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99화 (99/200)

99화: 스토커는 아닙니다, 진심으로 (3)

평범한 바이크보다 큰 차체에서 편안한 복장을 입은 여자가 다리를 크게 저으며 내린다.

붉은 머리에 20대 중반.

우리 가게 대표 대식가 백수인씨다.

가게 공사로 인한 휴식기를 끝냈으니 늘 그랬듯 들려주시는 것이다.

우리 식당 사장으로선 참 감사한 일이긴 한데.

웬일로 가게 앞에서 입을 떡하니 벌린 채로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있다.

발코니가 새로 생긴 게 그토록 놀라웠을까?

평소엔 무뚝뚝한 성격인데도 말이다.

다시 한 번 윤슬이가 나가서 수인씨를 맞이한다.

반가웠는지 그 걸음속도도 전에 비해 빠릿하다.

"이니 언니 와써!"

-  응, 윤슬이 안녕...

윤슬이에게 인사하면서도 눈매를 좁히며 가게 내부를 응시한다. 그 시선의 끝엔 황치호씨가 있다.

-  어어?! 백작가님 아니세요?

-  으윽... 황치호.

-  어떻게 이런 데서 마주친대? 참 우연이지?

-  우연은 무슨. 험한 말 나오게 하지마. 나 여기 자주 다니는 줄 알고 찾아온 거잖아.

-   내가 스토커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면 오해하지.

두 사람은 서로를 째리며 티격거린다.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백수인씨는 굳이 발을 세게 구르며 그 옆옆 자리에 앉아 거리를 벌린다.

윤슬이는 눈치를 보더니 그대로 백수인씨 옆으로 가서 올려달라고 팔을 벌린다.

"두 분 아는 사이세요?"

-  그럼요,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

-  절친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에요. 좀 오래된.

백수인씨는 황치호씨에 비해 철저하게 철벽을 치고 있다. 백수인씨가 저렇게 틱틱거리며 말하는 걸 보면 친구 사이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근데 백작가, 라고 하시는 거 보면 설마 수인씨도 소설 쓰세요?"

-  으윽... 네... 일단은요.

-  일단은 무슨, 나름 히트작 작가에요.

-  그만해라, 너.

-  평소 같았으면 이런 얘기 안 했겠지만. 여기 사장님이랑 윤슬이한테는 알 권리 있는 것 같아서.

- .... 그 얘기도 제발.

두 사람이 본인들만 아는 얘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윤슬이가 불쑥 끼어든다.

"이니 언니두 이야기 쓰는 거야?"

-  응, 그렇지 일단.

"오오! 윤스리두 책 조아해. 그래서 옵바한테 맨날 읽어달라구 그런다. 나중에는 윤스리가 옵바한테 읽어주꺼야."

-  윤슬이가 읽어주면 오빠가 엄청 좋아하겠네?

"당연하지! 옵바는 윤스리를 조아하니깐."

윤슬이가 펄쩍, 앉아있던 의자에서 뛰어내리더니 가게 안쪽에서 무얼 뒤적거리면서 꺼낸다.

그리고 손에 들린 것이.

"이거 바바, 저번에 옵바가 읽어준 거다!"

동화책.

브레이크 타임에 읽어줬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날 윤슬이가 내 얼굴에 낙서를 하는 바람에 저녁 장사 동안 얼굴에 윤슬이 보물이라고 광고를 하고 다녔다.

지금 돌이켜보면 즐거운 추억이지만, 그 일 때문에 요즘도 이따금씩 거울을 유심히 보곤 한다.

혹시나 윤슬이가 장난으로 내 얼굴에 무얼 써놓진 않았을까. 문득 의심돼서.

-  언니가 쓰는 건 이런 거랑은 조금 다르긴 한데... 윤슬이는 이거 읽고 재미 있었어?

"움... 재미눈 이써. 근데 윤스리는 화가 나써."

-  화가 나? 왜?

"우움... 왜냐믄 딸이 아빠랑 행복카게 살므는 대는데. 돈을 다 마을 사람들한테 나눠줘버려. 그래서 가난해져. 윤스리는 절대루 안 그럴 거야."

-  으응?

