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 주는 능력
『아직 끝이 밝혀지지 않은 던전, 크라마도에 들어오셨습니다.
혜택: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율 2배(6일 11시간 남음)』
던전 크라마도의 최초 발견자 메시지를 위드는 받지 못했다. 헤겔 일행이 먼저 발견한 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서 몬스터 크라마노임들은 이미 되살아나 있었다.
흰 도마뱀 같은 물컹한 존재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이런 던전을 발견하느라 나이드의 고생이 많았겠군."
로열 로드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다크 게이머들도 추적과 조사를 하지만 그럼에도 중앙 대륙에서 새로운 던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
나이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길드라스의 이상한 이야기 책자!
그 책이 없었다면 이 던전을 찾기란 어려웠으리라.
마른나무들의 숲은 좋은 사냥터도 아니었고, 밤에는 그롤러들이 정신없이 덤벼들기 때문이었다.
"역시 책이란 골고루 읽어야 돼."
문학 소설, 역사책, 위인전, 경제 서적. 이런 것들만 양서가 아닌 것이다. 특히 외국의 유명한 책들만 가치가
있다고 하는 풍토가 위드는 납득이 안 되었다.
음서!
사나이들의 가슴을 불붙게 만드는 음서야말로 은근히 배울 점이 많다.
음서만큼 집중이 잘되는 책이 또 있던가?
당연히 있을 수 없다!
책을 읽는 대로 쏙쏙 머릿속에 들어오며 그 상황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더군다나 인간의 오욕 칠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훌륭한 스토리!
음서라고 하여 다 같은 음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고뇌와 갈등, 욕망에 충실한 전개야말로 배울 점이 참 많다.
가정교육을 야한 소설로 받은 사나이!
어릴 때에는 남아 있는 페이지가 얼마 안 되는 것을 보고 원통해하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 아닌가.
설마 교과서가 몇 페이지 남지 않았다고 슬퍼하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책을 소중히 하는 마음가짐을 음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역시 책은 소중한 것이야."
위드는 길드라스의 이야기 책자를 보며 흐뭇해했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도 이런 책자들은 기타로 분류해서 거래된다. 의외로 이런 책들이 백과사전보다도 훨씬 비
싸게 팔렸으니, 그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위드의 망토 밑에서 빛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막혀 있는 동굴 안에서 펼치는 날개였다.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닌, 고속 비행을 위한 날개.
"달빛 조각 검술."
위드는 던전 안에서 비행하며 검을 휘둘렀다.
크라마노임들과 스쳐 지나가는 아주 짧은 순간, 놈들의 허점을 베었다.
너무나도 빨리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크라마노임이 멀리 보인다 싶으면 이미 코앞에 있었다.
몬스터들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기사들이 좁은 동굴에서 말을 타지 않는 것처럼, 날개를 펼치고 고속으로 나는 것은 미쳤다고 할 만큼이나 무
모한 행동이다. 회피가 불가능할뿐더러, 아차 하는 짧은 순간 벽에 몸을 부딪쳐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숫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좁은 곳에서 속력을 낸다는 자체가 미친 짓인 것이다.
그런데 남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위드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냥에는 고정된 방식이 있을 수 없다.
몬스터는 어떤 방식으로든 때려잡기만 하면 될 뿐!
빠르고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좁은 통로가 있는 던전에서 날개를 펼치고 초고속으로 비행을 하면서 몬스터를 벤다는 것은
위드도 고려해 본 적이 없는 방식이었다.
빛의 날개가 없기도 하였지만, 약한 크라마노임이라고 하더라도 보통은 이런 생각을 해내지 못한다.
반사 신경과 판단력이 입신의 경지에 올라 있더라도 검 그리고 몸을 제어하는 데 자신이 없다면 엄두도 못 낼
행동!
위드조차도 처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었지만, 재미가 있었다.
잠깐의 실수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통로들이 일직선으로만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가끔 방향을 전환해야 될 때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공포
였다.
