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첫 눈은 따듯하게(3)
5세가 만족스럽게 우유를 원샷하는 모습을 봤더니 요리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전골의 맑고 뜨끈한 국물을 한 입 먹으면 분명 저렇게 찰진 반응을 보여줄 것이 분명했기에.
“대충 재료로는...”
오늘의 메뉴로 팔기 위해 마련해둔 새우가 꽤 많이 있었다. 전골에 넣어도 좋은 재료이지만 너무 많이 썼다간 장사할 때 차질을 빚을 수 있다.
2인분 정도만 꺼내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공수해온 손만두를 사용해보기로 한다.
“만두 새우 전골?”
나쁘지 않은 어감이다.
만두와 새우.
둘 다 맛있는 재료.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두 배로 맛있는 거.
보통의 경우 이 공식은 성립한다.
초콜렛과 라면을 섞는다거나, 하는 괴랄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만듀 새우!”
고영희씨가 윤슬이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던 와중이었다. 귀신 같이 만두랑 새우라는 단어를 주워듣고 반응한다.
5세는 만두 새우 전골에 대찬성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더욱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날이 추우니까 조금 매콤하게 해볼까.”
양념장은 원래 하루 정도 재워두는 편이 맛있지만. 갑작스레 정한 메뉴이므로 최대한 빨리 제조하여 냉장고에서 딱 30분만 숙성시키기로 했다.
고추가루와 양조간장, 설탕 조금을 섞어 맛을 낸다. 맵고 짜고 단 맛. 이렇게 기본 양념을 세팅하면 기본 이상의 맛을 보장한다.
거기다가 마늘과 파를 다져넣고...
“시험 삼아 이것도 넣어볼까?”
판매용이 아니다보니 조금 실험적으로 굴게 된다. 참치액을 넣어본다. 너튜브에서 우연히 보았는데, 양념장에 넣으면 감칠맛이 폭발한다던가.
확실히 훈연향도 살아있어 특색을 살려줄 것 같다.
양념장만 완성하면 이미 요리 절반은 끝난 셈이다. 손질되어 있는 새우와 함께 만두와 갖은 채소를 넣고, 양념장 섞인 육수에 넣어 펄펄 끓이면.
“완성.”
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윤슬이는 도도도- 달려왔다.
머리도 어느새 뽀송하게 말라있고, 옷은 내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가게에 준비되어있는 옷이다보니 평범한 외출복은 아니지만. 어차피 다섯 살짜리 아이니까, 내복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옵바, 옵바.”
“도움?”
“그렇타! 도움!”
5세는 나를 향해 양팔을 쫙 벌린다.
들어올려달라는 뜻이다.
“풍풍풍푸풍~!”
윤슬이는 전골이 끓는 모양을 입으로 표현한다. 별로 비슷하게 들리진 않지만 제 딴에는 신기해서 따라하는 것이다.
전골처럼 펄펄 끓는 요리들이 이렇게 화구 위에 올려져있을 때, 기포가 펑펑 터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윤슬이는 좋아한다.
불을 끄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솟구치던 기포가 진정되었을 때쯤 5세를 다시 내려놓았다.
- 내가 수저랑 그릇 놔뒀다. 윤슬 선배는 그냥 몸만 와.
“아앗! 영히씨가 윤스리가 할 일을 뺐어부려써.”
고영희씨가 전골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인원 수만큼 그릇과 수저 젓가락을 세팅해두자. 5세는 심통이 났다.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할 때엔 보통 그릇과 수저를 세팅하는 것은 5세의 역할이기 때문.
- 가끔은 내가 좀 할게. 윤슬 선배가 선배잖아! 그럼 후배한테 양보도 할 줄 알아야지. 그게 멋있는 거야.
“움... 그렁가?”
- 그렇다니까.
“알겠따!”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영희씨도 윤슬이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제법 잘하는 편이다.
만두 전골을 들고 식탁으로 향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전골. 바깥의 풍경을 보면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는데. 흰 색 결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반대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났다.
“눈 오는 날 전골에는 낭만이 있구만.”
“그렇쿠만.”
