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33화 (33/128)

#33.

세인트는 수준 높은 학교였다. 10%로 되지 않은 세인트의 상급반 학생들은 특히나 특별했다.

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웬만한 마법사들보다 꽤 높은 학식과 큰 잠재 능력을 갖고 있었다. 졸업 후, 실전에 나서고 마법을 조금 더 자유자재로 응용하게 된다면 나중에 뛰어난 마법사가 되리라.

‘하지만 한계란 건 분명 존재하지.’

뛰어난 마법사가 된다.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카신의 눈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카신 교수님. 제 수업을 빌리다니요.”

다음 수업을 하려던 마법학의 벤스 교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것도 대련장에서…….”

“곤란하시다면 학생들에게 다음 제 수업 시간에 대련장에 모이라 전하죠.”

우물쭈물하는 벤스를 보며 카신은 미련 없이 미루려고 했다. 아무리 자신이 대마법사라고 해도 다른 교수의 수업 시간을 강압적으로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아, 아닙니다! 혹, 제가 참관 수업을 해도 될까요?”

벤스는 기대를 안고 물었다.

카신이 수업 시간에 계속 자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대련장에서 하는 수업이라면 카신의 마법을 볼 수 있다. 벤스는 카신의 마법이 무척 궁금했다.

“그, 그래도 제 수업이었으니까 조금만 구경, 아, 아니 참관을…….”

“저도! 저도 수업에 참관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도 조금만…….”

“아니, 교수님께서는 다음에 수업이 있지 않습니까? 대신 제가…….”

“워낙에 뛰어난 학생들이니 하루쯤은 자습을 해도 됩니다! 저도 참관하게 해주세요!”

교수들 사이에서도 카신은 우상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처음 카신이 온다는 말에 신비주의였던 그에 대해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같은 교수로서 친분도 쌓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카신은 교수에게 주어지는 개인 연구실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다. 마법을 쓰는 일을 보는 것은 물론 얼굴 한 번 마주치기 힘들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자습만 시킬 뿐, 제대로 된 대화도 못 한다고 했다.

‘대마법사의 마법을 직접 볼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현직 마법사로도 활동 중인 교수들도 어릴 때부터 카신의 대해 귀가 닳도록 듣고 배웠다. 그러니 대마법사인 카신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했다.

“참관 말이지요.”

학생들처럼 눈을 빛내는 교수들을 보며 카신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참관이 가능하겠지요?”

“원래 세인트의 교수가 되기 전에 참관 수업을 하는 것이 관례인데, 교수님께서는 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이 기회에 한번 해주시는 게 어떤가요?”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학생들의 수군거림에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더 이상 인원이 늘어 시끄러워지는 건 절대 사절이었다. 카신은 딱 잘라 말했다.

“정중히 사양하지요. 아, 엿보는 것도 안 됩니다. 침입자인 줄 알고 제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요.”

카신은 이런 시선들이 무척이나 귀찮았다. 학생들에게 그런 제안을 괜히 했나 싶을 정도로 후회가 들기도 했다.

“참관 수업을 해야 할 만큼 제 실력이 의심스러우시다면 절 세인트의 교수로 임명해 주신 폐하께 직접 상소를 올리시길 바랍니다. 그럼 전 이만 바빠서.”

그 누가 대마법사의 실력을 의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감히 폐하께 상소를 올려 카신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었다.

아쉬운 얼굴로 입만 뻐끔거리는 교수들을 뒤로한 채 카신은 느긋한 걸음으로 대련장으로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속성의 마력이 감지됐다.

“이 나이에 애송이들과 놀아줘야 하다니…….”

내키지 않은 얼굴로 카신은 강당의 커다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모든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그는 가장 먼저 구석에 숨어 있는 히나를 찾았다.

풀이 죽은 모습이 참으로 가련했다. 학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히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제대로 어울려 본 적도, 노력한 적도 없는 카신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는 이런 것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이렇게 복잡하게 준비해도 다 소용이 없는 것을.”

다다다닥.

몇몇 학생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대련장을 향해 다가오는 카신을 보고선 지레 겁먹고 도망쳤다. 그다지 감흥 없는 얼굴로 카신은 가볍게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우우웅―

카신이 대련장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갈 때였다. 아무것도 없었던 바닥에 마법진이 새겨지며 푸른빛이 그의 주변을 둘렀다. 공기 중에 있던 빛이 순식간에 물방울로 변하며 그를 감쌌다.

“됐다!”

대대로 물 속성의 마법을 진하게 이어받은 줄리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마법진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만든다고 많이 부족했지만, 어차피 조금의 타격만 입히면 된다.

뭉쳐진 물방울은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줄리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이 카신에게 향하는 걸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애초에 카신을 옭아맬 생각까진 없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몸에 물이 닿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타격을 입힌 거라고 어떻게든 우겨볼 셈이었다.

치이이익―

카신의 몸에 닿기도 전에 공기 중에 있던 물이 뿌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에게 닿기도 전에 단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증발하여 날아가 버리는 걸 보며 줄리아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공격해!”