벽에 부딪친다면 잘 다져진 어육이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때 피가 들끓는다.
그리고 위드는 그러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드워프의 몸이라서 현기증이 일어나는군. 역시 음주와 과속이야말로 제대로지!"
죽어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음주, 과속 운전!
삽시간에 크라마노임들을 베어 버리고 2층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했다.
위드는 급하게 르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괜찮아? 아직 살아 있지?
@네. 근데 뭐, 서서히 죽어 가고 있긴 해요.
@얼마나 죽어 가고 있는데?
@55% 정도요. 한 30분 정도 있으면 완전히 죽을 것 같아요.
@그래?
위드는 지하 2층으로 향하지 않고 뒤로 돌아섰다.
전멸해 있는 크라마노임들!
"그럼 잠깐의 여유는 있겠군."
위드는 날개를 펼친 채로 조금 전보다 더 빠르게 방금 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아이템 수거를 위한 고속 비행!
소소한 잡템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놔두고 지나갈 위드가 아니었다.
지하 2층의 성년 크라마노임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통로가 더욱 넓어졌기에 비행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을 뿐이다.
촤롸롸롸롸롸뢋!
통로의 끝 저 멀리, 빛무리가 보인다 싶으면 이미 위드가 날아와서 관통하고 있다.
크라마노임들이 대응하기도 전에, 침을 뱉기 위하여 입을 크게 벌릴 때에 검이 그 주둥이를 찌르고 있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속도에 의해 382%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속도!
어떤 몬스터라고 하여도 치명적인 약점을 공격해서 일격에 죽일 수만 있다면 유용한 기술.
몬스터가 이런 공격을 버텼을 때에는 문제가 될 수 있을뿐더러, 대응도 못할 정도로 좁은 통로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라서 고도의 기술과 정신력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위드는 비행을 하면서 푸념했다.
"역시 난 모자란 조각사였어. 진작 날개를 조각해서 달았으면 던전에서 정말 빨리 사냥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모든 던전들이 이런 구조는 아니라서 늘 쓸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넓은 던전에서는 자유자재로 허공을 날아
다닌다고 하여도 위험이 크다.
화살들이 쏘아진 곳으로 멋모르고 날아간다면 오히려 속도 때문에 치명상을 입는 것은 위드 쪽일 테니까!
일격에 죽지 않는 몬스터들은 스쳐 지나가면서 검을 휘두르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으리라.
크라마도의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발상이었다.
그럼에도 무능한 자신을 자책하는 위드!
지하 2층을 넘어서 3층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잡템들을 빠뜨리지 않고 간 것은 당연한 일.
공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상당수 함정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마법 등으로 작동되는 함정이라고 하여도, 미처 작동되기도 전에 이미 지나치고 없는 것.
쿠르르르릉!
저 뒤쪽에서 헤겔 등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던 바위 함정이 작동되었다.
바위가 굴러오고 있었지만 위드의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 바위보다 5배 이상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는 바위가 충분히 굴러오도록 잠깐씩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복잡한 미로의 길을 저 바위가 찾을 수 있게 해 주겠군."
르미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함정에 빠지게 되었는지 들었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답시고 말해 준 것이
지만 위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으로 들었다.
이윽고, 큰 바위가 통로의 일부를 부수고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바위 너머에 르미가 있겠군."
위드는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그라고 한들, 크기가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바위를 부수기란 불가능이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부딪친다면 파괴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부서지지 않는다면 육포가 되어 버
릴 것이 분명한 일.
인내력과 맷집으로 살아나더라도 뒤에서 굴러오는 바위에 깔린다면 압력에 의해 확실하게 사망!
"그럴 수는 없지."
위드는 품속을 뒤져서 조각품을 꺼냈다. 토르 왕국에서 조각품을 만들며 따로 챙겨 놓은 걸작들.
