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121화 (121/128)

121.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탕 속에 들어가 시녀들의 목욕 시중을 받으며 히나는 몇 번이고 얼굴을 붉혔다.

카신의 옷을 직접 벗겼다. 반쯤 의도한 것도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런 오묘한 분위기까지 만들었다.

평소에 잠을 자지 않는 카신의 침대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침실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그러했다.

‘뭐가 그렇게 불편한 거야.’

어디 하나 문제가 있을 리도 없는데, 푹신하고 편안해야 할 침대는 무척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특히나 카신이 코르셋을 풀어주었을 때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모든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히나 님께서는 피부가 참 고우세요.”

목욕 시중을 하는 시녀의 목소리에 히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제 피부를 내려다보았다.

귀족가의 영애가 되고 나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시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허드렛일을 하며 자주 부르트고 거칠어졌던 손발도 어느새 매끈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카신에 비해 제가 볼품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예쁘게 꾸며진 자신의 모습에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정말 고와?”

아무리 그녀가 못나더라도 시녀는 절대 나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나는 시녀에게서 입에 발린 칭찬을 듣고 싶었다.

“그럼요! 이렇게 살결이 부드러우시다니.”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남에게 칭찬을 들으니 더 자신감이 붙었다. 시녀의 말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용기가 생겼다.

“나중에 대마법사님이 무척 좋아하실 거예요.”

“정말 좋아할까? 카신 님은 나보다도 더 곱잖아? 피부도, 얼굴도 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분이었다. 귀족가의 영애로 다시 태어나다시피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고귀한 카신의 자태로 인해 주눅이 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히나 님을 무척 아끼시지 않습니까?”

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근심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걱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한 시녀가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말했다.

“첫날밤에는 피부가 더 고와지는 향유를 발라 드릴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향유?”

“귀한 향유랍니다. 후에 히나 님께서 필요하실 것 같아 별궁의 물품 품목에 넣어두었지요.”

그런 것이 있다고?

처음 안 사실이었지만, 마냥 놀라운 건 아니었다. 귀족 여인들은 파티에 올 때마다 하나같이 다 곱고 매끄러운 피부를 하고 와서, 무슨 비법이 있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향유에 대해 들으니 납득이 됐다.

“그 향유!”

말을 꺼내기 민망했다. 하지만 카신의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것보다 지금 시녀들 앞에서 조금 부끄러운 것이 나았다.

“오, 오늘 발라주면 안 될까?”

너무 크게 말했나?

향유를 발라달라 말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나중에 말을 꺼낸 시녀에게만 몰래 언질을 줄걸, 하고 후회가 됐다. 그러지 않을 걸 알면서도, 시녀들이 결혼도 하기 전에 무슨 향유냐며 한마디씩 할까 봐 긴장됐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시녀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덤덤하게 제 할 일을 했다. 히나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지금 별궁에 있는 시녀들은 엄청 유능하니까.’

과거의 카신은 시녀들을 전부 쫓아내어, 결국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그녀가 별궁까지 오게 됐다. 그에 비해 지금의 별궁은 유능한 시녀들부터 시종, 요리사, 정원사까지 실력 있는 인재들로 넘쳐 나고 있었다.

‘사실 만났던 첫날부터 쫓겨날 뻔했지.’

바닥에 철퍼덕 넘어진 그녀를 루이스가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카신이 막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몰래 훔쳐보다 넘어진 시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다니.

‘처음부터 내게 마음이 있으셨던 거겠지.’

과거를 되짚어보면 카신이 얼마나 그녀를 봐주었고, 또 잡으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히나는 까고 파헤쳐도 끝없이 나오는 카신의 애정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목욕이 끝나자마자 시녀들이 향유를 가져와 발라주었다. 몸이 나른해질 만큼 무척 좋은 향이었다. 살결에 발릴 때마다 눈에 띄게 피부가 매끈해지는 것도 보였다.

‘이런 것도 있구나.’

