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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를 훔쳐라-6화 (6/128)

#6.

팔을 괸 채 인자하게 웃으며 묻는 카신은 전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마치 친구랑 대화를 하듯이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그녀가 질문을 이었다.

“왜, 대마법서가 있잖아요! 대마법사님은 항상 대마법서를 보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줄 알았거든요. 매일 연구도 하시잖아요.”

매일 약품을 만지고는 있지만 연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거의 의무적으로 숨을 쉬듯이 하는 일이었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약물은 별로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숙취 해소를 위한 약이라든가, 좋은 향이 나는 방향제. 어찌 보면 쓸데없는 거였다. 히나가 기대하는 대단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하지만 굳이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는 눈동자로 대답을 기다리는 히나에게 살짝 미안함 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미안한 감정보다는 흥미로운 감정이 더 컸다.

‘목적은 대마법서란 말인가.’

대마법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황제가 멋대로 퍼트린 헛소문에 불과했다. 그걸 실제로 믿고 훔치러 온 사람을 보니 기가 막혔다. 터무니없는 소문이라 누군가가 믿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황궁의 대마법사가 너무 강하다고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나. 적어도 대마법서나 엄청난 마력을 가진 지팡이가 있어 절대적으로 강하다고 하면 그래도 같은 인간이긴 하구나, 하고 느낄 테니 더 낫지 않겠나?”

한두 달에 한 번씩 찾아와 그다지 의미 없는 담소를 나누는 황제가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지나가듯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판단을 한 황제에게 처음으로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소문을 퍼트리지 않았다면 히나를 볼 수나 있었을까? 아마 지금의 즐거움은 결단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팡이에도 관심을 보였지.’

평소 히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항상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아둔 지팡이도 있었다.

‘목표는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쯤이겠군.’

황제의 말에 의하면 그를 전지전능한 대마법사로 만들어준 대마법서와 지팡이.

히나는 대마법서를 찾지 못한다면 그의 신임을 얻은 후, 항상 손에 갖고 다니는 지팡이라도 훔쳐 오라는 명령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간혹 지팡이를 멍하니 쳐다보는 그녀의 행동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 엉터리 소문에 불과하거늘.’

아무리 카신이라도 직접 힘을 쓰면 조절을 못 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일상에서 쓰는 마법은 그에겐 아주 소소한 거였고, 어느 정도 조절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만든 지팡이였다. 강력한 제어 마법을 걸어둔 것 외에는 평범한 지팡이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 거품 물고 기절할지도 모른다.

“그건 이번 휴가를 반납하고 하는 질문인가?”

휴가를 반납하라는 말에 히나는 잠시 망설였다. 곧 그녀가 전장에 당장 돌진할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반납하겠어요. 그러니 알려주세요.”

“흐음, 반납한다라. 좋아, 알려주지.”

밖으로 히나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카신은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리 할 일이 없다고 해도 한 달에 단 하루밖에 없는 휴가를 반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그녀의 의지는 무척이나 강했다.

“대마법서를 자주 보긴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고 있단다. 그건 아주 귀중한 것이니까 말이야.”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대마법서가 꼭 책일 필요는 없으니까.

강한 건 카신 그 자체였다. 대마법서는 생각하는 모든 마법을 구현해 내는 자신의 머리였다. 책은 아니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망한 듯했지만 히나의 얼굴엔 그 표정을 숨기려는 기색도 역력했다. 카신의 눈엔 그 모습이 더 귀여워 보였다.

‘그냥 하나 만들까?’

마음 같아선 대마법서를 하나 만들어 히나의 손에 쥐어주고 싶었다. 황제가 알면 기함할 일이었다.

“여, 역시 그렇겠죠? 하하.”

어색하게 웃고 있는 히나에게 카신은 또다시 고기 한 점을 포크로 찍어 내밀었다. 힐끔 눈치를 보던 히나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벌려 넙죽 받아먹었다.

사랑스럽다. 지금 자신이 히나에게 느끼는 감정과 가장 가까운 단어였다. 히나가 사랑스러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놓치면 안 돼.’