모험가 아가씨가 방긋이 웃고 있었다.
위드는 그 조각품의 목을 가차 없이 비틀었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들이 힘이 되어라!"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걸작 조각상이 파괴된 고통! 슬픔!
예술 스탯이 5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100 줄어듭니다.
예술 스탯이 일 대 사의 비율로 하루 동안 힘으로 전환됩니다. 』
명성과 예술 스탯을 소모하여 힘으로 전환!
위드의 짤막한 팔다리의 근육들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슴이 커지고, 허벅지도 굵어졌다.
근육질의 드워프, 바바리안을 능가하는 몸매였다. 단지 심하게 짧아서 모양이 나지 않을 뿐이다.
"가자."
위드는 빛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등 뒤에는 바위가 상당히 많이 굴러와 있었기 때문에 머뭇 거릴 시간이 없다.
위드는 빠른 속도로 날아서 바위를 향해 검을 내찔렀다.
긴 빛줄기는 유성이 통로를 관통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꽈아아아앙!
일격에 바위가 절반가량이나 파괴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아, 반발력이 위드의 몸에 충격을 주었다.
충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몸이 바위에 푹 박혔다.
"젠장! 역시 난 되는 일이 없어."
생명력의 삼분의 이가 감소했다.
탄탄한 맷집과 인내력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드워프 종족의 특성이 아니었더라면 확실하게 사망!
유성처럼 빠르게 날면서 위드도 망설였다.
그도 사람이었다.
'꼭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부딪칠 필요가 있을까? 조금 더 약해도 되지 않을까?'
한순간의 망설임이 속도를 줄어들게 만들었고, 그 결과 바위가 깨진 것이 아니라 위드의 몸이 깨졌다.
마법이 있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박살 낼 수 있을 테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상 몸이 고생할 수밖에.
위드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다시 날개를 펼쳤다. 빛의 날개는 조금의 손상도 없어서, 바위에 파묻혀 있던 몸이
금방 빠져나왔다.
"다시 한 번 간다."
뒤쪽의 바위가 상당히 많이 굴러와 있었기에 이번에는 절반의 거리밖에 두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에 좀 전보다 30%는 더 빠르게 가속 했다.
"될 대로 돼라, 죽기만 해 봐라. 이놈의 바위들은 다 끝장이다!"
다크 게이머에게 가장 두려운 죽음.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잃어버리는 아픔이 있다.
위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판사판이었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에 의해 되살아난다면 모조리 박살을 내 주리라 다짐하며 바위를 향해 전력 비행했다.
그리고 모든 힘과 가속력을 검의 끝에 모았다. 검 끝이 파르르 떨리고, 달빛 조각 검술로 인해 빛줄기들이 검
봉을 감싸고 있었다.
꽈아아아아앙!
절반쯤 남아 있던 바위가 단숨에 파괴되었다.
"르미야, 생명력 얼마나 남았어?"
"350 정도야."
"곧 죽겠네. 던전 탐험이 위험하기는 하구나. 진짜 꼼짝없이 죽게 생겼네."
"제길. 좁은 통로가 아니라 넓은 평원이었다면 거미줄 따위에 잡힐 일은 없을 텐데."
입만 내놓은 채로, 미라처럼 꽁꽁 거미줄로 싸여 있는 헤겔과 파티원들!
다가올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에게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이윽고 통로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충격파가 휩쓸었다.
"뭐, 무슨 일이야?"
"몰라. 혹시 위드 오빠가 온 건가?"
"르미야, 위드 오빠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와?"
"내가 말해 줬거든."
"그럼 우리랑 똑같은 함정에 빠진 거란 말이야? 지금 소리는 그 바위가 부딪치는 소리였고?
바위가 있던 방향에서 들려온 소리 같긴 했는데......"
"말도 안 돼. 저렙의 조각사 따위가 이 던전을 어떻게 들어와."
"내가 귓속말 보내 볼게."
"헛수고야."
