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55화 (155/200)

155화: 차차웅(2)

- 근심이 있어보입니다만.

“아,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어느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나보다.

윤슬이에 대해서 걱정하다보니까, 얼굴이 그렇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무당 손님은 자상하게 웃는다.

-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 네?”

- 당신의 동생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럴 필요 없다는 얘기입니다.

무당이 단언한다.

분위기 때문일까, 신뢰감이 든다.

- 아마 윤슬이, 였나요. 여동생이 300년만 전에 태어났더라면 틀림 없이 조선의 장군이었겠죠. 그보다 훨씬 전에 태어났더라면 신라나 고구려의 장군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장군인 것은 변함이 없구나!

이것 역시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 그런 동생이랑 사는 데 무얼 걱정할 게 있습니까. 당신의 여동생을 감싸고 있는 힘은 결코 사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아느냐.’라는 질문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그는 무속인이니까, 오누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무언가 특별한 것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은근히 풍기는 온화한 무드와 부적 같은 것을 강매하지 않는 태도가 더욱 믿음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좋은 말씀해주시니까, 감사하네요. 도사님.”

- 도사... 도사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시죠.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 차차웅입니다.

“차웅씨.”

- 그거면 됐습니다.

그렇게 차차웅씨는 일어서려고 하신다.

계산을 하시고 가게를 나서려고 하시는 거 같은데.

“잠시만 더 앉아계시겠어요?”

- 이유가 뭐죠?

“제가 간단한 간식 하나 만들어드릴 테니까, 드시고 가세요.”

- 주문하지 않았습니다만.

“서비스에요.”

- 그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곧 시기 상 동지가 되길래, 시험 삼아 팥죽을 만들고 있는데. 차차웅씨에게도 한 번 만들어드릴 생각이다.

설탕을 듬뿍 넣으면 아이들도 좋아하겠지만. 우리 집 5세가.

‘윤스리눈 단 것두 좋지마는 이거눈 안 다는 게 더 조아.’

라며 설탕을 적당히 넣을 것을 권고했으므로 조금 담백하게 만들어진 게 특징이다.

- 음... 단내가 많이 나지는 않는군요.

“달달한 쪽이 취향이세요?”

- 아니, 저는 담백한 쪽이 더 좋습니다. 소금이 조금 더 느껴지면 좋을 거 같습니다만.

“그럼 딱 손님 취향일 거예요.”

- 희소식이군요.

말투가 현대인치고 굉장히 딱딱하고 예스럽다.

본인 복장에 충실한 건지, 아니면 직업 탓에 자연스레 저렇게 된 건지. 아무튼 개성이 강한 분이다.

말씀드렸던 대로 팥죽을 한 그릇 내어드리니 후후 불어 맛있게 드신다.

떡은 일부러 큰 것으로 하나만 넣어드렸다. 지금 막 만두 칼국수까지 드셨는데, 떡까지 많이 먹었다간 포만감이 지나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음... 잘 먹었습니다. 마치 350년 전 주막에서 맛본 듯한, 그런 맛입니다.

“...?”

- 농담입니다.

“그런 농담도 하는 타입이셨구나.”

한복을 입고, 진지한 목소리로 그런 농담을 하니 그럴싸하게 들려서 당황스럽다.

볼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다.

- 서비스라고 하니, 돈은 안 받으시겠지만. 답례는 해야겠죠. 그게 도리이니.

차차웅씨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앞쪽에 뭔가를 내려놓는다. 자세히 보니 명함이다. 그것도 꽤나 현대적인, 회사원들이 들고 다닐 법한 명함이었다.

명함에는 차차웅씨의 성함과 운영하고 계신 점집의 주소가 나와있다. 여기서부터 거리는 꽤 되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 10분 내에 도착할 수 있을 듯하다.

- 혹시나 물어볼 거리가 생기면 오세요. 딱 하나. 하나만 공짜로 해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차차웅씨는 하나라는 말을 강조하며 검지 손가락을 펴서 보여주신다. 내가 명함을 들고 주머니에 넣는 시늉을 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산을 마친 차웅씨는 그대로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짜 특이하신 분이네.”

