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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06화 (106/200)

106화: 맑은 하늘 우산(2)

-  난 고구마가 좋아.

내가 냉장고에서 재료를 뒤적이고 있는 사이,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움? 고구마?"

"마침 있긴 한데."

거의 다 팔아버려서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몇 개 내어드리는 것쯤 상관은 없다만.

"함모니가 우리 고구마 가지구 있눈 거를 어뜨케 알아여?"

-  저번에 먹었잖어. 여기서.

"움? 그랬나?"

".... 그러셨던가요?"

말씀하시는 걸 듣자하니, 오누이 식당에 방문해주신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상하다.

윤슬이랑 나.

둘 다 기억을 못하고 있다.

그건 이상하다.

나랑 윤슬이는 이래 봬도 손님들 얼굴은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 물론 교류가 깊고,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누는 손님이라면 더욱 친하게 지내지만.

그렇지 않은 묵묵한 손님들의 얼굴까지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저 할머님의 경우 일면식도 없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윤슬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할머님이 착각하셨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도 고구마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셨을까.

주방 안쪽에 있어서 홀에서는 쉽게 들여다볼 수도 없는데 말이다.

-  아무튼 나는 고구마. 지금 고구마 먹고 싶다.

"알겠어요. 그럼 고구마 쪄드리면 되는 거죠?"

-  응! 쪄줘. 쪄줘. 식을 때까지 냅뒀다가, 잘라서 줘. 그게 좋아.

할머니께서는 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구체적인 요구를 하신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불을 올려서 간단한 음식을 만든다.

윤슬이랑 나랑 나눠먹기 좋을 정도의 양으로 담은 오므라이스.

그리고 찐 고구마.

둘 다 손이 그렇게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닌지라 그럭저럭 요리할 수 있다.

물론 건강검진을 받은 상태라 컨디션이 좋진 못했지만, 아직 젊어서 그런지 버틸만했다.

케찹과 굴소스를 이용해 간을 한 볶음밥에 알알이 박힌 작은 채소들.

그 위에 몽글몽글하게 반쯤 익힌 계란을 얹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약간의 케첩을 뿌리면 완성이다.

고구마와 함께 쟁반에 담아 홀쪽으로 간다.

테이블에 띄엄띄엄 잘린 고구마를 두자 할머니가 게걸스럽게 손으로 집어드신다.

그 옆에 포크도 제대로 두었는데 말이다.

성격도 급하시다.

"옵바, 우리두 먹으자."

"그래, 맛있게 먹어."

"움! 잘 먹게씀미다."

윤슬이가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할머니도 따라서

-  잘 먹겠스니다.

입에 고구마를 약간 담은 채로 인사하신다.

묵묵히 식사시간이 이어지다가 윤슬이가 우리 둘이서만 오무라이스 먹는 게 미안했나보다.

"함모니눈 이거 안 머거여?"

-  응? 나는 고구마가 좋아.

"이거 폭씬폭씬해서 디게 맛있눈데."

-  됐어. 난 고구마.

주관이 강한 분이셨다.

그런 점에서 앙칼진 고양이 같은 느낌도 난다.

간단한 식사가 끝난 뒤 할머님은 바짓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꼬깃꼬깃하고 꺼내신다.

사진이었다.

-  이거 볼래?

우리 남매 앞에 가지런히 내려두었다.

약간 꾸겨져있었지만 인물 사진이라는 것은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윤슬이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듯한 남자아이다.

미정 선생님 아들, 유민이랑 비슷하거나 그보다 한 살 정도 많으려나.

"움? 누구에여?"

-  내 친구야.

"함모니 칭구?"

-  응, 친구. 되게 잘해준다? 이름은 시후. 그리고 내 이름은 시온. 비슷하지?

"이 칭구 이름이 시후... 그리구 함모니 이름이 시온?"

-  응.

"우오... 함모니 이름 디게 멋찌다. 루이만큼 멋찌다."

-  그치? 루이보단 시온이 더 멋있지.

"잉? 루이두 멋있눈데. 그거눈 비교하므는 안대. 이름은 소중한 거에여."

