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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42화 (142/200)

142화: 밍구쓰와 로맨쓰(2)

눈에 익다고 표현하기까진 애매하지만, 확실히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성함이, 신연지씨던가.

- 뭐야, 두 사람 아는 사이에요?

“아는 사이라고 하긴 어렵죠.”

“이 아쥼마가 우리 옵바랑 결혼할라구 그래써!!”

- 으응? .... 뭐라고?

정민구씨가 감정의 동요를 강하게 드러낸다.

동공이 지진하며 본인 구렛나룻을 손으로 당긴다.

“오해에요.”

“맞짜나! 윤스리 다 알어.”

5세는 마치 심문을 하는 형사처럼 턱에 힘을 강하게 주고는 나를 노려본다.

주름진 턱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혔더니 표정이 허무하게 무너진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틀렸다, 동생아.”

“잉?”

- 근데 연지씨랑 두 사람이 알만한 이유가 있나요? 혹시 이 식당에 자주 오시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식당에 자주 오셨으면, 아마 민구씨도 한 번쯤 마주쳤겠죠. 그런 게 아니라 건너건너 알게 된 사이에요.”

- 건너건너요?

“네, 저희가 자주 이용하는 정육점이 저쪽 건너편 시장에 있거든요.”

- 아아, 성래시장 말씀하시는 거죠? 저도 가끔 호떡 먹고 싶을 때 들리는데.

“거기 호떡 맛있죠? 그 호떡집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육점이 있는데, 그쪽 운영하시는 노부부 사장님들 따님이세요.”

- 그러셨구나! 지금껏 몰랐네요.

그야 거래처에서 몇 번 만난 사이한테 그런 이야기까지 터놓진 않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세상 참 좁다.

“몇 번 정육점에서 사장님들 따라서 일도 도와드리던데, 직접 보신 적은 없으신 모양이네요?”

- 정육점까지 갈 일은 잘 없으니까요. 그런데 윤슬이가 말한 결혼은 혹시 무슨 얘기...

민구씨는 말끝을 흐린다.

물어보기도 민망한 얘기이긴 했으나 끝내 궁금하셨던 것 같다.

“그냥 그쪽 노부부 사장님들이랑 저희가 사이가 좋거든요. 워낙 저희 집이 그쪽 정육점 자주 이용하니까 장난도 치시는데. 그런 느낌이죠.”

- 그런 거였군요.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민구씨.

그 분이 정말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다.

나이 자체는 민구씨보다 연상인 걸로 알고 있다.

40대 초반이신지라 사진에서도 팔자주름이 은은하게 보였다. 그럼에도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풍긴다.

실제로 여유가 넘치는 성격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밍구쓰!”

갑자기 윤슬이가 한 손을 번쩍 든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인다.

“윤스리가 도와주께.”

- 윤슬이가 도와줄 거야?

“그렇타, 윤스리가 도와드리게따.”

윤슬이가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자, 민구씨는 그저 귀엽다는 듯이 웃지만 나는 뭔가 꺼림직했다.

5세의 표정이 은은하게 사악했다.

대놓고 사악하다기보단 얼굴에 은근한 그림자가 껴있는 게,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5세, 참고로 묻자면 민구 아저씨를 도와드리려는 이유가 뭘까요?”

“저 아쥼마가 밍구쓰랑 겨론을 하므는 대. 그러믄 옵바랑 아쥼마는 절때루 겨론을 할 쑤가 업써. 그거눈 윤스리한테눈 이득이야. 아주, 아주 이득이야!”

어디서 이득이라는 단어도 주워들은 모양이다.

굉장히 계산적인 5세였다.

동생의 속내를 들은 민구씨는 허탈하게 웃더니 머리를 쓰다듬는다. 영악하다기엔 제법 소소한 이유였다.

- 그럼 윤슬이는 구체적으로 아저씨를 어떻게 도와줄 생각인데?

“움... 그거눈 말이지.”

- 그건 말이지?

“쪼꿈만 더 생각을 해바이지대.”

결국 의지에 반해 생각해둔 작전은 없는 셈이다.