그렇게 차차웅씨가 돌아가고, 슬슬 점심 장사가 끝나갈 무렵 윤슬이가 영희씨와 함께 식당으로 복귀했다.

“윤스리 등쟝!”

힘찬 구호와 함께 등장한 5세는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옵바, 옵바. 한보기 입었떤 아저씨눈?”

“아, 그 손님 식사 다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셨지.”

“시, 실맹!”

얼마나 실망했으면 실망을 실맹이라고 발음할까.

차차웅씨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윤슬이가 ‘실맹’을 외치며 놀란 제스쳐로 어깨를 두어번 들썩이자, 그게 귀여워보였는지.

조금 과장된 느낌으로 영희씨가 따라했다. 문제는 마침 그 순간 5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이잉!”

분노한 5세는 앙탈과 함께 영희씨에게 콩알 펀치 3연발을 시전했다. 여유롭게 받아내는 영희씨.

오늘도 데미지는 0에 수렴하는 거 같다.

**

“유미니, 이거 바바.”

- 응? 보구 이써.

“쨘!”

윤슬이는 무언가를 자랑하는 느낌으로 주머니에서 몇 가지 득템한 것들을 꺼낸다.

지나치게 눈에 띠는 아이템들이라,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나조차도 쳐다보게 된다.

- 우와! 이게 모야?

“이고 받아써. 아저씨한테서.”

- 뭔데 그래? 선생님도 좀 보여줘.

우리 가게 대표 단골인 두 사람인 만큼, 저녁 식사를 하러 들러준 유민이와 미정 선생님.

두 사람과는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진 5세이기에 자연스레 자신의 애장템들을 공개한다.

모두 차차웅씨한테서 받은 것들이다.

“조금 많이 빈티지하긴 한데.”

오히려 그 점이 매력이었다.

부채나 알 수 없는 한자가 쓰여진 종이 등.

그것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띠는 아이템이 있는데.

- 와... 이런 안대가 있네?

마치 사극에서 한쪽 눈을 화살에 맞은 캐릭터가 사용할 법한, 낡고 옛된 안대다.

- 윤슬아, 이거 선생님 한 번 써봐도 돼?

“움! 선샌님은 특벼리 시켜주눈 거야. 고마워해이지 대여.”

- 아이구, 감사합니다.

미정 선생님은 5세의 비위를 맞춰주고는 안대를 손에 드신다. 그리고는 한 쪽 눈을 가린다.

사악하게 웃기 시작한다.

- 으흐흐...

그리고는 긴 소매 밖에 나와있던 손을 쑥- 안으로 집어넣고는 두리번거리다가 적당히 젓가락을 집는다.

잘려나간 손 대신 후크를 꽂은 선장의 흉내를 내고 싶은 것 같다.

“저걸 저 나이대 애들이 이해하려나.”

조금 애매한 지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딱히 아이들을 위해서 놀아주려고 해적의 변장을 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선생님 본인이 순수하게 즐거워보인다.

- 사실 선생님이 너만할 때 꿈이 해적이었거든.

“오오! 윤스리두 사실 옛날에 해저기 하구 시퍼써.”

- 진짜로?

“우웅, 그짓말이거둔. 해저기가 몬데.”

- ....

5세는 훌륭한 거짓말로 선생님에게 페이크를 건 뒤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슬슬 연말인 탓일까? 6세가 되어가다보니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5년, 아니 3년만 지나도 나를 저렇게 속이려 들지 모른다! 주의해야겠다.

- 나 해적 알어. 막 바다에서 보물두 찾구. 헤엄두 치구. 꼬기도 구워먹구. 하는 거야.

“보, 보물!”

유민이가 친절하게 해적에 대해 설명하는데, 5세가 크게 흥분한다. 보물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보스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 같다.

한참 낭만을 품을 나이, 5세이니 무리도 아니다.

- 엄마가 저번에 해적 나오는 만화 보면서 조아해써.

- 아들! 그런 것까진 일일이 설명 안 해도 되거든.

- 히히...

웬일로 미정 선생님한테 한 방 먹인 유민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장난스럽게 쳐다본다.

