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7권
위드는 유노프 협곡의 바위가 많은 곳으로 향했다.
중간에 설인을 닮은 몬스터 예티들이 덤벼들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적당히 처리하고 어렵지 않게 바위가 쌓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재료는 충분하군."
위드는 계곡가에 쌓여 있는 바위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며칠에 걸친 서윤과의 동행!
그야말로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 음식을 바치면서 비굴하게 지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고급 조각술을 익히게 되었다.
최고의 미녀만큼 뛰어난 예술품도 없는 법!
서윤의 희고 미끈한 허벅지와 흑단 같은 머릿결, 날씬한 허리. 어디 그뿐인가. 가늘고 긴 목이나 뽀얀 쇄골이 있는 부위, 그 위로 더욱 올라가면 얼굴에서는 투명한 광채가 난다.
1년 내내 보더라도 질리지 않을 정도의 외모였다.
그녀 덕분에 명작만 몇 차례나 성공했던 그가 드디어 고급 조각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스킬 확인!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품에 생명 부여: 황제 게이하르가 후인을 위해서 남긴 조각사의 알려지지 않은 기술.
제한: 고급 조각술을 익힌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스킬 요구량: 마나 5,000. 예술 스탯 10 (영구적 소모). 레벨 2 하락.
주의 사항!
조각품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신과 똑같이 닮은 조각품을 보았을 때는 적의를 가지고 싸우게 된다.
고급 조각술을 익힌 이후로 쓸 수 있게 된 기술!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예술 스탯은 10, 그리고 레벨은 2개나 떨어진다.
그런 만큼 자주 쓸 수는 없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꼭 필요할 때에 안 쓴다면 이는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투자다, 투자!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필요해."
위드는 조각칼을 꺼내서 조각을 개시했다. 지금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 직접 싸울 수 있는 병력은 충분하다. 그러니 특별히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을 생성해야겠지."
위드는 우선 긴 날개와 뾰족한 발톱, 두툼한 배를 가지고 있는 와이번을 조각했다.
와이번은 굉장히 강한 몬스터다.
개별적인 레벨이 380이 넘고, 피부가 단단해서 웬만한 칼과 마법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그 속도는 지상에서 말을 달리는 것과는 비할 수 없이 빠르다.
물론 위드가 와이번의 형태를 한 조각품을 만든다고 해서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이 나오지는 않는다.
예술 스탯에 따라서 능력이 결정되는 것이니, 형태는 비슷해도 본래의 와이번과는 천치 차이인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대충 해야지."
와이번을 만들면서도, 위드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면 스탯이 사라지고 레벨이 하락한다. 당연히 걸작이나 명작 수준의 조각품 정도는 만들어 줘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대충대충 하려니 가슴이 아파 왔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도 모자란 판에 건성으로 일을 해야 하다니.
그러나, 크기가 10미터도 넘는 와이번에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면 이틀 밤을 새우더라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위드는 큰 윤곽만을 가지고 와이번을 조각해 냈다. 제대로 튀어나온 배와 쩍 벌어진 주둥이, 날카로운 발톱은 특별히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띠링!
걸작! 창공의 와이번 상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늘의 제왕!
흉폭하고 거친 몬스터.
와이번은 짐승들의 정점에 서 있는 몬스터다. 말을 통째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강에서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사냥하기도 한다. 자존심도 높아서, 만약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이번에게 화살이라도 쏜다면 즉시 죽음을 맛볼 수 있으리라.
이 조각상은 모든 이들에게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을 심어 주게 될 것이다.
예술적 가치: 750.
특수 옵션: 창공의 와이번 상을 바라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10% 증가한다.
플라이 마법 시 이동속도가 20% 상승.
힘 30 증가. 민첩 5 증가.
전 스탯 3 상승.
경각심이 생기면서 하루 동안 몬스터의 특별 능력의 효과가 감소함.
조각상 인근에 공중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않음.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걸작의 숫자: 12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명성이 6 올랐습니다.
-지구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카리스마가 1 상승하셨습니다.
-매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고급 조각술을 익힌 덕분인지 그리 열심히 만들지 않았는데도 걸작이 나왔다. 대신에 그만큼 인정받는 조각사가 되었다는 뜻인지, 명성은 많이 오르지 않았다.
걸작만을 만들고도 유명인이 되던 시기는 지나고, 이제는 걸작을 만드는 것보다는 퀘스트나 사냥을 하는 편이 훨씬 명성을 모으기에 좋아졌다.
이제 명성을 원한다면 명작 정도 되는 조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외에 늘어나는 스탯들도 그리 높진 않았다. 걸작을 만들어서 이 정도라면, 명작을 만들어서 얻는 스탯도 줄어들 거라고 봐야 하리라.
과거처럼 많은 스탯을 얻기 위해서는 대작,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이는 달빛 조각품을 만들어야 한다.
명성이 높은 조각사란 현재에 안주할 수 없는 직업이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더 나은 조각품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좋아. 이제 스킬을 써야겠군."
그나마 걸작이 나와 준 덕분에 아쉬움은 덜했다. 하지만 정작 위드는 스킬을 시전하려는 순간 주저했다.
어렵게 경험치를 모으고, 퀘스트를 완수하면서 간신히 299의 레벨을 만들었다.
조금만 경험치를 더 채운다면 300이 되는데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한다면 2개의 레벨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도 어쩔수 없지. 조각품에 생명 부여!"
위드는 와이번 조각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조각상에 작은 균열들이 생겨났다.
파사삭!
달걀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듯이, 조각상에서부터 튀어나온 와이번!
위드의 손에서 살아 있는 와이번이 탄생했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탯 790에 따라, 레벨에 맞춰 359로 변환됩니다. 하지만 하늘 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몬스터이기 때문에 패널티로 레벨의 10%가 줄어듭니다.
생명첵에 두 가지의 속성이 부여됩니다.
조각품의 모양과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속성의 수준과 능력치가 다릅니다.
바람의 속성 (100%). 화염의 속성 (30%).
하늘을 날 때에 매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으며, 화염 계열의 마법에 대해서 약간의 면역을 가집 니다.
마나가 5,000 사용되었습니다.
예술 스탯이 10,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조각품 제작이나 다른 예술과 관련된 활 동을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2 하락합니다. 레벨 하락에 따라서 가장 최근에 올린 스탯이 10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 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다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을 소중히 다루어 주십시오. 목숨을 잃으면 다시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괴되었을 경우에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조각사가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적!