어색하지 않도록 한 번씩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시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히나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머리까지 말리자 히나는 간편한 잠옷을 입고 천천히 카신의 침실로 걸어갔다. 심장은 여전히 콩닥콩닥 뛰었고, 머리는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침실이 가까워질수록 너무 떨려와 자신이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인지 의심마저 들었다.

침실 앞에 서자마자 히나는 조심히 문을 열었다. 마치 집주인 몰래 들어가는 도둑이라도 된 것처럼 숨소리도 낼 수 없었다.

“카신 님?”

마치 들어가면 안 되는 곳처럼 고개만 빼꼼 내밀며 침대를 둘러보던 히나는 카신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자 눈을 크게 떴다. 허탈하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히나는 긴장을 풀고 침실로 쏙 들어왔다.

“어디를 가신 건가?”

계속 침대 위에서 기다릴 줄 알았다. 히나는 침실에 완전히 들어오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설마 너를 두고 어디를 갈까 싶더냐? 네가 너무 오지 않아 책을 읽고 있었다.”

히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침실 한편에 마련된 작은 티 테이블에 카신이 느긋하게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카신이 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탁, 하고 덮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느긋하지만, 큰 보폭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도망간 줄 알고 밤새 처량하게 기다릴 줄 알았는데.”

카신은 향긋한 향유 냄새가 듬뿍 나는 히나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주변 공기조차 미묘하게 달랐다.

“다행히 도망간 건 아닌 듯하구나.”

여인들이 쓰는 향유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싫어하는 쪽이었다. 후각이 예민한 그에게는 향유 한두 방울에서 맡아지는 냄새도 무척 역하거나 독했다.

하지만 히나의 체취와 섞인 향유의 향은 싫지 않았다. 코끝을 강하게 찔러오는 향이 살짝 독하긴 했지만, 못 맡을 건 아니었다.

“전 카신 님에게서 도망가지 않아요.”

카신은 히나를 번쩍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훅, 하고 불이 꺼졌다. 주변이 순식간에 캄캄하게 변했다. 어둠 속에서 히나가 놀라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보였다.

“오래 살았다고 해도, 난 그리 고지식한 편이 아니야.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 네 순결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멈추지 않고 안겠다는 말이었다.

히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카신에게 몸을 맡겼다. 그의 손이 얇은 옷을 벗기는 것이 느껴졌다. 옷이 차례로 벗겨질 때마다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그럼에도 여태 널 안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굳이 순결을 지켜줘야 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서, 끝까지 안지 않은 이유.

히나도 그 이유가 조금은 궁금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음영에 눈을 마주쳤다.

“한번 널 안기 시작하면 절대 내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서야. 그렇게 되면 네 꿈도, 미래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게 되겠지.”

히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그녀를 받아준 리베리아 후작가에 어울리는 귀족 영애가 되고, 남들 눈을 피해 세이나와 그간 하지 못했던 것도 하며 모녀지간의 돈독한 정도 쌓고 싶었다.

카신은 지금 그 모든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며 협박하고 있었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널 절대 내보내지 않을 게다.”

그의 협박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카신다운 말에 히나는 살짝 웃었다.

그가 그녀의 옷을 풀다 말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집요한 시선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농담이 아닌데도 웃는구나.”

“농담이 아닌 걸 알아서 웃는 거예요.”

카신이 픽 웃었다. 그가 다시 그녀의 옷을 풀었다. 그의 손이 조금 다급해졌다.

스르륵, 몸에서 옷이 흘러내려 갔다. 차가운 공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몸에 닿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첫 경험이란 게 이런 건가?’

하지만 그의 입술이, 손길이 몸에 닿자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조금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하던 키스와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달랐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헤집으며 혀뿌리를 뽑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피하고 싶다기보다는 버거웠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졌고, 배 속이 간질거렸다.

히나는 저도 모르게 카신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그가 순순히 떨어졌다.

“으읏…….”