르미가 위드에게 귓속말을 보냈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위드는 한창 힘을 모으고 있던 도중이었기 때문.
"역시 아닌가."
"아닐걸."
그런데 다시금 무슨 소음이 들렸다.
귀청을 찢어 놓는 것 같은 폭음!
산산조각이 난 바위가 여기저기 튀고 통로가 뒤흔들렸다. 거미줄에 칭칭 동여매여 공중에 묶여 있던 그들의 몸
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함정으로 통로의 입구를 막았던 바윗덩어리가 파괴된 것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제대로 찾아왔군."
"위드 오빠?"
"가만히 있어. 바로 구해 줄 테니까."
위드는 검을 휘둘러서 파티원들의 몸을 공중에 고정시켜 놓은 거미줄을 끊었다.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그들이었지만, 정신을 차릴 새도 없었다.
위드가 연속적으로 검을 휘둘러서 그들의 몸에 달라붙은 거미줄 더미를 잘라 낸 것.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얇디얇은 거미줄을 검을 휘둘러서 제거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로 벌어졌다.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미줄까지 벗겨져 나가면서 당당하게 서 있는 근육질의 드워프를 볼 수 있었다.
몸보다도 길어 보이는 검을 들고 있는 드워프였다.
드워프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동료들의 거미줄이 벗겨져 나간다. 신기에 가까운 검술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헤겔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위드 형이야?"
아직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정리가 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기가 막힌 순간에 등장해서 그들을 구해 주었으
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통로 입구에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굴러 들어왔다.
통로의 일부분을 부수고, 다시금 빠져나갈 공간을 틀어막았다.
"위드 형, 저 바위는?"
"내가 작동시킨 함정인가 보군."
"망했다! 뭐하러 들어왔어요. 형."
구원을 받았다고 안심할 겨를도 없다.
철수했던 거미들이 천장과 벽 등의 작은 구멍들을 통해서 우르르 기어 나왔다. 동시에 거미줄들이 장막처럼 둘
러쳐지면서 완전히 주변 일대를 감쌌다.
미라처럼 몸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특유의 공격이 시작된 것.
위드는 두 팔을 내밀었다.
"실타래 감기!"
중급 재봉 스킬.
부가 편 재료 획득 기술!
거미들이 토해 내는 신선한 거미줄을 감아서 실타래로 만드는 기술.
거미들이 뽑아내는 거미줄들이 둥글게 감겨서 천으로 봉인된 채 위드의 배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슈슈슉!
거미줄의 효과가 없자, 거미들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그리고 거미줄을 타고 기어 왔다.
하지만 위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았다.
드워프의 짧고 두꺼운 허벅지에 힘이 잔뜩 실렸다. 종아리는 터지기 직전!
거미들은 시기를 잘못 택했다.
바위를 깨느라 상처투성이였고 옷도 상당히 찢어졌지만,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소드 댄스!"
황제무상검법의 4초식.
위드의 움직임이 흐르는 물처럼 변했다.
소드 댄스는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에 폭발력을 추가해 주는 스킬이었다.
검에 닿는 족족 거미들이 터져 나갔다.
면면부절.
검이 멈추지 않고 흐르니 스킬의 위력이 최대화가 되고 있었다.
거미들의 사이를 가장 격력하고 기쾌하게 움직이는 검!
짧은 다리로 스텝을 밟으며 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위력을 보면서는 웃을 수 없었다.
위드가 거침없이 거미줄들 사이로 뛰어들면서 검을 휘두른다. 끈끈하고 질긴 거미줄들이 썩은 실처럼 잘려 나갔
다.
"비켜. 너희 따위에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작은 거미들은 마비와 거미줄을 제외하면 위협적이지 않았다.
적의 방어 능력을 무너뜨리는 조각 검술.
검술의 특성으로 인하여 거미줄은 별 해를 끼칠 수 없었고, 재봉 스킬로 인하여 거미줄 수거까지 일시에 이루어
진다.