생명을 가진 와이번이 만들어진 것이다.
"휴우, 성공한 것인가."
위드는 스스로 만든 창조물을 보았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은 보기에 대단히 좋은 스킬 같다.
예술 스탯에 따라서 능력이 결정되는 조각품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조각품들이 생생하게 움직이면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다. 전투 능력이 다소 열악한 생산직 직업에게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스킬이었다.
대륙을 최초로 통일했다는 황제 게이하르 폰 아르펜! 조각술 마스터인 그가 창조해 낸 조각 기술!
하지만 당연히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가지고 있었다.
소환술사, 혹은 정령사들도 무언가를 불러내서 전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그리고 이 경우에 소환물이나 정령들이 싸워서 얻은 경험치는 고스란히 주인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조각품들은 얻은 경험치를 가지고 스스로 성장을 한다. 예술 스탯에 따라 태어난 많은 조각품들을 성장시킬수록, 조각사가 이끄는 전력도 강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한 것들은, 동급의 소환물이나 정령들보다 좀 더 강하다. 숫자도 제한이 없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부작용이 있었으니, 정령이나 소환물이 죽거나 소멸되었울 경우다.
소환술사의 경우에는 소환물이 죽더라도, 자신이 익힌 스킬에 따라서 그대로 다시 소환할 수 있다.
전투 도중에 정령이 소멸되는 경우는 흔했다. 그래도 약간의 마나 소모 정도만 무릅쓴다면 얼마든지 다시 소환할 수 있으니, 그리 큰 피해는 아니다.
그런데 조각사의 경우에는 달랐다.
생명력이 현저히 심한 타격을 받게 되면 조각품은 생명을 잃어버린다. 산산히 흩어져 잔해가 되어 버린다면 되살릴 수도 없다
레벨 2개와 예술 스탯을 소모해서 만든 조각품의 사망!
어떤 면에서는 거의 자기 자신의 죽음보다도 치명적인 것이다.
'함부로 쓸 기술은 아니야. 그렇지만 예술 스탯이 더 늘어난다면 쓸 만하겠군.'
예술 스탯이 아주 높은 조각사!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전투 능력은 없는 이가 사용한다면, 꽤 쓸 만할 것이다. 싸움을 못하는 조각사가, 희생을 통해서 대신 싸워 줄 수 있는 이를 만드는 것이니까.
위드가 보는 앞에서 와이번은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며 가지개를 켰다. 머리통만도 무려 사람 1명만 했다.
크고 볼록한 배를 불쑥 내밀며 와이번이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주인!"
충성스러운 한마다.
위드는 감격에 벅차올랐다.
"그래. 내가 너의 주인이다."
하지만 와이번은 매우 못마땅한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더니 묻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는가?"
"......"
"발로 조각했나?"
"......"
"이토록 형편없이 태어나다니 실망스럽다."
자존심 높은 조각품!
와이번은 자신의 육체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단히 불쾌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워작 몸집이 커서 제대로 저각을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제대로 손을 안 본 부분이 있다.
대충 완만하게 깎아 놓은 부분들.
와이번은 약간 미완성의, 투박한 조각품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너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나는 너의 부모와 다름이 없다. 앞으로 나를 잘 따르도록 해라. 온몸이 부서지도록 충성을 다해야 한다."
위드는 산고의 고통을 이겨 낸 어머니의 심정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어쨌든 일단 생명을 부여한 이상, 대충 써먹을 작정은 아니었다. 본전을 뽑고도 남도록 철저하게 부려 먹을 것이다.
와이번도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
"차라리 태어나게 하지나 말지."
"......"
굉장히 자존심 강항고 말을 듣지 않는 와이번이었지만, 곧 위드의 철저한 하수인이 되었다.
웬만큼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단번에 넘어가 버릴 것만 같은 사탕발림!
위드의 철저한 아부에 와이번의 자긍심이 최대로 높아진 것이다.
"잘 들어봐. 각진 얼굴이야말로 네가 강하다는 뜻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캬캬캬캬!"
단순한 와이번은, 위드에 의해 한껏 고무되었다.
"주인, 좋다. 역시 살 만한 세상인 것 같다."
"그래. 내가 너를 창조했다 .내 명령에 잘 따르도록 해."
"그래야겠다. 그런데 내 이름이 무엇인가?"
위드는 자신이 탄생시킨 와이번의 이름을 결정해야 했다.
"주인, 좋은 이름을 정해 다오."
와이번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존심 높은 조각품으로서, 명예와 긍지 높은 이름이 지어지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위드는 심사숙고 끝에 이름을 만들었다.
"와일이로 하자."
"뭔지 몰라도 어감이 좋다. 무슨 뜻인가?"
"그건 하늘에서 가장 멋진 놈이라는 뜻이다."
위드가 이렇게 말하자, 와이번은 날갯짓을 했다. 바람이 ㅇ마구 일 정도로 거센 날갯짓을.
"대단히 마음에 든다."
"그래. 너를 위해서 만든 이름이다. 와일아."
순식간에 정겹게 말하는 위드!
"와일이라고 불러 줘서 고맙다. 그런데 주인!"
"왜?"
"나의 형제들, 다른 조각상들이 만들어지면 그들의 이름은 어찌할 것인가?"
위드는 회심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와일이란 연속성까지 가진 이름이었으니까.
"와둘이."
"내 동생이 되는 것인가?"
"그래."
"그러면 그다음은?"
"와삼이."
"매우 마음에 든다."
와이번은 계속 날갯짓을 하며 좋아했다. 그때야 위드는 자신의 판단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새대가리였어!'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에서 조인족들이 그러했듯이, 날개 달린 새들은 역시 대체로 멍청하다!
더군다나 이 녀석은 바위로 조각을 했지 않던가. 새 머리에, 돌 머리! 절대로 지능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럼 출발하자. 나를 태워라."
"알겠다, 주인."
위드는 와이번ㅇ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파닥파닥.
몇 번 날갯짓을 한 후, 와이번은 가볍ㅂ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유노프 협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은 하늘!
까마득한 저 아래 작은 점으로 보이는 것은 대작 조각품과 꽃밭이었다. 그곳에는 서윤이 있었다. 가능한 숨긴다고 조각을 한 것인데, 결국 그녀에게 발견된 모양이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군. 내가 본 가장 예쁜 여자인데 말이야.'
