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89화 (89/200)

89화: 5세와 바다(2)

콩콩콩-

"윤슬이?"

콩콩콩-

"지금 불만이 있구나?"

"업써여."

콩콩콩-

"오빠는 우리 윤슬이 마음 다 아는데? 왜 지금 기분이 꿀꿀한지 말씀해보세요."

"물꼬기."

"물고기가 왜? 맛이 없었어?"

"우웅... 윤스리눈 물꼬기 잡구 시퍼써. 근데 그럴 쑤가 업써서 아시워여."

내 무릎에 앉아있는 윤슬이.

뒤통수를 가슴팍에 딱따구리처럼 콩콩 부딪힌다.

이럴 때는 대체로 불만이 있지만 직접 말로 꺼내기 미안한 것이다.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주신 현지인 맛집은 실제로 훌륭했다. 생선의 익힘 정도, 신선도, 바다가 보이는 풍경 그리고 친절한 듯 무뚝뚝한 사장님까지.

그야 말로 현지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이었다.

8월의 제철 생선인 갈치를 구워서 내어주셨는데, 심지어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유민이랑 미정 쌤도 만족스럽게 식사하셨다.

그런데 윤슬이는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무언가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계속 이런 상태다.

"윤슬이는 그럼 오늘 물고기를 직접 잡으러 가는 줄 알고 있었어?"

"웅, 윤스리가 착각을 했나바."

"아이구... 저런."

강릉에 올 때부터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있긴 했었다.

바다에서 생선을 직접 손으로 잡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들떠있는 모습을 몇 번 보이긴 했지만.

설마 이토록 아쉬워할 줄이야.

아까 아침에 오늘 생선을 먹으러 간다고 했더니 직접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줄 알고 착각을 한 모양이다.

입술을 앙 다물고는 뒤통수에 달린 '말 꼬랑지'를 내 품에 살살 비비는 윤슬이. 아쉬워서 떼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착한 동생은 절대 나한테 떼 쓰는 법이 없다.

-  음... 물고기를 직접 잡고 싶어?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쉽진 않지. 당장 낚시대도 없고, 어디 낚시배를 빌려서 타야 될 텐데. 당장 빌릴 만한 곳도 모르고.

"그렇긴 하죠."

미정 선생님이 조곤조곤 설명한다.

그 말을 듣고 윤슬이는 더욱 표정이 침울해진다.

기대를 많이 했다면 그만큼 실망도 커지는 법이다.

동생이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이니 나까지 마음이 아파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말 그대로, 어쩔 수가 없다. 다만 대안을 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 윤슬이, 대신 다른 데 가서 물고기 보러 갈까?"

"움? 다른 데?"

"물고기를 꼭 바다에서 낚시해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오오...! 그러믄 어떠케 바?"

"강릉엔 수산시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물고기가 잔뜩 있어."

"물꼬기! 주근 거 말구?"

"응, 요리돼있는 게 아니라. 멀쩡히 살아있는 애들로 볼 수 있어."

"윤스리 가보구 시퍼!!"

내 무릎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들이미는 동생.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게 흘러넘칠 기세다.

"어때요? 괜찮아요?"

-  수산시장? 가보지 뭐. 이왕 강릉 온 거 많이 돌아다녀봐야지.

-  나도... 수산시장 가보구 시퍼.

일행들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본래 정해진 행선지는 오죽헌이었다.

옛된 정취를 느끼며 차분히 산책해보자는 취지였는데.

수산시장에 가는 것도 나름 강릉에서 해볼 수 있는, 재밌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계획은 자연스레 변경되었다.

**

주문진에 도착했다.

1시간 정도 차로 달려야했으나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풍경은 낭만적이다.

그야 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된다.

날씨는 선선하면서도 해가 쨍하다.

바다 너머로 윤슬도 아롱지게 빛났고, 곳곳에 심어진 소나무 숲도 눈길을 끌었다.

종종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무수히 많은 소나무가 바람에 서로 부대끼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는 모래를 막기 위해 일부러 심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소나무를 심어두면 촘촘하게 잎으로 벽을 형성해 바람에 날리는 모래들을 막아준다고 하더라.

그런 풍경들을 아이들과 함께 구경하다보니 주문진의 수산시장까지 도착하는 게 금방이었다.