-  흥, 아무튼 시온이 더 멋있거든.

"우우... 루이두 멋이 있눈데."

윤슬이가 루이에 대해 항변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다른 쪽이 신경 쓰인다.

할머님의 이름이 시온이라는 멋들어진 두 글자라는 게 놀랍다.

우리 외할머니와 연세는 비슷해보이는데, 그 시대에도 어떤 선구안을 가진 사람이 계셔서 멋있게 이름을 지어주신 걸까.

그 부분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책상에 놓인 사진을 들여다본다.

아마 추측컨대 사진 속의 남자아이는 손주겠지.

폴라로이드로 찍은 듯하다.

기억이 온전하지 않으시니, 아이를 '손주'가 아닌 '친구'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그렇다고 한다면 안타까운 사연이다.

저 아이는 할머니가 자신을 친구처럼 대하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자랄 것 아니겠는가.

그건 나중에 컸을 때 여러 모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  시후가 되게 착해.

"윤스리두 착해."

-  응. 시후는 근데, 나 아플 때도 간호해준다?

"윤스리두 옵바 간호해줘써. 디게 힘들었눈데. 시후도 열씨미 간호해줘써?"

-  그럼! 엄마 아빠랑 같이 병원에도 데려다줬으니까. 으으... 그때 주사 맞았는데 되게 아프더라.

"이익...! 주사! 시러."

윤슬이가 내 팔뚝을 붙잡는다.

비극적이게도 윤슬이 손이 잡은 곳은, 병원에서 피검사를 위해 체혈한 곳이었다.

그 구멍은 한참 전에 아물었겠지만 약간 아려왔다.

-  그리고 우리 시후가 또 얼마나 착하냐면! 추울 때는 이불도 덮어준다?

"움... 윤스리두 이불은 혼자서 덮으는데."

굳이 따지자면 이불을 덮긴 덮는데, 자다가 차버려서 내던지는 쪽이다.

할머니는 손주로 추정되는 아이, 시후의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윤슬이 자랑을 하는 내가 저렇게 비칠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심심할 때는 놀아도 주고. 근데 요즘은 자주 못 놀아.

"왜여?"

-  시후가 병원 갔거든.

"움?! 마니 아퍼?"

-  잘은 모르겠어. 많이 아픈 건지. 아니면 금방 나을는지. 그래서 맨날 시후 병실을 지켜보고 있어. 낫는지, 아니면 안 낫는지. 근데 표정이 매일 어두워.

그럼 오늘, 우리가 건강검진을 위해 있던 병원에 할머니가 계시던 이유는.

"시후 보려고 아까부터, 그 병원에 계셨던 거예요, 할머니?"

-  응! 맞어. 근데 이제 슬슬 돌아가려는데 너희가 딱! 눈 앞에 보이잖아. 그래서 잽싸게 따라왔지. 배고팠거든.

왠지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씀하시는 할머니.

윤슬이가 세 살 정도 나이를 더 먹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저렇게 되겠지 싶다.

"함모니, 윤스리가 병 싹! 달아나게 하는 방법 알구 있찌롱. 궁금하지?"

-  음... 뭔데?

"이거 바바."

이거 보라더니 왜 내 배를 까는가.

면바지에 넣어입었던 내 웃통을 살짝 벗겨 배꼽을 훤히 드러내더니 그 주위를 손으로 막 문지른다.

-  바바. 이케, 이케... 약쏜처럼 만지므는 금방 아픈 게 나아져. 옵바한테 물어바. 윤스리가 이렇게 해서 낫게 해줬으니까는. 그치? 옵바.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분명 윤슬이가 그렇게 만져주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쯤 병세가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솔직히 윤슬이 덕에 병이 낫게 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평소 같았으면 착한 거짓말로 은근슬쩍 넘어가도 되는 부분인데, 이를 긍정한다면 저 할머님은 진짜로 믿으실 것이다.

그럼 시후라고 불리는, 저 손주한테 가서 진짜로 약손이라며 배를 문지르고, 왜 병이 낫질 않지?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간단한 시츄에이션인데도 괜히 머리가 복잡해진다.

