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그래, 그럼 슬슬…… 공작가로 돌아와도 되겠지.”
가게로 향하면서 한 말에 함께 걷던 앨런의 걸음이 멈추었다.
“돌아와도요?”
내가 한 말에 이상함을 눈치챈 앨런이 되물었다.
그래, 이 상황에서 할 말은 ‘돌아와도’가 아니라 ‘돌아가도’라는 말이겠지.
‘돌아와도’라는 말은 내가 지금 공작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는 앨런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방긋 웃었다.
몇 번 눈을 깜빡이고 있는 그에 내가 잔웃음을 흘렸다.
“별장에서 공작가에 관련된 소식은 들어가는 건 없지?”
“네. 굳이 따지자면 간혹 수도에 관련된 소식지 같은 것만 들어옵니다. 그건 공녀가 보고 싶어 해서 들이고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곧 공녀가 수도로 가겠다고 난리 부릴 일이 생길 거니까.”
그런 내 말에도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을 했다.
몸이 나아지면서 예민함이 덜해지기는 했지만, 다시금 원래의 에이프릴 성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에이프릴이 다시 공작가로 돌아와서 나와 마주칠 거라 생각하자 벌써부터 웃음이 비죽 흘러나왔다.
“가게로 먼저 들어가 봐.”
“어디 가시려고요?”
“광장에서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만나고 가려고.”
“누구를 만나시는데요……?”
버니스의 얼굴을 하고 있는 상태로 누군가를 만날 때는 대다수가 성력이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일 경우 나를 먼저 보는 게 아니라, 앨런이 그 사람의 상태를 보고 만났었다.
앨런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던 만큼 솔직하게 대답했다.
“신전 신관.”
“예?”
그리고 그저 무던하게 넘어갈 줄 알았던 앨런이 생각보다 격한 반응을 보였다.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서 앨런의 목소리가 울렸다.
성력을 가진 내가 신관을 보는 게 걱정스러운가 싶다가도 그것과는 거리가 먼 눈치였다. 불안하고, 동시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희게 질린 낯에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이런 모습은 앨런을 주었을 때 보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던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덜덜 떨기까지 하는 앨런의 동공이 점점 확장되었다.
긴장 상태의 고양이가 눈이 커지듯, 그 모습에 내가 그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다.
“앨런.”
헐떡이는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하면서,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것처럼 그가 풀썩 주저앉았다.
“앨런!”
양어깨를 감싸 쥐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성력은 상처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에이프릴처럼 외부에 난 상처는 물론이거니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몸 내부의 병까지도 말이다.
만능과 같은 능력이었지만, 모든 걸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는 걸 앨런을 통해서 2년 전에 알게 되었다.
“앨런, 진정해.”
지금이 겨울인 것처럼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앨런을 꼭 끌어안았다.
“여기 아무도 없어. 나만, 있어.”
성력은 정신과 관련된 상처는 치유하지 못했다.
숨이 턱, 턱, 계속해서 막혔다. 어두운 밤하늘이 마치 신전 고아원 안에 있던 감옥과 같았다.
신전에서 도망 나온 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과거가 자신을 괴롭혔다.
묻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끈적하게 제 발목을 붙잡았다. 신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입은 새하얀 옷을 볼 때조차 신전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양손과 발을 묶어둔 채 자신에게 몇 번이나 약물 실험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볕 하나 들지 않는 감옥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냈더라.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는 신전의 소속이었다.
“앨런!”
손발이 점점 차가워진다고 느껴질 때, 손목에 닿는 온기와 더불어 자신을 제 몸이 힘없이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앨런, 진정해. 진정해. 괜찮아.”
등을 느리게 토닥이는 손길에 덜덜 떨리던 몸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나는 비누 향에 크게 들썩이던 몸이 안정적인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분명 어두운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리나가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앨런은 지금이 태양이 뜬 환한 낮처럼 느껴졌다.
“……이리나, 님.”
“좀 진정됐어?”
걱정 가득한 노을빛의 눈동자에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긍정에 이리나의 몸이 느리게 떨어지자, 앨런은 새삼 아쉽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라는 욕심이 먼저 드는 순간이었다.