그 말을 듣고 민구씨는 천천히 의자를 뒤로 빼어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 그럼 아저씨 내일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지 오빠랑 열심히 생각을 해서 알려주면 좋겠네.

“이제 가이지대여?”

- 그래야 될 거 같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식당에 꽤 오래 계시긴 했다.

여러 모로 바쁘실 거다.

“그러믄 내일 오므는 대. 윤스리가 옵바랑 가치 작쩐을 잘 생각해두께. 윤스리만 미더.”

- 그래, 아저씨는 윤슬이만 믿을게?

윤슬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으시곤 그대로 가게를 떠나셨다. 곧장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보세요, 5세.”

“움? 윤스리! 5세!”

“민구 아저씨를 돕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밍구쓰를 도와조이지 대. 그래이지 겨론을 막을 쑤가 이써.”

“어차피 그분이랑은 결혼 못한다니까.”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신연지씨와는 거의 스무 살 차이가 난다.

“그리구 밍구쓰는 옵바랑 윤스리한테두 마니마니 도와줘써. 그 정도는 윤스리두 알거둔.”

“그럼 윤슬이 생각엔 아저씨도 우릴 많이 도와주셨으니까, 당연히 우리도 도와드려야 된다는 거야?”

“그렇타...”

윤슬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는 참 대견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도와드리냐는 거지.”

“움? 어뜨케?”

이야기를 듣자하니, 신연지씨와 저녁 약속을 잡으신 듯했다. 거기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어차피 두 사람의 몫이다.

방금 전에는 그럴싸한 조언을 해드리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뭔가 직접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는 건덕지가 떠오르진 않는다.

직접 옆에서 어드바이스를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육점에 가서 노부부 사장님께 바람을 불어넣는 것도 애매하다. 애초 두 사람이 잘 안 되면 어쩔 것인가?

- 자아 자아... 이제 그 킹갓 건물주 아저씨는 갔잖아? 그럼 이제 빨리 와서 날 만지라고. 날 만지면서 생각해. 생각하는 거랑 손 움직이는 거랑은 별개잖아.

“영히씨눈 넘무 참을썽이가 업써.”

5세는 툴툴거리며 고영희씨 쪽으로 걸어간다.

나도 간만에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사색에 잠겨볼까, 싶어 그쪽으로 향한다.

어느새 고양이로 변한 고영희의 등을 쓰어내리는데,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앞치마 가슴팍에서 무언가가 쿡쿡 찔려서 불편하다.

“내가 여기다 꾸긴 영수증이라도 넣어놨나?”

딱딱한 고체가 주머니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며 내 명치 언저리에 불편감을 주었다.

그 불편한 감각을 없애려 주머니를 뒤적였는데.

반가운 도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느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난다.

“이보세요, 5세.”

“움? 윤스리, 5세.”

“작전의 개요가 떠올랐다.”

“자, 작쩐!”

윤슬이는 작전이란 말을 들으니 흥분한다. 시온을 쓰담쓰담거리던 손의 속도가 빨라진다.

동시에 고양이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사격 준비는 됐나?”

**

이윽고 다음날이 되었을 때.

아침시간, 오누이 식당에 민구씨가 잠깐 들르셨다.

우리에게 도움을 받으러왔다고 말씀하시긴 했으나 몇 가지 간식을 사들고 오신 것을 보아하니.

애초 별 기대를 안 하시고, 윤슬이 마음이 이뻐서 회사 가는 길에 간식이나 전해주려고 오신 것 같았다.

그런 민구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서비스 하나 해드렸다.

“뾰, 뾰롱! 뾰롱! 이야압...!”

윤슬이 양손의 끝지점을 정수리에 두고 하트를 만들어 제자리에서 3바퀴 돌게 만드는 개인기를 처음으로 보여드렸다.

추임새인 ‘뾰롱! 뾰롱! 이야압!’은 별 이유 없이 붙인 것이다.

- 크, 크흡... 윤슬이 뭐하는 거야?

“이고... 하므는... 밍구쓰한테 도움이 댄다구. 옵바가 그래써.”

- 주현씨가 그랬단 말야?

“웅... 근디... 속은 거 같어. 기부니가 별루 찝찝해.”

