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비, 아찔하게 흐르는-2화 (2/100)

2화

다니올라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결의 얼음 같은 눈동자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이것은 소문 속 북방 귀신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일생 처음 보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죽음을 앞둔 공포감일까.

숨조차 멎어버릴 듯한 영원 같던 찰나 속.

“이야아악!”

챙!

등 뒤에서 달려든 도적을 어찌 알아챘는지, 결이 재빨리 몸을 돌려 날아오는 칼을 막았다.

그러곤 단칼에 도적의 몸까지 베어버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에 다니올라는 전과는 다른 의미로 숨이 콱 막혀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심 다점은 격전지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나까지 죽을 거야.’하지만 다점 밖은 칼과 화살들이 살벌하게 난무하고 있었다.

저 아수라장 같은 곳을 무사히 빠져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니올라는 어쩔 수 없이 다점 구석에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 뒤에 바싹 웅크려 숨었다.

그러곤 소름끼치는 마찰음과 비명으로부터 두 귀를 막고 눈까지 감았다.

극에 치달은 공포에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어서 빨리 이 끔찍한 시간이 지나가기를.

찍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히 숨어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게 끝나 있으리라.

그러나 헛된 바람이었을까.

화륵-!

갑자기 어디선가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촛대 하나가 도적의 몸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불은 순식간에 다점을 삼켜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재빨리 불을 꺼보려 했지만 근처에 있는 물병으론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마른 찻잎 상자로 옮겨 붙는 바람에 불은 더욱 빠르게 몸집을 부풀렸다.

“꺄악!”

화륵 터지는 불꽃에 다니올라는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여길 빠져나가야 하는데.

‘……안 돼. 그걸 두고 갈 순 없어.’그녀는 황급히 계단을 통해 다락으로 올라갔다.

그러곤 방 한구석에 고이 놓아두었던 대나무 통을 집어 들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대나무 통.

하지만 그녀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엄마가 유일하게 남기고 간 것이기에.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엄마…….’이런 상황에서조차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대나무 통 하나뿐이었다.

통을 품속 깊이 넣은 다니올라는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 사이 더 번진 불이 이미 다점의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콜록, 콜록!”

매캐한 연기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눈앞이 온통 뿌옇게 변해 이제는 나갈 길조차 찾을 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콜록!”

하나 아무리 외쳐보아도 구하러 오는 이는 없었다.

저 불길 너머엔 나를 해하려는 사람들뿐.

그 사실을 깨달은 다니올라는 결국 불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저앉았다.

이 와중에도 품에 있는 대나무 통을 잃어버릴세라, 옷 위로 불룩 튀어나온 그것을 꼭 감싸 쥐었다.

“흐흑. 엄마, 왕 할아버지…….”

참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이렇게 죽고 마는 걸까.

내 인생은 죽음마저 조용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섭게 죽고 싶진 않았는데…….

대나무 통을 감싸고 있던 손에서 차츰 힘이 빠져나갔다.

더는 버티기 힘들어 정신을 잃을 것만 같던 그때.

후욱-.

누군가 불길 사이를 헤치며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시야가 흐릿하여 불꽃처럼 인영이 흔들렸지만, 굉장히 키가 큰 사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다니올라는 남은 힘을 모두 끌어 모아 그의 바짓단을 그러쥐었다.

도적이든 조선의 군사든 상관없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를 꺼내줄 수만 있다면.

다행히 간절함이 통한 걸까.

사내가 다니올라의 몸을 가볍게 안아들었다.

몽롱한 정신 가운데 온몸을 아늑하게 감싼 단단함이 느껴졌다.

어떠한 불길도 모두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은 견고함이었다.

다니올라를 안은 사내는 넘실거리는 화마 속에서 무사히 그녀를 데리고 빠져나왔다.

“콜록, 으으…… 콜록, 콜록!”

바닥에 내려진 다니올라는 연신 기침을 터트렸다.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한참 숨을 고르던 다니올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

어쩌면…… 그냥 저 안에서 정신을 잃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기골장대한 장정들이 저를 빙 둘러싸고 있던 것이다.

그들이 탄 호랑이만큼 큰 말들은 당장이라도 제게 발길질을 할 것처럼 투레질을 해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서결 장군이 아까와 같은 서늘한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자국을 보니 저를 구해준 사내가 서결이었나 보다.

“누구냐. 왜 저곳에 있었던 거지.”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다니올라의 가슴을 얼게 만들었다.

입을 열어야 하는데. 정신이 황망하여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사내는 이방인이라면 모두 죽인다는 북방 귀신이었으니까.

‘내가 조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 나까지 죽일 텐데…….’그렇다고 조선 사람인 척한다면 나라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생각할 테니, 그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답을 정하지 못해 머뭇거리니 더욱 수상하게 여겼나 보다.

“읏…….”

결은 인내가 길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듯 다니올라의 목에 검을 갖다 대었다.

검집과 칼자루가 모두 붉은 검, 적운검.

별칭은 피갑검이오, 실제로도 수많은 이의 피로 적셔진 이것은 북방 귀신의 호패와도 같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검이었다.

