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카신의 말과 달리 친구를 사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리베리아 양, 제국의 마법 시초에 대해서 발표해 보겠나?”
“그게…… 모르는데요.”
“이 마법진은 어디에 쓰이는지 알겠나?”
“모, 모르겠어요.”
“리베리아 양은 어떤 속성의 마법을 구현하지?”
“……그것도 모르겠는데요.”
히나가 어떻게 세인트에 들어왔는지 교수들도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한 그들이 히나의 재능을 알아보려 하는 건 당연했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학생들 사이에서 히나에 대한 의문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그건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리베리아는 다른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
“맞아. 갑자기 마력이 솟구쳤다던가…….”
“아니면 마법을 아직 하지 못해도 무한한 마력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급반에 바로 들어왔으니 분명 특별한 능력이 있을 거야.”
저마다 히나를 보며 수군거리기 바빴다. 루터도 의문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실전 수업에선 뭐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래, 곧 마법응용 수업이 있으니까 거기서 뭔가 두각을 나타내겠지.”
세인트는 가문의 지위와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 아니었다. 당연히 루터도 실전 수업에서 히나가 무언가 두각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다.
“자, 다들 마법 시전을 해보게. 오늘은 시전되는 마력의 색을 보고 속성을 조금 더 상세히 분석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지.”
여기저기서 희미한 빛이 나는 사이에서 혼자 멀뚱히 서 있는 히나는 난감하기만 했다.
“리베리아, 너 혹시 마법 시전 못 해?”
“에이, 바로 상급반에 특례 입학을 했다고. 설마 아무런 능력도 없이 왔을 리가.”
이곳에서 가장 황당하고 난감한 건 히나이리라.
고립되고 있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아무도 히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히나. 잠깐 나 좀 보지 않겠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신은 수업이 끝날 때마다 히나를 불렀다. 마법사들의 독보적인 우상에게 혼자만 예쁨을 받고 있는 모습에 불만이 쏟아지기 충분했다.
“카, 아, 아니 교수님! 저 좀 그만 부르시면 안 돼요?”
제대로 미움받고 있었다. 호의를 가지고 부른 카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히나는 간절했다.
“어째서?”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카신에겐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일이었다. 히나가 졸업하기까지 고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자잘한 감정적인 트러블은 예상할 수 없었다.
“저 미움받고 있다고요!”
“왜?”
“그, 그거야…… 전 아무런 능력도 없으니까…….”
미움받는 건 싫었다. 히나는 리베리아가 되고 나서 생각보다 가족을 만드는 것이, 사람을 사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노력하고 싶었다. 그나마 조금씩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루터와의 관계처럼, 노력한다면 차츰차츰 속마음까지 교류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내가 널 부르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카신은 억울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뿐인데, 부르지 말라며 간절히 청하는 히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세인트 하급반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안 돼. 2년 안에 졸업하려면 상급반에 들어가는 것이 맞단다.”
“하지만 전 상급반에 있을 능력이 안 되는걸요.”
카신의 노란빛 눈동자가 히나를 응시했다.
왠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또 사랑의 묘약 효능이 발휘된 모양이었다. 히나는 발그레해진 뺨을 느끼며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긴 한가요?”
무엇이든 가능한 대마법사인 카신은 알고 있지 않을까?
부족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항상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 여태 살아오면서 남의 능력이 이렇게 절박하고 탐이 난 적이 없었다.
아주 작은 능력이라도 간절했다. 그러면 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글쎄.”
히나에게 시선을 거둔 카신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네게서 기묘한 빛을 두 번 보았지만, 그게 어떤 능력인지는 아직까진 모르겠구나.”
“기묘한 빛이요?”
“그래. 아주 아름답고 영롱한 빛이었지.”
“그게 다였나요?”
“그게 다였단다.”
잔뜩 실망했는지 풀이 죽어버린 히나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없는 능력을 있다고 지어낼 순 없는 일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카신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비슷한 빛을 본 적 있었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다. 언제 봤는지, 어디서 보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비슷할 뿐, 조금은 다르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그 빛은 더 나타나지 않는구나. 아마 무슨 조건이 있는 거겠지.”
“무슨 조건이요?”
“나도 두 번 본 것이 다니, 정확한 것까진 모른단다.”
“결국 전 아무런 능력도 없나 봐요.”
절망적인 대답에 히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너는 아주 특별한 아이니.”
카신이 머리를 쓰다듬어 줬지만, 히나의 얼굴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더 어두워진 얼굴로 암울하기 짝이 없는 말을 꺼냈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다시는 절 개인적으로 부르시면 절대 안 돼요.”
부르지 말라니. 카신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첫날 기숙사까지 데려다주고 바로 쫓겨났다. 여자 기숙사는 남자 출입이 금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히나를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입구까지 갈 수 있었던 거였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불러내지 않으면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마저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히나는 금방 돌아가 버리곤 했다.