위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 조각품을 보고, 이제는 그녀를 조각한 게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번에 만날 때에는 더 조심해야겠어. 그땐 정말 나를 죽일지도 모르니까.'
위드는 와이번을 타고 미련없이 유노프 협곡을 떠났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와이번은 지상의 어떤 몬스터도 건드리지 못한다. 복잡한 지형과 몬스터의 영역을 단숨에 돌파하며 하늘을 날았다.
이미 유노프 협곡의 끝 자락 부근에 있었던 위드는, 금방 목적지인 유로키나 산맥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서윤은 웃으려고 했다. 조각상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싶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눈물이 흐르지만 웃을 수 있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실룩실룩.
붉은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보조개가 파일 듯하였지만, 완전한 미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하게 인상을 쓴다고 여길 수도 있는 상황!
'웃는 것도 안 되는 거야?'
이번에는 얼굴을 찡그렸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여전히 말도 못하고, 웃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런 어색한 미소조차도 예쁘고, 찡그린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새하얀 피부의 미소녀가 자신을 닮은 조각상과 함께 있으니 극도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유노프 협곡의 산과 절벽을 배경으로 한 소녀와 조각상의 그림!
서윤은 무언가 세상이 약간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실컷 울고 난 기분이 더없이 후련했다 그녀를 둘ㄹ싼 분위기가, 아주 조금쯤은 달라져 있었다.
따가닥따가닥.
상인들이 물품을 운반하는 짐마차들이 이동을 하고 있었다. 마차들은 긴 여행 끝에 어느 번화한 성에 도착했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상인은 마차 지붕을 보며 말했다.
"무사님, 도착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마차 지붕 위에 누워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여기가 프레인 왕국이로군."
넓은 어깨와 검게 그을린 얼굴.
단순하게 생긴 외모에, 짧게 자른 머리가 무식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검사백사십구치!
무사 수행을 떠난 검사백사십구치가 프레인 왕국에 도착한 것이다.
사실 검사백사십구치의 레벨은 동료들보다도 유난히 낮은 편이었다. 아직도 레벨 20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는데, 거기에는 물론 다 이유가 있었다.
레벨 5때 숲으로 혼자 들어가서 사슴을 사냥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사슴 피가 그렇게 좋다지."
쇠로 된 빨대를 사슴의 목에 억질 꽂으려고 하다가 죽기를 수차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괜찮아, 무사는 검 한자루만 있으면 되니까."
검사백사십구치는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도 허름한 옷 한 번, 검 한 자루가 그의 전 재산이었다. 사냥을 하면서 번 돈은 모두 검을 바꾸거나 음식을 먹는데에 투자를 한 것이다.
'검사에게는 검만 있으면 된다. 방어구는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검사백사십구치는 프레인 성의 이름난 전사들을 찾아다녔다.
검사, 기사, 워리어, 성기사.
무기만 다룰 수 있다면 직업은 가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보다 강한 자면 되었다.
"당신은 이 도시에서 꽤 강한 자라고 들었습니다. 승부를 청합니다."
도전을 받은 이들은 어이없어했다. 검사백사십구치의 허름한 복장을 보며 오히려 되물었다.
"지금 제정신이세요? 제 레벨은 280대입니다. 그쪽은 레벨도 낮고 제대로 된 장비도 없는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도전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도전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고 승낙했다. 일종의 여흥거리로 생각한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검사백사십구치가 이번에 상대하는 자는 성기사였다.
성기사는 왠지 감이 좋지 않았다.
'대충 상대해도 되겠지만, 저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에 대해서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제대로 싸워 주자.'
"홀리 쉴드!"
신성한 방패가 소환되었다. 성기사의 기본 스킬 중 하나였다.
"태양신의 가호! 전사의 축복!"
성기사는 육체 보호 마법과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축복까지 사용했다. 위급한 순간에는 자체 치료를 하는 능력까지 사용을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웬만하면 성기사와의 결투는 피하려고 한다. 피해를 보더라도 약간의 틈만 생겨나면 쌩쌩하게 회복을 할 수 있는 성기사는 꽤나 까다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세인트 블레이드!"
성기사의 검이 흰빛을 내며 타올랐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신성한 불길이 일어났다. 마나의 소모를 아끼지 않고 광범위 공격을 사용하는 것이다.
"갑니다."
성기사가 검을 휘두르자, 일대가 흰 불에 의해 타올랐다.
검사백사십구치는 흰 불 사이로 뛰어들었다.
'광범위 스킬이다. 큰 마법일수록 빈 틈은 있기 마련. 가장 약한 곳으로 달린다.'
검사백사십구치는 생명력의 하락을 무릅쓰고 불속을 달렸다. 그리고 성기사에게 다가가서 검을 날렸다.
"머리!"
성기사는 깜짝 놀라서 검을 들어 막았다 그러자 스르륵, 막고 있는 검을 타고 뱀처럼 올라오는 상대의 공격!
"손목!"
이번에는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성기사는 검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런데 검사백사십구치의 검은 다시금 다가온다.
성기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도 수많은 전투를 해보았다. 대체로 스킬의 강함에 의해서 승부가 결정 나는 싸움들.
애초에 레벨의 차이가 심하면 결투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레벨 280까지 오르는 동안에 어지간한 전투에는 단련이 되어 있었다.
'제법 하는데.'
성기사는 검을 가슴까지 끌어 모았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방출시켰다.
"배쉬!"
검에 힘을 모아서 강하게 밀어 친다. 만만찮은 이 적의 공격을 아예 힘으로 꺾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검사백사십구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검을 변화시켰다. 상대방을 직선적으로 공격하던 검이, 발목과 허리의 움직임에 따라서 부드럽게 흘러갔다.
파악!
검은 성기사의 옆구리를 가볍게 베고 지나갔다. 미미한 생명력의 저하. 피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초반에 세인트 블레이드를 뚫고 들어온 검사백사십구치의 생명력이 20% 정도나 떨어진 반면에, 성기사가 입은 피해는 그야말로 가벼운 타격 정도에 불과했다. 방어구가 대부분의 공격력을 흡수한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성기사에게서는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구경을 하기 위해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 사람......"
"저런 복장으로 강한 사람들만 찾아다니면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몬스터나 강자들을 오로지 검술로만 꺾으면서 다닌다는 자들."
"그 사람 중의 1명이다!"
이미 검치들의 무사 수행은 베르사 대륙 전역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었다.