작은 거미 떼를 돌파한 위드는 엘핀 퀸 스파이더와 맞섰다.
레벨이 380대 후반에 이르는 강력한 몬스터!
12개의 다리에는 큰 털이 숭숭 돋아나 있고, 머리 부분은 무섭고 흉측하기 짝이 없다.
나이드가 정보를 확인해 보고 저항을 포기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보스급 몬스터였다.
하지만 위드의 달려가는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막지 마. 본전이 급해!"
조각 파괴술, 그것도 걸작을 부숴서 힘을 늘렸다.
평상시에도 사냥을 하면서 허튼 시간을 보내는 것을 혐오 하는 위드 였는데, 이럴 때에는 완전히 사냥에 미쳐
야 된다. 사라진 명성과 예술 스탯의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망설임이 없다.
그때 엘핀 퀸 스파이더가 뒤로 돌아서더니 허둥지둥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샤샤샥.
거미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속도는 무섭게 빠르다.
유난히 겁을 잘 먹는 거미의 특성상 싸우는 대신 도주를 택한 것.
위드가 아닌 다른 먹잇감이 나타나더라도, 저항을 하려고 하면 일단 도망을 친다. 먹이가 완전히 힘이 빠지기를
기다린 후에야 상대하는 게 엘핀 퀸 스파이더의 방식이었다.
그러면서도 팔뚝보다 두꺼운 거미줄을 쏘아 내면서 통로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소드 카이저!"
위드는 남아 있던 모든 마나를 사용해 가장 강한 공격력으로 환원시켰다.
엘핀 퀸 스파이더의 급소, 거미줄이 나오는 꽁무니를 거침 없이 찔렀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셨습니다.』
조각 파괴술로 위력을 극대화한 소드 카이저!
마법사들의 최종 공격술인 마나 번과 맞먹는 끔찍한 파괴력.
엘핀 퀸 스파이더의 거대한 동체가 우르르 떨렸다.
콰콰쾅!
통로를 막고 있던 바위가 뚫렸을 때보다도 더 큰 폭발음과 섬광, 진동이 터졌다.
헤겔 들은 엎드려서 귀를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폭발음과 빛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소드 카이저, 소드 카이저, 소드 카이저!"
마나가 다 떨어진 이후, 생명력과 체력을 소모하면서 사용하는 최후의 초식!
소드 카이저를 연발로 사용하면서 집요하게 엘핀 퀸 스파이더를 사냥한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29%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47%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82%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114%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그것도 모든 공격을 한 지점에 퍼붓는 일점 공격술의 재현!
빠르게 도주하는 엘핀 퀸 스파이더를 정신없이 뒤쫓으면서 저항이 큰 스킬을 발동시켜 정확한 지점을 공격한다.
헤겔 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지만, 현재 위드가 발휘하는 공격력은 최강이라고 할 수 있
었다.
조각 파괴술에 소드 카이저, 검 갈기 스킬로 증가한 데미지. 이 모든 공격력을 일점 공격술로 활용한다.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생명력과 늘어 가는 부상으로 엘핀 퀸 스파이더의 이동속도가 현저히 감소했다.
도망이 불가능해졌으니 힘이 있다면 저항이라도 해 볼 것 이지만, 너무나도 막강한 데미지 앞에 비실비실 몇 걸
음 앞으로 나아가다가 죽었다.
회색빛으로 변한 엘핀 퀸 스파이더의 몸에서는 오리 알만한 사파이어와 허리에 두를 수 있는 요갑, 금화들이 나
왔다.
위드는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전리품들을 수거했다.
"으으, 조각사라면서......"
헤겔은 머리를 감싸며 신음했다.
머릿속이 백치라도 된 것처럼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조각사라면서 무슨 거미줄을 재봉 재료로 수거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활동적인 움직임은... 스킬이 아니라 진짜 검술이었어."
