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해치지 않아?(1)
어느새 오누이 식당 공사 완료까지 닷새 남았다.
발코니 완공일 날짜에 맞추어 테이블과 의자까지 두 세트 준비해놓았다. 공사가 끝나는 즉시 혹은 그 다음날부터 장사를 재개할 계획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렇게 감기에 걸린 것은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
꼭 걸려야 하는 감기라면 쉬는 날 걸리는 게 나으니까.
"쿨럭- 윤슬아... 미안하다."
"우움... 갠짜나."
윤슬이는 쬐그만한 손으로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가 자기 이마에 다시 대본다.
그리고 눈썹이 꿈틀거린다.
"우억, 옵바 땀이 윤스리 이마에 묻어써."
열을 재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땀이 묻을 것까진 계산을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고도의 암살 기술일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귀여운 모습을 눈 앞에 노출시킴으로써 나를 행복사시키려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마저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지금의 상태.
내가 동생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거나 감기 때문에 사고가 마비됐거나.
둘 중 하나다.
"윤슬이 미안해요. 오늘 원래 오빠랑 같이 동물원 가려고 했는데. 아쉽다, 그치?"
"갠찬타구 해짜나! 윤스리눈 옵바 지금 아푼 게 더 중요하거둔!!"
역정을 내며 배개 맡을 팡팡! 하고 두드린다.
빨리 누우라는 뜻이다.
윤슬이랑 얘기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앉아있었는데, 그 행동도 마음에 안 드신단다.
"언능 누워! 윤스리가 간호해주께."
동생님 말 따라서 얌전히 누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옮는 감기는 아니란 점이다.
아침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마른 기침이 드물게 나길래 병원에 갔더니 몸살감기란다.
바이러스가 옮겨가는 종류는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고, 약 먹고 푹 자면 금방 나을 것 같다고 하셨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5세에게 간호를 맡기는 것도 보호자로선 미안하고 불안한 일이다.
몸살감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로 보아 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어 감기에 걸린 듯하다.
속담에 따르면 개도 안 걸리는 게 여름 감기라는데 말이다. 그 속담을, 오늘 아침 약을 지어주시던 약사에게 주워듣고 5세가 이르던 말이.
'움... 그러믄 루이는 여름에 감기 안 걸리겠넹.'
그 말을 듣고 횡경막이 뜨끔하는 느낌이었다.
감기로 오랫동안 골골 댔다가는 윤슬이가 "옵바! 루이두 안 걸리는 감기자나. 빨리 나아보라구!!"
라며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나름 귀여운 대사지만 동생에게 그런 걱정을 시키는 것도 오빠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옵바, 윤스리가 금방 낫게 해주께."
내 걱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이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슬쩍 들추어 자신의 손을 집어넣는다.
그 손은 스멀스멀 내 몸을 타고 들어오더니 배꼽에 향한다.
그리고는 배꼽을 찾아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쏘옥-
"잉? 옵바, 여기 배꼽?"
"응, 배꼽."
"옵바 배꼽 간질간질."
손가락을 팅구며 내 배꼽 주위를 공략하지만 애석하게도 발바닥 외에는 간지럼을 타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예의 상 몸을 꿈틀거려준다.
"으아아아... 윤슬아, 오빠 아픈데 괴롭히는 거 반칙이잖아요."
"읏, 맞따! 옵바가 아푼 걸 까머거써. 반성..."
다시 원래 의도대로 내 배꼽 주위에 두 손을 올린 뒤에 원을 그리며 문지른다.
슥삭슥삭.
슥삭슥삭.
"윤스리 손은 약쏜- 윤스리 손은 약쏜-"
누가 보더라도 할머니의 영향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많이 먹어 배탈이 났던 적이 있다. 그때 할머니께서 이렇게 해주셨다.
"할머니한테 배웠어?"
"움! 함모니 손은 약쏜이니깐, 윤스리 손두 약쏜이게찌? 왜냐믄 함모니는 윤스리 함모니니깐?"