검사백사십구치는 스킬도 약하고, 레벨도 낮다. 무예인이라고 해도 후반으로 갈수록 80개의 레벨 격차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변변한 아이템도 없어서 공격에 쉽게 취약함을 드러낸다.
검사백사십구치의 목적의 단 하나였다.
'나보다 더 강한 자와 싸운다. 그것뿐이다. 검이란 싸울수록 강해지는 것!'
먼저 판단하고 먼저 움직인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레벨을 가진 상대에게 이기는 경우보다는 질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스킬이나 마법의 위력은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사백사십구치의 상대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사낭터에서 몬스터와도 싸웠다.
지리나 몬스터의 종류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만나면 일단 싸우고 그 후에 몸으로 판단한다.
검사백사십구치. 그뿐 아니라 다른 검치들의 목표도 모두 단순히 높은 레벨이 아니었다. 더 강한 상대와 싸우면서 향상되는 집중력!
능력이 부족하기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검술과 몸놀림뿐이었다.
베르사 대륙을 헤매면서 강자와, 몬스터들고 ㅏ싸우는 검사백사십구치. 검육치에서부터 검오백오치까지 모두 자신만의 검을 갈고닦고 있었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과 여인을 도우며 무사 수행을 하는 것이다.
그 덕에 과거처럼 레벨이 빠르게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전투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들을 쌓고 있었다.
검치와 검둘치,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는 세라보그 성에서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먹고 있었다.
"애들이 없으니 허전하구나."
검치의 말에 검둘치가 빙긋 웃었다.
"그래도 이런 자유로움도 흔치 않잖습니까."
"암, 그렇지."
검삼치도 한마디 거들었다.
"수련생 애들도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사치와 검오치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검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먼저 강해져야 됩니다. 경험과 투지가 있다면 검이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지요."
"부족함을 알아야 그 나머지를 채워 줄 수 있습니다. 먼저 가르쳐 주는 건 해답이 아닐 때가 많죠. 몸으로 겪으며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된 수련생들은 더 많으 시도와 노력을 하게 될 겁니다."
"그렇지."
검치는 흡족해하면서 술과 음식을 먹었다.
"역시 무사 수행을 보내기로 한 판단은 현명한 것이었어."
"그렇습니다, 스승님."
검둘치도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눈앞에 그득한 음식들을 먹었다.
이 음식들은 전부 수련생들의 돈으로 주문한 것이었다.
무사 수행에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 돈이 많을수록 진정한 수행과는 멀어진다.
바로 그러한 논리로 수련생들이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가로챈 것이다.
산맥에는 이미 오크나 다크 엘프들, 절망의 평원에서 사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군웅들, 몬스터들!
불사의 군단과 싸우기 위해서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뭉쳤다.
"도망친 줄 알았다."
네크로맨서 바라볼이 위드를 향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그러나 정작 위드가 인상을 쓰자, 그는 조용히 움츠러들었다.
뚱뚱하고 거만한 오크 카리취!
유로키나 산맥에 돌아와서는 조각 변신술을 통해 다시금 그 모습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흉하게 돋아난 이빨이나 사악하게 찢어진 눈매, 빗물을 그대로 머금을 것처럼 생긴 코!
사상 최악의 인상을 가진 오크 카리취의 모습에서는 절대적인 카리스마가 풍겼다.
위드가 물었다.
"불사의 군단은?"
"이제 이틀에서 사흘 정도 남았다. 리치 샤이어는 여기서 동쪽인 타호마칸 산의 지하에서 언데드 군단을 양성하고 있다. 이제 곧 준비가 끝나면 진군을 개시할 것이다. 대지를 짓밟고 모든 것을 죽음으로, 그들만의 영원한 삶으로 만들 언데드 군단의 진격이다."
불사의 군단이 진군한다는 동쪽의 산에는 지하로 연결된 큰 구덩이가 있었다. 그곳에서 불길한 붉은 기운이 솟아 나왔다.
어둡고 탁한 빛깔.
구덩이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로 하늘 전체가 점점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대단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네크로맨서 바라볼이 설명했다.
"불사의 군단은 하늘이 완전히 붉게 변하면 진군을 개시한다. 샤이어의 마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때에 위드의 귀에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위드님! 저 지금 산맥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마판의 귓속말이었다.
로자임 왕국에서부터 은 화살과, 제련용 은을 마차에 가득 싣고 온 그가 절망의 평원을 지나 벌써 도착한 것이다.
상인은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택할 수 없는 직업이다. 물건을 싸게 구입하고 비싸게 판매하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다. 각 지역의 시세를 꿰뚫고, 도시에 있는 주민들과 친밀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전투 계열 직업들은 던전이나 필드에서 사냥을 하면서 강해지지만, 상인은 여행과 만남을 중요시한다. 주민들과의 친밀도와 베르사 대륙에 흐르는 정보에 가장 민감한 부류가 상인들이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상인들은 쉽게 받아들여지고, 존중을 받는다.
그 덕에 상인들은 별별 퀘스트를 다 받는다. 거리에서 잃어버린 리본을 찾아 달라는 것에서부터 책을 대신 읽어 달라는 의뢰, 가게를 잠깐 봐 달라는 퀘스트까지 해 볼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정보를 입수하다 보면, 그중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뢰도 나온다.
마을이나 성에 투자도 할 수 있다. 일종의 공헌도를 올리면 물건도 더 싸게 살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팔지 않는 특별한 물건도 구입할 수 있다.
큰돈을 벌어서 마을을 통째로 구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마판의 꿈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되죠? 마차로는 산맥을 넘기가 힘든데요.
-거기서 기다리세요. 곧 마중 나갈 이를 보내도록 하죠.
위드는 손가락으로 오크들을 가리켰다.
"너희들, 취익!"
"췻췻췻! 뭐든 시켜라."
"아래에 인간 있다. 마차에 있는 물건들도 함께 가져와라. 겁주지 말고, 잘 데려와. 취치치이익!"
"알겠다. 취췩!"
오크들은 군말 없이 내려갔다.
마판은 느긋하게 위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를 끌고 절망의 평원을 건너와서 마주한 유로키나 산맥! 나무로 가득 찬 울창한 삼림에는 수많은 새들이 지저귀고, 평원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는 생명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길 잘했구나!"
마판은 이곳의 경치에 흠뻑 취했다.
유로키나 산맥 앞에는 강이 하나 흐르고 있다. 맑은 강물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살고, 평원에서는 사슴이나 기린과 같은 짐승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산은 역시 최고야."