“다시 묻겠다.”

“…….”

“넌 누구지.”

바로 답이 나오지 않자 조선어를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이방의 언어로 물었다.

이번에도 답하지 못한다면 그는 가차 없이 제 목을 벨 것이다.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래도 위험하고 저래도 위험하다면,

“심 다점의 주인…… 단이라고 하옵니다.”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쪽을 택할 수밖에.

“사, 살려주시어요…….”

금방 들킬 거짓말이래도 일단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조선말로 말했다.

조선 사람조차 깜빡 속을 정도로 능숙한 조선말 솜씨에 이름마저 조선 사람의 것과 같으니, 이 정도면 이방인이라곤 생각 못 하지 않을까.

‘제발, 제발 속아라……. 제발!’이어진 침묵 속에 다니올라, 단이는 슬쩍 눈을 떠보았다.

결은 여전히 매서운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내려칠 것 같던 검은 조금이나마 그녀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그것이…… 가난 때문에 군역을 견디지 못한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도망쳐 나와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땐 제가 너무 어릴 때라, 알고 있는 건 이것뿐이어요.”

단이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언젠가 조선 손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제 일처럼 말했다.

속을 꿰뚫어보듯 한참동안 단이를 응시하던 결이 마침내 검을 완전히 거두었다.

그녀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 다점!”

뒤늦게 고개를 돌린 단이는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심 다점이 화마에게 완전히 먹혀버린 것이다.

“어떡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거대한 장작처럼 타오르는 다점을 두고 단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다점은 불이 붙은 지 채 한 다경도 되지 않아 전부 타버리고 말았다.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심 다점뿐이었는데.

이젠 유일한 보금자리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

결은 그런 단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목표하였던 도적떼를 모두 물리쳤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저 작은 계집아이가 자꾸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방의 땅에서 만난 저런 계집 따위, 그저 스치는 들풀과도 같을 뿐인데.

신경 쓰이게.

“장군, 이제 그만…….”

결은 손을 들어 진위의 말을 막았다.

그러곤 여전히 불길이 치솟는 가게와 단이를 시야에 담았다.

‘지금 막 터전을 잃은 다점의 주인이라…….’그러잖아도 새 다동을 구하려던 참이었다.

여연 태생의 다동이 병든 어미와 어린 동생들을 두고는 죽어도 한양으로 갈 수 없다며 눈물로 호소하기에, 하는 수 없이 돌려보낸 탓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결이 여전히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단이를 향해 물었다.

“생년이 어떻게 되느냐.”

“……예?”

“네가 태어난 생년이 어떻게 되느냐 물었다.”

이 상황에 생뚱맞게 생년은 왜?

순간 단이의 표정이 딱 그러했다.

하지만 이내 제 처지를 깨달았는지, 그녀는 힐긋 눈치를 살피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신묘년……이옵니다.”

신묘년이란 말에 결의 눈동자가 묘한 빛을 품었다.

그의 차 시중은 오로지 신묘년생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보통의 신묘년생들에 비해 많이 작아 보이긴 했지만,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기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이제 어찌할 테냐.”

“저는, 그게…….”

“다른 가족들은 있느냐.”

“오래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저 혼자입니다.”

“갈 곳은 있느냐.”

“……없습니다.”

완벽했다.

이토록 맞아떨어진 우연을 결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말이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단이는 그에게 있어 완벽한 후보였다.

이런 무법지대에 가족도 없이, 그것도 계집의 몸으로 홀로 남는 것보단 저를 따라오는 편이 훨씬 나을 터.

“내가 널 거두겠다.”

“예……. 예?!”

단이의 눈이 화들짝 놀라 커다래졌다.

‘아까부터 자꾸 말을 두 번씩 하게 만드는군.’살짝 미간을 좁힌 결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곤 허리를 숙여 단이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붙였다.

“거두겠다고.”

나의 말이 이 아이의 가슴 깊이 새겨질 수 있도록.

“내가, 널.”

고개를 들어 그녀와 정면으로 눈을 맞췄다.

유리처럼 말간 눈동자 속에 그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옅게 흔들리는 형상이 두려운 것인지, 뜻하지 못한 행운에 놀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가까운 거리 탓에 그녀의 여린 숨결이 제 입술에 부딪쳐 흩어졌다.

“이제 출발하지.”

“예, 장군!”

결은 그런 단이를 내버려두고 먼저 몸을 돌렸다.

그때까지 넋을 놓고 있던 단이가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리곤 물어왔다.

“저, 저를 어디로 데리고 가시는 겁니까?”

막 흑마의 고삐를 잡은 결이 고개를 돌렸다.

곧 그의 입에서 오늘 들은 모든 말을 통틀어 가장 아찔한 답이 흘러나왔다.

“한양.”

한양? 조선의 수도라는 그 한양?!

아…… 맙소사.

도적과 화마를 피해 겨우 살아났다 했더니.

하필 달아난 곳이 북방 귀신의 손아귀였다.

호랑이 굴보다 더 무서운.