"그럼, 윤슬이 손도 약손이지. 이렇게 해주니까 오빠 몸 상태가 점점 나아지는 것 같으네?"
"오오...! 약쏜 힘냄미다!"
쓱썩쓱썩-
쓱썩쓱...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전보다 2배속이 되었다.
아무래도 윤슬이는 손을 빠르게 움직이면 몸상태가 더 빠르게 호전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5세다운 착각이라서 절로 웃음이 난다.
조금 산만했지만 귀여우니까 그대로 냅두기로 했다.
우리의 약손씨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까진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체력을 소모한 나머지 윤슬이는 내 손 위에 머리를 기대고 엎어져버린다.
"우어어... 윤스리 지쳐써."
"수고했어, 우리 약손."
"웅... 마자, 윤스리 수고해써."
배실배실 웃더니 그대로 쭉 엎어져있을 셈이다.
내 손을 자기 볼에다 대고 부비적거리며 놀고 있다.
그런 손등이 차라리 배꼽보다 더 간지럽다.
....
뒤통수가 붕- 뜨는 느낌.
호흡이 정돈되고.
눈 앞이 흐려진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
약을 잘 챙겨먹고 잠든 덕분일까.
등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끈적거려서 불쾌하다기보다는 적당히 상쾌하다.
8월, 한여름 중에 이불까지 덮고 잤으니 땀에 젖을 만도 하다.
그리고 윤슬이는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텔레비전도 틀지 않고, 내 옆에서 줄곧 자리를 지켜준 것 같다.
그러다 지쳐잠든 거겠지.
"응? 내 폰."
분명 머리 맡에 두고 잠에 든 것 같은데.
어딘가로 사라져있다.
침대와 벽 사이로 빠졌는지 확인해보지만...
없다.
딱히 어딘가에 연락해야 하거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 없어지면 불안한게 스마트폰이다.
두리번-
두리번-
고개를 여러 차례 돌리다보니 의외의 장소에 스마트폰이 숨어있었다.
윤슬이의 가슴께 부근이다.
인형처럼 핸드폰을 안고 잠들어있는 5세였다.
"오빠를 놀래켜주려고 스마트폰을 숨겼나, 우리 아가씨가."
동생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살살 빼내어 가져온다.
우리 동생은 원래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타입이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보니까.
"왜 화면이 켜져 있지?"
배터리가 빨간색으로 점멸한다.
간당간당하다.
[3%]
그대로 꺼지진 않은 모양이다.
빠르게 충전기를 가져와 스마트폰에 꽂는데.
화면에는 초록색 검색창이 전시되어 있다.
윤슬이가 심심해서 내 스마트폰을 만진 듯하다.
딱히 문제될 만한 것들은 없었지만 이런 검색창에 다섯 살이 관심 가질만한 것은 없었다.
기껏해야 웹툰 정도?
그러나 웹툰을 본 것도 아닌 듯한데.
관성에 따라 검색창을 누르자 지난 검색목록이 좌르륵- 떨어진다.
그리고 최근 검색목록에는 한글 아닌 한글이 이어진다.
강기.
병언.
아푸.
옵바.
등등...
모자란 한글이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검색 목록을 만들었는지는 자명하다.
내가 아픈 게 진심으로 걱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검색하고자 했던 것이 감기, 병원, 아픔, 오빠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우리 동생은 어쩜 이렇게 이쁜 짓만 골라서 할까."
자고 있는 윤슬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우물거리면서 몸을 움직여 내 쪽으로 들러붙는다.
깨우지 않기 위해 다시 조심히 손을 빼내어 시간을 확인한다.
[18:32]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다.
감기 걸렸을 땐 뭐니뭐니 해도 죽이 최고다.
간단히 계란죽이나 만들어서 동생이랑 나누어먹어야겠다.
우선 물에 멸치를 풀어 육수를 끓인다.
아직 현기증이 미미하게 남아있지만 윤슬이랑 같이 먹을 음식이니까 대충 만들고 싶진 않다.
