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밍구쓰와 로맨쓰(3)
“오오...! 이게 모여. 진쨔루 믓찌다.”
5세는 콧김을 킁! 킁! 뿜으며 제 손에 쥐여진 총 한자루를 바라본다.
느와르 영화에서 나올 법한 실물 권총들과는 약간의 외형적 차이를 보였다. 그보다는 전대물 히어로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을 것처럼 알록달록하고, 빛깔이 고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굴곡진 디자인과 그립감이 현실적인지라 되려 5세를 흥분시켰다.
“움! 이걸루 밍구쓰를 쏴서 쓰러뜨려버려! 그러믄 윤스리가 짱이야.”
“.... 그게 아니잖아.”
“아앗, 실쑤해써. 쓰러뜨리눈 게 아니여따. 까머거써.”
아무래도 총기를 쥔 터라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당초의 목적을 잊은 것 같다.
“이거룰 맞추므는 저 아쥼마랑 밍구쓰가 겨론할 쑤가 있눈 거지?”
“글쎄, 그건 본인들 나름이긴 한데. 그럴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 않을까?”
“윤스리 역할이 아주 크구마는. 쿠쿠쿠... 조아써. 옵바눈 윤스리가 지킨다.”
아직도 윤슬이는 정민구씨와 신연지씨를 결혼시키지 않으면, 나를 신연지씨에게 빼앗긴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주관이 강한 5세다.
“잠시만 타이밍을 엿볼까. 5세, 사격 대기.”
“움...!”
윤슬이는 내 구호가 떨어지자 우리 테이블의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손과 얼굴을 반쯤 빼꼼 내민다.
그 너머엔 민구씨네 테이블이 있다.
내 구호가 떨어지면 총을 쏠 것이다.
우리의 작전은 대략 이렇다.
[욕망의 똑딱이]로 불러일으키는 꿈의 세계에 두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똑딱이는 의외로 기능이 발전되어 있는 덕에 끌어들이는 대상의 범위까지 고를 수 있다.
꿈의 세계에 들어온 두 사람을 겨누어 5세가 총을 발포할 것이다.
이 총은 나와 윤슬이의 욕망이 반반씩 섞여있다.
1. 나의 욕망: 민구씨와 연지씨가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사이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면 좋겠다.
2. 윤슬이의 욕망: 영화에 나오는 보쓰들처럼 멋찌게 총을 쏘구 시프다...!
두 개의 욕망이 섞인 결과물로써 나온 이 총은 대상이 탄환에 적중할 경우 언동이 솔직해지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당사자들이 잘 해결해야될 문제이긴 한데.”
이 총은 단지 ‘솔직하게’ 만들뿐이다.
그밖에 다른 효과는 없으므로 두 사람의 관계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호감이 없던 사람의 호감을 뚝딱뚝딱 쌓아올리거나 하는, 편의주의적인 도구는 아니란 얘기다.
“옵바... 기달리기 힘둘다. 언제 쏘눈 거야?”
“잠깐만 기다려볼까?”
“움...! 윤스리가 멋찌니까 참눈다. 콩닥콩닥...”
윤슬이는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긴장이 되면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콩닥콩닥’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다.
그만큼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끼고 있다는 얘기다.
확실히 멀쩡히 식사 중인 식당에 잠입하며 사격을 준비하는 우리 두 사람은 마치 비밀 조직의 요원 같았다. 영화로 치면 긴박한 장면이다.
그냥 빨리 쏘고 윤슬이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지만 괜히 눈에 띠는 행동을 했다가 민구씨에게 들켰다가는 여러 모로 복잡해질 게 뻔했다.
그래서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그나저나 식당 한 번 고급지네.”
테이블에 차려진 메뉴나 포크와 나이프 등의 식기가 이를 예증했다. 단순히 비싼 식기를 사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팅되어있는 각도가 직각으로 살아있다.
메뉴 또한 모든 테이블에 세워둔 모양이 동일했다.
사소한 디테일에 그만큼 신경 썼다는 얘기다.
우리 식당과는 애초 염두에 둔 주요 고객이 다르다.
“돈 깨나 깨지겠네, 이런 데서 식사하면.”
그만큼의 호화스런 한 끼를 누릴 수 있는 장소인 것만큼은 틀림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 젊고, 윤슬이를 먹여살려야 하는 나한테는 약간 부담되는 가격일 듯했다.
“움...! 옵바, 지그미야.”