***

단이는 서결의 군대를 따라 끝없는 설원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워낙 급하게 출발한 터라 베르칸에겐 말 한마디 남기지 못했다.

어차피 왕 노인 외엔 연고도 없는 곳이었으니, 심 다점의 주인은 얼마 못 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리라.

단이는 결의 말에 함께 올라 이동했지만, 보졸들 때문에 전체적인 속도는 매우 느렸다.

휴식이라곤 밥을 먹을 때나 날이 어두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 자는 쪽잠이 전부.

그마저도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막사 안에서 웅크려 자야만 했다.

그나마 단이는 여인이란 이유로 작은 막사 하나를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대나무 통을 꼭 품은 채 모닥불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악몽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악몽이라면 제발 여기서 끝나라.

눈을 뜨면 다시 포근하고 아늑한 심 다점이어라.

“일어나라. 이제 출발한다.”

하지만 바위보다 딱딱한 진위의 목소리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낡은 막사 안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시냇가에 잠시 멈추어 밥을 먹고 있는데, 문득 단이의 눈에 결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도 다른 군사들처럼 볶아서 말린 곡물을 먹는 중이었다.

‘저 사람은 나를 왜 거둔다고 하였을까?’집도 터도 잃은 데다 가족도 없는 혈혈단신이니 불쌍해서?

‘아니면 설마…… 다동으로 데려가려고?’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으로 피가 빠져나가듯 오한이 들었다.

북방 귀신과 다동에 대한 끔찍한 소문이 떠오른 것이다.

‘아아, 아니야! 북방 귀신은 아주 어린 아이들만 다동으로 데려간댔잖아. 다동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단이는 경련이라도 난 듯 세차게 도리질을 치며 생각을 부정했다.

‘응?’그런데 무심코 결의 얼굴을 다시 본 그녀가 가늘게 눈가를 좁혔다.

지금 보니 저 사내, 오늘따라 유난히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이 요 근래에 뭘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어.’다른 군사들은 목을 축이려고 얼어있는 냇물까지 깨어 물을 마시거늘.

결은 앉은 바위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첫날엔 도자기로 만든 물병이 있어 그 안에 든 걸 마셨는데, 사흘이 지나고 나선 그것마저 보이지 않더니 이후로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설마, 물을 마시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다는 게 정말이었나?’단이의 눈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물을 마시며 살아야 하니까.

일평생 차를 다루던 사람이다 보니 마실 것에 특히 신경을 쓰는 그녀였다.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양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것 같은데, 벌써 며칠째 물 한 모금 마시질 못하고 있으니.

‘저리 계시다간 큰일 날 것 같은데…….’뭐라도 대체할 것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였다.

“장, 장군! 장군! 괜찮으십니까?”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결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단이는 몰려든 군사들 사이를 황급히 비집고 들어가 결에게 다가갔다.

하얗게 마른 입술과 미열, 흐려지는 의식을 보아하니 탈수가 맞는 듯했다.

단이는 결을 똑바로 눕힌 다음 진위에게 말했다.

“물, 물을 가져다주세요!”

“장군께선 물을 드시지 못한다.”

“이대로 놔두면 더 위험해지셔요!”

하필 다동이 없는 데다 갑자기 환군령이 떨어진 터라.

차가 없는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으니, 진위도 다른 군사들도 어찌할 방법을 몰랐다.

결국 단이의 말을 따라 시냇물을 떠왔다.

하지만 미약하게 남은 정신으로나마 그것이 맹물임을 안 것일까.

“하아, 헉……! 치우거라!”

결이 가져온 물을 엎어버렸다.

표정은 마치 끔찍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파르르 떠는 손끝이 탈수 때문인지, 물이 튀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주. 그것은 저주의 산물이었다.

“드셔야 해요. 안 그럼 큰일 납니다!”

“……조금만 더 가면 한양이다. 그때까지만 견디면 돼.”

단이의 만류에도 결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그는 다시 쓰러져 거칠게 숨만 내쉬었다.

실낱같은 의식을 정신력으로 붙잡고 있는 듯했다.

단이는 마음이 급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 사내에게 억지로라도 물을 마시게 할 방법.

억지로, 물을…….

“…….”

그래. 지금은 그 방법 밖에 없다.

눈빛을 굳힌 단이가 엎어진 표주박을 다시 진위에게 내밀었다.

“다시 떠와주세요. 제가 먹일게요.”

“네가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장군께선 지금……!”

“한 번만요.”

단이는 진심을 다해 간곡히 부탁했다.

“한 번만 맡겨주세요, 제발.”

그녀의 눈 속에서 진심을 본 것일까.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진위는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군사가 다시 표주박에 물을 떠왔다.

결을 바로 눕힌 단이가 표주박을 받아들었다.

찰랑이는 물을 바라보길 잠시.

단이는 비장하게 표주박에 입을 대었다.

그러곤 다른 군사들이 막을 새도 없이, 그대로 몸을 숙여 결에게 입을 맞추었다.

“…….”

맑고 시원한 단물이 단이의 입에서 결의 입으로 흘러들어갔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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