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너, 할 수 있지?”
루터가 히나의 양쪽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히나는 다소 자신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네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거잖아!”
히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여러 공격 마법에 희뿌연 연기만 날리고 있는 곳을 응시했다.
정체도 모르는 이상한 빛이 나오는 능력 따위 필요 없었다.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세인트에 들어오고 나서 깨달았다.
루터처럼 똑똑하고 싶고, 줄리아처럼 강한 마법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가 정말 할 수 있을까요?”
“그래!”
십육 년이란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인생에서 힘든 순간은 많았다.
배를 곯으며 가난함에 찌든 삶을 살기도 했고, 두려움을 안고 카신의 첩자가 되기도 했다.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고, 기대한 가족이 생각만큼 다정하지 않아 슬펐다.
그때가 가장 슬픈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무력감.
히나는 세인트에 들어오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때마다 저를 그토록 비웃었던 풀토 공작과 그 수하들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무력하다며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너한테 여러 겹의 보호 마법을 걸었어. 모든 공격이 끝나고 날아가는 거니까 절대 다치진 않을 거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노력해서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 그럼 할게요!”
결의가 선 히나를 보며 루터가 지쳐 가는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곧 학생들의 마력이 전부 떨어지면 공격은커녕 작은 마법 하나도 못 하게 되리라.
“어차피 우리는 마법으로 교수님을 이길 수 없어.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 해.”
마법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카신에 대한 기록은 많았지만, 그의 약점은 그 어느 서적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교수님은 히나를 특별하게 여기시니까, 우린 히나를 이용하면 되는 거야.”
처음엔 루터의 말에 다들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아무리 그가 학식이 풍부하다고 해도 히나를 이용해서 이긴다는 발상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다른 방법으로 가능하다면 그 계획을 말해도 좋아. 나도 군말 없이 그 계획을 따를 테니까.”
어차피 계획을 세우나 마나 대마법사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루터의 계획을 들어보기라도 하자는 듯, 귀를 기울였다.
“교수님도 사람이니까…… 특별 대우를 하는 히나를 외면하지 못할 거야.”
“얘를 외면 못 한다고 교수님이 공격하게 해주는 건 아니잖아?”
“마법도 부리지 못한다고.”
“꼭 마법으로 공격하라는 법은 없잖아?”
루터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완벽한 만큼 방심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저희들은 상대가 되지 않으니 카신이 방심을 할 건 당연했다.
“아마 교수님은 보호 마법을 펼치고 공격을 전부 무력화시키거나 완전히 막아버릴 거야. 우리는 일단 공격을 마구 퍼부으면서 교수님을 방심하게 만들자.”
“방심하게? 공격을 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어차피 공격은 무의미해. 교수님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잖아? 아마 작은 타격도 받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이 내기를 했을 거야.”
히나의 말까지 빌려 분석을 하자면 카신은 귀찮은 걸 싫어한다. 그러니 이 내기는 자신들의 기를 확 죽이는 동시에 끝까지 수업을 하지 않으려는 계획으로 제안한 것이리라.
루터는 마력이 약하기 때문에 전술과 전략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다른 건 몰라도 머리를 쓰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통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공격을 해서 뭐 하게?”
“우리 목적은 공격이 아니야.”
“그럼?”
“우리의 목적은 교수님의 시야를 가리는 거야. 거기까지 가면 우리 계획은 거의 성공이나 다름없을걸?”
그간의 행동 패턴으로 보아 카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손쉽게 공격 마법을 막을 수 있을 테니, 제대로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마력을 미리 쏟아부어서 먼저 지쳐 버리면 안 돼. 한꺼번에 공격해서 최대한 시야를 막아야 들킬 가능성을 줄일 수 있어.”
사실 대마법사인 카신을 속일 거라는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히나를 숨겨두고 있다는 걸 들키지만 않는다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정말 성공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루터의 말에 다른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어처구니없는 방법이었지만, 평소 카신이 히나를 밥 먹듯이 부르던 걸 떠올리면 그럴듯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럼 이 방법으로 가는 거다?”
교실 안에서는 거의 티 내지 않지만, 카신의 시선은 히나에게 자주 닿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루터는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간에 계획대로 된 거잖아! 다들 정신 차려!”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는 보호 마법을 펼친 채 독서까지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히나에게 보호 마법을 거는 걸 들키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제대로 조준해야 돼!”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모든 건 한순간에 이뤄져야 했다. 다행히 한 명이 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세인트의 상급반 모두가 모여 있었다.