내용 전반을 모르고, 저런 요약만 들으면 반응이 저렇게 나오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 옆에서 황치호씨가 한 마디 거든다.

-  오... 다섯 살한테서 고구마 전개를 혐오하는 냄새가 풀풀 나는데? 이건 귀한 캐릭터군. 메모... 메모...

소설가라 그런지 이런 상황에 일일이 메모를 해두는 모양이다. 백수인씨도 소설가라는 걸 보니, 모든 작가가 저렇게 기록에 집착하는 건 아닌가보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장윤슬' 캐릭터에 호감을 느낍니다.]

[판타지 웹소설 작가 황치호: 식당 만족도가 7%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34%]

소설 작가라서 그런지 의외의 부분에서도 만족도가 올라간다.

이런 식으로 만족도가 올라가는 건 처음 보는데, 황치호씨가 되게 특별한 가치관을 가지신 분 같다.

"근데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저희는 백수인씨가 소설가인 걸 알 권리가 있다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아앗... 그건.

황치호씨에게 물었는데, 되려 백수인씨가 당황한다.

그걸 옆에서 힐끔 힐끔 쳐다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 치호씨.

-  궁금하시죠? 근데 본인 아마 이제 곧 본인 입으로 실토할 거예요.

-  황치호, 너 진짜...! 하아, 윤슬이 앞이라 험한 말도 못 하겠고.

-  네가 직접 나한테 말했었잖아. 식당 운영하는 남매한테 고맙다고 말하겠다고.

고맙다?

우리한테 고마워할 일이라도 있다는 얘기일까.

치호씨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는 수인씨.

결심을 굳힌 듯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어플리케이션을 꺼내서 우리 남매에게 각각 보여주신다.

"움? 옵바, 이거 모라구 읽으는 거야?"

"이건, [악마대공님의 딸이 되었는데요]라고 읽으면 되는데. 제목이 제법."

육성으로 읽기엔 약간 쑥쓰럽다.

공감성 수치를 느끼시는지, 백수인씨 얼굴이 덩달아 빨개진다.

악마 대공님이라니, 무슨 내용일지 상상은 된다.

근데 표지를 유심히 보니.

누구누구를 닮았는데, 기분 탓일까?

-  눈치 챘죠?

"무슨?"

-  이 소설 표지에 나오는 딸이랑 아빠 캐릭터 있잖아요. 두 사람을 따서 모티브로 한 거예요.

"네?!"

"움?!"

충격-

여지껏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껏 우리 가게에 자주 들렀던 이유도 그래서일까?

소설의 직접적인 모티브를 따기 위해.

백수인씨의 부연 설명을 듣고 나니 알 것도 같다.

표지를 다시 한 번 유심히 관찰한다.

악마 대공의 머리 스타일은 나와 비슷하고, 그 딸은 윤슬이처럼 풍성한 말 꼬랑지를 자랑한다.

옷 스타일이나, 얼굴 생김새 등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우리 남매와 비슷하다.

모티브가 된 본인이지만 그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미안해요, 사실 진즉에 여쭤보는 게 예의이긴 했는데. 조금 망설여져서. 화낼 수도 있고. 또,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싶기도 하고.

"아뇨... 뭐, 안 될 건 없죠. 저희 실명을 가져다 쓰거나 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  네, 당연히 그런 건 아니죠. 그냥 윤슬이랑 주현씨, 둘이서 사는 게 아기자기하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으니까. 그런 데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그랬어요.

그때 황치호씨가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  근데 심지어 대단한 게 뭔지 알아요? 그렇게 해서 쓴 게 매출만 6억이 넘었다죠.

".... 6억?"

"움? 옵바 6억이면 얼마나 마나? 윤스리가 손으루 셀 수는 없게찌?"

그걸 일일이 손가락으로 세다간 날이, 아니 인생이 저물 것이다.

"돈이 6억만 있으면 이 세상에 있는 초콜렛 하나씩 다 사먹어도 남아. 아마도?"

"우오오오! 옵바, 윤스리는 나중에 커서 꼭 6억을 벌게. 그리구 초코 하나씩 다 사서 먹구. 나머지는 옵바 주께."

우리 5세의 포부는 나날이 커져만 간다.