5세가 속삭이듯 내게 신호를 보낸다.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식당의 직원이 주문을 받기 위해 민구씨네 테이블로 향하여 주의를 끌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 명의 성인이 메뉴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신경을 돌릴 여유따위 없을 것이다.
“5세, 지금이다. 발포!”
“이얍...! 잉? 헷갈려쪄. 이얍이 아니지. 빵야!”
5세가 빵야!라고 힘차게 기합을 넣은 것에 비해 총성은 먹먹하여, 가게에서 흐르는 고급진 음악에 묻히게 되었다.
우리에겐 형편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총알은 각각 신연지씨의 이마와 정민구씨의 뒤통수에 꽂혔고.
그대로 부드럽게 흡수되었다.
5세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사격에 재능이 있다.
“이제 두 사람 문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그렇타! 옵바 봤찌? 윤스리가 또 맞춰써.”
“우리 윤슬이가 장하네?”
“웅, 윤스리 장해.”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도리도리-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내 손에 머리카락을 얽었다.
그러면서도 작게 웅얼거리는 5세였다.
“밍구쓰, 윤스리가 도와조써. 그니까눈 파이팅이야.”
**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정민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전 이런 식으로 식당에서 도망치듯 나와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여성과 식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도 말이다.
“설로인... 엘본...?”
가게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왔을 때였다.
원래대로라면 신연지와 함께 정했던 것처럼 스테이크를 각 하나씩 주문하고, 하우스 와인을 마실 계획이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흘리고야 말았다.
“국밥이 더 취향이긴 한데.”
식당 직원 앞에서, 심지어 신연지 앞에서 이런 말을 뱉어대다니. 여러 모로 실례였다.
거기서 끝나면 단순히 해프닝이었다.
문제는 신연지가 강하게 동조했다는 점이다.
“아... 민구씨도요? 그럼, 그냥 나갈래요? 제가 이 근처에 국밥 맛집 알고 있는데.”
“네?”
곧이어 신연지는 주문을 받으러온 레스토랑 직원을 보고 예의바르게 또박또박 말했다.
“저, 죄송해요. 일행이랑 얘기해봤는데, 저희 둘 다 식사 취향이 이쪽은 아닌 것 같네요. 다음에 올게요.”
그리하여 두 사람은 벙쪄있는 표정의 직원을 뒤로 하고 가게를 나왔다.
신연지는 회사에서 간간히 들리던 평판처럼 과도할 정도로 추진력이 좋은 사람이었고.
이는 그녀의 온순한 인상과는 영판 다른 성격이었다.
허나 정민구는 신연지의 이런 점이야 말로 매력이라고 생각하여, 그녀가 자신을 근처 국밥집으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 꽤나 긍정적으로 여겼다.
“.... 괜히 죄송해지네요.”
정민구의 죄송한 마음은 두 갈래였다.
첫째로는 주문하려고 직원까지 불러놓고, 가게를 떠나온 것. 그러나 이는 어차피 꿈의 세계였고, 다음날이면 형편 좋게도 없던 일이 될만한 사건이다.
둘째로는 본인이 국밥 얘기를 꺼낸 점이다. 괜히 그런 얘기를 꺼내어 신연지씨에게 눈치를 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긴 한데. 이미 나와버린 거 신경쓰지 말죠.”
“네, 그러는 게 좋겠죠?”
반면 신연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마음에 담아두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소보다도 조금 막무가내로 굴었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대화를 잇는다.
“국밥은 어떤 종류 좋아하세요?”
“국밥이요? 대체로 잘 먹긴 하는데. 돼지 국밥이 제 취향이긴 하네요.”
“돼지 국밥? 저도 완전 그쪽인데. 마침 돼지 국밥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돼지 국밥은 사실 어디서 먹어도 대체로 괜찮던데.”
“아니에요, 못하는 데서 먹으면 비리다니까요. 근데 우리가 지금 가는 데 있잖아요? 거기 돼지 국밥에 부추를 잔뜩 올려주거든요? 완전히 뒤덮여서 바람불면 날아가버릴 정도로. .... 찐이죠?”
“.... 정말 찐이네요. 크흡, 픗.”
정민구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남자와 마흔을 조금 넘은 여자가 나름 데이트를 하려고 모였는데.
정작 가장 열성적으로 이어가는 대화의 주제가 돼지국밥이란 점이 어이 없었다.
그전까지의 대화는 약간 경직되고 허물이 느껴졌기에 심적으로 편하지 못했다. 그런 점이 지금의 흐름을 더욱이 우습게 만들었다.
