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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15화 (115/200)

115화: 레전드 오브 맛짱짱(1)

스산한 바람이 분다.

그밖엔 적막하다.

햇발은 잔악하게 대지를 지지고.

생명의 자취가 드물다.

그런 황량한 벌판.

고고한 전사가 우뚝 서있다.

신장 무려 105cm.

몸무게 미상(본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비공개).

휘황찬란한 갑주(라고 가정한 자켓)를 두른 전설의 용사.

장윤슬이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으리라곤, 처음부터 예상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래야만 했다.

그녀에겐 지켜야할 것들이 있기에.

"움.... 마왕! 일루 나와. 윤스리가 와써. 엉망진창으루 끝짱내줄 거니깐!"

-  크크큭... 왔구나. 용사여.

모래 섞인 바람이, 땅을 쓸어내리듯 얕게 불어오는 벌판의 뒤편.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펌이 적당히 풀린, 부산한 머리카락.

짝짝이 슬리퍼.

후줄근한 집업 후드.

대마왕 황치호씨다.

-  크키키긱... 아무리 전설의 용사라고 하더라도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중2병스러운 표정과 몸짓, 대사 호흡 등등으로 중무장하였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을뿐더러, 난 개인적으로 막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대로 평생 지구를 정복하게 해주고 싶다.

"우우... 마왕. 넘무 강해보인당.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쑤는 업써. 윤스리한테눈 옵바두 있구. 함모니두 있구. 루이두 이써. 그니깐 윤스리가 이길 꺼야!"

-  흐하하하! 어리석긴. 덤벼라, 용사 장윤슬. 마왕의 힘이 무엇인지 톡톡히 보여주마.

마왕과 용사.

그 둘의 장엄한, 최후의 전투가 펼쳐진다.

두 사람의 손에 들린 무기.

전설의 나뭇가지와 파멸의 나뭇가지.

그 메마르고 생기 없는 것들이 마구 부딪히며 기괴한 마찰음을 낸다.

그리고 그 전투를 열심히 스마트폰 화면으로 찍고 있는 나는 약간의 환멸감과 함께 현타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

"움.... 이걸루?"

"딸기?"

"움.... 아냐. 역씨 이걸루?"

"초코?"

"움.... 움.... 아냐. 아냐, 아냐. 역씨나 이걸루??"

"바나나?"

5세 장윤슬.

고민에 빠지다.

이토록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윤슬이 손에 들린 두 가지 우유.

초코 우유와 딸기 우유다.

그리고 그 앞엔 바나나 우유까지 있다.

세 가지 다 같은 브랜드.

맛짱짱 우유다.

이 브랜드의 초코 우유, 그러니까 맛짱짱 초코우유는 윤슬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에 하나다.

최근 들어서 아침에 오누이 식당으로 출근하기 전에 꼭 한 번씩 근처 편의점에 들린다.

내가 컨디션 유지를 위해 쌍화탕을 구입할 때 윤슬이는 오늘 어떤 맛짱짱 우유를 마실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냥 세 개 다 사."

"아앗...! 그거눈 넘무 욕씸쟁이."

"괜찮아. 두고두고 마시면 되잖아. 어차피 2+1이야."

"움? 2+1이 몬데."

"두 개 사면 하나 더 주는 거."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종종 선보이는 판매전략이다.

2개 사면 1개를 더 얹어준다는 상술.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가격이 특별히 싸지진 않는다.

오히려 1개 가격을 일정 수준 높이면서 판매하여 2개 합친 가격이 본래의 3개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 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뭐 어떤가.

동생이 좋아하는데 사줘야지.

"오오...! 그렁 게 있다눈 마리야?!"

윤슬이는 평생 2+1을 몰랐던 듯 콧김을 뿜으며 흥분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잽싸게 맛짱짱 우유 초코, 바나나, 딸기 맛을 하나씩 손에 집는다.

"옵바, 대신 하루에 한 개만 머글게."

"옳지, 안 그러면 이가 어떻게 돼요?"

"다 썩어버려여. 아야해."

"우리 윤슬이가 잘 아네."

본인이 잘 조절하겠다고 장담했으니 아마도 잘 지키겠지. 편의점 직원에게 부탁하여 2+1인 맛짱짱 우유를 결제한다.

