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의 궁금증
위드는 누렇게 뜬 얼굴로 네칸 성으로 귀환했다.
던전 크라마도에서의 쉴 새 없는 사냥!
레벨과 아이템은 상당수 얻을 수 있었지만 그 대신 과로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빠진 것이다. 현재의 체력과 스
탯 들은 정상이었을 때의 3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위드는 한 보따리의 땅콩과 마늘과 양파를 구입한 후에 선술집에 들어갔다.
"여기 흑맥주 한 반!"
맥주를 주문해서 들이켰다.
『-체력이 소량 회복됩니다.
중증 과로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조금이나마 살 것 같았다.
'사냥뿐만 아니라 축제도 지긋지긋했지.'
대학 시절에 처음 맞이하는 청춘의 축제가 그에게는 지겨운 일!
'돈을 벌어야 될 시간에 남들처럼 여유를 부릴 수는 없지. 남들처럼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놀고 싶은거 다 놀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언제 돈을 모을 수 있겠어?'
요즘은 시대가 꼬마 애들도 빈부 격차에 대해서 알 정도였다.
위드의 시각에 따르면 부모가 운전하는 외제 차를 타고 유치원에 온 아이는 자신감에 차 있고 당당하다. 하지만
통학버스를 타고 온 아이는 어딘가 위축되어 있다.
"너......"
"응?"
"모나미 볼펜 쓰는구나."
"우리 엄마가 실직을 해서...... 다음 달에는 일제 볼펜으로 바꿀게."
위드의 꿈에 나왔던 유치원생들의 대화였다.
실제로 돈의 유무는 사소한 구석에서도 차이가 났다.
식판에 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잘사는 집 아이는 소시지부터 케첩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못사는 집 아이들은
콩나물이나 나물부터 먹는다.
소시지는 아껴 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현은 본인에게 자격지심이 있음을 인정했다.
'흰 우유만 마시고 자란 아이와, 딸기 우유를 마시고 자란 애들이 서로 같을 수는 없지.'
심금을 울리는 딸기 우유 이론!
위드는 맥주를 마시며 축제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정효린의 라이브 무대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앙코르가 계속되고, 이현은 손을 잡고 함께 있어야만 했다.
'어디 그것뿐이야?'
그 정도에서 멈췄다면 체력이 이처럼 심하게 고갈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축제의 마지막 날. 선배들은 서윤에게 말했다.
"서윤아, 너도 축제를 즐겨야지. 여기서 일만 할 거니?"
주점 손님들의 90%는 서윤을 보기 위해서 온 것이지만, 선배들은 그녀에게도 자유를 주었다.
"나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와. 축제는 다 같이 참여해야지. 혹시 누구 같이 나가서 놀고 싶은 사람
이라도 있니?"
선배들의 호의에 서윤은 반사적으로 이현을 쳐다보았다.
이현은 곧바로 환한 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래. 주점은 걱정하지 말고 축제 구경 잘하고 와."
주점은 성공적이었고, 주문을 잘해서 요리 재료도 거의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저녁 8시 정도에 조기 마감을 한
다면 집에 가서 로열 로드에 접속할 수 있다.
2시간의 여유라면 서윤과의 데이트도 거절해 버리는 게 이현이었다.
"이현아."
군대까지 다녀온 예비역들은 그런 미묘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예. 선배."
"믿기진 않는다만 서윤이가 너를 원하나 보다. 네가 축제를 안내해 줘라."
예비역 선배들의 말까지 거부할 수 없어서 이현은 부득이하게 축제를 안내시켜 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크으, 부럽다."
"아, 나도 잘 안내해 줄 수 있는데......"
선배들과 손님들의 부러움 속에서, 이현은 서윤과 함께 주점을 나섰다.
웨딩드레스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후였지만, 축제를 구경 온 남자들의 눈이 튀어나오게 만들 정도로 예쁘다.
그들을 지나쳐 간 남자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더니 다른 장소로 떠나지를 않았다.
"갈까?"
이현은 덥석 서윤의 손을 잡았다.