마판은 유로키나 산맥을 보면서 크게 만족했다.
상인인 그는 가능한 안전하게 닦인 길들 위주로 이동을 하기에, 산을 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굳이 떠올린다면 위드와 함께 중앙 대륙으로 건너갈 때의 바르크 산맥 정도!
그곳은 바위와 절벽이 많아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면, 유로키나 산맥은 크고 웅장했다. 나무들도 많고, 저 높은 정상 부근에는 흰 눈도 쌓여 있다.
바람이 조금 쌀쌀하지만, 이 정도 기후라면 여행을 다니기에는 딱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판은 이 지형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꼈다.
"내가 어디서 봤던가? 여긴 틀림없이 처음 와 보는 것인데......"
첩첩산중!
산과 산이 겹쳐있는 절망의 평원 너머. 마판이 와 본 적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 지형을 볼 때마다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이다. 완전히 똑같진 않더라도, 산 정상에 쌓인 눈이나 자욱한 구름들이 그대로 빼닮아 있었다.
"대체 어디서 본 거지?"
그때 산맥을 타고 오크 1천 마리가 내려왔다. 험상궂은 오크들은 마판이 어찌 손을 쓰기도 전에 주위를 포위했다.
"취익! 마차, 짐. 다 내놔라."
오크의 말을 들으면서 마판은 머릿속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가물가물하던 무엇이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맞다!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에서 봤던 그 퀘스트의 산들과 비슷해."
마판의 가슴이 마구 설레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오크들은 그의 무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
오크들은 글레이브를 흔들며 물었다.
"무슨 헛소리냐. 취치치잇!"
"인간. 카리취가 데려오랬다. 취췩!"
오크들은 마판의 짐을 들고 산맥으로 올라갔다. 마판은 죄인처럼 오크들에 의해 질질 끌려가야만 했다.
겁에 질려서 오크들을 따라온 마판은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크 엘프의 성채를 보면서부터는 웃음으로 입가가 찢어질 듯이 변했다.
'역시 틀림없어. 여기가 그곳이다.'
마판은 확신하면서 힘차게 산맥을 올라갔다.
정상에는 오크 카리취로 변신해 있는 위드가 있었다.
"수고하셨스니다. 마판 님. 취익!"
취익 소리가 이토록 달콤하게 들릴 수가 없다.
마판은 카리취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가 위드임을 알았다. 그가 아니고서야 자신에게 알은척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위드님! 이건 대체......"
"자세한 이야기는, 췩!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에 하기로 하죠. 루실!"
위드는 유배자의 마을에서 만났던 대장장이 루실을 불러냈다.
"취칫. 여기 있는 은. 전부 녹여서 무기에 씌워라."
"알겠다."
인간 대장장이들 수백 명이 달려들어서 마차에 있는 제련용 은 덩이들을 꺼냈다.
오크나 다크 엘프,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 은 도금을 하게 되면, 언데드들에게 훨씬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거만한 다크 엘프들은 절대로 고분고분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한마디씩 토를 달았다.
"겨우 은이라니."
"무슨 보검 정도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미스릴 정도는 씌워 줘야 되는 것 아닌가?"
"은 따위의 저급한 것을 도금하고 싸워야 하다니 참으로 한심하군!"
위드가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사 모은 제련용 은을 다크 엘프들은 싸구려라고 무시하는 것이다.
그나마 오크들은 순수하게 좋아했다.
"나의 무기가 강해진다. 취익!"
"번쩍번쩍 빛난다. 취이이잇!"
단순한 오크들이었기에 은도금을 하는 것에도 매우 만족했다.
이때 위드는 불사의 군단과 싸울 전략을 급조해 냈다.
'다크 엘프들을 선봉으로, 오크들은 후방에 배치해야겠다.'
절대로 뛰어나지 않은 전략가의, 사적인 감정이 듬뿍 담긴 배치였다.
마판이 가져온 은 화살은 다크 엘프들에게 곧바로 분배를 해 주었다. 물론 그들은 마법사이지만, 뛰어난 궁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크에게는 화살을 주더라도 조악한 활 때문에 제대로 된 위력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은 화살은 다크 엘프들만 사용하게 되었다.
무기까지 갖춰진다면 전쟁 준비는 거의 막바지에 이른 셈이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이 힘을 합쳐서 진행한 공사는 이제 거의 끝나 가고 있다.
다크 엘프의 성 주변에 8개의 성벽이 완성되었다. 정면에는 땅을 깊이 파 놓기도 했다. 산이기에 고도차가 심해서, 공성전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다크 엘프들도 전부 모이고, 오크들도 바글거린다. 또한 잡혀 온 인간들도 모두 풀려나서, 성채들을 보강하는 데 투입되었다. 그 덕분에 성채는 굉장히 웅장하게 완성되었다. 아주 멋있고 거대할 정도로!
산등성이를 따라서 축조된 성벽들은 광범위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각 산 정상의 분화구에는 호수들이 있다. 여기에도 오크들이 투입되어 수문을 만들어 두었다. 미리 위드가 지시한대로 공사를 거의 다 끝마쳐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까이서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바위들이 제대로 맞물려 있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무시한 오크들이나 게으른 다크 엘프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래도 언데드들이 더 멍청하니까 괜찮겠지."
위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와이번의 양상을 개시한 것이다.
물론 1개를 만들 때마다 레벨이 2개씩 떨어지는 만큼 대량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100개를 한꺼번에 만들어 버리면 초보로 전략하게 될 수도 있다. 어차피 그렇게 만들 시간도 없지만 말이다.
"공짜는 없는 법. 난이도 A급의 퀘스트를 깨려면 나도 나름대로 투자를 해야지."
위드는 눈물을 머금고 조각품을 만들었다.
하나를 만들 때마다 2개씩 뚝뚝 떨어지는 레벨.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투자였다.
불사의 군단이 진격하기까지 남은 이틀의 시간 동안, 위드는 9개의 와이번을 더 조각하고 생명을 부여했다. 그로 인해 레벨은 279로 하락하고 말았다.
불사의 군단
"붉은 해가 저 검붉은 연기에 가려진다. 취익! 대지는 어둠에 잠기고, 새들은 노래하지 않는다. 췩췩!"
위드는 바위에 올라서서 자신이 생각하는 멋진 대사들을 중얼거렸다. 퀘스트가 끝나면 명예의 전당에 올리게 될 테니, 역시나 폼을 잡는 것이다.