-  오우... 그래도 제법 사람이 많다?

"워낙 휴가철이잖아요."

-  그치, 여름엔 이런 데 와서 해산물 먹어줘야되긴 하지.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장.

오누이 식당 인근에 있는 성래 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짠 내가 코 끝을 건들이고, 닿지도 않는 물기가 공기를 타고 피부에 얹히는 감각이다.

"킁킁... 물꼬기 냄시."

어제까지만 해도 105cm 상어였던 윤슬이는 호기롭게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다.

그러자 상인분들이 호객을 시작한다.

-  아고마~ 아가가 인물이네.

-  일루 와바라. 여기 꽃게가 있네?

"아가가 아니구 윤스리에여."

꼬박 자기 이름을 주장하며 물고기들 구경하기 바쁘다.

기웃기웃.

이러저리.

"옵바! 물꼬기 엄청 마나. 이거를 어뜨케 다 잡아찌? 손으루?"

윤슬이는 두 손을 앞으로 휘저으며 고기 잡는 시늉을 한다.

"그러게? 물고기가 엄청 많네. 여기 근처에 사시는 어부 아저씨들이 아침 일찍 나가서 잡아온 것들이야. 대단하지?"

"음청 대다나다!!"

천진한 윤슬이.

유민이 손을 잡고 물고기 구경에 매진한다.

다음에 수족관이라도 데려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  애들 데리고 회나 한 접시 땡길까?

"괜찮을까요? 배 아프거나 하면."

-  구충약 하나 사서 나중에 멕이면 돼. 그리고 너무 애들 몸 건강 생각한다고 이것저것 가려서 주면은 나중에 면역력 부족하대더라.

"그런가."

납득할 만한 얘기였다.

원래 건강에 대한 지식에 정답은 없다고들 얘기하니까. 기생충 예방 차원에서 나중에 약국에서 구충약을 하나씩 먹게 하면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 싶다.

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수산시장까지 온 김에 회를 한 접시 먹기로 했다.

횟감은 갈치와 마찬가지로 8월의 제철 생선, 민어다.

-  민어가 아가들한테 좋아. 피부에도 좋고, 키 크는 데도 좋고.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시장 내부에 있는, 좌석이 있는 가게로 들어와 민어를 주문했다.

사장님이 약간 어눌한 표준어로 민어에 대해 설명해주신다. 그냥 사투리를 쓰셔도 될 텐데 우리가 서울에서 온 것을 알고 배려해주시는 것 같다.

"옵바, 이거 모야?"

"생선이잖아. 우리가 방금 가게 앞에서 본 거."

"잉! 이거눈 머리가 업써. 꼬리두 업짜나."

"사장님이 다 손질해서 내어주신 거야. 머리랑 꼬리는 못 먹잖아."

"오오...!"

윤슬이는 회를 지금 처음 보는지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기도 한다.

그러자 횟감의 살점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방금까지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탄력도 좋다.

"이거 꿈틀해?!"

"방금까지 살아있어서 그래. 신선해서 그런 거니까 한 번 먹어볼까?"

아쉽게도 포크나 에디슨 젓가락이 없다.

그래서 윤슬이 입에 넣어줘야 했다.

초장을 살짝만 찍어서 먹이자.

"우물우물... 마시가 싱기한데..."

맛이 신기한데.

눈썹을 까딱거리며 진지하게 음미한다.

꿀떡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쩰리랑 비슷하다!"

직관적이고도 그럴 듯한 감상이다.

모처럼 5세답다.

-  진짜네? 쩰리 같다.

유민이도 젤리와 비슷한 감상이었다.

어제 밤에 먹었던 화채에 넣은, 과일 젤리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에 비하면 가격은 꽤 많이 차이나는데 말이다.

아이들의 표현을 빌려, 젤리와 같은 식감인 민어를 배 속에 집어넣었다.

분명 주문진까지 오기 전에 점심 식사를 했을 텐데 술술 들어간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입에 들어가는 대로 집어넣는 것.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그야말로, 이곳에서밖에 맛 볼 수 없는 것들이니까.

-  으응? 무어야, 저거 안씨네 손주자네?

"움?"