굳이 따지자면 속은 게 맞긴 한데.

다른 의미로 보자면 민구씨도 이 행동으로 인해 속게 될 것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행동은 아니다.

“저랑 윤슬이가 개발한 솔직해질 수 있는 주문이에요.”

- 솔직해질 수 있는 주문이요?

“네, 어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솔직하고 진솔해지면 호감을 사기 쉬울 거라고. 그런 조언한 김에 윤슬이랑 같이 솔직해질 수 있는 주문을 걸어드린 거죠.”

- 그럼 윤슬이가 방금 주문을 걸어줬으니까, 내일 식사 자리에서 큰 도움이 되겠네요?

“그런 셈이죠.”

민구씨는 아침부터 좋은 걸 봤다면서 만족스런 얼굴로 출근을 하셨고.

5세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옵바... 이거 진쨔루 해이지 댔던 거 맞지?”

“그럼. 오빠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그거눈... 못 밨찌.”

“그럼 한 번만 믿어봐.”

“웅, 알게따.”

이렇게 5세를 완벽히 속이는 데 성공했다.

굳이 ‘뾰롱! 뾰롱! 이야압!’을 할 필요는 전혀 없긴 했으니, 속인 게 맞다.

그런 사실을 고영희씨는 눈치 챘는지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내일이 벌써부터 기대됐기 때문이다.

“민구씨가 식사 자리 갖는다고 했던 식당이...”

이왕이면 우리 가게에서 드셨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오누이 식당은 데이트 스팟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

특히 3040의 나이대의 회사원들에게는 체면이란 개념이 크게 작용한다.

그런 부분은 여러 사람과 교류해온 덕에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찾았다.”

“움? 거길루 밍구쓰 따라가는 거 맞으지?”

“그렇지.”

우리 남매는 마주 보고 사악하게 웃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난 잘 모르긴 하는데, 그렇게 남의 식사 자리에 몰래 따라가고 그러는 거. 사생활 침해라고 그러지 않니?

그때 고영희씨가 딴지를 걸었다.

나름 합당한 지적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민구씨는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말씀을 하시기도 했거든. 그러니까 이건 분명 잘못은 아닐 거야. 굳이 따지자면 허용 범위 안이라는 거지.”

“그렇타눈 거지.”

- 그러셔?

더는 흥미가 없단 듯이 배달용 포장 용기를 정리하기 시작한 고영희씨였다.

오늘 하루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오른 덕인지 더욱이 빨리 시간이 가는 듯했고.

장사하다보니 하루가 금방 지났다.

그리고 신연지씨와 정민구씨의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던 우리 남매는 작전 수행 장소로 향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될 만한 거리였으므로 붕붕이 1호를 이동수단으로 채택하였다.

저녁시간이 될 때쯤 두 사람이 거리 너머에서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남매는 미행하여 따라들어갔다.

“옵바... 이러니까눈 진짜루 악땅 같으다.”

“악당 같긴 하지만, 우린 분명히 좋은 일을 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그러문 이제 윤스리가 총 쏘므는 대눈 거 맞지?”

“그렇지. 잘 맞출 수 있지?”

“윤스리만 미더 바바.”

고급스런 가게인지라 직원들이 다수 있었고.

입장하자마자 자리를 안내해주시는 터라 자연스레 행동하기 위해선 그분들의 안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구씨네와는 자리가 꽤나 떨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좋아.”

이 정도 거리라면 조금 소란스럽게 행동하더라도 눈치채기 어려울 것이다.

고급스럽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인기가 꽤 있는 가게인지 손님들이 많아 붐볐다.

그 덕에 적당한 백색 소음이 가게를 채웠고.

이런 소음은 몰래 녹아들기 딱 좋았다.

“윤슬아 준비 됐어?”

“움! 그렇타.”

5세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나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준비해온 물건을 꺼내었다.

“이걸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몰랐는데.”

윤슬이는 두 손을 모으며 기도했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과감하게 버튼을 눌렀다.

똑-딱!

[욕망의 똑딱이 효과 발동]

꿈의 세계가 시작되고, 윤슬이의 손엔 총 한 자루가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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