우유 3팩의 가격은 2,400원.

그러니까 2개 가격이 각각 1,200원인 셈인데.

사실 250ml짜리 우유 한 팩이 1,200원이라는 게 이상하긴 하다.

우리 가게에서 내가 손수 만든 디저트 한 접시가 1,500원인데 말이야.

역시 2+1의 상술로, 본래의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 게 틀림 없다.

내 마음에 세들어 사는 선택적 수전노 마인드가 정신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윤슬이는 빨대를 맛짱짱 우유의 대가리 부분에 야무지게 꽂아 후루루루룩-

빨아먹는다.

"움! 이 마시거둔."

만족스러운지 자기 볼에 손을 살포시 올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빙빙 젓는다.

그런 모습을 보니 가격따위 아무래도 좋아졌다.

윤슬이가 하도 맛있게 먹다보니 맛짱짱 우유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남은 두 개의 우유는 각각 바나나맛과 초코맛이다.

동생은 결국 딸기맛을 먹기로 한 것이다.

포장된 우유 팩의 겉면을 무심하게 살펴보는데.

형광색 글씨로 하이라이트 처리된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맛짱짱 우유 공모전 개최]

[맛도 짱짱! 고객 여러분의 사랑도 짱짱!]

"뭐야, 이게."

"후루루루룩-! 무신 일임미까."

"맛짱짱 우유에서 무슨 대회 같은 걸 연다고 해서."

"대해? 후루루룩-"

윤슬이의 관심.

있는 듯 없는 듯.

내 쪽을 보진 않고, 열심히 맛짱짱 우유를 빨아들이고는 있는데.

관심만 꼬박꼬박 던져준다.

깨알만한 글씨로 자잘하게 쓰여진 문구를 읽어내린다.

대략적인 공모전 요강은 이렇다.

맛짱짱 우유와 관련된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 본사 홈페이지에 투고하면, 그중에서 심사를 본다는 것이다.

심사에서 높은 등수를 차지하면 맛짱짱 우유 몇 박스와 소정의 상금 등 상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후룩-! 후룩-! 쪼로로로로록.... 움..."

후룩후룩 마셔대다보니 어느새 맛짱짱 우유가 바닥이 나버렸다.

그리고 우린 편의점에서 나온 지 5분이 채 안 돼서 오누이 식당에 도착했다.

윤슬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쓰레기를 품에 안고는 문이 열리자마자 쓰레기통에 잘 버렸다.

꾸깃꾸깃해서 부피를 줄인 다음에 버린다.

우리 동생은 이런 데서 은근히 습관이 잘 들었다.

쓰레기를 꾸기지 않으면 봉투가 금방 차버리니까 자주 바꿔야 한다. 그래서 내가 쓰레기는 최대한 부피를 줄여서 버리곤 하는데, 이를 곧바로 따라하는 것이다.

"옵바! 아까 맛짱짱이 모한다구 그랬드라?"

"대회를 연대."

"무슨 대해?"

"맛짱짱 우유를 갖고 동영상을 찍어서, 우유 만들어주시는 아저씨들한테 보내면. 그 중에서 잘 만들어준 사람들한테 상품을 주는 거야."

"움? 모 주는데."

"맛짱짱 우유를 많이 준다고 하더라."

돈에 대한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눈이 불타오르는가, 5세여.

"옵바...!"

"응?"

"해야게쏘."

"뭐를?"

"모긴 모게써! 맛짱짱이! 윤스리랑 옵바랑 대해 나가는 거야!!"

투지를 불태우는 5세였다.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눈동자가 이글거린다.

이토록 투지를 보이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윤슬아, 쪼끔 어렵지 않을까."

"움? 왜여??"

"이거 동영상 기준이 조금 어려워보이는데."

윤슬이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심사 기준에는 이런 항목도 있었다.

[고객님들이 들려주는 한 편의 스토리를 원합니다. 스토리 완성도가 높을수록 좋은 점수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UCC를 원하는 게 아니다.

맛짱짱 우유를 소재로 하여 하나의 스토리를 짜고.

그 스토리를 짧은 동영상에 녹여내길 원하는 것이다.

간단한 동영상이라면, 어떻게든 찍어보겠지만 스토리까지 짜야한다고 하면.

