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신메뉴?(3)
물어보기도 전에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입꼬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건 아주 매콤하구 맛이 괜차는데?!”
“음... 내 혀엔 좀 많이 맵긴 한데. 그래도 식감이 신선해서 씹는 맛이 좋은 것 같아.”
“아까 것보단 반응이 괜찮네.”
“움, 이 정도믄 윤스리는 만족.”
윤슬이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빨아먹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메뉴에 내긴 어려울 것이다.
맛과 식감이 독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팽이버섯쌈 하나로만 메뉴를 구성할 경우 맛과 식감이 너무 단조롭다. 차라리 곁들일 수 있는 국이나 생선이 하나 있는 편이 플레이트를 전체적으로 푸짐하게 만들어줄 것도 같다.
“그쪽은 차차 생각해보고,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어.”
“움? 아직 윤스리 더 먹을 수 있는데. 왜 하나밖에 안 남았찌? 다 어디 가써.”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맡겨놓은 거는 아니지마는 더 마니 먹으는 게 좋아.”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나서 다음날 출근을 못해.”
“아앗, 출근은 해야지대. 집에서 혼자 있으믄 넘무 심심하거둔.”
“그럼 적당히 오빠가 주는만큼만 먹고 자야겠지?”
“그렇슴미다!”
윤슬이는 과식의 위험성을 확실히 인지한 모양. 엉성하게 거수 경례를하더니 다시 제자리로 복귀한다.
다음 요리를 준비할 차례다. 이번 것은 꽤 대중적인 요리라고도 볼 수 있다.
양배추볶음우동.
이전에 한 번 가게에서 오늘의 메뉴로 내어본 적도 있는데 인기가 그럭저럭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땐 다진 돼지고기를 함께 볶아 맛을 풍부하게 했지만.
“이번 요리는 그렇게 못한다는 말이지.”
테마는 결국 열량이 낮은 요리니까. 그렇다면 집어넣을 수 있는 식재료는 한정되는데.
우선 소스의 베이스는 굴소스로 잡고, 양배추와 함께 볶는 것 자체는 변함 없이 진행. 중요한 것은 돼지고기가 품고 있는 감칠맛과 식감 등을 어떻게 대체할 것이냐다.
“가다랑어포 써봐야겠다.”
의외의 한 수가 되어주지 않을까. 감칠맛도 은근히 풍부하면서 위에 솔솔 뿌려두는 것만으로도 비주얼이 살고.
무엇보다 등푸른 생선이니만큼 단백질도 함유되어 있어 영양 밸런스도 마저 잡아주는 느낌.
소스를 윤기 있게 머금은 볶음우동 위로 가다랑어포를 솔솔 뿌리자, 열기 위에서 춤추듯 꿈틀거린다.
양배추가 제법 들어있어 건강에도 좋아보이고, 다이어트 테마에 적합해보이는 메뉴가 완성되었다.
“시식단, 이리 와봐. 마지막 요리 됐다.”
“먹방 요정 재등장!”
“먹방 고양이도 덩달아 등장!”
손바닥만한 그릇에 각각 담아 시식단에게 나눠주었다. 각자 그릇에 담긴 우동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움? 이거눈 그냥 우동이자나. 이거는 머그면 윤스리처럼 뱃살 디룩디룩이야.”
“그러게. 우동이면 살 찌는 거 아니야? .... 잘은 모르지만.”
“아니, 의외로 우동은 살 안 찌는 음식이야. 면에 단백질 함유량도 꽤 많은 편이고. 유탕면이 아니라서 불포화지방에 쌓이지도 않거든. 메밀면이랑 같이 건강한 면발 중 하나야.”
“오오...! 몬 말인지는 아예 모르겠따.”
그럼 왜 감탄까지 하는 걸까. 모처럼 내가 있어보이는 설명을 해주어서 그런 거겠지만 참 엉뚱하다.
“자세히 보니깐 안에 고기도 안 들어갔네. 이러면 맛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한 번 먹어봐.”
영희씨는 내 설명을 듣더니 맛이 별로일 거라 짐작한 모양. 썩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다.
하지만 시식단으로 걸음을 옮겼으면 결국 한 입은 먹어야 하는 법. 젓가락으로 우동 면발과 양배추, 가다랑어포를 집어 후루룩- 한 입에 넘겨버린다.