여럿이서 하니 히나에게 보호 마법이 순식간에 쳐졌다. 히나는 자신의 주변을 감싸는 몇 겹의 막을 보면서 제법 야무진 얼굴로 말했다.
“더, 던져 주세요!”
히나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모든 공격이 끊어졌다. 대신에 히나가 빠른 속도로 카신을 향해 날아갔다.
“야! 너무 세게 던졌잖아!”
“저 속도로 바닥에 추락하면 보호 마법이 깨질 거라고!”
“저거 멈추게 해야 돼!”
이론과 실전은 완전히 달랐다. 생각보다 히나가 가벼운 것도 있었지만, 마법이 더 강하게 걸리기도 했다.
세인트의 상급반 학생들은 재능과 실력은 뛰어났지만, 실전에는 거의 나가보지 않았다. 보호 마법을 제외하면 사람에게, 아니 살아 있는 것에 마법을 걸어본 적도 없었다. 사람을 날리는 마법을 어느 정도로 걸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히나에게 걸려 있는 보호 마법은 대부분 외부적인 충격이 아닌 마법에 대한 충격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세게 날려야 하는 만큼 한꺼번에 큰 마법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호를 중점으로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속도로 간다면……. 만약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외부의 충격에 보호 마법이 깨지며 히나가 크게 다치리라.
카신이 눈치채지 못하고 강견한 보호막을 풀지 못해도 문제였다. 바닥이든 보호막이든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히는 순간 히나가 위험해진다.
“저, 저걸 어떻게 멈춰!”
“바, 바람! 누가 바람으로 충격을 완화……!”
작은 몸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어떻게 할 시간도 없었다. 제아무리 상급반이라고 해도 찰나의 시간에 마법으로 날아가는 히나를 멈추게 할 능력까지는 없었다.
모든 마법이 걷히자 카신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히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카신은 답지 않게 당황했다. 그리고 빠르게 사태 파악을 했다.
‘이대로 날아오면 히나가……!’
눈을 깜빡하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다. 재빨리 보호 마법을 푸는 동시에 카신은 날아오는 히나에게 강력한 보호 마법을 발동시켰다.
생각을 해서 마법을 한 것이 아니었다. 히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으로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
뻐억!
“읏!”
한순간에 풀려 버린 보호 마법과 함께 날아오던 히나의 몸이 카신의 가슴팍에 꽂혔다.
강한 충격이 가슴에 꽂히자 카신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면서도 카신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쳤을 때 이런 고통이 오는구나, 싶었다. 그만큼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카신은 히나가 부딪히기 직전,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새로운 보호 마법을 거는 자신의 순발력에 고마웠다. 그만큼 급박한 순간이었다.
“아야…….”
아무리 보호 마법을 걸었어도 부딪힌 머리는 아픈 것인지 히나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어딘가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카, 카신 님?”
바닥에 쓰러진 카신의 위에 앉은 채 히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자신이 어디 위에 올라타 있는지 이제 막 깨달은 듯했다.
맑은 눈동자로 내려다보는 히나는 다행히 어디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 목소리까지 들으니 안심이 됐다. 카신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런.
숨을 내쉬자마자 뼛속부터 깊은 통증이 올라왔다.
뼈가 부러졌다.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온 히나에게 부딪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나마 언제인지도 모를 먼 옛날, 심장에 걸어두었던 보호 마법이 아니었다면 부러진 갈비뼈가 심장을 찔러 즉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괘, 괜찮으세요?”
히나에게 괜찮다고 웃는 얼굴로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너무 아파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보다도 루터에 대한 괘씸함과 졌다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카신은 히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걸었다. 일단은 지금의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어디 다치신 건 아니죠?”
원래라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보호 마법을 절대 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타의에 의한 것도 아닌 자의로 보호 마법이 풀렸다.
거기다 강한 통증에 대비하여 자신의 몸에 걸었어야 할 충격 완화 마법은 자연스레 히나에게 거는 바람에 말도 하지 못할 만큼 심하게 다쳤다.
어쩌다가 이런 허접한 계략에 넘어간 걸까.
카신은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되, 된 거야?”
“쓰, 쓰러지셨잖아!”
“그보다 히나는…….”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루터가 다급히 뛰쳐나왔다.
“너, 너 괜찮아?”
루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예상보다 강하게 들어갔던 마법에 혹여 히나가 다치지 않았나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어디 안 다쳤지?”
루터는 히나가 카신의 위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양쪽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루터 피안 리베리아 군.”
높낮이조차 느껴지지 않은 단조로운 음성. 하지만 그 안에 살기가 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루터는 이번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