정효린이 손을 잡고 놓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으니 서윤도 별로 싫어하지는 않으리라 믿으면서 먼저 손을 잡은
것이다. 남자로서의 용기가 아니라, 축제의 인파가 워낙 많아서 손이라도 잡지 않으면 놓쳐 버릴 것 같다는 이유
도 있었다.
"......"
부드럽고 여린 손. 의외로 따뜻하다.
서윤은 손을 잡히자 몸 전체가 경직된 느낌이었지만, 금방 풀렸다.
"하고 싶은 거 있어?"
이현이 물었을 때에 서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막상 말을 해야 될 때면 말문이 막혀 오기도 했지만 대학 축제를 구경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안내할게."
이현은 서윤과 함께 두더지를 잡으러 갔다.
가격도 만만하고, 정효린과 함께했을 때 반응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이현을 본 두더지 행사장의 학생들은 분개했다.
"크윽......"
"어제 그놈이다."
"선배! 어제 효린 씨와 왔던 그놈이... 오늘은 서윤 양과 함께 왔습니다."
두더지들은 심한 질투를 감추지 못했다.
어제의 정효린으로 모자라서 오늘은 서윤이다.
더구나 이현의 행동이 무척이나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제는 수줍은 듯이 정효린의 팔짱을 낀 채로 따라오더니... 오늘은 서윤 양의 손을 적극적
으로 잡고 있잖아.'
'가식적인 놈.'
'선수 중의 선수구나.'
두더지들은 화가 솟구칠 대로 숫구쳤다.
"이 뿅망치를 잡고 때리면 되는 거야."
이현의 조언 아래 서윤이 뿅망치를 들었다.
뾱뾱뾱뾱뾱뾱!
어설프던 정효린과는 굉장히 달랐다.
이현과의 손을 잡은 채로도 1마리의 두더지도 놓치지 않고 타격하는 재빠름.
숙맥 같은 성격에 비해 운동신경이 보통이 아니다.
뿅망치에 맞을 때마다 두더지들은 비통함과 서글픔을 동시에 느꼈다.
'얼굴이 잘생겼거나 돈이 무진장 많은 놈이라면 이토록 억울하진 않을 텐데.'
'저런 평범한 놈이 무슨 매력이 있어서......'
인형을 뽑을 때에도 어제의 경험이 있어서 쉽게 작은 당근과 키위 인형을 쏠 수 있었다.
"선물."
이현은 당근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다른 건 내 여동생에게 선물로 줘야 되니까, 1개만 받아."
"......"
서윤은 당근 인형을 손에 꼭 쥐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서 밤늦도록 행사들이 이어졌고, 이현은 서윤을 데리고 축제를 구경했다.
행사장들을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보는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신기한 일투성이였다.
서윤은 환한 웃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붉게 상기된 얼굴을 했다. 이현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면서, 복잡
한 장소를 지나칠 때에는 손을 꼭 잡기도 했다.
"춤출래?"
메인 무대가 있는 잔디 광장에서 조명들이 환하게 켜졌다.
부드러운 연주 곡이 흘러나오고, 커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서 이현도 서윤에게 춤을 청한 것이다.
서윤은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가까이 달라붙었다.
음악과 함께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인다.
과격하지 않은 춤이었지만 둘은 서툴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의 발을 번갈아 밟고 있었다.
"......"
"......"
이현은 서윤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서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지겨운 축제가 끝났어. 이제야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겠군."
맥주를 마시니 늘어져라 하품이 나온다.
과로 상태에서는 휴식이 보약이다.
드워프의 몸을 하면서는 맥주를 마시고 쉬는 편이 효과가 컸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조각 변신술을 해제할 때도 되었군.'
각 종족별로 장단점이 있다.
드워프는 체력과 지구력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팔다리가 짧아서 정작 전투에서는 상당히 불리한 편이다. 빨
리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훨씬 어렵게 전투를 해야 한다.
바바리안들은 육체적인 능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훨씬 큰 키와 근육질의 몸은 전사로 자라기에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고, 주술 들에 잘 현혹되는 부작용을 가졌다.
