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90화 (190/200)

190화: 신메뉴?(2)

“투표 요정?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티비에서 봐써. 그... 모더라? 새해 기념... 모시기 조사 어쩌구에서.”

“아아...”

확실히 얼마 전에 그런 프로그램을 함께 보았던 기억이 있다. 신년 기념으로 TV에서 여러 가지 이벤트성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가.

그런 종류였는데.

[신년을 기념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 Top 10]이라는 간단한 코너를 아침 토크쇼에서 진행했다.

그 코너에서 등장한 MC가 자신을 투표 요정이라고 자칭하며 얇은 날개 달린 옷을 입고 인터넷 조사로 진행한 설문의 응답 순위를 설명해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10살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는 점인데, 놀랍게도 그 아이들이 신년 기념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었냐면.

[설날에 받는 용돈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어요.]

였다.

예능용으로 쓰일 것이기에 PD 쪽에서 답변을 어느 정도 조작을 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현실감이 느껴져 고개를 끄덕였다.

그밖에도.

[키가 많이 크고 싶어요.]라던지,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와 같은 지극히 아이들다운 답변들도 있었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아이들의 목표라기보단 부모님의 목표겠지. 동생이 생기는 일은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럼 윤슬이가 투표 요정이 돼서 손님들한테 설문 조사할 거야?”

“응, 윤스리가 다 물어볼게. 모가 제일루 먹구 싶은지.”

“흠... 그래?”

나쁜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손님들한테는 하나의 엔터테이닝이 될 수도 있으니 가게 운영적으로도 도움이 되겠지.

또, 손님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사이가 좋은 몇몇 단골들에게 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랬다간 표본이 부족하여 편향된 의견만이 모일 수도 있으니까.

정규 메뉴를 추가한다면 조금 더 정교한 방법으로 의견을 취합하고 싶다.

하지만 그 설문을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할지, 우선 고민해야 한다.

“우선은 선택지가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

윤슬이 말에 따라서 설문을 진행한다고 하면, 직접 손님들께 의견을 묻는다는 얘기일 텐데 만약 서술형 문항처럼 [칼로리가 낮은 메뉴 중에 먹고 싶은 것 아무 거나 적어주세요!]라고 써둔다면.

그거야 말로 일이 복잡해진다. 100명 조사했는데, 100명 다 다른 답을 내놓거나, 우리 가게의 컨셉과 다른 답이 복수에게 선택받는다면 피곤해진다.

“내가 메뉴를 몇 가지로 추려서 설문 조사 판을 따로 만드는 게 정답이겠지.”

가령 설문 조사를 위한 판떼기를 하나 만들어두고 그곳에 음식 사진과 더불어 요리 및 재료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미니 스티커를 붙이는 투표칸을 마련해둔다면 여러 모로 깔끔하지 않을까.

그 밑에 설문 조사를 진행하는 취지를 적어두면 손님들도 설문 조사의 의의를 알기 쉽고 말이다.

“그럼 윤스리가 그 판떼기 들구 손님들한테 구걸할게. 한 표만 줍쇼~ 하구.”

“구걸... 은 좀 아닌 것 같고. 그냥 투표만 해달라고 하면 돼. 구걸은 그렇게 쓰는 표현이 아니야. 좋은 말도 아니구.”

“잉? 그렇구나.”

윤슬이는 좋은 말이 아니라고 내가 알려주자, 그대로 반성하는 기미를 보인다. 하지만 “한 표만 줍쇼.”라는 표현이 은근히 디테일해서 괜히 웃음이 나온다.

“옵바, 근데 아직 큰 문제가 하나 남아이써.”

“? 무슨 문제.”

“어뜨케 하믄 윤스리가 요정이 될 쑤가 있는가.”

“.... 너 요정 분장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야?”

“그거눈 아니구.”

그건 아니라면서 애써 눈을 돌리는 5세.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새삼 생각이 드는데, 윤슬이는 은근히 코스프레에 집착이 심하다.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아니면 욕심이 많은 건지. 캐릭터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파고들어서 자기가 직접 그 캐릭터가 되어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별나긴 하다.

