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차차웅(3)
“옵바, 옵바.”
“응?”
5세의 기억력이 다른 의미로 활약하여, 미정 선생님과 유민이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차차웅씨가 우리 가게에 들렀다는 것을 간신히 들키지 않았는데.
그저 거기서 끝이고, 다음에 차웅씨가 혹시라도 들리면 우리 식당엔 그만 들리시는 게 나을 거 같다고.
그렇게 말씀드리려고 다짐했는데.
윤슬이가 이런 말을 했다.
“있짜나. 짜짜웅 아저씨랑 유미니랑 넘무 닮아써.”
“그치? 오빠도 그렇게 생각해. 으, 응? 방금 뭐라고?”
“짜짜웅 아저씨랑 유미니랑 넘무 닮아써.”
“... 너도 알고 있던 거야?”
“그렇타.”
윤슬이는 손가락으로 자기 눈 밑을 가리킨다.
“유미니두 여기 밑에 점이 이써. 근데 짜짜웅도 점이 이써. 그니깐 몬가 이상해써.”
“이상했어?”
“움, 왜냐므는 유미니는 절때루 아빠 얘기를 안 하거둔. 유미니 엄마는 미정 선샌님인데. 그러믄 유미니두 아빠가 이써야지 대.”
“근데도 유민이가 아빠 얘기를 잘 안 하니까 그렇게 생각을 했구나?”
“웅... 저번에 유미니랑 미정 선샌님 집에두 갔눈데 아빠가 집에 업써서. 물어볼라구 그랬눈데. 안 그래써. 혹씨 유미니한테 상처 댈 쑤도 이쓰니까.”
나는 윤슬이를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다니.
윤슬이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짜짜웅 아저씨랑 유미니랑은 넘무 닮았눈데. 그래서 물어볼라구 그랬는데. 안 그래써. 혹씨 윤스리가 상처 줄 수도 있짜나...”
“잘 했어. 너무 배려가 많아, 우리 동생...”
윤슬이가 차차웅씨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기억은 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개성 넘치는 손님한테 이름을 들으면, 잊기 어려운 게 당연한 수순이다. 다섯 살이라 그냥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저 유민이와 미정 선생님을 배려하느라 잊었던 척한 것이다. 움- 움- 하고 고민하길래, 그저 기억하려 노력하는 줄 알았는데.
저 작은 머리로 두 사람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했던 것이다, 내 동생은.
“쪽쪽!”
너무 대견해져서 볼 뽀뽀를 해줬는데.
침이 묻는다며 금방 슥슥- 닦아버리는 5세.
“침 묻짜나...”
“윤슬이도 옛날에 오빠한테 이렇게 볼 뽀뽀 해줬잖아.”
“그거눈 윤스리만 가능.”
“그럼 오빠는 불가능?”
“그렇타.”
식당 마감을 막 마쳤을 때인지라 귀가를 위해 고양이로 변해있던 영희씨는 슬금슬금 다가와 눈치를 본다.
그리곤 점프해서 내 등을 타고 오르더니, 윤슬이의 볼을 마구 핥는다.
핥핥-
“우억! 영히씨 침 묻짜나!”
- 묻히려고 하는 건데?
핥핥-
핥핥-
내 품에 안겨 저항 불가능 상태에 있던 5세.
차마 분노를 참지 못하고 혓바닥을 내밀어 고영희씨의 얼굴 부근을 마구 핥았다.
요즘 들어 이런 비슷한 장면을 많이 보는 것 같은데.
두 꼬맹이의 혓바닥 대전이 지속되지 않도록 빠르게 조치를 내린 나는.
5세를 바닥에 내리고, 마감 준비를 마저 끝내버렸다.
**
“쿡쿡쿡... 이걸루다가...”
“...?”
그리고 집에 무사히 귀가했다.
내일도 내일의 장사가 있기에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서 꼬맹이들이랑 뒹굴거리려는데.
5세가 사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
냐아아아...
울음소리를 길게 빼어 늘어뜨리며 먼저 침대에 누워있는 영희씨. 그 곁으로 조용히 다가간다.
일종의 암살 시도 같은 거다.
“조심... 조심...”
이라고 직접 말까지 하며 고영희씨이게 다가가는 윤슬이. 그러나 오늘도 배달 업무를 열심히 했던 영희씨에겐 그런 5세에게 관심을 던질 여유가 부족한 듯하다.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완전한 패착으로 돌아올 것!