인간은 딱 중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성력이나 마법을 사용하기도 좋고, 파티 사냥 시에는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 해 준다. 오크나 엘프, 요정, 홉고블린처럼 특수 종족도 각광 받고는 있지만, 역시 가장 흔히 선택하는 종
족이 인간이다.
중앙 대륙에서 가장 큰 왕국들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했다.
"데이몬드가 이끄는 마물의 군대가 오데인에서 연합군 세력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구만."
"오데인 요새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겠지?"
"암! 난공불락으로 소문난 요새 아닌가. 암만 거대 마물들이라고 하더라도 오데인 요새의 방어선을
뚫기란 어려울 거야."
베르사 대륙이 혼란에 빠지자 데이몬드와 마물들을 저지하기 위하여 연합군이 오데인 요새로 모였다.
10만이 넘는 연합군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있고, 또 그 이상의 지원부대가 후방에서 결집 중이다.
마물들이 돌격을 해 올 때마다 오데인 요새에서 시전되는 1만여 개의 공격 마법은 장관 그 자체!
"영웅이여, 오데인 요새로 오라!"
"마법사들의 참전을 환영합니다."
오데인 요새에 있는 제국의번영 길드에서는 용병들까지 모았다. 오데인 요새가 마물에게 뚫리면 자신들의 터전
이 빼앗기기 때문에 필사적이었다.
이름 없는 고레벨 유저들. 용병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베르사 대륙의 이목이 오데인에 집중되었다.
오데인 요새의 성벽을 사이에 두고 매일 벌어지는 압도적인 전투들은 섣불리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였다.
마물들이 성벽 위로 올랐을 때에는 연합군의 패배가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용병들, 전사들, 기사들의 기적
적인 투혼으로 마물들을 간신히 몰아냈다.
연합군이 부활의 군대를 밀어붙일 때도 있었지만, 곧 추가로 마물들이 가세하면서 다시 오데인 요새 안으로 퇴
각해야 했다.
각국의 정규군이 원정대로 파병되어 부활의 군대가 장악한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도 벌였다.
다크 게이머들은 검 한 자루를 차고 오데인 요새로 뛰어들었고, 무기와 방어구, 전투 물자의 시세도 폭등하고
있다.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전쟁의 여파로 베르사 대륙 전역이 시끌벅적했다.
위드는 품에서 죽음의 상을 꺼냈다.
쿠르소에서 데스핸드를 물리치고 얻은 전리품. 더불어 다른 퀘스트와의 연관 관계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물건
이었다.
"부활의 군대와 관련이 있는 퀘스트는 아니겠지?"
데스핸드를 상대로 승부할 때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빛의 조각품을 만들지 않고 나무나 바위를 평
범하게 조각했더라면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낫을 들고 있는 마수의 조각품이라......"
조각품의 생김새에 따르면 상당한 의혹이 생겼다.
부활의 군대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모라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탐험가들이 원래 부활의 교단
이 있던 장소들을 발견하면서 그들의 상징물의 형태가 드러났다.
위드가 들고 있는 조각품과 똑같이 생겼다.
부활의 군대와 진짜 연관이 있다면 위드에게는 심각한 일!
10만의 연합군과 싸우고 있는 부활의 군대와 맞서라는 퀘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런 황당한 퀘스트는 아닐 테고......"
위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사실 힘들고 황당한 퀘스트를 어디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었기 때문.
누렇게 얼굴이 뜬 드워프가 진지하게 표정을 굳힌다고 해도 처량함만 더할 뿐이었다.
종업원이 다가왔다.
"손님."
"예?"
"저쪽의 상인 분들이 드시라고 맥주 한 통을 보내셨습니다."
"......"
동정심까지 일으키는 청승맞은 태도!
귄위와 카리스마, 영웅들이 갖춰야 할 덕목과는 거리가 먼 위드였다.
위드는 손을 흔들어서 고마움에 대한 답례를 한 뒤에 맥주를 마셨다.