이러다 해적왕이 되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이라도 찾으러가겠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보물 위엔 또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표시하겠지.

윤슬이 보물.

이라고.

"저희 한 번 읽어봐도 돼요?"

-  지, 지금요?

"저희 남매로 어떤 얘기 썼는지 궁금하잖아요. 그 정돈 보게 해주세요."

-  아아... 12화랑 23화랑, 또...

백수인씨는 배가 고프지 않은 건지, 아니면 공복 상태도 잊을 만큼 감정이 요동치는 건지 식사 주문하는 것도 잊으시고 우리의 반응만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5분 정도만에 대충 훑어보았는데, 내용이 직관적으로 들어와서 좋았다.

간단한 단문과 군더더기 없는 묘사.

캐릭터들의 행동만 그대로 머리 속에 그려지는 소설이다.

심지어 그 캐릭터들이 나와 윤슬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니 더욱 잘 상상되었다.

수인씨가 알려준 회차에는, 지난 5월에 있던 생일날 있던 일이 각색되었다.

그리고 윤슬이가 가게에서 새로운 개인기를 선보였던 날의 일도 각색되어 등장했다.

마치 과거의 일기를 한 편의 스토리로 바꾸어 읽는 느낌이라 신선하기도 했다.

순수하게 이런 얘기를 써준 수인씨에게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너무 재밌네요! 시간 날 때 꼭 하나씩 사서 읽어볼게요."

-  아아, 다행이에요.

"옵바! 윤스리두 읽구 시퍼!"

"그럼 이따가 브레이크 타임에 이거 읽어줄까? 동화책 말구."

"그게 좋켔어!"

백수인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깨가 늘어지며 긴장이 풀리신 듯하여 주문을 받는다.

오늘의 메뉴로 4인분.

그리고 추가 주문은,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백수인씨의 정규 주문 코스다.

단골이기에 이 정도는 외우고 있다.

볼장을 다 봤다는 듯, 황치호씨는

-  저도 앞으로 자주 올 거니까 친하게 지내요!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유쾌한 사람이다.

음식을 내어드리자 평소보다 조금 지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고는 밥을 뜨기 시작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걱정 되었나보다. 수인씨는 보기보다 마음이 유약한 사람인 것 같다.

윤슬이는 수인씨 옆에서 먹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아직 배는 안 고픈지 밥 달란 소리는 안 한다.

이제 곧 손님들이 몰려올 시간이다.

혹은 오늘은 손님이 덜 찾아주실지도 모른다.

가게 휴가를 3주나 내었으니, 오늘부터 영업 재개인지 헷갈리는 분들도 계실 테니 말이다.

거의 매일 같이 찾아주시는 백수인씨나 연락을 종종 주고받는, 단골 고객이 아니면 일일이 기억하기는 어려운 정보다.

그런데 웬 걸?

덜컹-

덜컹-

".... 계속 오시네."

-  어휴, 이제야 장사 다시 하네! 오늘의 메뉴로 3인분이요.

-  어! 한참 공사하더니, 여기 발코니 쪽에 테이블 생겼다. 여기서 먹자. 저희는 오랜만에 가지튀김 하나랑 제육 주세요.

-  사장님, 저희 마음의 고향을 잃은 느낌이었다니깐요. 윤슬이도 못 봐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하하하... 다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밀려드는 주문.

급작스레 바빠지지만 이미 마음을 어느 정도 먹고 있어서 그런지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또, 지금의 요리 실력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수준이다.

[요리의 길(LV. 4)- 숙련도 21%]

[LV.4 – 중급 요리인]

밑준비만 잘 되어있다면 이 정도는 금방 내어드릴 수 있다!

내가 웍질에 매진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홀로 식사 중이던 백수인씨가 이에 대해 한 마디 코멘트하신다.

-  이 풍경이 그리웠거든요. 요즘 같은 세상엔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런 따듯한 식당.

대꾸해드릴 순 없었지만 입꼬리가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  덤으로 소설 아이디어도 좀 얻고? ㅋㅋ

라고 작게 덧붙인다.

다시 입꼬리가 말려내려간다.

흥겹게 요리를 하다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백수인씨가 우리 가게에 처음 들렀던 게 언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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