“요정 옷을 구하기 쉽진 않을 텐데. 오빠가 한 번 잘 생각해볼게.”

“그럼 옵바만 믿을게.”

기대감에 가득찬 눈빛을 보내오는 5세.

반짝반짝.

조금 허술하게 준비해도 봐주겠지?

**

일을 모두 마친 뒤 집에 돌아와서 메뉴를 구상한다.

메뉴의 주제는 ‘칼로리가 낮아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음식을 먹는 것이니, 어느 정도 열량을 섭취하게는 되겠지만. 같은 콜라를 먹어도 다이어트 콜라를 먹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하지 않는가.

비슷한 논리로 접근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결국에 중요한 건 맛이겠지.”

맛이 없으면 결국 아무도 안 먹는다. 돈을 주고 사먹는 음식인데, 맛이 없으면 화가 나겠지?

심지어 그냥 집에서 자기 자신이 적당히 돈 주고 닭가슴살을 사먹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결국 낮은 열량과 만족할 만한 맛, 두 가지의 균형을 잡은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

당장에 생각나는 것은 세 가지. 우선은 두부 한 모를 다 때려넣는 볶음밥이다.

두부와 잘게 자른 대파, 그리고 계란을 섞고 소량의 밥을 넣어주면 단백질도 챙길 수 있고 탄수화물과 지방의 함유량을 줄인 한 끼를 만들 수가 있다.

“사실 건강 생각하면 탄수화물도 고루 섭취해주는 게 좋지만.”

외모를 생각하면 탄수화물은 언제나 경계 대상이다. 몸이 부어오르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방보다 탄수화물이라고 하니 말이다.

가볍게 스리라차 소스를 한 바퀴 둘러 맛까지 챙겨준다. 한 입 먹어보면.

우물우물...

“이 정도면 꽤 먹을만한데?”

당연히 맛있는 조미료와 양념, 기름진 식자재를 듬뿍 넣은 요리들과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고려한 요리란 것을 고려했을 때, 고슬고슬한 두부계란볶음밥은 적어도 만족할만한 한 끼 식사는 되어주는 느낌이다.

“쿠쿠쿠...”

요리가 완성되어, 맛을 보고 있는 내 뒤로 엄습한 5세의 그림자. 폼을 잡고 싶은 모양이다.

일부러 긴장하는 척하면서 뒤를 돌아봐준다.

“너, 너는?!”

“쿠쿠쿠! 이 몸 등쟝!”

윤슬이는 두 팔을 넓게 벌리며 주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잠옷을 입고 있다. 거의 침대에 들기 직전의 상태.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귀여운 꿀벌 머리띠를 하고 계신다. 요정의 옷을 구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우니 요정처럼 보이는 머리띠라도 어떻게든 구해보았다.

사실 요정처럼 보인다기에도 미묘한 지점에 있는 비주얼이지만 적어도 윤슬이는 만족스러워 보인다.

그럼 아무런 문제 없다. 기본적으로 귀여우니까.

“먹방 요정!”

“쿠쿠쿠! 그렇타, 윤스리 먹방 요정 등쟝. 당장 윤스리에게도 한 입을 주지 않으면!”

“.... 않으면?”

“아, 않으면. 오늘 옵바 잘 때 얼굴에다가 방구 낄 거야.”

“?!”

진심으로 무서웠다. 자고로 가장 무서운 공격은 기습이다. 자고 있을 때 기습을 한다면 대응이 불가능하다.

윤슬이는 내가 모르는 줄 알지만, 사실 알고 있다. 가끔 내가 잠들어있을 때 기행을 벌이는 것이다.

내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거나, 입에다가 발을 집어넣거나. 언제 한 번은 얼굴에 낙서를 한 적도 있지. 나도 한 번 자면 수면이 깊어지는 편이라 눈치를 빠르게 챈 것은 아니지만.

그러는 일이 꽤 잦기 때문에 아무래도 눈치채게 되었다. 하지만 윤슬이는 반대로 모를 것이다.

나도 똑같은 장난을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수면 시간이 긴 것은 나보다 윤슬이 쪽이기 때문에 내가 장난을 칠 수 있는 기회가 월등히 많다.