“뭐가 웃겨요?”
“별 거 아니에요.”
“싱겁네. 우리 가는 길에 심심하니까 서로 취향 얘기해요.”
“무슨 취향이요?”
“국밥도 괜찮고, 뭐 아무 거나.”
서로를 알아가자.
대략 그런 의미였다.
“국밥에 다데기는 얼마나 넣어요?”
“빨갛게 고추 기름 둥둥 뜰 때까지.”
“후추는 몇 번까지 뿌려요?”
“톡, 톡, 두 번만.”
“깍두기파? 아니면 겉절이파?”
“국밥엔 깍두기. 이의는 누구에게도 받지 않고.”
누가 어떤 질문을 하느냐는 전혀 대화 흐름에 지장이 없었다. 지나치게 솔직한 대화의 흐름은 서로에게 알렸다.
이상하리만치 서로의 취향이 닮아있다는 걸.
그리고 단 한 번.
신연지가 잘 알고 있는 국밥 집 근처에 거의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런 질문을 했다.
“혼밥은.... 좋아하는 편?”
정민구는 미묘한 뉘앙스를 눈치챘다.
질문을 하기 전 그녀가 입술을 오므리며 망설였기 때문이다. 그 질문엔 솔직하기로 했다.
“혼밥, 좋아하죠. 혼자서 먹으면 편하니까요.”
“치이, 그래요? 난 둘이서 먹는 게... 더 좋은데.”
그렇게 말하며 신연지는 정민구의 코트 소맷자락을 살짝 손끝으로 붙잡았다.
쑥쓰러웠다.
이런 상황엔 그다지 익숙치 않은 정민구였다.
평소 같았으면 얼버무리거나 똑뿌러지게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밤은 뭔가가 이상했다.
평소와는 달랐다.
행동하거나 말할 때 자기 감정을 속이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럼 앞으로는 저도 둘이서 먹는 쪽을 더 좋아해볼게요. 가끔 둘이서, 먹으러 갈까요? 국밥.”
“나쁘지 않네요, 그 대답.”
두 사람은 조금 더 거리를 좁혀서 걷는다.
정민구는 들뜬 마음으로 생각한다.
어째서 이렇게 술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분명 오누이 식당의 남매 덕분이었다.
송주현은 나름의 조언을 해주었고.
윤슬이는 ‘뾰롱! 뾰롱! 이야압!’이라며 주문까지 걸어주었다.
“다음에 초콜렛 사가야지 되겠네, 비싼 걸로.”
“응? 뭐라구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남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행복하고 따듯한 저녁 식사를 하는 정민구였다.
왜일까.
이날따라 국밥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
후일담.
며칠이 지나고, 민구씨는 우리 가게로 벨기에산 초콜렛을 한 박스 사들고 오셨다.
“미, 밍구쓰... 이고는!”
- 윤슬이가 좋아하는 거지?
“그렇타...!”
“뭘 이런 걸 또 사들고 오셨어요?”
- 저번에 주현씨랑 윤슬이한테 도움 받았었잖아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 말을 듣고 5세는 사악하게 웃는다.
“쿠쿠... 이러믄 옵바를 지키눈데 성공해써. 작쩐 성공이야.”
그 사악한 웃음을 잊지 않은 채로 초콜렛 박스를 뜯는다.
뜯는데, 뜯어보려는데.
툭-
툭-
포장용 테이프의 강력한 접착력을 이겨낼 수 없는 5세였다.
“옵바!! 도움!!”
“네, 네, 갑니다.”
아무리 작전을 훌륭히 수행했더라도 5세는 5세였다.
그렇게 민구씨에게 받은 고급 벨기안 초콜렛을 윤슬이와 함께 나누어먹고 있던 도중.
[오누이 타이쿤!] 어플에 연락이 들어왔다.
[달님: 저한테는 뭐 없나요?]
[나: 갑자기?]
[달님: 솔직히 이번엔 제가 드린 욕망의 똑딱이가 없더라면 활약할 수 없었잖아요. 오히려 제가 하드캐리했다고 볼 수 있죠.]
[나: 그건 됐고, 빨리 정민구씨 호칭 설정이나 되돌려놔.]
[달님: ???]
[나: 뭘 모르는 척이야. 어플에 ‘킹갓 건물주 밍구쓰’라고 바꿔둔 거 너잖아.]
[달님: 앙, 들켜버렸따.]
윤슬이만큼이나 달님이도 참 한결 같은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