『-몸이 노곤해집니다.
낮잠을 자면 피로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과로로 혹사당한 몸은 계속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위드는 심사숙고 끝에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어려운 의뢰라고 해서 다 피해 버린다면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해. 따지고 보면 프레야 교단의
의뢰들을 성공시켰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데스 나이트 반 호크와의 인연이나 리치 샤이어와의 전투, 모라타의 영주가 되었던 인연
들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가 수행했던 퀘스트들과 관련이 있다.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에서 헤레인의 잔을 찾지 못했다면 사냥만 할 줄 아는 그저 그런 다크 게이머가 되었으리
라.
그보다도 훨씬 전 현자 로드리아스의 의뢰를 받지 않았더라면 검사나 기사가 되어서 평범하게 성장하였으리라.
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조각사가 되어 남들보다 빠르게 명성이 늘어난 것이나, 조각술의 비기들을 획득하면서 얻은 힘들도 따지고 보면
소중한 인연이다.
어떤 의뢰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어려운 일이라도 부딪쳐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피하기만 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릴 거야.'
위드는 비장한 각오로 스킬을 시전했다.
"감정!"
띠링!
『-실패하셨습니다.
집중력이 저하되어 있으므로 감정에 실패했습니다.』
"......"
맥이 탁 풀렸다.
과로에 술기운이 올라와 있어서 스킬 사용이 실패한 것이다.
"감정!"
띠링!
『-실패하셨습니다.』
"감정!"
띠링!
『-실패하셨습니다.』
"감정!"
띠링!
『장난감 목상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장난감.
적당한 크기에 가지고 놀기 좋을 것 같다.
예술적 가치:거론하기 창피함.
특수 옵션:우는 아이들을 그치게 할 수 있다.』
일곱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사탕을 입에 물고 담 밑에 장난감을 숨겨 두었다.
"절대 형에게 들키지 않아야 돼. 형이 또 장난감을 뺏어가면 안 되니까 말이야. 게른 형은 만날
내 장난감을 가지고 가서는 다 망가뜨려 놓아. 정말 나쁜 형이야."
어린 꼬마가 형에 대한 악담을 퍼부으며 장난감을 숨겨 놓는다.
가족애가 물씬 느껴지는 훈훈한 광경이었다.
목상도 그렇게 해서 담 아래에 있는 가시덤불 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게 숨겨 놓았다.
그리고 지나가던 데스핸드가 장난감을 보고 주워 들었다.
"이건... 쓸 만한 목상이야."
『잃어버린 장난감
수르 왕국 하겐 마을의 소년 브레이브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브레이브에게 돌려주면 아끼는 사탕을 1개쯤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난이도:F
보상:브레이브의 사탕
퀘스트 제한:돌려주지 않고 가지고 놀다가 꼬마 아이들에게 걸리면 엄청난
악명이 쌓이고 호칭 장난감 강탈자를 얻게 됨. 』
"커헉!"
술기운이 확 달아날 정도의 충격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감정한 조각품이 기껏 F급의 난이도라니 이처럼 허탈한 일이 또 있을까.
"하필이면 수르 왕국까지 가야 되다니... 골치 아프군."
사소한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가기에는 귀찮았다.
"사탕이라니......"
위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귀찮고 흔한 의뢰들은 소문이 나서 알아서 피하는 편이지만, 쿠르소 왕국의 희귀한 의뢰가 난이도 F급의 의뢰
일 줄이야.
"그래도 날아가면 빨리 갈 수 있을 테니... 좀 낫겠군."
비행도 과로를 해결해야 가능했다.
과로에 과음을 하고 하늘을 날다가 마나의 흐름이 끊겨서 추락하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사망이니까.
위드는 맥주를 마시면서 일단은 푹 쉬기로 했다.
"지금까지 마신 맥주 값이... 커험."
땅콩을 까고, 마늘과 양파를 벗기면서 맥주를 마셨다.
어떻게 해서든 사치와 향락은 있을 수 없다.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도 본전은 뽑기 위함이었다.
제빵으로 유명한 하겐 마을!