대부분의 유저들은 스킬에 의존해서 싸운다. 하지만 특별한 싸움꾼들은 직접 행동하고, 스킬들까지 전투에 최적
화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전투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차이란 엄청났다.
같은 진검을 들고 일반인과 훈련된 검사가 싸운다. 승부는 해보나 마나였다.
육체와 도구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사용하는 사람의 판단력과 감각, 경험에 따라서 천양지차의 결과를 보여 줄
수 밖에 없다.
로열 로드에서도 현실에서의 전투의 달인과 일반인이 몬스터를 사냥하면 당연히 차이가 벌어진 수밖에 없다.
최적의 거리 유지, 최소한의 회피 동작, 최대한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공격 방식!
몬스터를 사냥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이고,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파격적이고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지 않다.
초보 시절부터 점점 성장하면서 캐릭터에 익숙해지고 스킬 사용에 능숙해진다. 사냥이 반복되면서 몬스터와 싸
우는 방법도 조금씩 숙달된다.
처음 싸우는 종류의 몬스터보다, 수백 번 사냥을 해 본 몬스터를 훨씬 잘 잡을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이치!
하지만 위드에게나 검치에게는 그런 과정이 필요 없었다.
"때려잡으면 될 뿐."
무식하게 몬스터를 때려잡는 모습에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다.
"사냥에 성공했나 봐."
"가 보자."
20여 초가 지나고 나서, 셀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를 따라서 다른 파티원들도 위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
다.
무언가 느껴지는 위압감.
고작 드워프에게서 위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지만 사실이었다.
모르는 사이였다면 감히 다가갈 수조차 없었으리라.
그들이 다가갔을 때에 위드는 몸에 붕대를 감았다. 양손에 붕대를 들고 몸통과 팔, 다리, 목 등을 감아 돌리는
기술.
약초들을 덕지덕지 바르고, 눈을 감고 명상을 취했다.
붕대 감기 스킬 마스터!
유능한 워리어들도 중급에 오르면 존중받는 스킬을 전투 노가다로 마스터한 위드.
생명력과 마나가 느릿하게 회복되고 있었다.
위드에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큰 부상을 입은 듯한 태도에 셀시아는 감히 방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 엘핀 퀸 스파이더와 싸우느라 너무 많이 다친 것 같아."
"성직자가 없으니 치료해 줄 수도 없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불과 8% 정도의 생명력이 차오르고 나서 위드가 눈을 떴다.
가늘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
위드의 눈매가 본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외모에서 눈이 그나마 가장 나을 정도로 눈빛이 맑고, 깨끗한 이미지
였다.
지금은 조각 변신술로 인하여 눈매가 변해 있다.
가늘고 찢어진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대로 놀고 있을 겨를이 없지. 본전을 찾아야 돼!"
길게 심호흡을 한 뒤에, 비틀거리면서 엘핀 퀸 스파이더가 나왔던 통로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전투의 와중에 부러졌는지 발목은 땅에 질질 끌렸다.
인내력과 맷집이 아니었다면 이미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들어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부상.
"부러진 발목 따위야 시간이 지나면 붙겠지."
위드는 검을 지팡이처럼 이용하면서 전진했다.
발목이나 손목이 부러져 본 경험이 백 번은 넘었으니 몸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므로 계속 전투를 이어
가려는 것이었다.
최지훈은 이현의 동생인 이혜연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가전제품들을 고쳐 주고, 로열 로드에서 모르는 것들을 가르쳐 주면서 친해졌다.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어도
꽤 친근한 관계였다.
이혜연이 딸기 우유를 마시다가 말했다.
"오빠, 내가 개인기 보여 줄까?"
"개인기?"
"응. 개그맨들이 자주 하는 그런 성대모사 보여 주고 싶은데."
최지훈은 상당히 기대가 되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진짜 해 줄 거야?"
"응. 먼저 멀리서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를 성대모사로 표현할게."