윤슬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진 않은 것 같고, 그냥 빨리 전골을 먹고 싶은 모양.
내가 쥔 국자만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손님인 수안씨부터 내어드리는 게 예의겠지만.
‘윤슬이 먼저 주세요...!’
라는 뉘앙스로 내 쪽을 향해 웃고 있었으므로 5세의 그릇에 먼저 덜어주었다.
식사 예절은, 조금 더 천천히 가르치기로 한다.
“윤슬아, 만두 뜨겁다.”
“그렇타?”
이젠 ‘그렇타’를 의문문으로 쓰기 시작한 5세였다.
나는 만두를 줄 때에 국자를 이용해 반으로 갈랐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연기가 모락모락 올랐다.
그걸 보더니 윤슬이도 내 말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 그렇타...”
만두가 뜨거운 것을 확인하고 포크를 들어 새우부터 푹- 찌른다. 그리고는 호- 호- 하고 스스로 불어 입에 넣어버렸다.
“움...! 탱글쓰.”
나도 따라서 그릇에 있는 새우를 먹어봤더니 확실히 새우가 탱글하다. 바닷가에서 막 잡은 새우보다야 못하겠지만, 전골의 국물이 어느 정도 스며 풍부한 맛을 보이는 새우는 꽤나 별미였다.
- 이거 전골 국물이 되게 맛이 풍부하네요. 안에 뭐 넣으셨어요?
- 음... 생선 냄새가 나는 걸?
수안씨의 물음에, 영희씨가 덧붙인다. 고양이인 탓일까? 생선만큼은 확실하게 구별하는 영희씨였다.
“참치액을 양념장에 넣어봤어요. 꽤 괜찮죠? 후루룩...”
살아있다!
국물을 그릇에 자작하게 담아서 밥을 비벼먹고 싶은 맛이다. 하지만 아직 만두를 모두 처리하지 못했으므로 이쪽부터 먹어보기로 한다.
만두를 반으로 쪼개어 그 안에 전골 국물을 듬뿍 담는다. 그리고 한 입...
육수의 풍부한 맛이 만두에 배어있다. 피 안에 잠들어있던 만두속이 빨간 국물과 어우러진다. 육즙이 국물과 함께 터지며 입안을 적신다.
맛있다!
“움...”
윤슬이는 내가 만두를 먹는 모습을 보더니, 뭔가 부러웠는지 자기도 따라해본다.
자기 손보다도 더 큰 만두를 어떻게든 어린이용 스푼으로 힘겹게 쪼개어서 열심히 국물을 그 안에 담아본다.
숟가락 크기 차이가 있기에 훨씬 시간이 걸렸다.
본인이 만족할만큼 국물을 만두에 담은 5세는 잔뜩 기대에 부푼 눈빛으로 만두 한 쪽을 물었다.
“우물우물... 이거눈!”
말을 잇다말고 만두를 모두 먹는 것에 집중하는 5세.
우물우물-
우물우물-
꿀-꺽...
“옵바! 윤스리 이제 만두가 넘무 조아져써.”
“만두가 좋아졌단 말이야?”
“그렇타!”
동생의 선호 음식 리스트의 한 자리에 만두를 적어넣어야겠다. 윤슬이가 다양한 맛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 순수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우리 남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수안씨는 흐뭇해졌는지 눈웃음을 짓는다.
- 역시 오누이 식당은, 뭐랄까. 특별한 느낌이 있네요.
“움?”
- 윤슬이랑 주현씨 같이 지내는 것만 봐도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느낌?
“그거눈 윤스리가 넘무 잘 머거서 그렇타... 우물우물.”
5세의 말은 여러 의미로 사실이었다.
**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결국 하루 장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초반에는 손님들이 덜 와서 걱정되었는데, 마치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저녁에 손님들이 평소보다 많이 오셨다.
그 덕에 평균 매출은 찍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점심즈음엔 갑자기 눈이 내린 터라 외식할만한 상황이 안 되었던 것 같다.
“옵바, 옵바. 쪼꿈만 더 놀구 들어가쟈.”
“으응? 더 놀고 싶어?”
“움... 이거 내일 다 업써지므는 어뜨케 해. 그러믄 못 놀으자나.”