그리고 커지는 두 눈.
“...! 생각보다 맛있잖아?”
“그러믄... 오물오물... 옵바가 만든 건데... 오물오물... 어뜨케 맛이 업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5세. 아마 가다랑어포가 돼지고기 다짐육의 빈자리를 많이 채워주는 것이리라.
윤슬이는 자기 앞에 있던 작은 그릇이 순식 간에 빈 게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더니, 영희씨의 그릇을 흘끗 쳐다본다.
“그거 안 머글 거니? 영히씨.”
“...? 왜.”
“윤스리가 대신 먹어줘두 갠차나.”
“내가 먹을 거야.”
“.... 치잉.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누가 보면 며칠 굶긴 줄 알겠다. 아까 저녁에 제육 볶음을 두 그릇 먹었던 걸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 그릇은 그냥 덮밥으로, 한 그릇은 제육을 반찬 삼아 먹던 그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한데.
옆에 있는 고양이의 그릇까지 탐내다니.
“오늘은 그만 먹자. 너 진짜 내일 배탈나겠다.”
“그치만!”
“내일 배탈 나면 투표 요정은 대체 누가 해주겠어? 오빠나 영희씨가 할 수는 없잖아.”
“움...”
“그 꿀벌 머리띠를 쓰고 투표 요정 역할에 임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고!”
“아앗... 그것이 바루 윤스리의 사명...!”
5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눈빛을 반짝이고는 깔끔하게 더 먹는 것을 포기했다. 식탁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움... 근데 몬가 속은 것 같기두 하구.”
“속긴 뭘 속아. 빨리 주무실 준비나 하시죠.”
“느엥...”
5세의 먹성은 좀처럼 말리기가 어렵다.
아무튼 세 메뉴를 한 번 시식단에게 먹여본 결과,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양배추볶음우동, 그런데 이제 가다랑어포를 곁들인.’인 것 같다.
계란두부볶음밥은 조금 미묘한 반응이었고, 팽이버섯쌈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메뉴 구성이 약간 부실한 느낌.
“내일 직접 투표 요정에게 맡겨보면, 뭔가 반응이 나오겠지.”
**
다음날이 되었다.
오늘은 예정대로 방문객들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물론 설문조사라 해도 전혀 딱딱한 느낌은 아니다.
머리에 꿀벌 머리띠를 착용한 5세(투표 요정을 자칭할 것)가 세 개 음식, 각각 계란두부볶음밥과 팽이버섯쌈 그리고 양배추볶음우동의 사진이 붙여진 판떼기를 들고 식당 내부를 배회할 것이다.
그럼 손님들은 그 판떼기에 안내되어있는대로 다이어트 중 우리 식당에 방문해서 식사하게 된다면, 그중에서 가장 주문할만한 것에 투표해주시는 방식이다.
투표용 스티커도 제대로 마련해두었다.
빨간색 하트모양, 어느 문방구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의 스티커다.
“투표 부탁드림다.”
“이거 보세여. 옵바가 새로운 메뉴 만든다구 그래써여. 투표 부탁드림다.”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대여. 기호 4번 투표 부탁드림다.”
“...?”
마지막에 이상한 선전 문구가 끼어있던 것 같은데, 손님들은 그저 웃어넘기신다.
“우리 윤슬이가 투표 진행하는 거야? 그럼 꼭 해줘야지.”
“그럼요. 윤슬이가 하는 건데 당연히 해줘야죠. 신메뉴 늘어나는 것도 은근히 반갑고. 가끔 다이어트 신경 쓰일 때가 있어서.”
손님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 식사 전후에 윤슬이가 투표용 판떼기를 들고 가면 귀엽다는 듯이 미소 지으시며 스티커를 붙여주시는데.
윤슬이는 투표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불만이 쌓여갔다.
“우우...”
“왜 그래?”
투표판의 상황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윤슬이가 어제 가장 좋은 반응을 보였던 메뉴는 확실히 양배추볶음우동 쪽이었다. 그런데 지금 양배추볶음우동은 팽이버섯쌈과 비등비등한 투표 수를 기록 중이다.
“으음... 아무래도 메뉴 자체가 신선하다보니까 인기를 얻는 모양이네.”