이혜연이 자두 빛의 입술에 침을 살짝 바르고 말했다.
"뚜벅. 뚜벅."
"......"
"그다음은 자동차에 시동 거는 소리야. 부르릉!"
"......"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야. 슈우우웅!"
사진 촬영하는 소리 찰칵, 전화 오는 소리 따르릉, 북 치는 소리 둥둥둥, 강아지 울음소리 멍, 고양이 울음 소
리 야옹!
최지훈은 눈물을 흘리면서 웃었다.
성대모사는 전혀 안 비슷했지만, 청순하고 앳된 외모의 소녀가 진지하게 개그를 하는 모습이 즐거웠던 것이다.
'이 아이, 매력이 있어.'
숱한 여자들을 만나 봤음에도, 이혜연과 함께할 때처럼 빠져드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평생 같이 살더라도 후회
가 없을 것 같았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활짝 핀 꽃들을 볼 수 있겠지'
완전히 환상에 빠져든 남자의 형태!
오히려 이혜연 쪽에서 그냥 평범한 오빠로만 여기는 게 아닌지 노심초사할 정도였다.
최지훈이 일부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흘리듯이 물었다.
"넌 이상형의 남자가 뭐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자신은 어떠냐며 대쉬를 해 볼 참이었다.
이혜연이 가볍게 대답했다.
"키는 187 정도에 몸무게는 78킬로그램, 정장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어.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
약간 슬림한 몸매에 근육. 취미로는 요리와 청소. 연봉은 2억 정도에, 금융계 종사자. 나이는
스물여덟 살 정도면 될까?"
"......"
"농담이야. 가정적인 남자가 좋아. 나머지는 내 마음에만 들면 되지. 여차하면 내가 벌어서
먹여도 되고."
"가정적인 남자?"
"응. 나만을 보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
최지훈은 말문이 막혔다.
능력이라면 누구보다 있다. 외모도 자신이 있었으며, 어떤 여자라도 매료시킬 수 있는 매력도 있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이 이혜연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것들을 제외하면... 난 정말 보잘 것없는 사람이구나.'
최지훈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다.
그때 이혜연의 어깨 너머에서 아는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혜연과 알고 지내고 만나면서 항상 꿈에서라도 볼까 두려워했던 인물 중 한 사람!
검치 들 중의 일인인 정일훈이었다.
차은희에게 주기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에 나온 정일훈에게 딱 걸렸다.
"오빠,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응? 으응."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는데 괜찮아?"
"조, 조명 탓이겠지."
"여기엔 파란색의 조명이 없는데... 암튼 나 이제 집에 갈게."
"벌써 가려고?"
"응. 너무 늦으면 우리 오빠가 걱정하거든."
"데려다 줄까?"
최지훈이 스스로도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여기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돼.'
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
이혜연이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그러지 않아도 돼. 여기서 버스로 다섯 정거장밖에 안돼. 갈아탈 필요도 없거든."
"내가 택시로 바래다줄게."
"돈 아껴.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써? 나 데려다 조고 다시 집에 돌아갈 때도 택시 타고 갈 거지?"
최지훈은 아니라고 거짓말은 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평생 타 본 적이 없으니 요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기사가 리무진을 태워서 통학을 시켰다.
고등학교 때에는 오토바이를 탔다. 사고 확률이 높은 위험한 운송 수단이지만, 경호원들과 경찰차들의 호위 아
래였다.
최대로 검소하게 활용하는 게 택시.
집에 있는 그의 외제 차들은 창고에서 푹 쉬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가전 업체 대리점 집 아들이 되어 버렸다. 편견이나 거부감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
실대로 밝히지도 못했다.
겸소한 데이트를 하며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이 싫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뼈저린 아쉬움이 느껴진 적도 없었다.
"먼저 갈게. 조심해서 들어가."
"혜, 혜연아."