“전부 달려들어!”

마법 증폭을 위한 마법석이 여기저기서 다양한 색상으로 빛났다. 형형색색의 빛이 카신을 향해 몰려들었다.

학생들은 갖고 있는 모든 마법석을 이용하여 여러 공격을 퍼부었다. 증폭 마법에 능한 학생들의 지원을 받으며 수많은 공격이 이어졌다.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제아무리 현직에 있는 상급 마법사도 완전히 막지 못하리라.

“가소롭구나.”

화아아악.

카신에게 쏟아지는 여러 빛깔의 마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법을 발동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움직이거나 주문을 읊조리는 시늉조차도 내지 않으며,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걷기만 했다.

처음 줄리아의 마법이 허공에 사라진 것처럼 형형색색의 빛은 카신에게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이번엔 연기도, 사라지는 과정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을 걸었나 싶은 의심까지 들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마법이 무로 돌아갔다.

저벅저벅.

올 때부터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은 카신의 발걸음은 대련장의 정중앙에서 떡하니 멈췄다.

“무슨 공격을 해도 좋다만, 혼자 발버둥 치다 다치지만 말거라. 복잡해지는 건 질색이니.”

지이잉―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카신을 중심으로 붉은빛의 동그란 원이 그려지며 막이 생겼다. 아주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 보는 보호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을 시전하거나 그리지도 않고 보호막을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저, 저걸 어떻게 뚫어…….”

카신은 굳이 힘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힘이 깃든 보호 마법을 펼쳤다.

이럴 때는 힘을 숨기지 않는 것이 편했다. 힘의 차이를 느끼고 자신의 분수를 깨달은 학생들은 소극적인 공격을 하거나 제풀에 지쳐 포기를 할 테고, 그렇게 되면 괜한 부상자는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상급반은 대부분 귀족 자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웬만하면 부상자를 만들어 피곤한 일이 생기는 건 피하고 싶었다.

털썩.

카신은 마법진을 만들자마자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이대로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포, 포기하지 마!”

강력한 보호 마법을 펼쳤다고 해도 대련 중에 책을 읽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차마 덤비지 못한 채 뒷걸음질을 치던 학생들이 이를 악물고 공격 마법을 펼쳤다.

“뚫어!”

가장 앞에 선 루터를 보며 카신은 한쪽 눈썹을 스윽 올렸다. 리베리아에서 태어난 것치고는 마법사로서의 재능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제법 강단이 있었다.

이론 수업은 최상위라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히나의 학우라는 이유 하나로 상급반 학생들의 신상 정도는 외워놓았다.

그리고 형인 베라미에 비하면 형편없는 능력을 가진 루터가 이론적 지식만은 뛰어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의 관심은 줄 필요도, 생각도 없었다. 카신은 다시 루터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독서를 시작했다.

“저걸 뚫을 수 있는 마법사가 있긴 해?”

“하지만 저걸 뚫어야 공격을 할 것 아냐!”

다른 학생들의 자신 없는 목소리에도 루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카신의 눈에는 그런 루터의 모습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실력으로는 무리라고!”

루터가 아닌 뛰어난 자질을 가진 베라미가 있었대도 어차피 결과는 같았다. 아니, 황궁의 마법사가 전부 와도 결과는 바뀌지 않으리라.

학생들은 내기에서 질 것이다. 의미 없는 시간 낭비였다. 카신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차단한 채 조금 더 독서에 집중했다.

책은 열정적인 선생과 그로 인해 마음을 다잡은 학생의 애틋한 관계를 다룬 이야기였다. 전혀 와 닿지 않았다. 그에겐 의미 없는 독서였지만, 시간 때우기엔 적격이었다.

‘내가 이런 걸 읽는다고 열정적인 수업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가끔 이상한 곳에서 순수한 면모를 보여주는 루이스를 생각하며 카신은 책장을 넘겼다. 보내주니 읽긴 하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되는 부분은 없었다. 일말의 희망과 기대를 하고 있는 루이스가 알면 통탄할 일이었다.

“아까 그 계획으로 간다!”

“그, 그게 먹히긴 할까?”

“애초에 저 보호 마법은…….”

루터는 또다시 한계란 걸 깨달았다. 호기롭게 나선 것에 비해 실력이 너무 떨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내가 뚫는다니까! 너희들은 공격만 해!”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방심하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독서를 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적어도 카신이 맞서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무시도 이런 개무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된 일이야.’

어차피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을 거라는 전제하에 계획을 짰다. 루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쾅! 콰과광!

딱히 마법을 무력화시키지 않아도 카신에겐 그 어떤 공격도 닿지 않았다. 불발된 마법들이 남긴 형형색색의 빛과 뿌연 연기만이 카신의 주변을 둘렀다.

보호막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공격을 들이붓고 있었지만, 대마법사의 보호 마법은 무척이나 견고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절대 이길 수 없는 내기였다. 루터는 불안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히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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