“상태 보니까 영 말이 아니네.”
식은땀을 뻘뻘 흘린 이마를 손으로 대충 닦아낸 이리나가 앨런의 몸을 살폈다.
몸 안으로 들어오는 성력이 2년 전 맨 처음, 그녀에게 주어졌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성력이 있다는 이유로 이리나를 신전 쪽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가게로 갈 수는 있겠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이리나가 잡고 일어나라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자신보다 작은 손인데, 매번 이 손에 기대었다.
“이리나 님. …신관 만나지 마세요.”
“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리나의 손을 꾹 잡았다.
“안 그래도 이리나 님은 성력이 있으신 분인데, 만약 잘못하다 신관이 알게 되면요?”
“난 또 뭐라고.”
바짝 긴장했던 이리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이미 성력이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럼 더 만나면 안 되죠!”
예기치 못한 말에 앨런의 언성이 높아졌다. 조용한 마을에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 이리나의 눈썹이 살풋 찡그려졌다.
신전놈들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데. 겉으로는 제국민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신의 사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의 사자가 아니라 악마 그 자체들이었다.
“신전이 어떤 곳인지 이리나 님이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
“뭘 확인하기 위해서 잠깐 보는 거니까. 네가 뭐 때문에 신전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리나의 목소리가 단단하다.
“같이 가자는 말 같은 건 안 할 거니까, 가게로 돌아가서 쉬고 있어.”
제 손에 잡혀 있는 이리나의 손이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갔다.
앨런은 자신을 놔둔 채 먼저 걸어가는 이리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맨 처음 그녀가 자신을 도와주었을 때도 그랬고, 그녀의 곁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지금도 그렇다.
앨런은 이리나를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하고 싶었고, 저를 살려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고, 그녀의 곁에 계속해서 남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건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이리나는 저가 언제 곁을 떠나도 상관이 없는 사람 같았다.
오면 막지 않고, 떠난다 하더라도 붙잡을 정도는 아닌 그런 존재.
“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이리나가 보인 호의는 한 번의 변덕이었겠지만, 앨런에게는 전부였으니까.
* * *
“신전이 어떤 곳인지 이리나 님이 모르셔서 그러시는 거예요…… 라.”
앨런이 내게 했던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신전과 신관에 대한 이야기에 저렇게까지 반응할 정도라면, 신전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실했다.
2년 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몸 상태였던 것과 연관이 있나?
약초학이나 병리학에 관해서도 보통의 사람들보다 자세히 알고 있다는 점이 의아하기도 했었고, 그게 신전 출신이어서 그런 거라고 한다면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소리였다.
다만, 왜 앨런이 신전에서 그렇게까지 도망쳤느냐가 의아한 거지.
희게 질렸던 낯이 영 마음에 걸려 시선을 뒤로 돌렸다. 혼자서 잘 들어가기는 했겠지.
타미타르테와 만나는 것만 아니었어도 같이 돌아갔겠지만…….
이리나가 짧게 혀를 찰 때, 마을의 광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을 사람들은 분수대라고 말했지만, 천사상 하나가 세워진 작은 연못 앞에 서 있는 타미타르테가 눈에 들어왔다.
신관임을 드러내지 않는, 보통의 평민들이 입을 법한 평상복에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그의 모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공녀님께 들었습니다. 절 찾으셨다면서요?”
인기척과 더불어 고요한 광장에 울리는 작은 목소리에 그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아쿠아마린을 떠올리게 만드는 눈동자가 날 보자마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대신전의 타미타르테라고 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요?”
“잠깐,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지라 그가 내 얼굴을 보기 위해 몸까지 살짝 숙였다.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건 로지안과도, 신전과도 상관없다고 말했던 타미타르테를 떠올리면서 천천히 로브를 머리 뒤로 넘겼다.
묶지 않은 머리카락이 스르륵, 아래로 떨어지자 남색의 하늘과는 어울리지 않은 노을빛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자, 청초한 미인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타미타르테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수도에서 내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보였던 반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그저 놀람과 당혹감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연한 불쾌함과 불안함이 함께 느껴졌다.
“이제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