근데 그때.

할머니가 그다지 좋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여신다.

-  그건 안 되겠어.

"움? 왜여?"

-  나는 시후랑 지금은 못 만나.

"잉? 아까눈 병원에서 보구 왔다구 그랬자나여."

-  만나고 온 게 아니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어.

"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윤슬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리도 아니다.

나조차도 그 이유를 가늠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문제는 그 가능성들이 모조리 온건하지 못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친손주가 아니라거나.

아니면 시온 할머님을 방치하는 가정이라거나.

특히 후자라면 악질이다.

시온 할머님은 씁쓸하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그리고 그대로 가게 문까지 걸어나간다.

-  잘 있어! 고구마 잘 먹었다.

"움? 시온 함모니 가여?"

-  응, 이제 가야지. 나도 바쁜 몸이거든.

"모하러 가눈데여."

-  여기 저기, 돌아다니러. 난 원래 자유의 영혼이야.

그런 멋들어진 말을 남기고는 가게를 곧장 떠나셨다.

알츠하이머를 감안하더라도 희안한 성격인 것은 틀림 없다.

"우리도 정리하고 집 갈까?"

"움... 그게 좋케써."

간단히 설거지만 하려고 그릇을 치우는데.

덜커덕-

이번엔 또 다른 방문자가 있었다.

"움?! 안경 할부지당."

"어? 오랜만에 오시네요."

-  그러게요. 오랜만입니다, 하하.

한참을 들리지 않다가 오셨다.

가게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 가게에 들러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또, 윤슬이 이름의 의미도 알려주셨다.

오랜만에 봬서 반갑긴 한데.

문제는 오늘 영업일이 아니란 점이다.

저번에도 영업 개시 전 시간대에 와서 식사를 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식사하러 오신 거예요? 어쩌죠... 저희 오늘 휴일인데."

-  아아, 내가 또 휴일에 와버렸네요. 미안하게.

"평소 같았으면 뭐라도 대접해드리는 건데, 오늘 제가 건강검진을 다녀오느라 몸상태가 좋지 못하네요."

-  어이구... 고생했네. 그럼 편히 쉬어야지요. 근데 그거랑 별개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몬데여? 할부지는 디게 똑똑하자나여. 윤스리는 그 정도루 똑똑하지눈 않아여. 그래서 대답 몬해줄 수도 이써."

-  하하하! 그렇구나. 우리 윤슬이도 아마 대답해줄 수 있을 건데. 방금 오누이 식당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가시더라고요. 그 모습 보고 영업하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

"아아... 그분이요."

확실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충분히 착각할 법하다.

멀쩡히 사람이 드나들고 있다면 보통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  혹시 그럼 젊은 사장님, 그... 할머님 되시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말씀드리기가 조금 복잡한데."

-  흠... 아니군요. 제가 저번에 신기한 걸 좀 보게 돼서.

"싱기한 거여?"

할아버지는 듬성이, 아직 건재한 머리카락을 차분히 정돈하며 말씀을 이어나가신다.

-  뭐, 사실 나이가 먹으면 다 그렇지만 무릎이 안 좋아서. 며칠 전에 그... 큰 병원에 들르게 됐습니다만. 거기서 방금 이 가게에서 나가신 할머니를 봤는데요.

아마 우리가 방문했던, 그 병원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  요즘에 되게 자주 마주치길래 은근히 신경 쓰였었는데. 아무래도 치매끼가 약간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네, 아마도 그러신 것 같아요. 속단하면 안 되지만."

우리 가게에 들어와서 하신 행동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  그런데 항상 보호자 없이 돌아다니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제 지인 중에서도, 한 명 그런 낌세를 보이는 녀석이 있긴 한데. 그쪽은 아들내미가 잘 커버를 해주니까 불안한 게 없어요.

"그러는 경우가 보통이겠죠."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말씀하시는 거다.

한 번도, 보호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더라고.

방치 중이라는 걸까.

그런 거라면 진심으로 화가 날 것 같다.

-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부분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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