본능이 그녀를 꼭 잡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엔 불쾌감을 없애준 신비스런 빛 때문인가 싶었지만, 그 빛은 처음 봤을 때 외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성적으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를 옆에서 지켜봐 왔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데.’

지독히도 지루한 삶. 현재로써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히나를 잡는 것 하나였다.

낯선 감정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정도로 카신은 풋내기가 아니었다. 인정할 건 순순히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살았다.

오랜 세월을 살며 많은 것을 경험했고, 이루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우러러봤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허무해져만 갔다.

인간들의 칭송이 귀찮아지고, 평범한 척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닐 때였다. 끊임없이 연구하며 얻은 불멸의 몸을 손에 넣은 후부터 그 공허함은 더 심해졌다. 죽지 못하는 몸을 그토록 바랐지만, 저주스러울 정도로 지루하고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때 카신은 외지고 가난한 마을에서 행복한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노부부를 보았다.

충격이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 몸도 불편하고, 마법도 쓸 수 없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한 번도 그 노부부처럼 행복하게 미소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권력도, 힘도, 부도 전부 갖고 있었다. 많은 인간들에게 칭송도 받았다. 못 하는 마법은 없었고, 원하는 건 다 이루었다.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때의 그는 그것이 노부부처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위적인 사랑을 만든 것에 신이 벌이라도 내린 걸까? 사랑에 미쳐 버린 인간들을 상대하는 것이 질려 결국 나중엔 모두 죽여 버렸다. 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끔찍해서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급기야 그는 사랑의 묘약을 직접 먹기도 해봤다. 하지만 그 어떤 유해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몸은 약의 효능을 정화시켰다.

아무리 다시 만들어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몸은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그가 하는 모든 연구는 성공했지만, 삶은 실패했다.

‘이건 분명 그 감정이야. 확실해.’

히나가 옆에 있어준다면 왠지 그 노부부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을 떠나 행복에 대한 집착에 불과하다고 해도 시험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사랑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행복할 수만 있으면 된다. 어떤 상황이든 사소한 것에 웃을 수만 있으면 충분했다.

계속 히나를 보며 긴가민가했지만 오늘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신을 했으니 이제는 실행에 옮겨야 할 시간이었다.

“카신 님은 안 드시나요?”

혼자 넙죽 받아먹기만 했던 것이 민망한지 히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난…….”

딱히 먹지 않아도 죽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멈췄다. 선대 황제 중 한 명이 그리 말했던 카신을 보며 괴물 보는 듯한 눈길을 보냈던 것이 떠오른 탓이었다.

본질은 인간이었지만,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몸.

카신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황제라면 모를까, 히나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아직은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계속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잖아요. 괜찮으신 거예요?”

“연구에 집중할 때에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약을 먹는단다. 그러니 며칠 음식을 먹지 않아도 괜찮아.”

사실은 귀찮아서 먹지 않은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연구에 집중하는 성실한 마법사가 되어버렸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라도 그녀가 자신과 조금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그런 약도 있나요?”

“그래. 모든 영양을 응축시킨 약이지.”

카신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모든 영양을 응축시킨 약이라면 불사의 몸이 되기 전, 아주 오래전에 개발해서 먹었었다.

“그럼 지금은 연구를 하지 않으시니까 같이 먹어요. 아, 아니, 드세요!”

저를 편하게 대해주는 카신 때문에 잠시 허리띠를 늦추고 말았다. 격 없이 말할 뻔한 입을 탓하며 히나는 바로 말을 정정했다.

“물론 먹어야지.”

결국 카신은 히나에게 내미려던 고기 한 점을 자신의 입안에 넣었다. 차 외에 아주 오랜만에 먹는 음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것도 먹어보거라.”

자신이 먹는 모습에 히나가 조금 더 안심하고 먹기 시작했다. 모셔야 할 주인을 앞에 두고 혼자 먹는다는 죄책감이 그나마 사라지는 모양이다.

히나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음식들을 전부 가져와 기어이 그걸 다 먹인 카신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미소를 놓칠 순 없지.’

입가에 저절로 지어진 미소. 들뜬 마음. 이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히나를 놓치면 언제 다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가까이서 마주하고 길게 얘기를 해보니 더 좋아졌다. 이 감정, 절대 놓쳐선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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