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119화 (119/128)

119.

“네? 리베리아 백작이라니…….”

히나의 양부는 후작이었다. 사라는 후작 부인이었고, 베라미나 루터는 아직 작위를 받지 못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히나를 보고, 루이스는 카신의 별궁을 직접 찾아갔던 세이나에게 물었다.

“소식을 전하지 않았나?”

루이스는 히나가 파티 초청과 기쁜 소식을 함께 전달 받았을 거라 생각했다.

“송구하옵니다. 직접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몸이 괜찮아지거든 파티에 참석하라는 말만 하였습니다.”

“그렇지. 세이나 교수는 내 마음을 잘 아는군.”

영문을 몰라 하는 히나를 보며 루이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전쟁에서의 큰 활약은 들었네.”

“활약이라니요.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히나가 고개를 숙이며 겸손을 떨었다.

“적군의 이상한 마법사로 인해 하마터면 제국의 수많은 인재를 잃을 뻔했네.”

선두에 선 아델리아나 리베리아 후작부터 유능한 기사와 마법사들 모두가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성력이란 힘이 없었다면 아주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야.”

총괄 지휘자이자 기사단장인 아델리아, 그리고 마법사단 수장인 리베리아 후작을 포함한 수많은 제국의 인재들이 전부 죽었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러니 성력으로 무적이었던 적군을 무찌르고, 제국군을 보호하기까지 한 히나는 이번 전쟁에서 큰 공로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여 히나 피안 리베리아, 그대에게 가문을 떠나 백작위가 수여될 것이네.”

“백작위라 하시면…….”

이미 파티의 첫날 공로를 세운 모든 사람들에게 상이 내려졌다. 작위를 수여받게 될 히나를 제외하고선.

“제겐 너무 과분해서…….”

히나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레베스톤 공작, 총괄 지휘를 맡은 자네의 눈에도 과분해 보이나?”

“아닙니다. 백작위는 충분히 받아 마땅합니다.”

아델리아가 옆에서 덤덤히 호응했다.

카신도 계속 히나와 함께 있느라 작위에 대한 건 처음 듣는 사실인지,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백작위를 받는 경우는 제국 내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또한 제국에서 유일하게 성력을 쓰는 리베리아 백작을 지금부터 성녀라 칭할 것이며, 그에 따른 대우도 받게 될 것이네.”

히나가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히나의 유일한 스승인 세이나를 제국인으로 데려오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다.

전쟁 중에 신력으로 적군의 마법사들의 발을 묶어놓은 공로를 인정받은 것도 있지만, 히나에게 성력을 쓰는 방법을 알려준 공이 가장 컸다.

“화, 황송하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 히나는 루이스에게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올렸다.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것도 백작이나 되는 높은 작위를. 세이나가 왜 특별한 선물을 받는데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히나는 승전에 일조는 했지만, 자신이 아주 큰 활약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히나도 물론 적군의 마법사들을 물리치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적군을 벤 건 목숨을 걸고 검을 들고 맞부딪힌 기사와 옆에서 서포트를 해준 마법사였다.

“제국의 영웅이니, 조만간 수여식 날을 정해 따로 자리를 만들도록 하지.”

제국의 영웅.

하늘이 여태 고생했다며, 주지 않고 숨겨두었던 선물을 한꺼번에 주는 것 같았다. 히나는 밀려오는 감격에 어쩔 줄을 몰랐다.

너무 좋아서,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도 떨렸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치맛자락을 잡은 손바닥이 축축했다.

루이스에게 언제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대화를 끝내는 도중 루이스가 태어난 황자를 위해 따로 초대를 하겠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았다.

“축하해, 히나.”

정신을 차려보니 단정하게 차려입은 라우너가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 전에도 연미복을 입은 라우너를 몇 번 봤지만, 전쟁 중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정말 축하할 일이구나.”

라우너 뒤로 아델리아가 다가오며 부드럽게 말했다.

짙은 푸른 계열의 드레스를 입은 아델리아는 평소의 용맹한 기사단장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우아했다. 드높은 품격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공작 각하. 오라버니도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

아까는 황제 앞이라 제대로 고개를 들고 쳐다보지 못했다. 히나는 살며시 시선을 들어 아델리아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대놓고 관찰하고 싶었지만, 넋을 놓고 쳐다보아 무례를 저지를까 싶어 그럴 수가 없었다.

여공작의 강인하고도 품격 높은 모습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파티장이라서 그런지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빨려들 것 같았다.

“그보다 너희 둘에게 할 말이 있단다.”

전쟁이 끝나서일까? 파티장이라서 그런지 아델리아의 미소가 아주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나, 혹시 레베스톤에 시집올 생각은 없니?”

히나도, 라우너도 눈을 크게 떴다. 가장 놀란 건 카신이었다. 시끄러운 회장의 소음 때문에 히나와 도망갈 곳을 찾고 있던 카신은 고개를 홱 돌렸다.

“시, 시집이요?”

“그래, 라우너도 네게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카신은 빠른 걸음으로 히나 앞에 섰다. 갑작스러운 방해꾼에 아델리아의 미간에 살며시 주름이 잡혔다.

“공작께서는 모르는 모양이군요. 하긴 모를 만도 하죠.”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그보다 저는 히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델리아가 평소에 가십거리에 휘말리지 않고, 꿋꿋하게 한 길만 걸어가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암암리에 퍼진 소문까지 모를 줄이야.