그가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목덜미가 따끔했다. 카신이 잠옷을 잡아 뜯듯이 손으로 내리며 그녀의 살점을 강하게 빨아들였다.

격하게 운동을 하는 것도, 공기가 더운 것도 아닌데 숨이 급해졌다. 마치 한겨울에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오는 것처럼, 살며시 벌어진 입에서 뜨거운 숨을 흘러나왔다.

“아!”

언제 옷이 벗겨진 건지 인지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가 마법으로 없앤 걸 수도 있다. 그만큼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히나는 카신이 가슴 둔덕을 삼키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이가 어미젖을 빠는 것처럼 그가 그녀의 가슴을 빨고 있었다. 그 생소한 감정이 너무 야릇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비틀며 흐느끼는 소리를 흘렸다.

“카, 카신 님!”

카신의 커다란 손이 허리를 따라 내려가며 골반과 이어지는 엉덩이를 매만졌다. 그의 손이 점점 은밀한 곳으로 향하자 그녀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와 연인이 될 무렵부터 남녀 관계에 대해 신경을 썼다. 서로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에 대해서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그의 손이 은밀한 곳에 닿으려 하자 겁이 났다.

“쉿. 괜찮다, 히나.”

그가 엄지로 골반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다른 손으로 경직된 등허리를 매만지며 그는 그녀가 조금은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살살 달래주는 카신의 목소리와 그녀를 안심시켜 주듯 조심스러운 손길에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의 몸이 점점 풀려가자 그가 잘했다는 듯이 그녀의 몸에 자잘하게 키스를 해주었다. 그 입술의 감촉이 부끄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서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의 입술이 팽팽한 배를 지나 점점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또다시 몸이 경직되었다.

히나는 본능적으로 두 다리를 꼭 붙이고 있었다. 그가 은밀한 곳을 지나 그녀의 무릎부터 허벅지로 차근차근 입술을 맞췄다.

“히나.”

그의 입술이 안쪽 허벅지로 다가오자 두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안쪽 허벅지에 닿는 그의 입술도, 살결을 간질이는 그의 뜨거운 숨결도 모두 자극적이었다. 생소한 감정은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조금 더 기다려 줄까?”

카신이 그녀의 무릎 위에 뺨을 기댄 채 한숨과도 같이 깊은 숨을 내쉬며 물어왔다. 그녀에게 내색을 하진 않고 있지만, 그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히나는 서서히 두 다리에 힘을 뺐다. 어둠 속에서도 그가 흐릿하게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서운 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와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모든 것이 능숙했고, 또 다정했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서도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노력하는 카신을 더는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흐읏…….”

그의 입술이 예민한 살점을 삼키며 부드럽게 핥자, 입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 속에서 피어나는 뜨거운 열기와 간질거리는 감촉 때문에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히나는 그가 주는 야릇한 쾌감에 몸을 뒤틀었다.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면서도 안기길 반복했다.

몸이 질척하게 젖어갔다. 그가 주는 쾌락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젖은 소리가 부끄러울 만큼 귓가에 생생하게 들렸다. 입속에서도 의도치 않는 신음이 내뱉어졌다. 그의 입술이 닿는 곳곳이 뜨겁게 달아올라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를 더 느끼고 싶어.’

하늘 위를 둥둥 뜨는 기분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히나는 그의 어깨를 꼭 붙잡으며 울먹였다. 무서울 것도, 부족한 것도 하나 없는데 이상하게 그에게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이 매달리게 됐다.

히나는 용기를 내어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 속에서도 그의 감탄스러운 몸을 감상하며 어루만졌다.

“이날을 무척 고대했지.”

“카신 님…….”

그녀의 대담한 손길에 카신이 잠깐 놀라는 듯했지만, 피하진 않았다. 오히려 더 즐기는 듯했다. 나중에는 그를 어루만지던 그녀의 손을 잡고 더 만져 달라 하기도 했다.

“이제 그만 나를 받아주렴.”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뜨겁고 거대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히나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려다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힘을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흡……!”