위드는 뒤로는 오크들 100만과, 다크 엘프 13만 정도가 도열해 있었다.
사실 오크 100만이라고 해도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징글징글하게 많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3만, 5만을 넘어서 오크들은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다 보이지도 않았다. 산에 나무보다 오크들이 더 많다!
피부가 새까만 다크 엘프들도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아마도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위축될 수밖에 없으리라. 산맥은 그야말로 몬스터로 바글바글한 것이다.
능선을 타고, 성벽을 방어선으로 해서 아래에서부터 정상까지 오크와 다크 엘프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외에도 절망의 평원에 있는 마을에서 모여든 인간들. 로자임 왕국 병사와 기사, 프레야의 사제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상당수가 몬스터라고 해도, 이토록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 위드는 기분이 좋았다. 이에 흥이 난 위드는 바위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 취취취익! 누가 누가 이기나. 내가 내가 이기지. 취취췻! 언데드들은 사랑스럽지. 경험치, 경험치! 아이템! 어서 빨리 나타나서, 취취췩!"
최악의 음치!
박자나 운율 감각 따위는 전혀 없는 위드는 랩을 하듯이 췩췩거렸다.
그의 노래에 다크 엘프나 오크들은 심히 괴로워했다.
"제발 누가 저 노래를 멈추게 해 줘!"
"오, 오크를 모욕하는 노래다. 취익!"
"우리 종족의 수치, 굴욕, 절망이다. 취췻!"
오크들이 분개할수록, 위드는 더욱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그때였다.
쿠르르릉!
산이 쩌렁쩌렁 울었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으 정도로 지면이 출렁거리고, 하늘의 검붉은 빛이 넓게 퍼져 나간다.
네크로맨서 바라볼이 말했다.
"이제 불사의 군단이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지 못한다면 평화를 찾을 수는 없으리라. 삶과 죽은의 섭리를 지켜야 한다. 죽음이 안식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위드는 노래를 멈추고, 정면을 주시했다.
저 멀리 있는 구덩이에서부터 좀비와 구울, 스켈레톤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줄을 이어서 계속 빠져나오는 언데드의 군대.
달그락달그락.
스켈레톤의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고, 좀비들의 몸에서는 푸른 연기가 퍼져 나왔다.
좀비들은 꽤나 강한 독을 가지고 있어서 제때에 해독을 해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쿵쿵쿵!
그리고 크기가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구울들이 대장 격으로 좀비와 스켈레톤들을 이끌었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빠을 가졌으며, 육체적인 능력까지 뛰어난 구울!
"살아 있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와 같이 만들어 주자."
"친구가 되는 거다."
물귀신 같은 말을 내뱉으며 구울은 언데드 군단을 지휘했다.
언데드의 군단은 매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켈레톤들이 딱딱 정확하게 줄을 맞춰서 이동을 하고, 좀비들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전진한다.
푸스스스.
언데드 군단 앞에 있는 나무와 풀들이 독기에 의해 시들고 말라 죽었다.
그에 비해서 오크나 다크 엘프들은 전혀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 언데드들이다. 췩췩췩!"
"이 지독한 놈들. 취치이익!"
"어쩌지. 취익!"
"나쁜 냄새가 난다. 우리처럼 예민한 다크 엘프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냄새야."
"나처럼 우아한 엘프가 저런 시체들과 싸워야 하다니 슬픈 일이야.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어."
언데드 군단의 등장에 오크와 다크 엘프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죽은 이들을 보면서 군대의 사기기 최하로 떨어진 것이다.
언데드 군대가 갖는 공포의 효과였다. 살아 이쓴 생명체들은 언데드 군단과 싸울 때에 제 능력을 다 발휘할 수가 없다.
상대적으로 더욱 약한 로자임 왕국 병사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렸다.
"지, 집에 돌아가고 싶어."
"적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부란과 베커, 호스람, 데일 들이 백부장답게 병사들을 다독였다.
"괜찮다. 고통은 한순간에 불과할 뿐이야."
"너희들을 아레 되어서 즐거웠다."
"죽어서 다시 만나자."
병사들은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울음을 터트리는 병사도 있었다.
로자임 왕국에서부터 각종 물품을 가져온 마판도 구경을 위해 이곳에 남았다.
"저게 불사의 군단!"
마판은 머리카락 끝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언데드의 군대가 파죽지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좀비는 느리지만 천천히, 스켈레톤은 뼈마디를 삐걱거리면서 거침없이!
스켈레톤들이 들고 있는 녹슨 칼들이 이렇게 두렵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꿀꺽!
마판의 목젖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저걸 위드 님은 어떻게 막으려고......'
마판은 자신도 모르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듬직한 오크 카리취로 변신한 위드가 있었다.
위드는 완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주 험악한 인상을 한 채로 느긋하게 있었다.
'좀비나 스켈레톤, 구울 등이 10만 이상인가?'
불사의 군대의 선봉들!
위드는 매우 여유롭게 기다렸다.
몬스터들은 전혀 겁이 나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때려 잡으면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위드만의 생각일 뿐!
오크나 다크 엘프들은 완전히 공포이 질려 있었다.
위드는 스켈레톤들이 거의 벽에 다가왔을 때에야 명령을 내렸다.
"더러운 놈들. 취익! 씻지도 않고 오는군. 역겨운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는 것 같다."
"......?"
오크들이나 다크 엘프들은 궁금했다. 위드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언데드한테 죽으면 목욕도 못한다. 때가 주룩주룩 흐르고, 머리카락은 몽땅 빠진다. 밥도 못 먹는다. 탐스럽게 볼록한 배가 굶주려서 완전히 홀쭉해질 것이다. 알아서들 싸워라!"
"취익취익!"
"언데드를 죽이자!"
유별나게 깔끔하게 구는 다크 엘프들, 식욕이 왕성한 오크들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글레이브를 뽑아 들고 언데드와의 전투를 개시한 것이다.
오크들은 방패로 막고,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다크 엘프들은 투창을 꺼내 들고 스켈레톤들의 빈틈을 노렸다.
각 종족이 생존을 걸고 맞부딪치는 전투!
마판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위드의 한마디에 오크와 다크 엘프들이 사기를 회복하고 싸우는 것이었다.
'역시 위드 님이구나!'
그러나 사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위드는 평상시에 먹을 것에 유별난 집착을 보이는 검치 들을 알고 있어씨에 오크들을 다루기가 편한 것뿐이었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은 맹렬히 싸웠다.