냐아!
‘크헝... 이게 뭐야!’
“히힝! 작쩐 성공.”
윤슬이는 샤워를 마치고 아직 젖어있던 머리의 끝자락을 쥐고 조심조심 다가가서.
영희씨의 콧구멍에 슬쩍 집어넣어버렸다.
결과는 뻔했다.
푸헹취! 푸헹취!
고영희씨는 연달아 재채기하며 침대 위를 구르고 있다.
“어허이...”
보통의 고양이었다면 명백히 큰 잘못이었고, 혼냈겠지만.
고영희씨는 일반적인 고양이가 아닌지라 애매했다.
“윤스리가 복쑤 성공해써, 옵바.”
“복수라니...”
“아까 영히씨가 윤스리 볼 마구마구 침 묻쳐써.”
“그래서 복수란 말이야?”
“그렇타!”
그런 거라면 혼내기도 애매하지만.
불의의 습격을 당한 영희씨가 조금 가엾게 느껴졌다.
저번에 황치호씨의 입에 고구마를 연달아 쑤셔넣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 집 5세는 복수에 관해서는 가차 없다.
“그래도 지금 영희씨가 많이 괴로워하는 거 같은데?”
“움...?”
푸엥취! 느아아...
고영희씨는 아직도 재채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윤슬이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더니 미안해졌는지 손가락을 꼬며 나와 영희씨를 번갈아 바라본다.
“저러케까지... 힘드러 할 줄은 몰라써.”
“윤슬이도 모르고 그랬어요?”
“네...”
“그럼 가서 사과해야겠네?”
내 말을 듣자마자 영희씨가 걱정되었는지 옆에 다가가서 등을 쓰다듬어주거나 엉덩이를 두들겨주며, 그녀를 걱정한다.
영희씨는 진정되고 나서
냐앙-
‘앞으로 핥는 건 한두 번으로 끝낼게.’
라며 본인의 장난에 대해 사과했고.
“세 번까지눈 갠짜나. 윤스리두 갑자기 장난 쳐서 미안해써.”
라며 두 사람은 화해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밤이 찾아왔다.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우선 미정 선생님께 연락하기로 했다.
전화로 하는 게 더 걸맞을 만큼 다소 무게감 있는 내용이었지만 영희씨와 윤슬이가 잠 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자로 연락하기로 했다.
[나: 선생님 혹시 주무시나요?]
5분 뒤 답신이 왔다.
[김미정: 갑자기 무슨 일? 아까 실컷 봐놓고는 선생님이 벌써 그리워졌니? 아직 애기구나, 송주현이.]
[나: 그런 거 아니구요.]
[김미정: 그럼 무슨 일인데. 이런 야밤 중에 선생님한테 문자로 연락하는 건, 시험 성적이 아쉬웠던 학생이나 그 학부모님들 정도밖에 없다고.]
리얼리티가 섞인 문장들이라서 조금 짠해졌다.
어느 직장이든 고충은 있겠지.
[나: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조금 애매하긴 한데.]
[김미정: 응?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나: 괜히 헛다리 짚었다가는 어색해질 수도 있어서요.]
차차웅.
그 이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내 마음 속에선 거의 확신 중이다.
차차웅씨는 유민이와 지나치게 닮아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높은 확률로 미정 선생님의 전 남편일 것이다.
하지만 전 남편의 이야기를 멋대로 꺼내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김미정: 너 내 성격 몰라? 그냥 시원하게 말해. 뭔데 그래?]
본인이 저렇게 당당히 말하듯 미정 선생님은 제법 쿨한 성격이긴 하지만, 고민되는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먼저 연락까지 한 이유는 말씀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정 선생님의 전 남편이 그분이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마주치기 싫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고 먼저 조치를 취하는 게 옳다.
반대로 서로 애초에 모르는 사이라면, 나 혼자서 오해한 일이니 없는 얘기로 치면 된다.
[나: 혹시 차차웅, 이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김미정: 내 전 남편인데?]
[나: 역시 그랬군요.]
꽤나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미정 쌤.
어른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시간이 흘러 그분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된 걸까.
조금도 망설이는 기미 없이 사실을 밝혔다.
[김미정: 근데 너가 그 남자 이름을 어떻게 알아?]