회 접시를 비우고 앉아서 배를 꺼트리고 있는데, 모르는 할아버지가 한 분 다가오셔서 윤슬이한테 아는 척한다.

-  맞지 않나? 안씨네.

"안씨네가 아니라 윤스리인데여."

-  하하하! 그래, 윤슬이! 이름이 윤슬이였던 것 같네. 마이 컸구마는.

호탕하게 웃던 할아버지는 윤슬이의 볼을 손바닥으로 살살 쓰다듬는다.

"우우... 까칠거린당."

손바닥의 촉감이 낯설었는지 윤슬이는 잽싸게 도망와서 내 뒤로 숨는다.

그리곤 고개만 빼꼼 내밀어 할아버지를 노려본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저희 할머니랑 아는 사이세요?"

-  그르치. 그쪽 안씨네랑은 제법 사이가 됐어. 내가 택씨 몰 적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식당할 때부터 내가 단골이었어.

"아아..."

할머니는 기사식당을 운영하셨다.

그때부터 이어진 인연이라면 꽤 오래됐다.

-  자네도 안씨네 손주인가? 큰 손주가 서울에 있다구 그랬던 것두 같은데.

"네, 맞습니다."

-  그랬구만. 그럼 동생이랑... 뭐, 여자친구? 와이프? 랑 놀러온 모양이구만.

유민이를 무릎에 앉히고 머리 냄새를 맡던, 김미정 선생님을 보고 하신 말이다.

"선생님이요."

-  흐응, 그래 뭐 아무튼. 윤슬이 잠깐 이리 와서 이거 볼래?

할아버지는 윤슬이가 반가운지 관심을 끌어보려고 뒤에서 뭔가를 꺼내시는데.

그게 의외로 5세의 취향을 저격하는 물건이다.

"오오...! 저거눈!"

뒤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5세의 뺨이 느슨해진다. 그리고 뽈뽈뽈- 달려가서 할아버지가 내민 물건을 구경한다.

한 눈에 보아도 고급진 낚시대였다.

개인용품인 듯하다.

"낚시하러 오셨나보네요?"

-  내가 이 근처에서 낚시 체험 가게하거든.

"낚시 체험 가게... 그런 것도 있어요?"

-  그럼! 원래 진짜 낚시쟁이들은 이런 데서는 잘 낚시 안 해. 근데 이 근처가 수산시장 있고, 사람도 많으니까 이런 장사하기엔 괜찮지.

"듣고보니 그렇겠네요."

윤슬이가 낚시대 구경을 마쳤는지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콩콩콩-

콩콩콩-

이번엔 이마를 갖고 노크하듯 가슴팍을 두드린다.

무얼 원하는지 알 것만 같다.

"직접 물고기 잡고 싶구나?"

"히힝..."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올려 날 마주보더니 실실 웃는다.

그리고는 웬 낚시꾼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뒤로 팔을 쭉 뻗더니 앞으로 무언가를 내던지고 마구 끌어올리는 듯한 시늉.

그걸 보더니 유민이도 흥미가 생긴 것 같다.

-  엄마, 낚씨? 재미써?

-  엄마도 해본 적 없는데.

"윤스리눈 해보고 싶따!"

"그럼 그렇게 할까요?"

오늘의 스케쥴은 캐쥬얼하다.

즉석에서 이렇게 뚝딱뚝딱 일정이 뒤바뀌다니.

일행들의 성격이 모두 느슨한 덕이다.

주로 선생님과 내가 그렇다.

적어도 노는 것에 관해서만큼은.

그 길로 곧장 할아버지를 따라가서 낚시 도구를 챙겼다. 선생님과 나는 초심자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다행이도 할아버지가 옆에서 동석해주신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낚시대 2개와 미끼 등을 챙겨 주문진의 방파제까지 걸어나왔다.

방파제 위에 고고히 선 5세의 자태.

신장은 105cm인 주제에 왜 등살은 그늘지는지.

또,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말꼬랑지는 가히 치명적이다.

바다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뒤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나를 향해, 내 검지보다 작은 엄지로 따봉.

이어지는 한 마디.

"옵바, 윤스리가 물꼬기를 지배하게써. 믿어만 조."

우리 집 5세는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걸까.

어록을 또 하나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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