처음부터 유리한 높은 지형에서 좀비나 스켈레톤들을 상대하고 있어씨에 그다지 고전을 하지는 않았다. 오크 몇 마리가 죽기도 했지만, 협공을 당해서 운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였다.
좀비나 스켈레톤들은 일반적으로 나오는 같은 유의 몬스터들보다는 조금 강해도, 특별히 세진 않았다.
상당한 피해는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구울들이 입히고 있었다.
"사, 삶을, 포기하라. 치, 친구가....필요해."
구울들은 좀비들을 내던져서 독을 퍼트리고, 나무를 뽑아서 오크들을 강타했다.
그럴 때마다 오크들은 엄청난 생명력의 저하를 겪어야 했다. 일반 오크병들은 감히 구울과 맞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드의 지시에 따라 오크 투사들이 합공으로 덤벼들어서 구울을 제압했다.
오크들의 무서운 숫자!
불사의 군단을 압도하는 규모로 좀비, 스켈레톤들과 싸워서 이기고 있었다. 약간의 피해가 있다고는 해도, 거의 무시해도 될 수준이었다.
구울의 주특기는 시체를 먹고 몸을 회복시키고,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죽은 오크나 다크 엘프들이 거의 없어 그 특기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로자임 왕국 병사들도 열심히 활약했다. 위드의 편애 속에서 사제들의 축복과 집중적인 치료를 받으며 좀비나 스켈레톤들을 사냥했다.
구울이 근처에 오면 왕실 기사들이 상대하면서, 병사들이 죽지 않게 보살폈다.
"부란, 베커, 호스람, 데일! 병사들을 데리고 진입해라. 사제들은 병사들을 집중해서 치료하라."
위드는 잔당을 소탕하는 데에 로자임 왕국 병사들을 적극 활용했다. 왕실 기사들이 안전을 지키는 가운데, 어지간한 좀비나 스켈레톤들을 병사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3시간 정도의 전투 끝에 기세등등했던 언데드의 군단은 거의 힘을 잃고 지리멸렬했다. 여전히 전투는 지속되고 있었지만, 이제 승기는 거의 오크들에게 넘어온 상태였다.
"우와아!"
마판은 열렬히 박수를 쳤다.
"대단합니다! 언데드 군단과 오크들의 전투! 역시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네요."
가장 좋은 자리에서 최고로 멋진 장면을 보았다.
하지만 위드의 긴장은, 전투 전과 비교하여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었어. 이렇게 쉽게 풀리고 나면 꼭 뒤통수를 맞더군!'
위드는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렸다.
전투에 참여한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을 뒤로 물리고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상처가 심한 오크들은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위드가 있는 장소까지 데려오도록 했다.
"붕대 감기!"
파라라락!
위드의 손에서 붕대가 미친 듯이 풀렸다. 오크들의 부상 부위에 간단한 지혈 약초를 바르고 붕대를 단단히 감아 주었다.
고급 3레벨에 이른 위드의 신기에 가까운 붕대 감기 기술이 오크들의 상처를 막아 주고, 생명력의 회목을 돕는다. 당장 죽을 정도만 아니면, 웬만큼 큰 상처는 붕대 감기로 전부 해결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위드는 사냥을 하면서, 그만큼 많이 맞으면서 붕대를 감아 왔다.
마나를 채우기 위해 휴시이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부러 맞았다. 인내력 스탯을 향상시켜서 방어력을 가오하하기 위해서!
그 덕택에 인내력과 붕대 감기 스킬은 최고 수준이었다.
"고맙다. 취췩!"
위드는 오크들을 살려서, 최대한 피해 없는 전투를 이끌었다 체력도 안배해서 오크들을 몇 개의 부대로 나눠 하나위 부대가 무리해서 오래 싸우지 않도록 했다.
위드가 만들어 준 음시을 먹고, 붕대를 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싸우는 오크들.
"역시 체력 회복에는 음식이지. 모두 먹고 싸워라. 취칫!"
"고맙다. 카리취!"
다크 엘프들에게는 풀죽을 쑤어서 주었다. 엘프들의 특성상 풀을 좋아하기에 별다른 무리는 없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오크들에게는 고깃국을 먹였다.
오크들은 국에 손가락을 넣고 저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고기는 없었다.
"카리취, 카리취!"
"왜 부르냐, 굴취."
"이거 고깃국 맞나. 췻."
"맞다. 취칙."
"취익. 근데 왜, 왜 고기가 하나도 없나."
토끼가 수영을 하고 지나간 것 같은 허전한 고깃국! 하지만 저 식성 좋은 오크들을 먹이려면 고기가 웬만큼 많아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오크들은 겨우 포만감을 채울 정도의 음식을 먹으면서 싸워야 했다.
위드는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몬스터와 싸우는 부대를 특성에 맞게 지휘하고, 사망하는 오크들이 나오지 않도록 잘 살폈다. 그리고 붕대를 감아 주고 음식까지 즉석에서 조리하고 있으니, 손이 10개라도 바쁠 지경이었다.
"스킬. 마인드 핸드!"
위드는 비장의 스킬까지 시전했다.
손재주가 고급이 되면서 터득한 마인드 핸드. 전설의 장인의 손을 이용해서 붕대를 감고 요리를 했던 것이다.
드디어 기세등등하게 나왔던 좀비와 스켈레톤, 구울들은 모두 땅에 쓰러졌다.
은도금을 한 글레이브가 언데드 몬스터들을 회생 불가능으로 만들었다.
"수고했네. 불사의 군단을 물리쳤군."
네크로맨서 바라볼이 축하의 말을 던질 때에도 위드는 방심하지 않았다.
'절대로 이 정도에서 끝날 리가 없어!'
통솔력과 투지, 카리스마가 없으면 오크나 다크 엘프들에게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못한다.
또한 전황 전체를 살피는 넓은 시야. 멀리서 전투 장면만을 보고도 어느 쪽이 불리한지를 판단하고, 전력을 추가하거나 축소시킬 수 있는 이는 흔치 않았다.
위드가 지휘를 했고, 각종 생산 스킬들로 인해서 오크나 다크 엘프들의 전투력이 보완되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난이도라면 진혈의 뱀파이어족 처리보다 오히려 조금 쉬울 지경이다.
'이대로 끝은 아닐 거야.'
위드는 명령을 내렸다.
"취이익! 오크들, 다크 엘프들은 성벽 뒤로 철수한다. 혹시 모를 다음의 전투를 대비하라."