마을의 주력 생산물은 사탕수수와 밀가루, 호두, 포도, 옥수수 등이었다. 농작물의 좋은 품질은 요리사들을 모
이게 만들었고 현재는 수제 케이크와 쿠키, 달콤한 스위트 와인이 잘 팔렸다.
커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끽하는 마을이었다.
"오빠, 많이 먹어!"
"자기야, 자기도 많이 먹어야 돼. 내가 먹여 줄까?"
도처에 널려 있는 바퀴벌레 커플들!
위드는 그들을 무시하고 어깨를 펴고 걸었다.
마치 애인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여자 친구에게 줄 케이크를 사기 위해 온 남자처럼.
"케이크 좀 보고 가세요!"
행상인들이 파는 물건들을 곁눈질하는 행동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말을 꺼냈다.
"혹시 브레이브란 아이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아저씨들은 동네 아이들의 이름 따위는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가지고 있을 아줌마들에
게 물어보면 알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브레이브? 에휴, 걔가 또 무슨 잘못이라도 했수?"
"예?"
"마을에서 지독한 악동에 장난꾸러기라우. 어른들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지. 우리 애가 그 애랑
놀지 말아야 될 텐데......"
"브레이브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그 애에게 돌려줘야 할 장난감이 있는데요."
"지금이 아직 초저녁이니 집에 가도 만나기 어려울 테고... 뒷골목이나 놀이터에 가면 볼 수
있을 거라오."
작은 마을이었지만 브레이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줌마들이 권하는 장소를 모두 찾아가 봤음에도 불구하고 행적을 찾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결국 빵 가게 뒤의 창고에서 브레이브를 찾아냈다. 녀석은 입가에 생크림과 빵가루를 잔뜩 묻혀 가며 빵을 훔
쳐 먹고 있던 도중이었다.
'찾았다.'
위드는 반갑게 말했다.
"꼬마야, 이 조각품이 네가 잃어버린 장난감이 맞지?"
"어? 드워프다. 드워프가 말을 하네."
"형이 네 장난감을 찾아왔거든."
"콧수염이 진짜 웃기다. 다리도 나보다 짧은가?"
"이 조각품이 네 거 맞지?"
브레이브는 위드가 내민 조각품을 받았다.
띠링!
『잃어버린 장난감 완료
하겐 마을의 소년 브레이브에게 장난감을 찾아 주었다.
퀘스트 보상:브레이브의 기분이 좋으면 사탕을 1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귀찮았던 퀘스트 완료.
위드는 사탕을 받기 위해 묵묵히 기다렸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의뢰였지만, 사탕도 상점에 팔면 3쿠퍼 정도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브레이브는 사탕 대신 조각품을 돌려주었다.
"내 거 맞네. 우리 형이 훔쳐 간 줄 알았는데...... 근데 이거 필요 없는데요."
"......"
"난 꼬마가 아니거든. 여덟 살이거든. 장난감 따위 가지고 놀 나이는 지나서 말이죠.
아저씨나 갖고 놀아요."
빠득!
위드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인내, 또 인내했다.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과는 가능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수록 이득이 크다.
서비스 정신의 기본은 친절과 봉사, 헌신.
화가 나도 참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
다크 게이머의 서러운 철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 이 장난감은 네가 받아야지. 네 장난감이잖아. 찾아온 내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그리고 내게 사탕을 줘야 하지 않겠어?"
"안 가지고 논다니까요!"
브레이브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저씨, 그렇게 내 사탕이 갖고 싶은 거예요? 내 계피 맛 사탕이 맛있는 건 어떻게 알고......"
"크흠."
"아무튼 난 사탕 안 줄 거니까, 그 장난감이나 나 대신 갖고 놀아요. 아 참, 그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던 주정뱅이 스미스 아저씨한테 줘 보세요."
"스미스 아저씨?"
"별 볼일 없이 나이만 먹은 늙은 아저씨죠. 하기야 뭐, 그래 봤자 아이의 사탕이나 노리는
드워프 아저씨보다야 낫겠지만 말이에요."