집 근처에 다 왔을 때쯤 윤슬이가 아쉬운 눈치였다.
눈놀이를 아침에 그렇게 해놓고는 아직도 모자랐나보다.
피곤했지만 잠깐이라면 놀아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대신 눈싸움은 안돼. 왜냐면 이제 사람들도 지나다니고, 어두우니까 위험하잖아. 그래도 괜찮죠?”
“움... 알겠쏘.”
윤슬이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무래도 눈싸움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동생의 전투 본능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뭐 만드는 거야?”
“잔깐만.”
윤슬이는 쪼그려 앉더니 무언가를 조물조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전투 본능에 패배한 나머지 눈덩이를 만들어 내게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사격하는 줄 알았으나.
눈덩이를 몇 번 굴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세워두었다.
“윤스리가 모 만들어볼 꺼야. 옵바가 맞추는 게 좋케써.”
“맞추기 놀이야?”
“그렇타.”
부시럭-
부시럭-
조물조물...
윤슬이는 말 없이 5분 동안 몰두하여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성공은 한 것 같다.
아마도.
“이게 모게?”
“그러게... 그게 뭘까?”
단순한 수수께끼 이상의 난이도였다.
뭔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동생과 눈으로 만들어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그런데 윤슬이 표정을 보니 ‘어때? 음청 잘 만들었찌!’와 같은 얼굴이다.
곤란하다.
못 맞췄다가는 윤슬이가 실망할 게 뻔하다.
하지만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굴려진 눈덩이가 몇 개 쌓여있고, 그 옆에 나뭇가지 혹은 뿌리처럼 무언가가 뻗어나가는데.
그것보다 더 잘 설명하기도 어려운 외관이다.
“흐음...”
이전부터 그랬지만, 우리 동생은 창작엔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손재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 내 요리를 도와줄 때를 생각해보면 나이대 치곤 꽤나 야무진 구석이 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모형을 만들 때를 보면... 확실히 창작은 윤슬이의 장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냐, 냐앙-
‘그냥 눈... 사람 아니야?’
내가 섣불리 답하지 못하는 것을 인지하고, 고양이로 돌아온 고영희씨가 용감하게 수수께끼에 참전했다.
그러나 그건 오답이었다. 5세의 불만스런 표정이 틀렸다는 것을 알렸다.
덕분에 기회가 한 번 생긴 셈이다.
“눈사람이 아니라면?”
머리를 굴렸다.
과연 윤슬이가 뭘 만들고 싶어할까.
해답은 의외로 단순할 것이다.
지금껏 5세가 만들고자 했던 것들을 잘 되짚어보면.
“알겠다!”
“역씨! 옵바라므는 맞추겠찌?”
“이건 켄타우러스야!”
“이잉! 이잉!”
보기 좋게 틀렸다.
아무리 봐도 켄타우러스였는데.
잘 생각해보면, 켄타우러스를 윤슬이가 알 리가 없었는데. 왜 그렇게 답해버렸을까.
윤슬이는 기대감이 배신당했는지 화가 나서 앙탈을 2회 시전해버렸는데, 귀여웠다.
그대로 고영희씨와 내가 수차례 수수께끼 해결에 도전한 결과, 둘 중 누구도 해답을 맞추지 못했고.
이후 5세가 발표한 정답은.
“이거눈 윤스리가 루이 위에 탄 모습이거둔!”
그렇다고 한다.
이 정답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궁금해졌다. 윤슬이 몰래 사진을 찍어 혹시나 싶은 마음에 권수안씨에게 보내보았다.
[나: 수안씨, 이거 사진 뭐 같으세요?]
[수안: 저 눈으로 만든 거 말하는 거죠?]
[나: 네. 윤슬이가 만든 건데, 잘 만들었죠.]
[수안: 그렇네요! 윤슬이가 되게 똑똑하네. 어떻게 그 나이에 켄타우러스를 알죠?]
권수안씨의 답으로부터 난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내고 깊게 자기만족했다.
동시에 윤슬이는 나중에 커서 체육은 몰라도 예술 분야로는 안 기르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