"췩췩. 전투는 끝났다!"
"우리가 이겼다!"
하지만 승리로 들떠 있는 오크들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크 엘프들도 마찬가지.
글레이브를 휘두르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오크, 온갖 폼을 잡으며 좋아하는 다크 엘프들.
각 오크 부족을 이끄는 오크 로드들부터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으니 다른 이들도 흥청망청 기뻐하는 것이었다.
"위드 님. 축하드립니다."
마판도 기뻐하고 있었다.
이처럼 모두의 긴장이 풀릴 때에 위드의 경계심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위드가 고함을 질렀다.
"모두 어서 성벽 뒤로 돌아와! 취치치칙!"
-스킬: 사자후를 사용하셨습니다.
사자후 스킬의 영향 범위에 있는 모든 아군의 사기가 200% 상승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혼란 상태가 해제됩니다.
5분간 통솔력이 220% 추가 적용됩니다.
"며, 명령이다!"
"위대한 권위가 담겨 있는 음성이다."
"어서 돌아가자."
위드의 통솔력이 강화되면서, 오크와 다크 엘프들은 곧바로 성벽 뒤로 돌아왔다. 통솔력의 강화에 따라 절대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때 불사의 군단이 나왔던 구덩이에서 몬스터들이 우수수 뛰쳐나왔다.
긴 낫을 들고 있는 하급 사신. 리퍼!
비명을 지르는 악령, 벤시!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미라, 머미!
구울이나 스켈레톤, 그 외에 유로키나 산맥에 있는 짐승류 언데드 몬스터까지!
"쿠헬헬헬."
"상아 있는 것들을 죽이자."
"너희들의 목숨을 거두겠다."
"끼야아아악!"
언데드 몬스터들의 대대적인 기습이었다.
개별적인 능력으로 따지더라도 좀비나 스켈레톤들과는 비할 수 없다.
구울과 스켈레톤 워리어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숫자를 채우는 정도였다. 방금 전에 보스 역할을 하더 구울이 약한 축에 들었다.
"이럴 수가!"
마판은 망연자실했다.
구덩이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언데드 군단의 대공세. 엄청난 규모의 무리가 마치 발광이라도 하듯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전의 전투는 그저 어린애들 장난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번의 군대가 보여 주는 위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에 오크나 다크 엘프들이 승리에 희희낙락해서 그 자리에 머물렀더라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수 시간에 걸친 전투를 압도적으로 이기고 난 직후였다. 마음이 조금쯤은 풀어졌을 만도 하다. 그런데 약간의 방심도 없이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지휘관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과연 위드 님이다!'
마판은 진심으로 감탄했지만, 위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이 더러운 놈의 재수!'
뭘 하든 깔끔하게, 제대로 풀렸던 적이 없다.
직업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떤 곳에서도 남들처럼 멋지고 편하게 살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달빛 조각사가 된 것까지야 이젠 인정을 한다. 그러나 조각사로서의 인생도 그리 순탄치 않았다.
가진 예술적인 능력이 없다 보니 오로지 노가다!
기왕이면 크고 거창한 것을 만들자!
예쁜 여자라면 필히 조각을 해 보자!
그런 이유로 인해 대작을 만들고도, 대상으로 했던 서윤에게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것이다.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멋들어진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는 위드로서는 이렇게 쉽게 이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따. 그래서 혹시나 하며 군대를 안전한 곳으로 물렸던 덕에 언데드 군단의 기습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오크들은 전열을 정비해라."
"취익! 알겠다."
잠깐 동안 지속되는 사자후의 효과 덕분에, 오크 로드들은 위드의 명령을 잘 들었다.
오크 로드들은 정해진 위치에서 방어진을 편셩했다. 성벽 위에 상당수의 오크들이 배치되고, 성벽 뒤에도 오크들이 우글거렸다.
"죽여라!"
"우리와 죽음을 함께하자!"
"끼에에에호호!"
벤시들의 비명 소리는 상대방을 절망에 빠뜨리는 효과가 있다.
"아, 안 되겠어."
"우리는 너무나도 약해."
"저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 이젠 그만 죽고 싶어."
심약한 다크 엘프들은 금방 우는소리를 했다. 오크들도 글레이브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위드는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에게 명령했다.
"준비했던 축복을 개시해라."
"예! 알겠습니다, 위드 님."
네크로맨서들을 처리하기 위해 로자임 왕국에 있는 프레야의 신전에서 온 사제들 50명! 그들이 오크들을 축복해 주었다. 절망과 혼란의 힘을 이겨 내고 싸울 수 있는 노래를 불렀다.
오오! 아름다우신 프레야 여신님! 당신의 고운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 그 은혜가 한없이 깊어라
아름다은 여신이여. 오늘밤 저물어 가는 하늘을 보며 그대의 얼굴을 기억하니
제가 그대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한눈에 반해 버렸기 때문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사제들은 지난번의 퀘스트를 통해 조금씩 능력치가 상승했다. 레벨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프레야 교단의 공헌도가 늘어나면서 찬송가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레야 교단의 찬송가는 남자가 여자에게 불러주는 사랑의 노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튼 효과는 막강한 편이라 오크와 다크 엘프들은 금방 절망을 회복하고 전투를 개시했다.
성벽 앞에는 지형의 고저차를 극대화하기 위해 큰 도랑을 파 놓았다.
훨씬 유리한 지점에서 싸우는 오크와 다크 엘프들.
유배자의 마을에서 온 인간들도 전투에 큰 도움이 됐다. 대장장이들은 은 화살을 만들고, 글레이브에 은도금을 했다. 그리고 사냥꾼들은 산에 온갖 함정들을 파 놓았다.
구울과 머머들은 성벽 아래에서 자신들의 몸에 밀려 허우적거리면서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끼에효효효!"
반면에 벤시들과 몇몇의 스펙터, 유령체의 몬스터들은 성벽을 그대로 통과했다. 일부는 오크들의 몸에 빙의를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산성의 액체를 뿌려 대었다.
좀 전의 싸움과는 비할 바가 없는 대규모의 전투였다.
마판은 이번에도 툭 튀어나온 바위 위에 있는 위드를 보았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장소는 유로키나 산맥에 있는 높은 산에서도 특히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곳이었다.
지휘하기에는 취적의 장소다.
마판은 상당한 위긱가 찾아왔는데도 위드의 표정이 여전히 변함없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