[나: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에 식당에 다녀갔었거든요.]
[김미정: 차차웅이?]
[나: 네... 차차웅씨가.]
[김미정: 그런 거 같더라.]
[나: ...?]
그런 거 같더라?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거지.
[김미정: 나한테 차차웅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대충 눈치는 챘던 모양이구나. 우리 아들이랑 완전 판박이지?]
[나: 네, 눈 밑에 눈물점이 특히.]
[김미정: 맞아, 그렇지.]
차웅씨가 다녀갔던 걸 알고 있던 눈치다.
하지만 어떻게?
[김미정: 윤슬이가 갖고 있던 안대, 그거 차차웅이 준 거지?]
[나: 네 맞아요.]
“그래서 아셨구나.”
그 안대 덕분에 알아채신 듯하다.
아무튼 두 사람은 부부였으니까, 한 때는 가장 서로에게 가까운 사이였다.
서로가 갖고 있는 물건 한두개쯤 기억하고 있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김미정: 이야... 왠지 미안하다, 주현아.]
[나: 갑자기요? 뭐가 미안하세요?]
[김미정: 아니, 너가 괜히 신경 썼을까봐. 차차웅이 혹시나 이상한 생각 갖고 유민이랑 나 쫓아다니는 건가? 싶었을 거 아냐.]
[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맞아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 식당에 들린 게 우연처럼 생각되진 않았기 때문에.
만약 유민이와 미정 쌤 몰래 들리고 싶었던 거라면, 그닥 좋은 이유는 아니리라고 생각했었다.
[김미정: 그런 거면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차차웅이랑 나는 그렇게까지 나쁜 관계는 아니야.]
[나: 어... 정말요?]
[김미정: 그럼 내가 너한테 그런 거짓말 해서 뭐하겠니.]
[나: 그렇네, 죄송함다.]
[김미정: 됐다, 신기해하는 게 당연하지.]
선생님 말대로다. 거짓말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저런 의문이 절로 드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튼 두 사람은 결혼을 한 뒤 갈라선 상태가 아닌가.
[김미정: 아냐, 미안할 거 없어. 오히려 내가 고맙지. 유민이랑 내 걱정해서, 이렇게 밤 늦게라도 연락 준 거 아냐?]
[나: 그렇긴 하죠. 단골의 안전을 지키는 건 식당 사장의 의무! 같은 느낌으로.]
[김미정: 그래, 훌륭하다. 암튼 고맙고, 다음에 저녁이나 한 번 먹으러 갈 테니까, 또 그때까지 맛있는 메뉴 연구해둬야 된다.]
[나: 노력해볼게요.]
이렇게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
그리고 이틀 뒤.
이른 아침, 뒤척이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탓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뭐야?”
가게 휴일인데도 윤슬이가 혼자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애가 무슨 일로 저러나 싶어, 창밖을 봤다.
“음... 눈이 내리지도 않는데?”
“움?”
동생은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후다닥- 달려와서 내 맨투맨과 청바지를 가져온다.
“옵바, 인나이지 대거둔.”
“... 왜?”
“오늘 나가야 대.”
“어디를?”
“짜짜웅 아저씨한테 가야대.”
“... 차차웅씨한테?”
“그렇타.”
윤슬이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다.
잠에 취해 흐린 시야를 부벼가며 쳐다보니, 차차웅씨에게 받았던 물건들이다.
“이거 시간 대므는 돌려주러 오라구 짜짜웅 아저씨가 그랬어.”
“돌려주러 오라고 했다고?”
받은 게 아니라 빌린 거였구나.
그건 몰랐다.
“웅. 옵바가 어디로 돌려주러 오므는 대눈지 알 거라구 그래써.”
“아아...”
차차웅씨가 나한테 명함을 줬던 것은 설계였단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근데 왜 이렇게 서둘러 윤슬아. 차차웅씨가 빨리 돌려달라고 그랬어?”
“움... 그거눈 아닌데.”
“그건 아닌데?”
“윤스리눈 몬가 짜짜웅 아저씨한테 물어보구 시퍼.”
“어떤 걸?”
“왜 유미니랑 미정 선샌님이랑 가치 안 놀구 혼자서 있느냐구 물어볼 꺼야. 짜짜웅 아저씨가 따로 있으믄 유미니가 별루 안 좋아할 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