그 증거로 내 스마트폰의 비밀 폴더에는 윤슬이가 자고 있을 때 콧구멍에다가 새끼 손가락을 집어넣고, 남은 검지와 중지로 브이 사인을 그린 사진이 7장 있다.

일주일 동안 내내 도전했는데, 단 한 번도 들키지 않게 되어 얻은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리 와서 한 입 먹어봐. 안 그래도 영희씨랑 같이 한 입씩 먹어보게 할 생각이었어.”

“움, 아주 좋쏘.”

“나도? 난 아까 밥 많이 먹어서 배부른데.”

“그래도 의견 수렴 삼아서 한 입만 먹어봐.”

영희씨는 마지못해 다가와서 윤슬이 옆에 앉는다. 두 사람은 동시에 숟가락을 들어 팬 안에 들어있던 소량의 볶음밥을 우물우물 시식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묘한 표정.

“맛이... 있눈데. 움... 있기만해.”

“그 표현 정확하네. 맛이 있는데, 있기만해.”

“맛이 없진 않은데, 너희 취향은 아니다?”

“그렇타...”

“만약 한나절 정도 굶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아주 미묘한 평가였다. 그럴 만도 하다. 매일 둘에게는 최대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영희씨도 그렇고, 윤슬이도 그렇고 한 집에 사는 식구이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렇다보니 이런 느낌의 요리는 입에 맞지 않을 것이다.

애초 둘은 다이어트따위 고려할만큼 미용에 신경 쓰는 입장도 아니다.

“그럼 다른 것도 한 번 만들어줄 테니까, 기다려봐.”

“움...! 이 먹방 요정만 믿어.”

“방금 것보단 맛있었으면 좋겠다.”

글쎄. 내가 먹기엔 두부계란볶음밥도 충분히 괜찮은데 말이다. 이름을 줄여서 부르기에도 좋다.

두계볶.

아, 이 네이밍 센스는 순전히 내 취향이긴 하다만 조금 찰지지 않나.

그 다음 메뉴로 넘어가보자면, 이건 좀 획기적이다. 팽이버섯을 사용한 쌈인데. 상추를 사용한 쌈이 아닌, 라이스페이퍼를 사용한 쌈이다.

고로 비주얼적으로 보자면 월남풍이 되겠지만, 팽이버섯을 조리할 때 양념으로 매운 맛을 감이할 생각이기 때문에 맛만큼은 충분히 한국풍일 것이다.

“원래 버섯 요리에는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지.”

그리고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가면 자연스레 소화가 잘 된다. 아랫배에 묵혀두었던 숙변들이 모두 씻겨내려갈지도 모른다.

라이스페이퍼와 팽이버섯 자체에 열량 적기 때문에 아마 고추장과 간장을 넣어 간을 채운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부담이 되진 않을 것.

“조리가 간편한 건 덤이거든.”

팽이버섯의 밑동만 잘라두는 작업을 한다면, 의외로 만드는 것이 간단하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 가게 고정 메뉴로 들어가는 제육과 가지 튀김을 위해선 꽤 정성을 들인 밑작업이 사전에 필요했는데, 적어도 팽이버섯쌈의 경우 그런 식으로 손이 가는 일은 많이 없을 것이다.

“간장이랑 고추장 섞고, 파도 조금 넣어야지.”

잘게 잘린 파는 항상 향에 도움이 되니까. 고추장과 간장만으로는 음식이 너무 심심하지 않은가.

“윤슬이랑 영희씨! 이리 와봐.”

“움! 다음 요리 완성?”

“이번에는 좀 먹을만한 거지?”

“아마 맛이 없진 않을 거야. 오히려 식감은 되게 신기할 걸?”

전을 부치듯이 구운 팽이버섯은 그 식감이 제법 신박하니 말이다. 고기는 아니지만 씹는 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나는 두 사람의 입에 각각 팽이버섯쌈을 하나씩 넣어주었다. 검붉게 오른 양념이 발라진 팽이버섯이 라이스페이퍼 안에 있으니 비주얼이 독특하다.

먹여주기도 간편하고 말이다.

“맛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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