띠링!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가 원하는 장난감
하겐 마을의 주정뱅이 스미스가 필요로 하는 장난감.
주점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는 그는 브레이브의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한다.
난이도:F
보상:없을지도 모름.
퀘스트 제한:포기해도 불이익은 없음. 』
브레이브가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만날 술값이 밀리는 무능한 늙은 아저씨죠. 가족도 없고요. 난 절대 그렇게 쓸모없이 나이를
먹진 말아야지. 킥킥!"
위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난이도 F급의 연계 퀘스트.
주점은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 스미스를 보러 하번은 가 봐야 될 것 같았다.
"알았다. 꼬마야. 그럼 나중에 보자."
"꼬마가 아니라니까. 그리고 더 이상 아저씨를 볼 일은 없을 걸요. 혹시 내가 갖고 싶어 하는
철검을 가져다주면 또 모르지만."
위드는 조용히 조각품을 품속에 넣고 사라졌다.
브레이브는 창고에서 다시 신선한 빵을 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위드가 사라졌던 곳에서 흉악한 오크가 튀어나왔다.
오크 카리취!
얼굴과 몸매로 흉악범까지도 순한 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존재.
"크에엑, 오크다!"
"취이익! 뒤졌다. 인간 꼬마!"
위드는 여러 말 하지 않았다.
일단 패고 봤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뼛속까지 새겨지도록 말이다.
주점의 주정뱅이 스미스에게 조각품을 보여 주었을 때, 그의 게슴츠레한 눈에 총기가 돌았다.
"이 조각품 어디서 구했나?"
"브레이브란 꼬마 애가 가지고 놀던 조각품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조각품을 내가 가지고 싶어 했는데... 혹시 그애에게서 자네가 뺏은 건가?"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오크 카리취로 변신한 이후로, 완전히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고 인간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아닙니다. 잃어버린 장난감을 어렵게 찾아다 주었더니 더 이상 가지고 놀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브레이브가 어르신이 이 장난감, 아니 조각품을 가지고 싶어 한다고 해서 가지
고 왔습니다."
"그랬었나. 그 조각품을 나에게 좀 줘 보겠나? 브레이브가 가지고 있을 때에 보고 싶었는
데 나에게는 아주 잠깐밖에 보여 주지 않았지."
"여기 있습니다. 가지셔도 됩니다."
띠링!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가 원하는 장난감 완료
주정뱅이 스미스는 원하는 조각품을 손에 얻었다. 아직 한낮이긴 하지만 그에게
술을 얻어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퀘스트 보상:주정뱅이 스미스에게 직접 받으십이오. 』
『-명성이 1 올랐습니다.』
스미스는 조각품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이 조각품은... 내가 젊어서 여행을 하며 보았던 적이 있어."
"예?"
"조각품이 어디서 난 건지 브레이브가 말해 주지 않던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20년 전 이야기라네. 용병으로 대륙을 떠돌던 시절... 케헴! 그땐 나도 무진장 잘나가던
용병이었다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용병대도 거느리고 있었지."
물론 위드는 믿지 않았다.
술꾼들은 하나같이 과거에 대상인이나 일급 용병이 아니었떤 자들이 없다. 그들의 허풍이 어디 하루 이틀이 아
니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여왕 폐하의 명령을 받아 국왕군과 함께 역적 사보이도 백작은 처단하였지. 그 사보이도 백작의
창고에 이것과 똑같이 생긴 조각품이 있었다네."
"그랬군요."
"아쉽지만 이 조각품이 어떤 물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미심쩍은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혹시 이곳의 도서관에 가면 이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을까?"
위드는 왠지 퀘스트가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네가 나를 위해 좀 알아봐 주지 않겠나? 그러면 내가 용병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띠링!
『노인 스미스의 궁금증
용병 출신인 스미스는 젊었을 때 봤던 조각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조각품에 대한 정보를 모아다 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 줄 것 같다.
난이도:D
보상:스미스의 이야기.
퀘스트 제한:없음. 』