최지훈이 그래도 데려다 주기 위하여 엉거주춤 일어날 때였다. 그는 정일훈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드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무언가를 말하고 있기도 했다.
시끄러운 입 모양은 분명했다.
'도망가면 죽는다.'
이혜연을 보내고 나서, 최지훈은 정일훈에게 다가갔다.
위축된 어깨와 흔들리는 눈동자. 영락없이 죄인의 모습이다.
"덥다. 좀 걷자."
"예, 형."
그들은 인근의 공원으로 향했다.
뒷산으로 안 올라가는 게 최지훈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정일훈 형에게 걸린 게 그나마 나은 거야.'
책임감 강한 첫째 사법. 본인도 연애를 하고 있으니 이해심도 남다르리라.
맑은 호수 공원에서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너희가 부럽구나.'
이 순간만은 최지훈도 물고기들이 부러웠다.
정일훈이 일그러진 얼굴로 크게 탄식했다.
"네가... 혜연이를 좋아하냐?"
"예, 맞습니다."
최지훈은 변명하지 않았다.
사귀는 관계는 아님에도, 자신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히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구나."
정일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최지훈의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던 몸이 차츰 진정이 되었다.
'살았다.'
무작정 두들겨 패진 않는다. 그러므로 무사히 넘어갈 것 같다는 긍정적인 예상을 조심스레 해 보았다.
잠시의 정적 후에, 최지훈이 남자답게 가슴을 폈다.
"혜연이만 저를 좋아해 준다면, 정말로 진지하게 사귀어 보고 싶습니다."
"결국은 네가....."
"죄송합니다. 형님."
"괜찮다. 나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 연애는 당사자들이 하는 게지. 그리고 사귀는
관계도 아니라며?"
"저는 좋아하고 있습니다."
최지훈은 이혜연의 어떤 모습들이 그렇게 예뻐 보이는지 설명했다.
장장 10여 분이나 이어지는 설명. 다른 여자들과 만나 보면서 가졌던 공허한 감정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
다.
"저는 아직 어리지만, 평생에 다시 찾아오기 힘든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잠잘 때도 생각이 나고요."
최지훈은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이혜연은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놓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빠져 있는지도.
정일훈이 그의 어깨를 두꺼운 손으로 다독여 주었다.
"그래. 그 정도의 각오라면 됐다. 남자가 구차하게 이런저런 말 하지 않아도 된다."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허락은 무슨. 연애는 당사자들끼리 좋아하면 되는 거라니까."
"고맙습니다. 형님!"
"참, 그런데 말이다."
정일훈이 크게 인심 쓰듯이 말했다.
"내일부터 너도 도장에 나와라."
"네?"
"남자라면 육체 단련에도 조금은 신경을 써야지. 비리비리한 몸으로 되겠냐."
"비리비리하진 않은데......"
농구와 축구, 수영 등 각종 스포츠로 단련된 몸이었다.
정일훈이 엄하게 소리쳤다.
"약해! 그 정도 체력으로 데이트를 하던 도중에 불량배가 3,000명쯤 덤벼들면 이겨 낼 수
있겠냐?"
"3...3,000명요?"
"어떤 환경에서도 여자 친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이 벌어지고,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고, 지진, 해일이 일어나도 여자 친구는 살려야 된다. 넌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냐?"
"아, 아직은요."
"내가 그런 힘과 용기를 키워 주마.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작은 도움밖에 안 된다니
아쉽구나."
"고맙습니다."
"네가 혜연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사제들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나서 줄걸. 대련 상대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 새벽 일찍 도장에 나오너라. 그래야 1명에게라도 더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지."
사범들과 수련생 500명과의 대련!
최지훈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도장에 나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설마 혜연이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가짜는 아니겠지?"
"진짭니다."
"도망치고 싶다면 괜찮다. 도망쳐도 된다. 도장에 안 나와도 된다는 뜻이다."
"정말요?"
"응. 우리가 잡으러 가면 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