양배추볶음우동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사먹을 수 있는 메뉴다. 하지만 팽이버섯쌈은 은근히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라이스페이퍼에 구운 팽이버섯을 넣는다는 발상은 보통의 식당에서는 잘 하지 않으니까.
그런 오리지널리티 덕분에 준수하게 득표하고 있는 모양.
“윤슬이는 양배추볶음우동이 잘 안 돼서 서운했구나?”
“움? 그런 거 아닌뎅.”
“...? 아니라고?”
“응, 이거 바바.”
윤슬이는 내게 얼굴을 들이민다. 어디 다쳤는가 싶어서 유심히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설마 이런 어린 애한테 뾰루지나 여드름이 덕지덕지 났을 리도 없고.
“이익! 얼굴이 아니라 머리 쪽을 봐조.”
“머리? 아, 머리띠 쓴 것 때문에 그래?”
“응... 윤스리가 머리띠 썼눈데 아무도 몰라줘.”
“아무도 머리띠 이쁘다고 칭찬 안 해줬어? 아까 몇 분이 칭찬해주셨던 것 같은데.”
“이뿐 게 중요한 게 아니자나. 요정 댈라구, 이렇게 머리띠를 썼는데 아무도 몰라주자나.”
“아아...”
그게 불만이었던 건가.
확실히 꿀벌 머리띠 하나만으로는 요정이 되었다는 어필이 조금 모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럼 앞으로는 멘트를 하나 붙이는 게 어때?”
“멘트?”
“응, 아무리 손님들이 자주 들러주시더라도 윤슬이가 뭘로 변장했는지 한 번에 알아채긴 어려울 수도 있잖아.”
“그거눈... 그렇지.”
“그러니까 앞으로 투표해달라고 손님들한테 다가갈 때마다 투표 요정 등장! 이라고 한 마디씩 멘트를 치면 손님들이 단번에 알아주시겠지.”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역씨 옵바야.”
5세는 내 권모술수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설문 조사를 위해 테이블에 방문할 때마다 각을 잡고 “투표 요정 윤스리 등장임미다!”라는 멘트를 날렸고.
손님들은 내 예상대로 매우 좋아하셨다. 투표가 귀찮다며 하지 않으시던 손님들마저도, 그 멘트만큼은 듣고 싶었는지 윤슬이를 한 번씩 불러 하트 스티커를 붙여주셨다.
“역시 우리 집 5세는 활용도가 뛰어나군.”
저리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라주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오전 장사가 끝나자 판떼기의 투표 칸이 어느 정도 메워졌다. 이 정도면 굳이 저녁 장사 때까지 투표를 이어갈 필요는 없을 듯했다.
윤슬이와 나와 영희씨. 셋은 나란히 앉아 판에 붙은 스티커를 하나씩 떼어가며 득표수를 계산했다.
결론적으로 아주 미세한 차이로 양배추볶음우동이 이기게 되었다.
“역씨 영히씨랑 윤스리가 예상한대로거둔~! 우동이 마시 좋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은근히 팽이버섯쌈이 인기가 있어서 내 마음을 혹하게 만든다.
“이건 나중에 따로 메뉴로 내어봐야겠다.”
인기가 많으면 오늘의 메뉴로 자주 내어드리면 되는 얘기다. 열량을 낮게 만들어야 되는 것도 아니니, 활용할 수 있는 조리법도 다양해지고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신년 기념 다이어트 메뉴 추가는 끝이 났으나, 윤슬이는 무언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왜 그래, 윤슬이.”
“움... 이따가는 투표 안 해?”
“그렇지? 아무래도 투표가 다 끝났으니까 굳이 더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부탁드릴 필요가 없잖아.”
“그거눈 그렇지만 아쉬워.”
윤슬이는 머리띠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린다.
아직 투표 요정 놀이가 더 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그럼 투표 요정 말고 먹방 요정하면 되잖아.”
“먹방 요정?”
“어제 집에서 하던 거 말이야. 이따가 오빠가 신메뉴로 정한 우동 저녁 식사로 만들어줄 테니까, 그걸로 손님들한테 기대감 좀 심어봐.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하시게끔.”
“오오...! 그거눈 아주 조은 요정의 역할이야! 새로운 작쩐 시작!”
윤슬이는 내 제안을 듣고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뺨이 느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