자신의 보스인 윤슬이를 보고 용감하게 장난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당하고 있을 미정 선생님은 두 꼬맹이를 순식 간에 양팔로 끌어 안아 간지럼을 태운다.

“프힝힝힝!”

- 으앙학학학하!

개성적인 웃음소리가 식당에 울려퍼진다.

간지럼을 태우면서도 마치 산적이나 해적 같은 안대를 끼고 있는 미정 선생님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이게 느껴진다.

웃다가 지친 유민이가 미정 선생님한테 묻는다.

- 엄마, 있잖아.

- 응?

- 엄마는 왜 해적 하구 싶어써?

- 엄마가 너희만큼 쬐끄만할 때에?

- 응.

“째, 째끄매?!”

순순히 쬐끄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유민이와 다르게 5세의 눈빛은 불타오른다. 그러나 여전히 미정 선생님의 품 안에서 간지럼 사정권에 있었기에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았다.

저래 봬도 우리 식당 보스는 간지럼에 매우 약하시다.

- 응... 글쎄다. 엄마가 왜 해적이 하고 싶었을까.

잠시 고민하던 미정 쌤은 떠올랐단 듯이 눈썹을 까딱인다.

안고 있던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 자유롭잖아.

“움... 자유?”

- 응, 자유. 넓은 바다를 해치고 나서는 모습이 그 나이에는 자유로워보였어. 낭만도 있고. 보물 찾으러 다니거나 동료들이랑 유대감도 있어보이고. 그런 거 멋있잖아? 그리고 선생님은 바다를 좋아하거든.

“윤스리두 바다랑 보물이 조아.”

미정 선생님과 윤슬이는 어울리는 코드가 있는지, 서로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배실배실 웃는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나와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미정 선생님이 괜스레 어려보인다. 나이에 비해선 꽤 젊어보이시니 말이다.

유민이가 괜히 잘생긴 게 아니다.

“으음...?”

잠깐.

왜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었을까.

유민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자니, 특징이 하나 있다.

눈 밑에 눈물점이 있는데?

그걸 깨닫고 나니 왜 차차웅씨와 유민이가 미묘하게 닮아보일까.

심지어 유민이는 차씨다.

차차웅씨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잘생겼었지.”

미정 선생님은 요근래 별로 티를 안 내게 되었지만 비주얼이 좋은 사람을 편애한다.

남다른 아들 사랑도 그 지점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차차웅씨가 우리 가게에 다시 왔을 때 미정 선생님과 마주치게 될 확률은?

“적지 않다.”

미정 선생님과 유민이는 한 주에 한 번쯤은 들리니까 말이다.

혹은 오히려 그걸 미리 알고 있던 차차웅씨가 우리 식당에 일부러 들렸던 것일까? 차차웅씨가 건네어준 명함에 따르면, 점집은 우리 가게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날 차웅씨는 점심에 들러주셨다.

저녁도 아니고, 점심시간에 이런 먼 데까지 식사하러 온 거라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 윤슬이. 궁금한 거 이써.

“움?”

- 근데 저거 엄마가 하구 있는 거 있짢아.

“안대라구 한다구 그래써.”

- 응, 안대. 저거 누가 줬던 거야? 누구 아저씨?

“움... 움...”

큰 일이다.

저걸 말려야 한다.

다행히도 5세는 차웅씨의 이름을 잊어먹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당 아저씨의 이름은 내가 전해듣고 알려준 것이다. 본인이 직접 들었던 것인 아니고, 한 번 들린 손님일 뿐이니 잊어먹은 것이다.

“기어기 안 난당. 까묵었따.”

“휴...”

다행이다.

5세는 아무래도 차차웅씨의 이름을 완전히 잊어먹은 것 같다.

“움?”

- 응... 왜 그래?

갑자기 윤슬이가 유민이 얼굴을 지긋이 들여다본다.

유민이가 당황하며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움... 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민이와 차웅씨의 얼굴이 닮았다는 것을 인지한 것 같다. 이번에야 말로 큰일인가?

“유미니, 차유미니. 차... 차... 차?!”

- 차?

“움! 까머거써. 기어기 안 나.”

하마터면 주방에서 신속으로 달려갈 뻔했다.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5세다. 심장이 쫄깃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