육수가 살짝 누렇게 떠오르면 멸치를 거두고, 거품끼를 뺀 뒤 밥을 넣어 되직하게 섞는다.
섞이면 맛술과 함께 풀어둔 계란을 생죽 위에 투하.
그리고 마지막에 송송 썬 파를 넣어 섞고, 참기름을 넣으면 기본적인 계란죽의 완성이다.
멸치 육수가 감칠맛을 잡아주고, 파가 계란죽의 무거운 맛을 한층 풀어 시원하게 바꿔준다.
"이쯤이면 윤슬이도 맛있게 먹으려나."
내 요리는 뭐든지 맛있다고 해주는 동생이지만, 그렇게 늘 칭찬을 들으면 걱정도 따른다.
언제 한 번 "옵바, 이거눈 별루인데?"라고 하지 않을까.
그때 받을 심적 데미지는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죽을 끓이고 나니 일곱시가 다 되어있기에 윤슬이를 깨운다.
아까 내 배꼽 주위를 살살 문질러준 것처럼.
올챙이 배에 손을 얹고 둥글게 젓는다.
슥삭-
슥삭...
"우... 웅."
눈을 꿈뻑이면서 날 멀뚱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팟! 하고 크게 뜬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내 얼굴을 붙잡는다.
순간 볼이 오그라들어 입술 쪽으로 모여서, 못난이 인형 같은 얼굴이 되었다.
"옵바가 인나써."
"아니, 지금 일어난 건 윤슬이잖아."
"옵바 다 나아써? 이제 안 아퍼?"
"으응... 아직 조금 더 쉬어야 되는데, 우리 윤슬이가 아까 약손 해줬잖아? 그래서 많이 괜찮아진 것 같네."
"윤스리 덕분?"
"그럼, 윤슬이 덕분이지."
"히히힝!"
신이 나서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린다.
방금 일어났는데, 기운도 좋다.
내가 다시 주방으로 향해 죽을 각자 그릇에 옮길 동안 윤슬이가 앉은뱅이 상을 펴놓는다.
그리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내게서 받아가 상 위에 펼쳐놓는다.
우리 집 다섯 살은 식당 일도 도와주는 만큼 굉장히 유능하다.
김이 펄펄 오르는 계란죽.
그릇을 내어주니 윤슬이가 입맛을 다지기보다는 나를 줄곧 응시한다.
"응? 왜 그래. 먹어도 괜찮아."
"윤스리는 머글 쑤 이써. 근데 옵바는?"
"오빠도 먹을 수가 있지."
"우움... 먹여주께."
"그럼 오빠 아프니까 우리 동생님한테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윤스리만 미더!"
신이 나서 내 옆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 동생.
김이 펄펄 나는 죽을 자기 입술 앞에 두고 후- 후- 하고 여러 번 불어준다.
김이 공중 멀리로 달아날 때까지.
자기는 뜨거운 거 먹을 때 그런 줄도 모르고, 덥석 입에 물면서.
내가 먹을 때 뜨거울까봐 걱정됐나보다.
참 별난 다섯 살이다.
윤슬이가 식혀준 죽을 입에 담는다.
워낙 죽이란 음식이 잘 식지 않지만 적당히 입에서 굴릴 만큼의 온도다.
맛도 괜찮다.
"윤슬이는 오빠 먹여줘야 되니까, 이렇게 먹어."
이번엔 내가 윤슬이를 먹여준다.
똑같이 후- 후- 불어주니까 만족스럽게 먹는다.
"움! 역씨 우리 옵바 요리가 체고."
별 다섯 개짜리 리뷰도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내 최고의 고객님.
평소보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훨씬 화목했다.
그리고 날 낫게 해주겠다며, 함께 잠이 들던 밤엔 내 배를 쓰다듬다가 동생이 먼저 잠들었다.
슥삭 슥삭-
배를 쓰다듬는 손이 신경쓰였지만 너무도 따듯하게 느껴졌고.
다음날 아침.
우리의 약손씨 덕분에 무사히 나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