‘몰래 들어가서 만날까.’
카신에게 기숙사에 침입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히나가 원치 않으리라.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최근 히나는 카신을 편히 대했다. 무조건 고개만 끄덕이던 그녀가 지금처럼 자신의 뜻을 내비치며 확고하게 말하는 모습만 봐도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아쉽긴 해도 다른 의미로 좋은 변화였다.
‘하지만 그래도…….’
부르지 말라니. 세인트에 온 보람이 없었다.
* * *
“교, 교수님!”
“질문은 사절이라고 했을 텐데?”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카신은 태연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최근에 히나를 부르지도 못하고 고작 수정구 하나로만 연락을 했다. 그마저도 히나가 뒤처진 공부를 한다는 바람에 자주 하지 못했다.
카신의 기분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선을 긋고 피하고 있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에 거슬렸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에게 다가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소란스럽고 북적이는 걸 싫어하는 그에겐 지금 이 환경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하, 하지만…….”
루터만큼이나 카신에게 남다른 존경심을 품고 있는 카터는 용기 있게 번쩍 든 손을 살며시 내렸다.
“언제까지 자습만 시키실 건지…….”
자세히 듣지 않으면 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조용한 정적 속에서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들렸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카터를 응원했다.
그렇게나 존경하고 갈망하는 대마법사의 수업이었다. 하지만 카신은 모두의 기대를 무너뜨린 채 자습만 시켰다. 한 달이 넘도록.
차마 카신에겐 하지 못하고 다른 교수들에게 대마법사의 수업을 듣고 싶다고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교수들은 말을 해보겠다는 소극적인 답변과 함께 줄행랑을 쳤다. 당연했다. 아무리 유능한 마법사라고 해도 감히 카신에게 아이들의 불만을 전할 수 없었으리라.
“졸업 때까지.”
살랑.
또다시 카신의 책장이 넘어갔다. 환청을 들었나 싶을 정도로 카신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졸업 때까지라니요! 그, 그럼 교수님은 수업을 평생 안 하시겠다는…….”
참다못한 줄리아가 다급히 물었다. 당돌하게 시작했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가다 허공에서 흩어졌다.
“나는 사람을 살리지는 못한다네.”
줄곧 책만 보고 있던 카신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며 그는 의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마법을 보이다가 누가 맞아 죽어버리면 큰일이지 않나. 난 혈기 왕성한 세인트의 학생들을 전부 살필 정도로 섬세한 사람이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왠지 수긍이 갔다. 하지만 수긍은 해도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 저희는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제발 저희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세요! 저희들의 교수님으로 오신 거잖아요!”
루터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다른 학생들이 속으로 루터의 용기에 감탄을 자아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다. 카신의 수업을 듣고 싶었다. 다들 대마법사의 가르침을 받다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심정이었다.
탁.
책장을 덮고 천천히 일어난 카신의 시선이 루터에게 닿았다. 카신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겁을 먹고 눈을 피하는 애송이를 보고 픽 웃었다.
“약하지 않다라. 그럼 한 가지 제안을 하겠네, 루터 피안 리베리아 군.”
요즘 히나는 수정구로 연락을 할 때마다 루터의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
퉁명스런 목소리로 툴툴대지만, 그러면서도 잘 챙겨준다고 했다. 정말 오라버니가 생긴 것 같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카신은 루터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에 점점 질려가던 차였다. 히나가 기뻐하는 건 좋았지만, 그 감정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왔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유치한 질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싫은 건 싫은 거였다.
“다음 수업 시간은 양해를 구하고 내 수업으로 하도록 하겠네.”
카신은 단 한 번도 추가 수업을 한 적이 없었다. 항상 수업이 시작할 때 들어와서 끝나자마자 나갔다. 질문조차 받지 않았던 그가 추가 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수업 장소는 세인트의 대강당에 있는 공식 대련장. 이곳에 있는 모두가 덤벼도 좋다.”
시끄럽고 번잡한 건 질색이었다. 지금 상황을 제대로 넘기지 않으면 앞으로도 귀찮은 일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내게 작은 일격이라도 준다면 다음부터 제대로 된 수업을 해주지. 물론 대련장에 참가한 학생에 한에서만 말일세.”
대련장에서 우연을 가장해서 본때를 보여주는 건 역시 어른스럽지 못하겠지?
한참 어린 루터를 상대로 무척이나 유치했다. 자신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그는 좋은 기회는 결코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를 확 죽여 버리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겸사겸사 말이지.
한 번은 부딪힐 일이었다. 일이 다소 커지긴 했지만, 크게 벌이면 벌일수록 나중에 반박하지 못하리라.
“나머지 시간은 날 공격할 계획이라도 세우거라. 미리 가서 조잡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어도 좋아. 뭐, 다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말이지.”
카신이 가지고 온 책을 들고 나가 버리자마자 교실에 정적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