카신은 히나의 어깨에 팔을 둘러 감쌌다. 그의 친근한 태도에 아델리아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저는 전쟁 전에 약식으로 약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바로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지요.”

“결혼을 한다고요? 누구와 말입니까?”

상대가 히나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아델리아를 보니 속이 탔다. 옆에서 작은 기대를 품고 눈을 반짝이는 라우너를 보고 있자니 더.

“누구긴 누굽니까? 저와 히나는 이미 미래를 약속한 사이입니다.”

전혀 몰랐던 건지 아델리아가 다소 충격에 휩싸인 눈으로 그와 히나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곧 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짧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대마법사께서는 제가 어릴 때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셨습니다. 제 아버님이 젊으셨을 때도, 그 위의 조상님께서 젊으셨을 때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셨겠죠.”

“그게 무엇이 문제지요?”

“히나에게……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델리아는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카신을 보았다.

어쩐지 히나를 비정상적으로 끼고돈다 싶었다. 거기다 리베리아 가가 아무리 어수선하다고 해도 굳이 히나만 별궁에 데려간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단순히 성력 때문에 그런 줄 알았더니.’

성력이 아니더라도, 감각에 예민한 아델리아는 히나에게서 특유의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라우너처럼 히나가 가까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도 알 만큼.

그래서 그녀는 카신이 그 기운을 더 예민하게 느껴 히나를 데리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대마법사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몇 번 본 것으로 카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확인했으니까.

“제 신체 나이는 무척 어립니다. 그리고 나이로 인해 세상에 히나를 홀로 내버려 두는 일을 없을 테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아델리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카신을 허탈하게 보았다. 전부터 느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히나, 레베스톤으로 시집온다면 나를 어머니라 부르는 거란다. 거기다 후에 공작 부인이 되겠지.”

카신의 눈썹이 휘어졌다. 못마땅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내는 걸 보니, 꽤 조급한 모양이었다. 제국의 탄생과 함께 나이를 먹은 주제에 말이다.

아델리아는 히나를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카신에게만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사람 그 자체만을 보고 외형이나 외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입장에서 카신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산 늙은이였다.

‘히나의 기운은 나도 마음에 드니까.’

아델리아는 히나의 좋은 기운이 가문에 내리게 되길 바랐다. 특히나 라우너도 히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니, 아들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물론 히나 자체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전쟁 중에 겁이 많이 났을 텐데도 용기 있게 맞서 싸우던 모습에 속으로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그 강단이 마음에 들었지.’

전쟁에 데려가 달라고 할 때부터 탐이 났다. 레베스톤의 가문에 전혀 부족하지 않는 당돌함이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갈 무렵 끝날 때까지 참지 못하고, 라우너와 히나를 찾아 결혼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 거였다. 평소에 본분을 절대 잊지 않았던 자신이 말이다.

“어머니요?”

아델리아를 어머니라 부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한 건지, 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카신은 기가 차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거 좋군요.”

옆에서 세이나가 다가오며 가세했다. 카신은 히나를 감싸는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언제든 히나가 그에게서 벗어나길 바라는 세이나를 알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히나는 강하고 당당한 여성에게 약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두 여자는 히나가 가장 존경하고 숭배하는 인물이었고, 그중 한 명은 친모인기도 했다.

“안됐군요. 폐하께서는 이미 히나와 저의 결혼을 승인해 주셨습니다.”

두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카신은 그 말을 끝으로 히나를 데리고 바로 공간이동 마법을 시현했다.

“아…….”

히나는 배경이 바뀌자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다.

카신의 별궁 테라스였다. 아델리아와 세이나에게 머릿속에서 정리한 말을 꺼내려던 히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나와도 돼요? 대화 중이었는데…….”

“얼굴을 비췄으니, 더는 있을 필요가 없지.”

갑작스럽게 큰 선물을 받았다. 황궁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백작위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리베리아 백작에 성녀라는 유일무이한 칭호까지 받다니. 이제 정말 나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됐구나.”

지금도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만큼 멍했다. 하지만 카신의 농담 섞인 말에 그나마 긴장이 조금 풀려갔다.

“같은 위치라니요. 백작이 된다고 해도 어떻게 카신 님과 같은 위치가 되겠어요?”

공작, 심지어 황제인 루이스도 카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한데, 이제 막 백작을 단 후작가 영애가 대마법사와 같은 위치라니.

우습게도 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카신과 둘만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직 뭘 모르는 모양이구나. 내가 대마법사라 불리기는 하지만 아직 작위도 지위도 없다. 그러니 어찌 보면 네가 나보다 더 낫구나.”

작위도 없다고?

그러고 보니 카신이 대마법사라고 불리긴 해도 귀족이란 말은 없었다. 히나는 눈을 크게 뜨고 카신을 보았다.

“그럼 카신 님은 평민인 거예요?”

대마법사가 평민이라니.

“내가 평민이면 결혼을 올리지 않을 게냐?”

짓궂게 묻는 카신을 보며 히나는 저도 모르게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은 것 같아 우스웠다. 작위와 칭호를 받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 이상했다.

“조금 생각해 봐야겠어요.”

한참을 웃던 히나는 카신을 보며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결혼을 올릴 거라는 대답을 기다렸던 카신은 못마땅한 얼굴로 한쪽 눈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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