 윤슬이가 큰 소리로 웃은 것은 내 잘못이다.
그런데도 다시 목소리의 볼륨을 줄여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동생. 너무 착해서 죄책감이 동해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온다.
"후우-"
"프헹힝힝!!!"
"어! 윤슬이가 또 소리를?"
'으앗, 미안함미다.'
죄책감이 밀려오지만 장난을 그만두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번엔 할아버지와 유민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그 모습을 보며 괜찮다는 듯이 유민이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준다.
아아, 내 동생.
귀엽다.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
"앙-"
"뿌훕....!"
깨물어주고 싶은 만큼 귀엽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말로 윤슬이 귀를 살짝 깨물어보았다.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오려하는지 입을 틀어막는다.
누가 처음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는 말은 정말 잘 지어냈다.
"아무아무아무."
"쁘히....! 그마냉..."
몸을 비비 꼬으며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는 동생.
아아, 내 동생.
귀엽다.
아니, 이건 귀여운 게 아니다.
그 이상이다.
귀여움이라는 개념을 초월했다.
그래,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빈곤한 어휘력으로는 이 귀여움을 어떻게 더 잘 포장할 수가 없다.
이럴 때만큼은 짧은 가방끈이 통탄스럽도다.
"끄응... 끄응..."
어쩜 힘을 주는 모습도 귀여울까?
"끼잉... 끼잉..."
낚시대를 당기는 두 팔이 짧다.
이 세상에 짧고,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은 모두 귀엽기 마련이지만 내 동생은 그것들보다 한 수 앞서간다고 단언할 수 있다.
"끄으으으응... 옵바..."
아아, 날 부르는 목소리마저.
....
잠깐.
"윤스리 혼자서눈... 무리자나!!"
"홀리몰리..."
재빠르게 행동으로 옮긴다.
어느새 입질이 와있었다.
부득이하게 광기에 젖어있었는데, 그 찰나에 물고기라 미끼를 물었을 줄이야. 불찰이다.
윤슬이의 뒤에 서서 고정돼있던 낚시대를 붙잡고 당긴다. 어느 정도 크기가 큰 녀석인지 낚시대가 흔들린다.
그것을 붙잡고 챔질한다.
아까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대로 릴을 감아올린다.
부러지지 않게 주의하며 신중하게.
어느 정도 릴을 감아올리니 물고기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근처까지 다가오신 할아버지가 그물망이 달린 뜰채로 물고기를 포획한다.
낚시에 성공했다!
"오, 옵바. 우리가 자바써! 물꼬기!"
"그렇네? 윤슬이랑 오빠가 물고기를 낚았네?"
"후후... 바찌? 아까 윤스리가 이케... 이케... 해서 낚으는 거?"
"오빠가 한 눈 판 사이에 윤슬이가 아주 멋있게 잡고 있던데? 역시 내 동생이야."
"옵바 동생이라구 볼 쑤 이찌!"
물고기와의 사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뻐하는 도중 할아버지가 직접 들고오시는데.
크기가?
- 이야... 제법이네?
할아버지의 손도 크고 거칠었지만 그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윤슬이가 비교 대상이다.
세로로 세워두면 윤슬이의 가슴팍 쯤에는 올 것 같다.
"그 정도면 몇 센치에요?"
- 재봐야지 정확한 거를 알겠지만은 이 정도면 거진 75는 될 거 같은데?
상당히 크다!
특히 첫 번째로 잡은 녀석이 이 정도 크기라는 것은 대단하다. 낚시 베테랑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입에서 제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이런 방파제 부근에서는 큰 물고기가 좀처럼 잡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여름인 덕인지.
"우오...! 옵바, 이거 모야? 물꼬기 이름."
"농어라고 해. 농어."
"농어!"
- 윤슬이가 이따만한 농어도 다 잡고, 이제 애기가 아니라 어른이네?
"윤스리눈 애기 아니었거둔요. 옵바두 지켜주거둔요...!"
우쭐하는 5세.
늘 그렇듯 배를 불룩 내밀며 턱을 한껏 치세운다.
자기 자랑 모드에 돌입했다.
팔딱거리는 농어에게 다가가는 윤슬이.
지느러미 쪽을 살살 쓰다듬는다.
"윤스리가 너 이름 정해주께. 너는 이제부터 농도리야."
"이름을 붙일 거야?"
"움! 농도리."
농어의 이름은 농돌이라고 한다.
정을 붙일 생각인 걸까.
하지만 보통 이렇게 잡은 물고기들은 그날 명도로 보내주며 배 속에 집어 넣는 게 관례이긴 하다.
"농도리는 이따가 윤스리가 맛잇께 먹어주께. 쪼굼만 기다리고 이써. 칭구들도 마니 만드러줄게."
"...."
이름을 붙이고 잡아먹는다니.
자신을 보스라고 자칭하는 것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던 것 같다. 5세는 살벌하다.
'친구를 많이 만들어준다.'라는 말이 저토록 무섭게 들릴 수가 없다.
- 그럼 농돌이는 할아버지가 저쪽에서 데리고 있을 테니까. 윤슬이는 친구들 많이 잡아와줘?
"윤스리만 미더주시오!"
그렇게 우리는 농돌이 친구 만들어주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다시 반복되는 인고의 시간.
방파제를 후두려치는 거센 파도.
수평선을 흐뜨러트리는 아지랑이.
아스팔트 바닥에서 지글지글 올라오는 지열이 발바닥을 덥힌다. 발에 땀이 찰 지경이다.
그런 시간이 수어번 반복될 때쯤.
농돌이의 친구는 많지는 않으나 총 5마리가 되었다.
유민이와 선생님도 두 마리 잡는 데 성공했고, 우리 남매는 농돌이 포함 세 마리를 잡았다.
그것들을 모두 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할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수산시장에 판매했다.
마침 잘 알고 계신 상인분이 있어서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값을 주고 팔아버렸다.
결국 우리의 배 속에 들어온 것은 농돌이와 그보다 20센치 작은 친구 한 마리뿐이었다.
메뉴는 매운탕.
농돌이의 설움이 한가득 들어있는 까닭인지 평범한 매운탕보다 훨씬 맵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는 삼시세끼를 모두 생선 요리로 떼웠다. 기적적인 메뉴 선정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농돌이와 우리 남매가 찍은, 조금 슬픈 사진 한 장뿐이다.
숙소로 돌아온 윤슬이는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농도리 마시 조아써. 다음에 또 먹구 십다."
오늘의 윤슬이는 귀여움과 살벌함을 문지방 넘듯 오고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