그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윤슬이는 물론이요, 나 또한 이야기를 써내리는 재주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것에 대해 윤슬이한테 잘 설명해주니 크게 충격을 받는다.

맛짱짱 우유를 어떻게든 받고 싶었나보다.

"윤스리 꺼...! 맛짱짱이가..."

"으윽."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오누이의 능력을 써서 어떻게 될 일도 아닐뿐더러.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우선 마음을 추스르고 오전 장사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고. 동생을 달래기 위해 맛짱짱 우유를 하나 더 마실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랬더니.

"후루룩-! 역씨 이 마시야!!"

금방 기분이 풀렸다.

단순한 5세다.

점심 장사 준비를 위해 오늘의 메뉴를 먼저 준비한다.

조금 특별한 메뉴다.

이름하여, 치킨 인 헬!

살벌한 이름에 비해서 꽤 귀여운 메뉴인데.

토마토소스에 계란과 함께 닭고기를 함께 넣어 익히는 메뉴다.

한식은 아니고, 유럽 쪽에서 에그 인 헬이란 이름으로 많이들 먹는 음식인데.

닭고기를 함께 넣어도 괜찮을 듯 싶어 레시피를 개량해본 것이다.

닭고기를 먹기 좋게 손질하고 있는데 윤슬이가 옆으로 쫄래쫄래 다가온다.

"옵바 오늘은 모 만들어?"

"닭고기랑 토마토랑 계란을 같이 넣어서 요리 만들어줄 거야."

"움?!"

윤슬이가 흠칫 놀라며 발을 두 발자국 정도 뒤로 뺀다.

"...? 왜 그래."

"넘무행."

"뭐가 너무해?"

"달걀이랑... 닭... 엄마랑 아둘..."

"...."

그런 지점에서 감수성이 폭발해도, 요리는 요리다.

물론 계란과 닭을 한 플레이트에 담는 게 마음이 조금 아플 수는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 맛일 테니.

"오늘만 눈 감아줘."

"웅... 알게쏘."

윤슬이는 눈을 감아줄 요량으로 부엌에서 뽈뽈- 하고 다시 나가는데.

진짜로 두 눈을 가리고 주방에서 나가느라 몇 번 툭- 툭- 하고 다리를 가구에 부딪힌다.

"잉? 으앙! 아펑!"

그게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 지어진다.

닭고기를 손질한 뒤.

양배추를 꺼낸다.

양배추와 버섯까지 함께 넣을 생각이다.

토마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토마토는 산미가 강하다.

데우면 어느 정도 날아가긴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식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맛은 날리기 어려운 법이다.

이를 양배추가 잡아줄 것이다.

신 맛이 강하면 위에 부담이 가는데.

양배추는 사람의 위장에서 도는 강한 산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즉, 위장에 자상하게 만들기 위해 양배추를 넣는 셈이다.

삭삭삭삭삭-

양배추를 써는 것 또한 고된 일이다.

의외로 뻑뻑한 데다가 양배추의 심쪽으로 갈수록 고집이 강해져 단단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맛있게 드셔주실 손님과 윤슬이의 얼굴을 상상하며 어떻게든 손질을 끝낸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첫 손님이 찾아왔는데.

드륵-

"으윽...! 고굼마 아저씨."

-  오우! 윤슬이. 그래, 그래. 고구마 아저씨가 왔어요.

"윤스리한테서 떨어져여. 절루 가여."

-  오늘도 까불거리는 꼬맹이네.

"꼬맹이 아니구 윤스리! 짜꾸 꼬맹이라구 하므는 윤스리가 고구마 또 입에 먹여버려."

-  드루와, 오히려 좋아.

한 가지 소름끼치는 기억이 떠오른다.

윤슬이랑 백수인씨와 합심하여 한 번은, 지금 오신 황치호씨에게 장난을 친 적이 있는데.

의자에 묶어 고구마를 마구 먹였더니.

오히려 오누이 식당에 대한 종합 만족도가 오르면서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습니다.]

라고 뜨는 게 아닌가!

-  왜 주현씨까지 절 그렇게 봐요?

"별 거 아닙니다."

그럼에도 굳이 티를 내진 않도록 한다.

세상은 넓고 취향은 많으니.

게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오르는데.

황치호씨 본업이 소설가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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