몸을 가르며 들어오는 그로 인해 현기증이 났다. 사지가 반으로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애틋하고 강렬한 감정도 밀려왔다.

“아프게 해서 미안.”

아파서 눈물이 난다기보다 그의 사과에, 이마에 닿는 그의 조심스러운 입술에 운 것 같다. 히나는 아픈 만큼 그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카신 님, 사랑해요.”

아프게 해도 좋았다. 카신이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맨살을 부딪치며 서로의 체온을 공유하는 일은 상상보다도 더 놀랍고 신비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쉬지 않고 목덜미부터 봉긋한 가슴, 그리고 팽팽한 배를 지나 은밀한 곳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삼키고 어루만지길 반복했다.

‘카신 님이 더 좋아.’

소중하게 만져 주는 손길이, 보듬어주는 입술의 감촉이 모두 좋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을 보지 않아도, 사랑받는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절정을 맞이한 후에도 카신은 몇 번이고 그녀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었다. 히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마찬가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카신의 몸을 부끄러운 눈으로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만져 봐도 돼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만져 보고 싶었다. 어쩐지 가만히 보고 있자니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못 만질 이유가 있더냐?”

카신이 그녀의 손을 잡아다가 제 가슴 위로 얹어주었다. 손끝에 닿는 남자의 단단한 가슴이 부끄러우면서도 신기했다. 히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그의 몸을 더듬었다.

그녀의 손은 점점 대담해졌다. 가슴을 따라 허리를, 그리고 잔 근육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의 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못 만질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대담하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은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못했다. 시종일관 여유를 보였던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그녀의 손을 잡아 결박했다.

“그것도 아닌 것 같구나.”

“만지면 안 되나요?”

그녀의 물음에 카신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다급히 입술을 맞춰오며 또다시 그녀의 몸을 탐했다.

조급함을 드러내는 카신은 꽤 귀여웠다. 히나는 그의 재빠른 행동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함께 있고 싶어.’

카신과 서로 마음을 확인했을 때부터, 히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넘게 그와의 첫날밤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녀가 상상했던 첫날밤은 현실과 무척 달랐다.

상상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느꼈고, 교감도 할 수 있었다. 서로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아픈 건 한순간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아팠지만, 그 모든 고통이 괜찮다고 생각될 만큼 좋았다. 눈물이 핑 돌고 몸이 경직되었지만 그를 뿌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몸이 갈수록 아파오는데도 그를 더 세게 안을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더 괜찮아지겠지.’

행복한 순간에서 짧게나마 이어진 고통의 시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던 것인지 끝까지 그녀를 보듬어주며 걱정했다.

“히나, 또 하면 미워할 거니?”

다급히 입술을 맞추며 몸에 자잘하게 붉은 흔적을 남기던 카신이 망설였다. 그가 너무 걱정을 하고 더 아파해 주니 자신이 더 미안해졌다.

“계속…….”

아래가 아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아파할 때마다 카신이 입으로 먹여준 약 때문인지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약이 몸을 빠르게 회복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머뭇거리는 그녀의 귓불을 물며 그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 않으면 미워할 거예요.”

카신이 웃으며 입을 맞춰왔다.

“아프지 않게 조심히 들어갈게.”

히나는 마지막까지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카신을 오히려 안심시켜 주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척 조심스러웠고, 또 세심하기까지 했다.

“카신 님, 정말, 정말로 사랑해요.”

세이나에겐 미안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눈앞에 있는, 평생을 함께할 카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다음에는 더 사랑할게요.”

다리 사이로 또다시 아린 이물감이 느껴졌다. 아픈 건 조금 싫었지만, 그와 나눈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최고였다. 만족할 때까지 카신을 잡아두고 싶을 만큼.

‘역시 결혼을 빨리 하는 게 좋겠어.’

루이스의 서명서가 있다고 해도, 리베리아 후작의 말대로 카신을 설득해서 조금은 늦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히나는 리베리아 후작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후작가가 싫다기보다 카신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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